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_MOBA
“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상황이 어려워서?
아니.
이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경기도 많이 겪었다.
해결 방안은 무수히 많다.
“...”
잠시 생각을 위해 말을 아낀다.
팀원들의 실력이 무르익고 호흡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절대적인 승리란 건 없다.
경기에 소홀한 적도 없었다.
그냥 그런 생각인 거다.
내가 부담을 줬나, 같은 거.
불편한 상황을 겪고 나니 괜히 팀원들에게 그런 얘기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펜타 이야기를 들은 유상준이 부담을 가져서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싶어서.
우리는 시즌 기록을 달성하고 있고, 이건 전승 무패의 퍼펙트게임이 진행 중이라는 말과 같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우리 원딜 펜타 주게 열심히 하자’는 말을 밀어 넣은 게 아닐까.
최은호가 자기를 땅굴 찐따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나도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괜찮아,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곽지운은 유상준에게 가볍게 말하고.
“바텀은 어차피 다 내 책임인데 뭐.”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잡생각 하지 마, CS 흐른다!”
그리고 덧붙였다.
“건이 네 탓 아니다.”
갑자기 내 이야기를 왜?
“가끔 보면 쟤가 제일 쓸데없는 생각 많이 한다니까.”
음.
나만 생각하던 게 팀원에게까지 넓어졌을 뿐인데?
“됐고, 지지 말자!”
주장이 시원하게 외친다.
“내가 게임 이겨줌. 나한테 투자.”
“오늘은 탑 말이 맞네.”
짧은 말들이 오가고.
“일단 나랑 유찬이가 좀 더 받아먹는 쪽으로 어때.”
곽지운이 침착하게 제시한다.
“그럼 내가 내려갈게.”
“전령은?”
“내가 견제하겠음.”
“나.는.”
“너는 바텀.”
여기저기서 빠르게 의견을 나눈다.
“정글러, 어때?”
나는 곽지운의 말에 피식 웃었다.
순서가 엉망이잖아.
“라인 스왑은 전령 직후 자연스럽게, 그전까지는 바텀 듀오는 바텀.”
“오케이.”
“상체 3인방이 전령 견제. 유니버스에서 바텀 힘 끌어올릴 수 있게 불편하게 만들 테니까.”
“그럼. 난. 페이크. 무빙?”
“오케이.”
“여차하면 합류할 생각으로. 쟤네 바텀 다 자리 비우게 만들어주면 가장 좋아.”
“오더건쓰 확인!”
“바텀까지 오면 전령은 못 뺏을 가능성이 높아. 대신 풀 때 방해하자.”
“응. 판단 서면 다시 콜. 뜨는 시간에 적 칼부 쪽 빼먹을 수 있으면 공략해볼게!”
“오케이.”
그래.
그냥 하면 되는 거야.
여태까지 하던 대로, 계속.
“가자.”
이제 그게 우리니까.
#
“FWX, 잠깐 흔들리는 것 같았는데?”
어떤 오더와 어떤 판단은.
“유니버스가 실수를 한 건가요?”
한 팀이 유도했다기보다 다른 팀의 실수로 보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것 같죠? 기껏 얻은 전령을 미드에서 살짝 이상한 타이밍에 풀면서!”
“전령으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구르던 스노우볼이 사아아아아알짝 멈춘 그런 느낌이 들죠!”
한 라인의 솔로킬이나 암살 성공 따위의 슈퍼플레이가 터지지 않았을 때 더 그렇다.
- 아니;
- 전령을 왜 저기에 풀어?
- 웨이브도 없는데 왤캐 급하게;; 차라리 바텀 고속도로 만들지
- 론도 판단 무냐고;;;; 내가 들어가서 게임 할 게 당장 비켜^^!발아!
한국에서는 흔히 LOS의 장르를 AOS로 이야기한다.
그보다 더 오래전에는 다른 게임명 뒤에 -based, -style, -like 등을 붙여 불렀다.
그리고 어느 순간 AOS라는 단어로 정착됐고, AOS는 여전히 널리 알려진 명칭 중 하나다.
물론 뭐라고 불러도 상관은 없다.
LOS는 LOS니까.
하지만 게임사에서는 게임의 장르를 공식적으로 MOBA라고 부른다.
유저들은 여러 가지 단어를 혼재해서 사용하지만 이게 ‘공식’인 이유는 확실하다.
이해관계.
장르명 변경은 결국 그 게임이 타 게임의 아류작이나 짝퉁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들어간 작업이니까.
~기반이나 ~스타일, ~같은 따위의 말은 말할 것도 없고.
AOS 역시 타 게임의 유즈맵, 끝없는 전쟁(Aeon of Strife)에서 왔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그래서 MOBA.
주목해야 할 점은 MOBA의 MO.
‘멀티플레이어’와 ‘온라인’.
“이러면 엎치락뒤치락 시소게임 들어갑니다!”
하나의 행동이 다른 행동을 유도한다.
한명이, 두 명이, 그 이상의 멀티 플레이어들이 단체 행동을 통해 흐름을 바꾼다.
“네! 여전히 유니버스가 유리한 상황, 이대로 아펠을 1인 군단으로 만들어보려던 시도가 주춤한 상태거든요?”
“전령 타이밍부터 인원수 판단에서 FWX가 좋은 모습 보여주면서 상황적 이득! 아주 교활한 플레이였죠! 싸울 것처럼 하고 안 싸우기!”
“그 사이 세자도 꾸준히 성장합니다, 이렇게 되면 아까보다 훨씬 상황이 나아요!”
이 게임은 움직이는 인원이 싱글이 아니라는 점에서 파급력이 다르다.
- 안녕하새오 제가 찾던 용 여기 없네요
- 머야 언제 뺏겼어
- 아 빨리 3용 먹어야 압박 쉽다고;;;; 유니버스 머해;
“지금 상황 묘하게 흘러갑니다, 드래곤 스택 끊겼어요? 유니버스가 2 스택, FWX가 끊어서 하나를 가져갔습니다! 여기는 바람의 협곡!”
“교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근데 초반에 잘 챙기던 유니버스가 이렇게 밀려나는 이유가 뭐죠?”
“유니버스가 이득을 챙기고 나면 FWX가 그 자리를 바로 차지합니다. 지금 FWX는 본인들이 조금 불리하다는 걸 확실히 자각하고 있어요! 유연한 사고방식!”
“그리고 빈 자리를 선 점유했다가 후턴을 뺏어오는 방식으로 들어가니까, 이게! 유니버스가 대처하기 어려워요!”
“땅따먹기 싸움 같은 거죠, 뒤에 뒤집는 사람이 더 유리하다!”
이 게임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가가 가장 큰 힘을 가지고.
결국 어떤 행동으로 뒤에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얼마나 잘 아는가에 대한 무대라는 얘기다.
“스노우볼 멈추면서, 소강상태 접어들어 갑니다!”
이게 멀티에서의 협력 전략.
“그러면 유니버스에서 뭐하고 싶죠?”
그리고 MOBA의 BA는 ‘배틀 아레나’
“싸움!”
“유리한 타이밍, 이대로 밀려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죠, 여전히 충분히 해볼 만 한 상황이거든요!”
“운영적으로 스노우볼이 멈췄다는 것과 지금 상태에서 힘이 얼마나 차이 나는가는 굉장히 다른 부분이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이거 수준 높은 경기예요!”
“지금 유니버스도 좋은 선택! 권건 제치면서 바로 제이슨 끊어먹으러 향합니다!”
“아무리 후반 밸류가 높은 픽을 가지고 있어도 어쨌든 스노우볼이 멈춘 이상, 상대의 다음 수를 막아내기 위해서 딜 기댓값이 높은 챔피언을 끊어야 하죠?”
“이러면 FWX도 선택해야 합니다!”
상대의 턴을 밀고 땅을 차지하기 위해 파견됐던 탑이 위기에 처한다.
이때 나오는 말이.
“줄 건 줘!”
“차니의 제이슨! 위기!”
이유찬은 빠르게 전장을 훑는다.
이 선수는 여전히 시야 이동 단축키를 쓰지 않는다.
대신 그 누구보다도 빨리 미니맵을 찍어 전황을 확인한다.
누군가 해상도를 낮춰 게임을 하고, 누군가는 맵을 좌측 하단에 두며 또 누군가는 팀 UI를 가로로 두듯, 그냥 그런 버릇이다.
“나 죽어?”
“죽어.”
“오케이.”
저울이 기운다.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아들었음.”
잠깐 FWX 쪽으로 기우는가 싶었던 저울이 훅, 유니버스 쪽으로 기운다.
“써머! 뿔피리 붑니다, 어어! 이러면! 도망가기 어렵습니다!”
“완벽하게 안전한 선택, 이미 적진 깊숙한 곳에 들어온 차니에게 도망갈 곳은!”
앞으로 돌격한다.
뒤를 쫓아오는 거대한 산양과 같은 방향으로 쭉 달려들어 간다.
“어어어어어어어어어! 어어어어어어!”
이게 받은 오더니까.
빛이 터진다.
더 다가간다.
“이걸 무빙으로?”
FWX를 누르기 위해 유니버스가 준비했던 탑 카드는 여기서 약점이 드러난다.
최정인의 숙련도.
불안정 상태를 피해낸 그대로, 측면으로 돌아 바로 상대 탑의 요른을 밀쳐낸다.
산양은 돌아오지 않는다.
“르블란.”
옆에서 떨어지는 리드미컬하고 단순한 오더에 따라 거꾸로 머리를 들이댄다.
스킬을 배분한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어어? 차니? 이거? 끝까지 싸우면? 끝까지 싸우면?”
“아니, FWX는 합류 생각 아예 없어요! 완전히 멀어집니다?”
성급했던 르블란에게 데미지를 밀어넣자 거울같은 잔상이 펼쳐진다.
왼쪽?
오른쪽?
“왼쪽.”
최신식 망치가 휘둘러지는 순간.
점멸이 빠진다.
그다음 타석에 들어온 적 정글 자르반이 쇄도한다.
이유찬은 끝까지 발버둥 치며 스펠을 뺀다.
“결국!”
죽는다.
“차니가 끊깁니다!”
결과는 같다.
FWX의 실점이다.
하지만.
요른의 파일럿, 유니버스 선수들의 합류 수순, 인원 차이에서 온 방심.
FWX는 이런 아주 작은 이삭들을 차근차근 줍는다.
“그런데 이거 계산기 좀 두드려봐야겠는데요!”
“오래 걸렸습니다, 생각보다 공략이 오래 걸렸어요!”
“그 사이 FWX는 미드 타워 공략 완료, 여전히 용 주도권 갖고 있습니다! 권건을 따돌린 게 아니라 그게 FWX의 의도였나요?”
지원을 깨끗하게 포기한 FWX는 즉시 타워를 공략한다.
순식간에 평행선이 된 타워.
저울은 기울어지지 않았다.
“방금 주요 궁극기 두 개와 스펠 빠지면서 오히려 이번 용도 내주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차니 선수가 죽을 때 죽더라도 충분히 역할을 해줬거든요!”
- 형들 과투자 뭔일이야? 그냥 유리할 때 끝내버리지;
- 쌉소리 자제 좀;
- 쌀소리 자제 좀;;
- 보리소리 자제 좀;;;
- 처음부터 게임 길게 가져가고 싶었던 건 유니버스였음 요른 아펠
그리고 여전히 손에 쥔 다음 용의 주도권.
잃은 것은 탑의 데스.
“용의 종류와 상관없이 이번 게임에서는 오브젝트가 꽤 중요해졌다고 봅니다!”
“동의합니다! 이렇게 되면..”
FWX는 운영을 깎는다.
이건 권건이 알려준 것이기도 했고, 지난 1년여간의 연습 시간이 빚어낸 결과기도 하다.
MOBA를 장르로 내세우는 이 게임이 오랜 시간 만들고자 했던 밸런스.
처음을 선점한 사람이 끝까지 손쉬운 승리를 차지하는 것을 가만두지 않는다.
절대 방심하지 않는 게임, 그게 LOS.
유니버스가 그렇듯 FWX 역시 이 사실을 잘 안다.
“그럼 이제는 유니버스가,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되죠?”
그리고 한단계 더.
뒤집힌 팀보다 뒤집은 팀이 더 유리하다.
“야.”
고작 몇 번의 선택이 갈렸을 뿐인데.
FWX의 탈수기 운영이 성큼 다가오는 걸 느낀 유니버스의 누군가가 말했다.
“이거. 시간 끌면 망한다.”
그건 유니버스의 탑이다.
“오케이.”
정글러에게서 답이 돌아온다.
두 사람은 서로를 등신 취급하는 관계지만 대답은 빨랐다.
“얘들아, 싸움 한번 크게 보자. 정비해라.”
“응.”
탑 써머, 최정인은 경험이 풍부한 선수지만 메인 오더가 아니다.
오히려 메인 오더에서 손을 뗀 지 오래된 선수다.
이런 경우는 잦다.
탑만 그런 게 아니라 미드나 원딜도 그렇다.
모자라서가 아니다.
라인전의 중요도가 높을수록 오더나 맵 리딩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 게 원칙이다.
당연히 정글이나 서폿에 비해 시야 자유도가 낮고, 집중해야 할 ‘라인’이 있으니까.
주도적으로 오더하는 탑이나 미드, 원딜이 있다면 그들이 위대한 것뿐이다.
하지만 그는 이유찬과 비슷한 어떤 감각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용은 그냥 버려. 아끼다 똥 된다. 그리고 흩어질 때 알지?”
“어.”
아무리 평소에 등신 같은 사람이라도 일할 때는 다른 사람인 법.
아니, 평소에 이상한 사람일수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대단한 사람인 거다.
유니버스의 탑은 그걸 느꼈고.
“싸움 냄새가 남.”
FWX의 탑도 그걸 느꼈다.
이 장르는 전략도, PVP도 포함한다.
그리고 결국 절반의 문제는.
PVP로 해결할 수 있다.
“오케이.”
또다시 BA.
배틀 아레나의 차례다.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 저울은 균형을 맞추고 있다.
만년설이 녹아내렸지만 뜨거운 빙하의 물이 협곡을 빙빙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