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82화 (283/326)

282_정글의 시대

김흥민은 바론을 치고 있었다.

될 것 같냐고?

이건 계산의 영역이 아니다.

원래 안 해야 하는 일을 할 때 그런걸 계산하면 무조건 지니까.

경기 시작 전, 솔직히 해머스에서도 자기들이 FWX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다.

한 세트도 못 얻어낼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첫 세트부터 킬은 물론 타워도 얻어내지 못했다.

게다가 개막전 첫 세트부터 개막킬을 당한 건 그 김흥민이었다.

부끄럽지 않냐고?

물론 부끄럽지.

근데 개막전 퍼블 따였다고, 데뷔 첫날이라고 손 놓고 지는 게 더 부끄럽다.

얼마나 기다렸던 1군 데뷔인데!

그리고 어차피 모든 인간은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김흥민은 조금 일찍 죽음을 경험한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구와아아악!”

그것이 바로 해머스가 숱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그를 선택한 이유.

떨 거 다 떨고 걱정할 거 다 걱정해도 할 말은 하고 최선을 다하는 남자.

초긍정 멘탈왕 몬순이.

“조금만 더!”

경기가 끝나고 나면 바론을 치는 선택이 진짜 맞았냐는 사람도 많을 거다.

근데 남자가 태어났으면 바론이라도 잡고 죽어야지!

그게 남자의 인생 아니냐?

그래야 권건 형님도 나보고 제법 놀라웠다, 뭐 이런 평가 해주실 거 아니냐고!

“조금만 더! 형들! 힘을! 내보자고! 5초오오옥!”

어린 선수의 빵빵한 볼이 오기로 달아오른다.

다른 건 몰라도!

꿈에서도 나오던 그 사람과 같은 무대에 선 첫? 자리!

여기에서 그냥 바보처럼 쓰러지고 싶지는 않다!

“어.”

어차피 더 아래도 없다!

제가 뭔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아.”

하지만.

“잠..”

“딜 중..!”

“야, 나 체력이..!”

어차피 더 가라앉을 곳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틀린 생각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신인 정글러 김흥민이 느낄 때.

그건 정말 갑자기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해머스의 영역은 좁았다.

둥지 안에서 안전한 곳은 딱 제어 와드의 권역, 그 좁은 장소뿐.

그 안에 바론까지 들어가니 이건 뭐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팀원들은 정신없는 바론 면담 끝에 이미 체력이 걸레짝이다.

하지만 어쨌든.

분명히 상대의 눈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이곳에.

“왔어요! 왔어요!”

그가 오고야 말았다.

“왔어요오오오오오오! 그가! 왔습니다아아아악!”

대충 이 좁아터진 무대에 올라선 건 또 한 번의 강제 팬 미팅.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라면, 권건이라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진짜가 된 순간이다.

“권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다가아아아악!”

생각한다.

“히익! 괴물! 손나 바카나 그가 난데모 여기엣!”

“안 온다며! 안 온다며! 흥민아, 흥민아, 흥민아아아악!”

“몬순아앗! 형들 다 죽는다!”

빠른 순간, 느리게 생각한다.

권건의 리싱이 날아온다.

바론의 체력은 바닥.

“혼자 왔?”

다른 FWX 선수들이 여기에 모두 온 건 아닌 것 같다.

“강타 싸움 타이밍!”

일의 향방을 좌우할 거대한 중립 몬스터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

다른 팀원들이 개입은 의미 없는 상황.

말 그대로 정글러들의 강타 순서가 모든 걸 좌우하는 순간이다.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 된다.

시간이 무 썰리듯 잘려 나간다.

두 정글러는 찰나 속으로 빠져들었다.

김흥민은 비예고의 대검을 치켜든다.

권건은 오른손과 왼발을 고요하게 들어 올린다.

그냥 마치, 그런 듯 보였다.

김흥민은 ‘진짜’ 강타 싸움이 뭔지 느끼고 있었다.

흥분.

고양.

긴장.

지금은 권건도 그의 심장을 노리는 게 아니다.

목표는 바론의 심장이다.

“잇,”

김흥민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빠져나간다.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은 상대를 이 영역에서 이탈시키는 것.

그럼 각법의 수도승은 어떤 행동을 할까?

정해져 있다.

찰 것이다.

그 전에 내가 먼저 대검으로 찔러 기절시킨다?

그건 무리다.

상대는 권건이다.

판단이 섰다.

자신이 리싱을 잡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했을 것 같은 행동.

김흥민은 확신했다.

각법을 사용하는 수도승의 발끝을 피해, 유연하게 몸을 틀며.

상대의 궁극기를 씹어 삼킬 심장 파괴자의 판정을 이용해 바론의 측면으로 돌아선다.

리싱에게서 기파가 쏟아져 나온다.

그건 둘 뿐만 아니라 바론에게도 데미지가 들어가는 오묘한 각이었다.

순간 두 정글러의 시선이 겹친다.

바로 지금.

“바론! 바론! 바론!”

양 정글러의 손끝이 밝게 빛나는 순간.

“강타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서로 마주 터진 정글러의 상징.

“바론의 주인은!”

김흥민은 처음 느꼈다.

다른 라이너들은 영원히 겪지 못할, 정글만 느끼는 첨예한 타이밍 싸움의 짜릿함.

어떤 사람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키보드에서 전해지는 스펠의 타격감.

“스틸, 스틸, 스틸, 스티이이이이이이이이이일!”

“똑같이, 스틸! 스틸했어요!”

“권건, 권건, 권건, 권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언!”

온몸을 전율시키는 함성의 물결이 피부를 찢는다.

“바론의ㅡ 주인으으으으은!”

화면에 미처 공표되기도 전에 김흥민은 결과를 알았다.

몸의 감각이 인제야 패배를 알린다.

“FㅡWㅡX!”

어떻게?

그럼 아까 그 타격감은?

“흥민아아아아앗!”

아까까지는 빨랐던 사고가 급격히 느려진다.

어느새 챔피언이 쭉 밀려나고 있었다.

그가 느꼈던 타격감의 정체였다.

어디까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제어 와드의 권역 바깥까지.

내가 왜 여기에?

“아이고, 저 싯펄 빌리어드 챔피언!”

어디선가 곡소리가 들려오지만 김흥민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소름이 끼친다.

차지 않았다.

권건은 처음부터 그를 차지 않았다.

제가 씹은 게 아니었다.

그냥 처음부터.

아까 그가 심장 파괴자를 이용해서 미끄럽게 흘리던 그 순간부터, 권건은 그를 차내고 스틸할 생각이 없었던 거다.

그냥 말 그대로 바론에게 딜을 넣고 정당한 타이밍 싸움을 걸어온 거다.

그의 주변에 FWX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 와서 건 싸움, 앞서가는 심리전, 그리고 완벽한 타이밍.

이게 진짜 ‘강타’.

이게 진짜 ‘스틸’.

“허억..”

바론을 씹어먹은 정글러가 다시 번개같이 달려와 그의 멱살을 낚아채고.

“존나..”

정확하게 명치에 손바닥을 내려친다.

분명 직접 타격인데도 독사처럼 휘감기는 칼날이 뻗어나와 맴돈다.

당장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속도.

“저 형님.. 존나.. 멋있어..”

혈압이 상승되면서 코피가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ㅡㅡㅡ ㅡ ㅡㅡㅡ키이이일!”

“흐으어아아아..”

“야아아.. 레벨 봐라..”

“오늘 게임 너무 맵네..”

“쟤.. 누가 키웠어?”

“우리가..”

회색 화면을 바라보던 김흥민은 아련하게 따봉을 올렸다.

“ㅡㅡㅡㅡ타 킬!”

권건도 따봉을 올렸다.

김흥민은 만족했다.

“권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언! 펜타아아아아아키이이이이이이일!”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개막저어어어어어언! 펜타아아악!”

“스프링 첫 경기에서도, 서머 개막에서도오오오옥! 페에에에에엔타아아아아!”

그리고 게임은 성대하게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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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S 아카이브) 2026 LKL 서머 정규 시즌 1주차 1경기 HMS 0 : 2 FWX ]

총평 :

! 권건의 리싱이 121일 만에 등장했다. (*등장했다는 것은 단순 픽의 의미가 아니다. 아예 밴이 되었다는 뜻이다. 121일간, 국내외 리그 모두 포함.)

! 이례적으로 이 경기에서 해머스는 FWX를 상대로 스틸에 성공했다.

! 권건은 그들을 상대로 바론에서 정글 대 정글 ‘강타 스틸’에 성공했다.

! 그 후 해머스는 권건에게 펜타킬을 당했고, 권건은 다시 한번 정글 펜타킬 기록(*직전 기록 2026 스프링 1주차 2세트 스톰 vs FWX, 권건)을 세웠다.

! 이날 이후 개막 후 FWX와의 첫 경기는 모든 팀의 기피 대상이 됐다. (*개막 펜타 생성기)

! 2세트에서 해머스는 리싱을 밴했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표현으로 토론 중인 내용입니다)

해설진과 아군조차 당황하게 하는 바론 시도는.. (중략) 성냥팔이 소녀처럼 불꽃용 하나 들고 간절히 소원을 빌어봤지만 성냥개비에 불과.. (중략) 다만 여러 가지 긍정적인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개막전, 신인 정글을 들고 FWX를 만나게 된 해머스 입장에서는.. (중략) 그래도 이 신인이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남으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 : 바론도르 흥민아아아앗!)

ㄴ 당신들이 낭만 괴도? 욘겐자야 입주 허용

ㄴㄴ 시도는 좋았다ㅋㅋㅋ

ㄴ 마지막에 따봉 날리는 거 봄?

ㄴㄴ 건이형은 펜타해서 따봉 날린 거 아님? 몬스는 뭔데 따봉함?

ㄴㄴ 건스라이팅 당해서 그럼..^^ 야발

ㄴㄴ 아ㅋㅋㅋ 형이 진짜 스틸이 뭔지 가르쳐 줬자너ㅋㅋㅋ

ㄴㄴ 가져가는 김에 목숨까지 가져가겠습니다;

ㄴㄴ 웹하드$ 권건 매드무비 1시간 재생 업로드 완료했습니다 무%료 다운#로드

ㄴㄴ 실시간 신인 ㅈ되는 영상ㄷㄷ; 수위 너무 높고;;

ㄴㄴ 아청법 준수해주세요..

해머스 정글러가 데뷔한 첫날의 첫 경기.

그리고 아직 씨앗에 불과한 한 선수의 데뷔전.

그날의 김흥민이 한 드래곤 스틸은 기적이라는 말을 들었고.

마찬가지로 모두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그의 바론 오더는 희대의 멍청한 오더로 욕을 먹었다.

‘간땡이가 부은 몬순이’.

하지만 그날 승리 인터뷰에서.

“꽤 과감한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드물게 권건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얼마나 자신들을 비웃을지 긴장하고 인터뷰 영상을 보던 일부 해머스 팬들은 은은하게 감동받았다.

- 저 형.. 웃고 있는거야?

- 하긴 우리 몬스 좀 ㅈ빠지게 하긴 하던데

- 그걸 건신도 알아 주는거지; 둘 다 정글이니까 정글 마음은 정글이 안다고

- 실력은 뭐 이제 만들면 되긴 하지 근데 멘탈은 어디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 이게 사나이의 ‘의지’ 아니냐? 우리 신인 노력추

물론 권건이 웃을 이유는 너무 많았다.

팬들은 모르겠지만 그에게 오늘은 붐보이라는 앓던 이를 시원하게 빼낸 날이었고.

정글러의 난항이 예상되는 시즌의 개막전부터 퍼블에 펜타를 가져간 날이기도 했으며.

아주 먼 과거의 작은 빚을 청산한 날이기도 했다.

“위협적이지는 않으셨나요?”

“위협적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원딜에겐 충분히 위협적이었죠.”

물론 곽지운은 자기가 펜타 먹을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운 소리를 하다가 최은호에게 꾸중을 듣고 반성의 방으로 들어갔지만 그건 비밀.

“그래도 꽤 좋았습니다. 과감한 심리전도 인상적이었고.”

“그럼, 좋은 정글러란 무엇인가요?”

“글쎄요. 제가 그런 걸 단정 지어서 말한다는 게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정글 정신.

갱을 가고 오브젝트를 먹는다.

오늘의 신인 정글은 반쪽짜리에 불과했지만 정신력 하나는 좋았다.

그건 좋은 정글러의 시작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권건이 팬들에게 내려준 판결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해머스에는 좋은 정글러가 생겼네요.”

정글 황제가 내린 평가에 여론은 뒤집혔다.

바론도르 김흥민에 대한 이슈는 그저 가벼운 놀림거리가 됐다.

이 장면을 돌아가는 차 안에서 보던 김흥민은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울었을 수도 있고.

분해서 울었을 수도 있으며.

권건의 말이 고마워서 울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단순히 자기가 꿈꿨던 선수가 제 이름을 거론해서 울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FWX라는 팀이 다른 팀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팀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데뷔 첫날을 겪은 이 선수.

나중에 밝혀진 사실로는 2군에서나마 권건을 ‘이겨본 적 있는’ 정글러.

물론 그때는 정글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 선수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수원 해머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정글러가 된다.

강타 싸움 중독자 김흥민.

그는 정글 호황기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한명이었다.

은퇴한 김흥민이 이날 권건이 보내준 따봉을 추억하며 그 사건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이건 아직 아무도 모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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