299_불행 받아라
“대진표가 나왔습니다.”
어두운 테이블에 하나하나 불이 켜진다.
“드디어 나왔군요.”
“드디어.”
“어디드!”
전체 조명이 딸깍, 켜짐과 동시에.
“네, 그렇습니다! 후우우우우우! 호오오우!”
가운데에 앉은 진행자가 환호를 터뜨린다.
주변 반응은 싸늘하다.
“진정 좀 하세요. 땀나요, 땀!”
“에어컨 안 틀려있는 거 아니야? 오늘 여기 왜 이렇게 더워요?”
“너네들 호응 같이 안 해줄 거니?”
“우리가 뭐 한두 번 해보나. 형, 그렇게 함성 유도하는 거 옛날식 진행이에요!”
“너희 진짜 자꾸 이러면..”
“일~ 하세요~ 카메라 필름 아깝다~”
해설과 분석가 6인방을 앞에 둔 코너 진행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행자 김인방은 이름과 달리 녹방 한정 고인물이다.
“뭔 필름이야, 카드에 저장되는데. 너야말로 언젯적 방송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리고 놀리는 재미가 있는 늙은 형이기도 하다.
“아차? 형 나이에~ 맞춘다는 게 그만~”
이번 시즌 정식 해설로 데뷔한 이승수가 깝죽거렸다.
“너 요즘 유니버스 잘 나간다고 자꾸..”
물론 다른 사람들이라고 안 그러는 건 아니었다.
“야, 맞아. 잘나가더라.”
“에헷~”
“에헷떼 난다요?”
녹화 방송의 장점은 실수해도 된다는 거지만.
“왜 이렇게 텐션들이 높아? 방송 안 할 거야?”
단점은 퇴근 시간이 기약 없을 때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이놈들과 함께라면.
“컷, 컷, 컷, 이거 진짜 잘라주세요. 아셨죠? 진짜.”
앞에 앉아있던 PD가 조용히 종이를 들어 올린다.
알겠으니까 이제 진행해주세요.
저희도 퇴근하고 싶어요.
“네, 좋습니다.. 어쨌든. 이번 서머 플레이오프는 브라켓 리셋 없는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으로 진행되며..”
프로 방송인답게 금세 페이스를 찾은 김인방이 기본 사항을 알린다.
“현 순위에 따라 다음 주 수요일부터 1라운드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정해진 수순에 따라 사족이 따라붙는다.
“네, 그렇습니다! 먼저 3, 6위전입니다. 성남 스톰과 제주 F.L.E죠.”
“제주 F.L.E가 플레이오프 진출이요, 이거 진짜 핫이슈죠?”
“네~ 그렇습니다~ 약 3년 만의 일인데요. 그때 한번 딱 찍고 바로 숨 참고 다이브하는 바람에 다시 올라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사람은 없었거든요?”
물론 토크는 옆길로 샌다.
“잠깐, 잠깐. 반가우신 건 알겠는데 일단 일정부터.”
“아~ 말 끊는 사람 재미없는데~”
녹방 전문 인터넷 방송인 김인방은 뭔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승수 죽고 싶냐? 드락사르 맞고 분석실에서 투명 인간 되고 싶어?”
“형 왜 이렇게 화났어요..”
“필름 카메라도 아닌데 뭐 어쩌라고? 싹뚝해주시겠지.”
“네..”
“집중하자.”
“네..”
분위기는 얼렁뚱땅 잡혔다.
물론 진행자가 가진 포스는 미약하기 그지없어서.
“그리고 목요일 4, 5위전에서 광주 미라쥬와 인천 트릭스터가 맞붙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잡담은 계속된다.
“이게 사실 순위 얘기를 하자면 우리 미라쥬가 3위, 2위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는데..”
“아니죠. 득실 차 생각 안 하세요? 결국 유니버스가 2위잖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13-5 라인이 세 팀이나 있는데.”
“어허, 어차피 FWX가 있는 이상 2패는 정해져 있었거늘..”
진행자는 조금만 더 참기로 했다.
어차피 대부분 편집될 거다.
“그 뒤 2라운드에서 대전 FWX가 1라운드 승리 팀 중 하나를 선택하고. 대구 유니버스가 남는 팀과 싸웁니다.”
“솔직히 FWX가 스톰 고를 것 같다, 손.”
“스톰이 제주 F.L.E한테 질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어? 그건 정말 다른 시각인걸? 왜?”
“F가 들어가니까..”
“너 전문가 맞냐? 너 자격증 시험 안 봤어?”
“그런 게 있었어요?”
그래, 잡멘트도 따는 게 필요하긴 하다.
편집의 힘이란 놀라우니까.
“그리고 3라운드에서 승자조와 패자조가 경기하고, 4라운드에서 패자 결승. 그리고 각 라운드에서 이긴 두 팀이 파이널에서 만납니다.”
“와~”
“후우우우! 호오오오!”
아까 바랬던 환호 속에서 멘트를 마친 김인방이 똘망똘망한 해설진을 훑는다.
“너네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무슨 사족이 그렇게 많아!”
“근데 이거 어차피 이미지 자료로 대체될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건 먼저 따두시지.”
“혼자 하면 심심하니까 우리랑 같이하고 싶으셨나 봐.”
“모옷된..”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빡친다.
“저 형은 자기 괴롭혀주는 걸 좋..”
“이제 그만!”
“넵.”
다들 으쓱하며 웃는다.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신난 이유도 뭐 충분히 알 것 같아요.”
“뭔데요?”
“리그가 엄청 활발했으니까 아니야?”
“맞아요.”
“동의합니다.”
“유니버스가 2위 했고~”
드디어 원하는 토크가 시작된다.
“짧게 짚어봅시다. 최종 순위.”
1위 FWX, 2위 유니버스, 3위 스톰, 4위 미라쥬, 5위 트릭스터, 6위 F.L.E, 7위 호넷, 8위 해머스, 그리고 동률을 기록한 공동 9위의 피닉스와 빅스.
“1위는 말할 것도 없이 FWX입니다.”
“아, 이 팀 결국 해냈네요. 결국 해냈어요. 중간중간 불안한 부분이 없진 않았는데. 결국 해냈습니다.”
무패 팀, FWX.
의외로 이것에 자극받은 건 다른 팀들이었다.
“결국 금자탑을 쌓고 마네요.”
대부분의 찌꺼기가 쓸려나가면서 건강해진 LKL에서는 남이 하는 걸 보고 자기도 하고 싶어 하는 팀들이 더 많았다.
“이러니까 신이 날 수밖에. 좋은 모습을 자꾸 보여주니까 기대가 또 되잖아요.”
한참 FWX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어대던 해설진은 적당한 선에서 끊었다.
이 자리는 FWX만 칭찬하는 자리가 아니다.
“아까 말한 대로 13-5라인이 대거 등장했죠.”
“네, 2위부터 4위까지가 승패는 동일하지만 득실 차에 의해 갈리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다들 다섯번씩 졌어요. 결국 FWX가 무패로 시즌을 마감한 걸 보면 2패씩을 차감하고.”
“서로 돌아가면서 한 번씩 이겼다 졌다 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그만큼 치열했던 접전이었다.
끝까지 볼거리가 많았던 서머 시즌.
“그래서 이번 더블 엘리미네이션이 더 가치가 있어요. 진짜 실력 가르기가 되는 거거든요.”
“솔직히 정규 시즌 의미 없다.”
“그게 뭔 잡소리야~”
그리고 상위권 구간을 차지한 유니버스, 스톰, 미라쥬 말고도.
“트릭스터는 초반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다가 탑 라이너가 급히 대체되면서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여줬죠. 결국 5위 마감입니다.”
“이건 좀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드가 워낙 강한 팀이에요. 귀환자 리뉴 선수.”
“그런 면에서 1라운드 경기가 꽤 기대되네요.”
그리고 나오는 하위권 팀에 대한 평가.
“다들 꽤 성과가 있었다고 봐요. 빅스가 이렇게까지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그 외의 팀들은 그래도 할 만큼 했다. 전 이렇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머리를 다 밀고 왔던 해머스. 빡빡머리 해머스단도 김흥민 선수를 중심으로 아주 좋구요.”
“호넷도 분전했습니다. 마지막에 F.L.E에게 살짝 밀렸지만 여전히 우리는 디비전이다.”
“피닉스랑 빅스는, 예. 다음 시즌 잘 준비해봐야죠. 좀 언럭키..?”
이건 전과는 다른 결과였다.
권건이 봐왔던 다양한 과거보다는 훨씬 다른 미래.
오래 방치됐던 어항을 청소하듯이 썩은 물을 환수하고 곳곳에 끼였던 이끼와 녹조를 제거한 LKL은 전보다 훨씬 활력이 넘치고 아름다웠다.
“자! 그리고 이번 서머. 플레이어 오브 스플릿, MVP 1위는 권건 선수. 1300점이구요.”
“와. 이번 시즌에는 많이 나눠 먹었네요?”
“옳게 된 팀.”
“2위가 차니. 900점, 리뉴, 라온, 헥사가 800라인..”
“펜타 킬은 두 번 나왔습니다! 권건 선수가 1번째 경기 2세트, 킬샷 선수가 55번째 경기에서 펜타를 먹었죠.”
촬영 막바지에 접어든 해설진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웃었다.
꼭 1위 팀에게 한정되지 않고 자기가 품었던 팀을 이야기하며 어떤 팀이 서머를 더 완벽하게 마무리할지, 또 어떤 팀이 월챔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였다.
“어쨌든 이번 결승은 드디어! 대전에서 진행됩니다.”
“네, 대전 시티즌스 파크죠!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주 따끈따끈한 신식 경기장입니다. 예매에 난항이 예상되니 서두르세요! 아, 벌써.. 끝났다구요?”
촬영은 유쾌하게 끝나는 것 같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
슬레이트를 치고.
“와, 오늘도 진짜 잡설 너무 많더라. 너네..”
“저, 대전에는 사실 이스포츠 경기장도 따로 있어요. 아세요?”
대전 바로 옆 동네 출신인 문시환 분석가가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거기가 서울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생긴..”
문시환은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타입이다.
“내 얘기 듣고 있니? 얘들아?”
“오? 진짜? 완전 선진 도시였네.”
“네. 거기서 많이들 발굴되죠. 지역 대회도 그렇고, 시 대회도 그렇고..”
“그럼 결승을 왜.. 아, 사이즈가 크지는 않겠구나.”
“네네. 맞아요. 그래서 시티즌스 파크인가봐요. 사실 야구장도 멋지긴 한데, 시즌 중이기도 하고 적합도도 떨어져요.. 알고보면 대전이 정말 스포츠의 도시거든요.”
“아~ 그렇구나.”
“이 나쁜 자식들, 내 말은 왜 다 씹어! 오늘 술 너희가 사!”
“형, 오늘 법카 회식인데용.”
다들 별생각 없어 보였지만.
“아쉽네요. 야구 플옵 시즌이었으면 쓸 수 있었을지도.”
현수진이 한마디 던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번개처럼 반응이 돌아온다.
“아닙니다.”
“플옵.. 이면.. 쓸.. 수.. 있다니.. 왜..?”
“야!”
스포츠에 조예가 깊은 김인방이 호통쳤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시환씨 미안해..”
찔끔 놀란 현수진이 황급하게 달래봤지만.
“왜.. 그런.. 심한.. 말을..”
이미 문시환은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대전 야구팀은 플옵 못.. 아~”
“아~”
“그거 그냥 밈 아니었어?”
“순위 검색해봐.”
야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도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오.. 와우.”
“미국 갔던 형님 안 돌아왔어? 말 많은 형님.. 그게 대전이 아닌가?”
“넌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너네 형 미국? 패드립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잘 되겠지. 시환씨 힘내요. 화이팅!”
“FWX랑 뭐 닮은 점이 있지 않을까? 평행 세계의 응원 뭐 이런..”
지금은 해설진의 헛소리도, 진행자 김인방의 위로조차 먹히지 않았다.
“다.. 먼저 나가주세요..”
여기서 짬으로 따지면 가장 아래인 문시환의 말에 다들 군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
문시환은 슬퍼졌다.
FWX 말고 우리 야구도 어떻게 좀 해주세요.
“나가시면서 스튜디오에 소금도 좀 뿌려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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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광하라, 8월의 끝자락 ]
[ 1라운드 첫 번째 경기 성남 스톰 vs 제주 F.L.E ]
ㄴ 제주 F.L.E! 개같이 상승!
[ ‘스마트’ 성남과 ‘청정’ 제주! ]
ㄴ 청정 제주 ㅇㅈㄹ;;; 이름부터 질 것 같은데;;
ㄴㄴ 얘네가 플옵에 온 적이 별로 없어서ㅋㅋㅋ 준비된 멘트가 없음ㅋㅋㅋㅋ
ㄴㄴ 제주소년단 앀ㅋㅋㅋ
[ 성남 스톰 ‘기염’.. 3세트 내리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완승! ]
ㄴ 개같이 멸망!
ㄴㄴ 육지 놈들 참으로 무섭구나.. 눈 깜빡하니 코 베어가더라..
ㄴㄴ 먼 훗날 제주도 결승을 꿈꿉니다..
[ F.L.E 감독 오지현(lift),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더 좋은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ㄴ 그래도 우리 감독형 은근 호감이야ㅋㅋㅋㅋ
ㄴㄴ -기백-
ㄴㄴ 맨날 욕하던 새1기들이 태세 전환 무엇ㅋㅋㅋ
ㄴㄴ 초고교급 절망 속에서 몇 년 있다가 플옵에라도 발 올리면 얼마나 선녀 같은 줄 아니?
ㄴㄴ 앗아아;
ㄴㄴ FWX는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ㄴㄴ 너넨 공감해주지 마 기만자 리발럼들아 꺼져
ㄴㄴ 이리와~ 안아줄게~
ㄴㄴ ㅎ ㅏ 이 새기들 어려움도 모르고 커서 아주 기고만장하네..
ㄴㄴ fact) FWX도 받을 만큼 받았다
ㄴㄴ “간신히 찾은 평화”
ㄴㄴ 불행이나 받아라@))))))))
ㄴㄴ 히익ㅋ 넘무 무섭구ㅋ
그리고 그 시각.
“30분 정도..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권건이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