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_모든 날이 좋았다
“정글. 긴장되네.”
“김미드.. 김정.. 김예성, 상대가 윤도형인데 긴장이 왜 됨?”
“너 왜 나 정글이라고는 안 부르냐? 나 정글 잘하는데.”
이유찬이 김예성을 본명으로 부른 적이 있나?
너무 옛날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너 거니 형님보다 잘함?”
“...”
“예성아, 걱정 마. 상대 정글은 서폿 출신이니까.”
유상준과 자리를 바꾼 최은호가 진지하게 말했다.
“하긴. 윤도형 루루 장인이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낫다.”
김예성은 짐을 좀 내려놓은 표정이었다.
이게 효과가 있다고?
윤도형, 당신은 대체.
“어차피 우리 미드가 다 해줄 거니까 상관없음.”
“지금 그 미드가 건이를 얘기하는 거야, 아님 나를 얘기하는 거야?”
“누굴 거 같냐?”
“...”
응, 맞아.
이번엔 내가 미드야.
1회성 가짜 미드.
물리적으로 자리를 바꾼 건 아니지만 김예성이 강타를, 내가 텔을 들었다.
이게 전에 말한 ‘조금 다른 연습’이다.
G3에서 쇼맨십과 포변으로 밀고 나올 때, 그걸 단박에 뒤엎으면서 세계 무대에 우리를 각인시킬만한 장치.
“벌써 쟤네 기죽은 거 여기까지 느껴지지 않냐?”
최은호는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오늘 이 일은 게임 외적인 면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최은호가 주장한 안건 중 하나다.
글로벌 축제에 참석하지 않은 팀이 있으니 더 큰 화젯거리를 만들어 줘야 모두가 즐길 수 있을 거라는 게 골자였고.
G3한테 쇼맨십으로 지기 싫다는 게 진짜 이유였다.
“모르겠는데?”
“기가 느껴짐? 도사님이네.”
만약 우리가 보여준 모습이 압도적이지 않았더라면 이런 시도는 할 생각조차 못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전에 내가 반대했겠지.
정말 혹시라도 이렇게 바꿨다가 지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욕은 욕대로 먹었을 테니까.
근데 지금 내 마음은 글쎄, 좀 다르다.
뭐 때문일까.
윤도형이 우리 팀에 있었던 만큼 전략을 알 테니 아예 새롭게 상대하자는 말 때문일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FWX! FWX! FWX!”
무대 입장 인사부터 달아오른 객석의 분위기는 이제 거의 고함 수준으로 변질되어있었다.
“FWX! FWX! FWX!”
게임이 시작되면 함성이 멈추기 마련인데.
아무도 말릴 수도, 말리지도 않았다.
과거 북미의 모 팀을 떠오르게 만들 정도로 줄기차게 들려오는 우리의 팀명.
“깍지야, 다음에는 나에게 원딜을 시켜주지 않을래? 알다시피 나는 연습생 시절에..”
“꺼져 죄은호.”
대부분의 선수가 자기 포지션만 하는 건 아니다.
솔랭도 그렇지만 연습생 시절에 다른 포지션이었다가 바뀌는 경우도 있고.
팀의 필요에 의해 포변을 강요받는 경우도 있으며 스스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당연하지만 나도 포변을 해본 적이 있다.
어떻게든 우승하려고 몸부림치던 어떤 순간에.
그래서 더 잘 안다.
미드는 정말 강한 라인이다.
정글을 사랑하는 나도 알고 있다.
트릭스터 채지한은 나보고 주인공이라고 했지만, 사실 LOS의 주인공은 전통적으로 미드가 맞다.
어렸을 때는 아니라고 우겨보려고 했는데.
여러모로 점수로 치자면 주인공은 미드가 맞아.
다만 내 몸이 가는 게 아니다 보니 팀원들이 말을 잘 안 들어줄 뿐이지.
“얘들아. 정글 말 잘 들어라.”
“지금 건이가.. 삼인칭으로 이야기하는 거야?”
“비슷한 듯?”
나는 부드럽게 손을 푼다.
우두둑 소리가 나지 않도록, 손가락 마디마디 하나씩 꼼꼼하게.
“윤도형도 무시하지 마라.”
“김예성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고 한 건 형님 아님?”
“그래도 무시하지 마라. 정글이니까.”
“정글병자라는 게 이런 거냐?”
“포지션 뺏기니까 애틋해지는 부분.”
“삐슝빠슝! 건이한테 정글러를 뺏은 사람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건송한 일이..”
“FWX에서는 정글이 제일 중요한 포지션인 거 알지?”
“예성아, 잘해라.”
근데.
미드가 주인공이란 건 정확히는 게임을 게임으로만 봤을 때 그렇다.
팀 게임에서 팀원들을 굴리는 경우에는 무조건 정글이 낫다.
전라인 영향력도 그렇고 오더 주도권에서도 그렇다.
게임으로만 보면 탑이 주인공인 시절도, 미드가 주인공인 시절도, 원딜이 주인공인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다 중요해.”
이 말이 팩트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 중 안 중요한 게 어딨어.
한 포지션 없이 게임 시작할 수 있어?
그거 아니잖아.
"잘 될까? 내가 실수라도하면.."
"아, 김미드, 거. 연습 때 안될 것 같았으면 우리가 지금 여기 있겠냐고~ 심호흡이나 해라~"
그러니까 정글이라는 위대한 자리에 있는 김예성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하.. 이 해외의 향기.. 꼬숩다..”
그래, 뭐.
이유가 무슨 상관이야.
대충 살자.
캠 앞에서 코 파는 이유찬처럼.
“배운 대로 잘 해볼게.”
숙련도 부족?
나와 비교하면 당연히 그렇겠지.
근데 상관없다.
상대도 정상적인 플레이를 안 할거고, 나도 어차피 김예성한테 정상적인 정글링 시킬 거 아니니까.
어쨌든 일차 전략은 이렇다.
“미드부터 와라.”
“?”
“레드랑 블루 바치고.”
“!”
“농담이야.”
“야, 너 무슨 농담을 그렇게..”
“건이 너 솔직히 진심 98.3퍼였지? 방금 귀신 들렸었지?”
“미드 거울 치료 지렸다.”
오해하지 마.
우리는 모두가 중요한 수평 조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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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WX) 싱글벙글 의외로 G3의 특권
권건을 미드로 만남..
ㄴ 와 진짜 쏘 글로리하다;;
ㄴㄴ 너무 부럽고ㅋㅋㅋㅋㅋ
ㄴㄴ 조커를 몇 장 들고 있는 거냐고 쟤넨;
ㄴ 근데 과연 미드를 할 수 있을까?
ㄴㄴ 미드가 그렇게 만만해? 어이없는 부분
ㄴㄴ G3미드 아우로라 아니냐? 쟤도 나름 유체미인데
ㄴㄴ 권건 콧대 좀 다쳐서 와라 ㄹㅇ
ㄴㄴ ? 그럼 져도 댐? 너네 월챔 시드권 다이조부함?
ㄴㄴ 한판 져도 어차피 이길 거잖아..
ㄴㄴ 나약한 안티같으니ㅋㅋㅋㅋㅋㅋ
ㄴ 라온이 정글 간 건 왜 아무도 걱정 안 하냐?
ㄴㄴ 어차피 권건이 아바타 해줄 건데 뭘 걱정함?
ㄴㄴ 납득
ㄴ 저 Tlq새 미드 잘함 whs나 이상하게 플레이하는 게 문제임
ㄴㄴ 님이 그걸 어캐암
ㄴㄴ 친해서 안다 어쩔래
ㄴㄴ 미드.. 미드.. 미드빵.. 자주 하는.. 사람..
ㄴㄴ 혹시 형.. 스톰.. K모 형이야? 형 시즌 준비는 잘 돼가?
ㄴㄴ 흐린 눈 하겠습니다 인증 한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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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3의 미드, 아우로라는 황당한 기분이었다.
물론 스왑을 먼저 시작한 건 자기들이 맞다.
이번 픽은 스탠딩 미드라는 점을 빼면 뭐 대단히 특별한 건 아니다.
하지만 멘탈이 나간 정글러를 교체했다는 걸 빼면 이번 세트에 포지션 스왑은 하지 않았다.
다소 오랜만에 등장한 픽이 있긴 해도 이번에는 ‘정통’.
팀의 정글러가 권건에 대해서 잘 아니까.
“쟤, 미드에서는 어떤 스타일이야?”
“..모르겠는데..”
하지만 오히려 제일 놀란 건 정글러 윤도형인 것 같았다.
“왜 몰라? 미드 간 거 못 봤어?”
“못 봤는데.”
“한번도?”
“한번도. 솔랭 말고.. 작년 연습까지는.. 전혀.. 그렇게는..”
그럼 숙련도 포기?
날 따라 해보겠다는 건가?
아무리 저들이 강해봤자 익숙하지도 않은 포지션을 하는 건 어림도 없을 텐데.
“그럼 안 죽으려고 하겠네. 이번 세트가 곧 자기 유일한 미드 KDA일테니까. 그런 스타일 흔하지.”
종종 봤던 일이다.
매사에 긍정적인 아우로라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윤도형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가 쏟아지고 있긴 했지만.
“권건.. 이 자식.. 그래도 같은 편이었다고 정글에서 봐주기로 한 건가?”
뭐, 나쁜 말은 아니겠지.
“근데 왜 이렇게 불길하지? 야발.. 왜지? 왤까? 왜지? 쟤가 경기로 장난치는 타입이었던가? 아닌데.. 아..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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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네, 상황 정리하겠습니다.”
중계진은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았다.
“네, FWX는 탑 그라, 정글 사일, 그리고 권건의 트타로 상체를 챙겼고. 바텀은 아펠과 노틸 조합입니다.”
“이거 진짜 기묘합니다? 당연히 그라 정글에 탑 사일일 줄 알았거든요!”
“근데 돌렸죠.”
“반면 G3는 사이언, 요공에다 에니와 졔리 브리움이거든요.”
“이건 상당히 한타 지향적이에요. 졔리에게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짐머상이 드디어 힘을 보여줄 타이밍이 온 거죠?”
흥미와 분석은 별개의 일이다.
“무난히 가면 FWX 조합도 매워요.”
“단지 문제는 지금 정글러와 미드의 포지션이 바뀌었다는 거거든요.”
“그렇습니다. G3는 정상 포지션이에요!”
“FWX가 굳이 이런 페널티를 짊어져 줄 이유가 없는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일 정글이라는 게 예전부터 그랬지만, 이게 타 포지션.. 그러니까 탑이나 미드가 정글 걸리면 보통 저렇게 뽑거든요?”
- ‘나쁜 픽’
- 해로운 정글
- ‘궁 훔치러 돌아다니기만 하는 정글’
- ??? : 저는 사일이라 정글 먹고 클게요 라인전은 알아서 하세요
“지난 결승 때 권건 선수가 정글 사일을 보여준 적이 있긴 한데.. 그래서 G3 입장에서도 착각하기 쉬웠을 겁니다.”
“어쨌든 라온 선수의 정글링도 기대가.. 됩니다, 예.”
포지션 스왑에 대한 의심.
“대신 정글 사일은 시간 진짜 오래 걸려요. 이걸 아셔야 합니다. 라인전에서는 우리가 무조건 이길 거다, 그렇게 생각을 해야 해요!”
“말 그대로 콤보에 당하기 시작하면 끝, 반대로 잘리기 시작하면 FWX가..”
그리고 불안정성에 대한 거론.
“그럼.. 그 정글러가 가 있는 미드.”
“미드에 정글이 간다. 이게 아예 없었던 이야기는 아니에요. 예전에도 어떤 팀에게 이런 일이 있었죠. 근데 그 경우에는 이제.. 원딜 포지션 선수가 잠시 그,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정글이 미드로, 미드가 원딜로. 그리고 서브 정글이 주전 정글로 플레이했었죠.”
“뭐, 어떻게 보면 FWX는 불과 반년 전에 정글러가 서포터로 갔던 이력이 있긴 한데.”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이런 플레이가 좀 이해가 되긴 하네요.”
그리고 시선이 모였던 미드 이야기.
“그래서 권건이 미드에서 잡은 건 트타!”
“근데 지금 또 미드 트타가 예전만큼 사기냐, 그럼 그렇지 않아요. 예전 2렙 폭딜 정말 사기였죠? 하지만 메타는 움직입니다.”
“여전히 초반에 강력하다는 건 있어요. 라인 정리도 좋구요! 하지만 지금의 최대 단점은 중반에 딜로스가 더욱 심화됐다는 겁니다.”
“패시브가 패시브인 만큼 후반에 가면 다시 힘을 되찾긴 하는데요, 무덤 뚜껑 못질 되면서 나락 간 이유 중 하나는 그 중반의 너프를 더 심하게 때렸기 때문입니다. 계수가 떨어졌어요! 쉽게 말해 1코어가 나오기 전까지만 조심하면 그다음부터 15분, 20분 정도는 안심 서비스 가입 그냥 프리패스거든요.”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죠?”
“근데 나는 너무 걱정되는 게, 어쨌든 권건 선수의 미드? 데뷔전?이잖아요? 근데 상대가 상당히 저돌적인 타입의 유럽 선수라는 점이..”
“그래도 권건인데? 이 남자.. 미드에서는 어떨까?”
“아마 한 대도 안 맞고 킬을 가져오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요? 워낙 무빙이 좋은 선수니까..”
“그럼 상당히 미드에 잘 맞는 선수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하지만 그럴거면 트타보다는 르블란 같은 챔피언을 고르는 게..”
“오히려 라인전 자체에 목숨을 건다던가? 원래도 쓸데없는 킬은 절대 내주지 않는 선수잖아요. CS 완벽주의자의 모습?”
“그럴 수도 있죠!”
- 못할 거라는 가정은 없는 거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응없어
- 나는 CS충에 한표
- 하긴 원래도 자원에 목숨거는 타입ㅇㅇ
- 라인전에 집중하지 않을까?
- 맞지ㅋㅋ 아ㅋㅋ 정글러가 지 라인 갖기가 쉽냐고ㅋㅋㅋ
하지만 그 결과를 보기까지는.
“아, 이거.. 이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으로 가르면서 시작한 전장.
그건 정글에 들어가 있지만 라인에 서 있는 것처럼 따박따박 캠프를 챙기던 김예성이.
첫 귀환 후 탑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작됐다.
“너 캠프는 안 먹어? 너 급한 거 아니었어?! 사일이잖아! 왜 캠프 버리고 거기서 킬도 안 나올 사이언을 붙들고 그래?”
극초반.
“이 플레이 이거 맞아요?”
“이렇게 의미없이 모습 드러내면 상대에게 기회를 주게 되는데요!”
- 라온아; 지금 그거 건이 형이 오더 내려준 거 맞아?
- 성큼걸이의 대리인;
- 폐지나 줍지 왜 거길..
“에니 원콤이 결코 약한 게 아닙니다! 트타도 근본은 물몸 원딜!”
“정글 위치 확인!”
“아우로라 에니! 들어갑니다!”
“기절!”
“이건 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거리 조절을 잘했어야 했는데! 핀치!”
- ? 다 피할거라며?
- 이거 정글 차이 아님?
- ? 정글 서러워서 살겠나;
- 모야? 우리 신인.. 미드 거리 감각 없어?
라인전은 처음이라 어색하다는 것처럼 당겨진 라인.
그 틈새를 파고든 ‘진짜 미드’ 아우로라의 습격.
“파워풀한 에니의 딜교!”
“권건, 위기! 위기! 트타 체력 사 분의 일 지점, 에니 사 분의 삼 지점!”
- 권건 뭐야?? 별 볼 일 없네?
- 미드에서 원딜 챔ㅋㅋㅋ 아예 관련 없는 챔피언ㅋㅋ
- 그래 예능에 너무 찌들긴 했어;
- 휴.. 형 한번 봐줄게; 얼른 정글로 돌아와;
정글은 몰라도 미드 실력은 형편없다는 것처럼.
“이렇게 라인전 져주면 정글도 불안해져요!”
그때.
다리를 절뚝거리며 도망가던 권건의 작은 트타가 힘겹게 몸을 돌렸다.
“퍼블. 적 노플.”
입꼬리를 올려 웃는 그는 3초 뒤를 예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