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_응 아니야
LKL 서머 1라운드가 끝났다.
서머는 스프링 스플릿보다 일정이 빡빡하다.
스프링은 설 연휴가 들어가 한주 정도 쉬어가지만 서머에는 추석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승자가 정해진 직후 한국 선발전은 물론.
여름의 열기가 다 식기도 전에 월드 챔피언십이 진행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시간은 느리지만 빠르다.
2라운드는 휴일 없이 1라운드 5주차와 시간을 공유하며 새로운 주에 접어든 선수들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1라운드, 어떻게 보셨나요?”
“놀랍죠. 놀랍습니다. 바로 짚어보기 들어갈까요?”
“좋습니다. 5주차 기준, 모든 팀이 10번의 경기를 치른 시점입니다.”
오늘은 총 9주차의 정규 시즌 중 6주차 마지막 경기.
부산 호넷과 서울 빅스의 경기 직전이자 해당 주간의 경기를 마무리한 FWX의 권건이 브이로그를 찍고 있던 날.
녹화되어있는 메타 평가 방송이 반복 재생 중이다.
“10위에 서울 빅스. 득실 차 -15으로 창단 이래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죠.”
“여러 가지 악재뿐만 아니라 메타 타격도 꽤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9위에는 울산 피닉스.”
“간신히 1승을 챙겼습니다. 그게 10위 빅스와의 경기였고, 9위와 10위를 가르는 경계가 됐죠.”
각 팀에 대한 코멘트에 따라 대본이 펄럭펄럭 넘어간다.
씁쓸한 일침도 있지만 새콤달콤한 칭찬과 격려도 따라왔다.
“8위는 수원 해머스입니다. 신입 정글러 몬스 김흥민 선수가 주목받고 있어요.”
“순위 자체는 낮습니다만 얼마 전 FWX와의 경기 후부터 해머스의 정신력이 대단히 좋아졌죠. 팀원이 전부 머리를 밀고 나타나서 화제를 불러오기도 했고요.”
“이런 말 들어보셨죠? 해머스를 만나면 스윕할 생각은 하지 마라. 불편해요. 여전히 무서운 팀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심해야죠.”
“상위권 팀은 더 그렇습니다! 세트 하나하나가 나중에는 크게 순위를 좌우할 수 있는 거거든요? 해머스를 만나면? 절대 방심하지 말라는 얘깁니다!”
“이런 식이면 경기를 준비할 때마다 너무 힘들겠는데요!”
“보는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이지만요.”
최하위권에 해당하는 세 팀이었지만 각 팀을 응원하는 팬들은 그들을 응원할 이유가 있었다.
빅스는 기존 팬덤이 컸고, 피닉스는 언젠가 날아오를 거라고 기대하는 팬이 많았으며, 해머스는 권건으로 떴다.
“그 위는 부산 호넷입니다. 부산 호넷은 1라운드는 4승 5패, 하지만 5주차 마무리에서 1패를 추가하면서 4승 6패의 팀이 됐습니다.”
“대신 호넷은 미드 진이나 바텀 릴리야 등 놀라운 픽을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어요. 웃긴 건 이래도 7위라는 겁니다. 픽 자유도가 넓어진 LKL이지만 여전히 놀랍죠.”
“그런 픽을 해도 7인 걸까요, 아니면 그걸 했기 때문에 7인 걸까요?”
“그건.. 글쎄요. 어쨌든 매번 기대되는 팀입니다.”
하위권이라고 해도 팀의 특색은 모두 달랐고.
그 매력을 살려가며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6위에 균형의 수호자, 제주 F.L.E! 5승 5패!”
“이 팀이 여기까지 올라올 줄 알았을까요? 녹화 바로 전날 굉장한 업셋이 있었는데요. F.L.E가 스톰을 이겨버렸습니다.”
“말도 안 돼!”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잠깐! 메타 분석을 할 필요가 있는데요.”
시즌 초 해설진이 내린 메타 정의는 크게 틀리지 않았다.
“결국 이번 시즌에 원딜이 중요한 게 맞아요!”
“맞습니다. 쿨타임 찼죠? 왕자님은 돌아오는 거니까.”
“물론 다른 라이너들이 필요 없냐, 절대 그런 뜻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픽 프리허그 메타예요.”
“에이. 다 알죠.”
“근데 그래도 바텀. 바텀을 팀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다르죠.”
“네. 바텀이 중요하니까! 아예 바텀에게 시간을 주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방법이 있고.”
“원딜이 중요하니까 자원을 올인해서 좀 더 타이밍을 당기겠다는 식이 있죠.”
“제주 F.L.E는 후자입니다!”
F.L.E의 상승세.
“원딜 갓신 선수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요. 요즘 폼 진짜 미쳤죠?”
그리고 본명이 ‘이신’이라 리싱으로 놀림당하던 원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아 선수명을 바꿨던 원딜러 이신은 드디어 선수명인 갓신으로 불리며 소원성취했다.
“그렇습니다. 신인이었던 서폿 밤볼라와의 호흡이..”
기존 서포터 유상준이 이적한 뒤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아무도 유상준에 대해서 뒷말하지 않았다.
FWX가 더 잘나가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이었고, 현명한 트레이드로 감독과 단장의 평가 역시 크게 올랐다.
“5위, 성남 스톰이 6승 4패. 요즘 살짝 힘을 뺐어요.”
“이 팀은 분명 후반부 저력을 다시 뽑아낼 겁니다. 원래 그런 팀이거든요. 그리고 지금 상위권이 워낙 촘촘해요.”
“네, 여기서부터는 충분히 뒤집힐 수 있어요. 1승씩 차이 나는 수준이라.”
“장거리 마라톤을 위한 호흡 고르기다, 이렇게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공동 3위 랭크로는 광주 미라쥬와 인천 트릭스터. 7-3라인입니다.”
“미라쥬가 요즘 팀 운영이 많이 좋아졌다는 말이 많아요.”
“트릭스터는 초반에 굉장히 뛰어났지만 최근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이 순위를 유지할 수 있는가가 관건입니다. 아까 말한 ‘장거리 싸움’에서 슬슬 갈릴 시기가 되어간다는 증거죠.”
“그리고 2위에 대구 유니버스!”
“여름의 남자, 탑 써머가 정말 대단히 활약해주고 있죠!”
“이 팀은 탑의 힘에 여전히 의지하고 있고, 또 보답이 돌아오고 있어요. 우리 식대로 가겠다는..”
그리고 마지막.
“그리고 1라운드와 LKL 종결자, FWX.”
“전승이죠?”
“네. 전승이죠.”
“세트 패 없죠?”
“네. 없죠.”
“그럼 지난 시즌까지 다 합치면 도대체 몇 연승을 거두고 있는 거죠?”
“그건.. 세어봐야겠지만 일단 제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겠군요. 발가락까지 합쳐도!”
“이 팀은 정말, 낭만 가득한 팀이에요.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계속..”
“그쵸?”
“인정.”
FWX 경기를 처음으로 중계한 이승수 해설은 이 팀을 제대로 알아가기 시작했다.
볼 때마다 최고의 경기력.
한 라인이 아니라 번갈아 가며 캐리하는 팀.
“다음 주에 있을 FWX의 경기가 상위권 싸움에서 정말 큰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FWX가 이런 장거리 경쟁에서, 끝까지 스타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항상 압도적인 팀이 되기는 쉽지 않다.
시즌 중반, 밴픽면에서 불투명성이 제기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건 이제 어렵지 않을까요. 이제 숨겨놨던 카드들은 떨어져가는 시기거든요.”
“다만.. 다음 주인공 라인이 누가 될지는 궁금합니다.”
하지만 이제 해설진은 FWX의 방식을 좀 알아차렸다.
“글쎄요.. 아무래도 얼마 전에 탑이었으니까.”
“메타를 따라서 원딜? 아니면 미드?”
“그것도 아니면 서폿?”
과연 건 황숙은 누구를 선택해서 밀어줄 것인가.
오지선다 퀴즈.
이게 이번 시즌 FWX의 방식이었다.
#
막내 코치 문백산은 모니터를 봤다.
- 에스티엠 킹 : 왜 대기ㅋ 타고잇냐^^ 그렇게 할 일이 없어??? ㅋ;;;
STM, 킹의 공식 계정.
본명 강준윤.
이 선수는 권건보다 형이다.
같은 팀 원딜에게 상냥한 채팅 말투를 배웠지만 잘못 배운 사람.
그게 보는 사람 입장에서 어떻게 보일지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톰의 간판 미드로 꽤 유명하고 실력도 뛰어나지만 이상하게 FWX의 김예성만 만나면 카운터를 처맞는다.
서로 천적 관계라는 말이 많다.
- 에스티엠 킹 : 피구ㅋ하고 놀아줄까????ㅋ;; 아직 밥 안 와서 네 판정도 해줄 수 있을ㅋ 듯??^^ㅋㅋㅋ;;;
권건에게 받은 미션을 까먹은 문백산이 휠을 올렸다.
이전 대화를 살짝만 엿본다.
많이 가긴 좀 그러니까 조금만.
- 에스티엠 킹 : 피구방 판다^^ 지금ㅋ;
게임 초대가 오지만 이건 무시한다.
일단 대리 게임이 중징계감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 에스티엠 킹 : 쫄?????^^
어쨌든 대충 보니 상대가 주로 시비를 터는 편인 것 같다.
- FWX GwonGun : 부재중 입니다~~
짧은 대화를 하면서 기억을 찾아야 한다.
누가 권건이 말한 친삭 대상인지.
- 에스티엠 킹 : 너네 방금 우리랑^^; 스크림 끝나지 않았냐????
문백산은 선배 코치들의 배려로 오늘 오후 스크림에 불참했다.
- FWX GwonGun : 아~~
- 에스티엠 킹 : ^^;;;;; 뻔히 아는데 감히 어* ***?ㅋ
메시지에 별이 잔뜩 붙어있다.
“이거 봐라? 말투 개 띠껍네?”
강압적인 말투?
욕설 필터에 걸려?
문백산은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 에스티엠 킹 : 내가 다* *파?; ^^ 왜 초대 안 받아ㅋ
연달아 두 번 걸린다!
문 코치는 FWX에 늦게 들어와서 선수들의 모든 히스토리는 모른다.
하지만 권건이 굳이 명문 스톰에서 이적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강준윤이 이런 선수인 줄 몰랐는데.
어쩌면 여기에 숨겨진 괴롭힘이 있었던 건 아닐까?
명탐정 문백산 발동.
- FWX GwonGun : 더 말하면 신고합니다~~
강경 대응 간다.
- 에스티엠 킹 : ????
- 에스티엠 킹 : 나??? 왜????
- FWX GwonGun : 반박 안 받아요~~
- 에스티엠 킹 : ;;;;;; 미쳤어???? 게임 너무 많이 한 거 아니냐????;;; 컨디션 옳아???
이렇게 심한 말도 필터링이 안 되는데 얼마나 심한 욕설을 했으면 잘렸을까?
평소에 필터링을 꺼놓는 문 코치는 무슨 단어가 잘린 건진 잘 모르겠다.
당연히 ‘어딜 도망가’나 ‘시방’ 역시 억까 필터링의 대상이라는 것도 예측 불가능하다.
- 에스티엠 킹 : 야 잠만;;;;; 머가 섭섭했는지 말을
용의자 확정을 위해 다른 메시지 창을 연다.
이번에는 여름남자다.
- 여름남자 : ㅠㅠㅠ
- 여름남자 : 왜 대답 안하냐고ㅠㅠ
이 사람은 누구지?
휠을 올려봐도 대화 내역은 사라져있다.
문백산은 두뇌를 풀가동한다.
모르겠다.
- FWX GwonGun : 쏘리 지금 자리 비움
아마 고등학교 친구거나 그렇겠지?
- 여름남자 : ㅇㅇ 스킨 수령 좀ㅋ
알림창에 선물이 떠 있다.
와!
갖고 싶었던 신상 마법 소녀 스킨!
당연히 수락한다.
- 여름남자 : 받았나보네ㅋ 알림 왔다ㅋㅋㅋ
- FWX GwonGun : 고마워 땡큐~~~
선물을 받았으면 고맙다고 말하는 게 강호의 도리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은 달랐다.
- 여름남자 : 야
- FWX GwonGun : ㅇㅇ?
- 여름남자 : 너 누구야 **아
- 여름남자 : 니 내 동생 아니지 ** ***야 너 해킹했어?
내 동생?
아, 이쪽도 형이었어?
혹시 권건 선수한테 친형이 있었던가?
이건 기억이 안 난다.
- FWX GwonGun : ㄴㄴㄴ 그게 아니라
- 여름남자 : 딱 10초 기다려준다 그것이 유일한 자비다 **** **야
채팅에 몰입했던 문백산은 순간 정신을 차렸다.
이건 욕을 먹어도 싼 짓이다.
상대 페이스에 휘말려서 권건인 척 해버렸다.
곤란.
“그러니까..”
문 코치가 제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이 망할 놈의 금붕어 머리.
게임 말고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자, 그래서 이 둘 중에 삭제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누구한테 수고했다고 말해야 하는가.
권건이 처음으로 맡긴 일이다.
신중하게 고른다.
- FWX GwonGun : 미안해요 많이 놀랐죠? 저 FWX 문백산 코치입니다 전해달라는 말이 있어서 잠깐 실례했습니다~~
일단 상황을 설명하고.
- 여름남자 : 엥
- FWX GwonGun : 말 전하겠습니다~~
- FWX GwonGun : 고생 많았어요~~
- FWX GwonGun : 빈자리는 채워질 테니까 안심해도 됩니다~~
정확하게 말을 전달한다.
- 여름남자 : 빈자리? 내 옆 책상?
- 여름남자 : 코치 오피셜 실화냐? 나.. 머리가 띵해..
- 여름남자 : 남 입을 통해서만 이렇게 ** 다정한 말을 할 수 있는 거냐고ㅋㅋ 하.. 너란 **..
그리고 또 다른 창.
에스티엠 킹.
- FWX GwonGun : 실례했습니다~~ 저 건이 보호잡니다~~
- 에스티엠 킹 : 네??? 혹시 아버지???
- FWX GwonGun : 죄송하지만 친삭합니다
까먹지 않고 권건이 했던 말도 붙인다.
- FWX GwonGun : 이게 나의 가장 큰 무기다
- 에스티엠 킹 : ??????????;;;;;;;;;;;;;;;
이게 맞는 것 같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