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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60화 (260/326)

260화. 먹어

“잠깐!”

끼어드는 건 못 참는 김예성이 외쳤다.

“우리집 돼지는.. 연예인인데?”

가족은 까도 내가 깐다.

아니, 이 경우에는 좀 다른가.

“하. 미드. 너. 나. 견제. 함? 팬. 중의. 팬. 빅 팬. 팬클럽. 회.장.이라고.”

유상준이 뱀 같은 눈을 빛내며 달려들었다.

“그건.. 그건.. 팬.. 팬이시면..”

그 기세에 여우는 찔끔 눌리고 말았다.

“그리고. 너. 회.장. 해본. 적. 있음?”

“없지만..!”

“그리고. 우리. 누나. 머리. 김.”

“걔도 길거든? 키도 길고 머리도 길어.”

“우리. 누나.도. 키. 큼. 손톱도. 김.”

“..걔도 길걸?”

“확.실?”

안타깝지만 김예성은 여동생에 대한 칭찬을 찾는 게 어려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좋게 좀 생각할걸.

진짜 사이가 나쁘냐면 그렇지는 않은데 그냥 서로 개돼지 보듯 해서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여동생 손톱 길이는 공중제비를 다섯바퀴 돌아도 모를 질문이었다.

“...”

간신히 짜낸 핑계는 알량했다.

“이쪽은 고귀한 미드 혈통이시다!”

“이래서. 미드.들이란. 쯧.쯧. 혈통.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는. 혈통? 나는. 8기통.”

“그게 무슨 개소리..”

혼인 동맹 찬스는 소중하니까.

둘 다 보통 야망이 아니었다.

“와.. 쟤네 말싸움 수준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물론.

외동 곽지운과 형이 있는 최은호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쟤넨 누나나 여동생 자랑할 게 저렇게 없냐? 내 사촌 동생은 플레인데.”

“여자?”

“초등학생이다..”

“앗! 죄송!”

“신고하려다 숨 참음.”

“그래서 여동생임?”

“남자다, 진짜 미쳐버린 빙수 새끼야. 서폿이 원딜한테 이렇게 관심이 없냐?”

“죄송하다고.”

“경찰서 가서도 그렇게 말할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싱싱미역 상태라.”

“심신미약.”

“근데 난 왜 형만 있냐? 아.. 진짜 형이 최악인데 진짜..”

“싱싱미역 빙수 너는 누나나 여동생 있었으면 그게 더 최악이었을걸.”

“왜? 여동생 귀엽잖아. 오빠아~ 크으..”

외동이긴 하지만 대가족으로 자라 현실을 잘 아는 39대손 곽지운이 고개를 저었다.

“과연 그럴까? 혹시 여동생을 미연시로 배우셨나요?”

“그럼 뭔데. 오빠가 오빠 아님?”

“글쎄. 손절하고 싶은 놈? 밖에서는 모르는 척해라 제발?”

“내 로망 파괴하지 마라. 외동이 뭘 안다고.. 여동생이 그럴 리 없어..”

곽지운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 새낀 진짜 답이 없다.

“아, 맞다 유찬이 쟤도 누나 있지 않냐?”

“근데 쟨 자기 누나 나이도 모르잖아.”

“내 얘기함?”

“너 누님.”

“누나? 힘 쎔. 걍 도내 최강 전사임.”

“그냥 가서 치킨이나 마저 먹어라.”

“오키. 거니 형님! 치킨 안 먹음?”

“먹자.”

그리고 팀 최고의 인기남은.

“내가 다리만 먹고 가슴살은 남겨 둠. 인정?”

“제법이네.”

“홍홍홍.”

안타깝지만 처음부터 남들과 관심 분야가 달랐다.

#

아주 빠르게 휴가에서 돌아온 선수들이었지만 정신없는 일정이 지나갔다.

뜻밖의 사건으로 팀의 마음이 요동치긴 했지만 어쨌든 목표는 확실했다.

다음 시즌 준비.

그리고 그에 앞선 해외 일정.

시즌 중에 방영될 중장기 콘텐츠들 역시 준비되어야 했다.

이유찬의 ‘운전면허 대작전’이나.

예전에는 놀림받았지만 이젠 패션 감각을 인정받을 수밖에 없어진 김예성의 ‘룩북’ 콘텐츠.

곽지운과 최은호가 진행한 ‘티격태격 FWX LOS 운동회’.

유상준이 엄선한 ‘서폿에 적합한 챔프 100선’ 등.

여기에 비시즌에도 얼굴을 내비치는 필수 방송, 그리고 일회성으로는 시구 등의 이벤트도 있었다.

이 모든 걸 함께 진행하면서 굴러간 상반기 마일스톤은 이제 곧 마지막 정착지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미드 시즌 리그, 국제 MSL 참여를 위한 출국까지 약 열흘.

“이제 원 버전 트레이닝 돌입할 거고, 우리는 딱 결승까지만 잠깐 최신 버전을 잊는다.”

얼마 전부터 선수들을 완전히 훈련 태세로 되돌린 박진현 감독이 무게감 있게 선언했다.

“별로 다를 거 없다. 단지 출국, 그리고 해외 경기가 처음인 선수도 있으니까..”

2025 월챔은 한국에서 개최됐다.

그래서 선수 중에서는 해외 무대 경험이 없는 선수들이 있다.

박 감독 기준에서는 권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임하면 된다. 너무 부담 갖지 마라.”

이기면 좋지만 경험이 더 중요하다.

어차피 주목표는 하반기 무대와 월챔이다.

“네.”

“그럼요.”

시원한 대답이 나온다.

우승 자신감의 힘이다.

“그리고 스크림 일정이 나왔는데..”

그 모습을 본 박 감독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일정표를 띄운다.

“억.”

“이거 진짜..”

“정말 최고지?”

너무 좋은지 다들 눈을 가렸다.

“왜 이렇게.. 빡빡해요?”

“다들 할 일이 없대요? 쟤넨 서머 시즌 준비 안 해요?”

겹치는 팀이 거의 없을 만큼 빼곡한 리스트가 꽉 들어차 있다.

“어어, 더 넣어달라는 걸 반려하느라 아주 혼났지.”

“감독님 신나셨네..”

뒤에서 코치들이 작게 소곤거렸다.

게임은 계속해서 버전이 바뀐다.

보통 대회 버전은 라이브 버전보다 두어걸음 뒤에서 채택된다.

버그나 안정성 문제로 달라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그리고 MSL과 정규 시즌은 시작하는 시기가 다른 만큼 당연히 버전 차이가 난다.

게다가 세계 대회는 버전 선정에 훨씬 보수적인 편이기도 했다.

“와, 이거 타격감 진짜 세다.. 쉬는 날 있냐?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오.. 우리 시즌 이렇게 일찍 시작한 적이 있었나?”

“없지. 너네 좋은 시절 다 갔다. 큰일 났어. 아주. 인기 강팀 스케줄 맛 매콤하지?”

박 감독이 싱글벙글 웃었다.

바쁘다는 건 좋은 일이다.

이렇게나 많은 팀이 FWX에게 스크림 요청을 넣었다.

당연히 FWX가 버전 고정 제한을 걸었지만 다른 팀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버전 적응 부분을 포기하더라도 FWX의 스타일과 운영 그 자체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뜻이다.

오히려 훈련 서버에 추가 요청을 넣느라 힘들 정도였다.

“하하, 얘들아. 우리가.. 참.. 농사를 잘 지었어.. 팀 외적으로도 말이지.”

“농사 두 번 지었다가는 제 팔목 아작나겠어요.”

“팔목. 멀쩡한. 사이다.를. 주전.으로..”

“그만 좀 침투해라! 표에 너 이름 적혀 있잖아!”

“최은호 꼴 좋다. 옛날엔 그렇게 연습 싫어하더니. 이제 자기 자리 찾기 급급하죠?”

“크읍.. 스불재..”

이번 MSL에 출전하는 팀은 두 팀.

FWX와 트릭스터.

“우리한테 몰렸겠네요?”

김예성이 나지막이 물었다.

“응.”

눈치 빠른 최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크림을 돈 내고 하는 건 아니지만 구단에게 시간은 돈이다.

기회비용.

“트릭스터에는 오퍼가 많이 안 간 모양이더라고.”

그리고 그건 FWX에게 쏠린 스크림 요청으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확실히.. 요즘 오드 선수인가? 그쪽 탑 솔랭 점수가 곤두박질쳤던데.”

“유출된 스크림 정보도 이상하더라.”

실력도 실력이지만 해당 선수의 장비 강박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소문이 조금씩 돌고 있었다.

“진지하게 신규 선수 발탁 생각도 있는 것 같던데요.”

“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소문이 돈다는 것은 선수에겐 치명적이다.

육체적이냐 정신적이냐에서는 다르지만 과거 최은호와 비슷한 면이 있다.

구단에서 막아줘야 할 정도로 선수 가치가 떨어지는 소문이라는 뜻.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건 정말 사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이런 식의 방치 후 이 선수를 일방적으로 방출하거나 갈아치우게 된다면 트릭스터라는 팀 역시 구설에 오를 수 있다.

“진심? 발탁? 손절한다고? 설마.”

이제 이 판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던 선수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요? 트릭 2군 풀에 누구 있어요? 탑, 너 아는 사람 있어?”

“퓨처스 리그? 퓨처스 리그에서 트릭스터는 좆밥이었음.”

“오우야.. 필터링 좀..”

“그럼 뭐라고 하지? 이거 정도는 이겨야 사람이다 싶은 그런 느낌이었음.”

“그렇게 말하면 2군 양태진 감독님 우신다.. 너희 그때 2군도 막장이었잖아..”

“아차차. 탑 기준임. 내가 FL 패왕이었음. 근데 지금도 패왕임. 우승 탑이라서.”

“맞는 말인데 왜 빡치지?”

"아무튼 그럼 반찬이 없을 텐데요?"

“아, 2군 말고도 MSL 끝난 뒤에 트레이드할 수 있는 시기가 있거든.”

“그런 게 있었어요? 완전 몰랐는데.”

“보통 잘 안 하긴 하지. 서브나 삼각 정도? 스토브 리그 때 격변시켜야 스프링 때 적응하고 서머 때 제 실력 나온다고 하니까.”

잠시 제각기 머리를 굴렸다.

“근데 이번 중간 트레이드에서 조금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 감독이 슬쩍 입을 열었다.

“뭐 들은 거 있으세요?”

“아니, 뭐, 큰 건 아니고.. 우리 팀 얘기도 아니지만..”

박 감독은 머리를 긁적였다.

“곧 알게 될 거야. 곧.”

아직 아무 소식도 들은 적 없던 선수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트릭스터 꼴 좋다.”

“야,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2025 MSL.

FWX는 트릭스터에게 적극적으로 분석 데이터를 보내주며 응원해줬지만.

“배신자 놈들.”

트릭스터는 2025 서머 결승, FWX에게 오히려 비신사적인 행동을 보여줬다.

언플부터 시작해서 함성 유도까지.

이것 때문에 진 거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는 어려운 문제.

하지만 2026 스프링에서 확실히 되갚아주고 나서 FWX 선수들은 편하게 그때 욕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와. 근데 기분 개 이상하네. 이거..”

최은호가 불편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오드 그거 함성 유도할 때는 존나 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손 벌벌 떨면서 패드 만지작거리고 있을 거 상상하니까 불쌍해서 꼴도 보기 싫다.”

“불쌍하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둘 다다. 어쩔래.”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래도 어쨌든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사이, 같은 직업 종사자.

그리고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올 수 있는 입스(YIPS).

“어쨌든 걔넨 우리보다 먼저 출국해야 하니까. 예선부터 올라와야 되잖아.”

“그럼 지금 한창 연습하고 있겠네요.”

“하겠지.”

“아, 짜증 나는 이유 알겠다.”

“뭔데?”

“걔네가 국가 망신 다 시킬까 봐 그래요. 아마 틀림없이 그런 거임. 북미에 지고 막.”

“참나. 언제부터 트릭스터가 그렇게 걱정받는 팀이었다고.”

“우리 우승하고 나서부터? 걔네 걱정해도 되는 팀은 우리 팀밖에 없는 거 아님?”

“오. 준우승따리니까.”

“근데 LKL 준우승 한 애들 별거 아니네~ 이런 말 들으면 기분 나빠 안 나빠?”

물론 그 정도일 리는 없다.

선수들과 코치가 뒤섞여 가벼운 대화를 나눌 때.

얌전히 앉아있던 믿음직스러운 정글러가 손을 들었다.

“어. 건이.”

“그럼 소외당한 트릭스터에게.”

“음.”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은 누구죠?”

“그건..”

박 감독은 짐짓 당황했다.

그도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 좋은 박 감독에게조차 트릭스터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놈들이었다.

“이번에도 자료 보내죠.”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순하고 착할까?

권건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틀림없다.

“그런 배은망덕한 놈들에게는 쓸 시간은..”

“따로 정리해둔 거 있어요. 적당히.”

“...”

박 감독은 콧잔등을 찌푸렸다.

정치적으로는 그게 맞을 수도 있다.

다음 시즌의 FWX 위치를 생각해서라도 더욱.

“그냥 보내자는 거 아닙니다. 이번에는 감독님이 먼저 물어보세요. 데이터. 필요하냐고.”

자세히 보니 권건은 왼쪽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흠, 흠. 그럼?”

당연히 받겠다고 하겠지.

아마 박 감독에게도 짜릿한 순간이 될 거다.

전과 상황이 다르니까.

“받겠다고 하면 기사 내면서 아주 공식적으로 전달하죠. ‘작년에 이어 또다시 FWX가 먼저 트릭스터에게 내민 손길’. 여태까지 썰로만 돌았던 작년 결승, 이유찬 멘탈 터지게 했던 이야기 싹 한 줄기로 묶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권건은 그렇게 순한 사람이 아니었고.

자기들이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휘두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급한 건 자기들인데 안 먹으면 어쩔 건데?”

“건아..”

박 감독 생각은 달랐지만.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남을.. 돕는.. 건이.. 너는.. 진정한.. 이 시대의.. 참된 프로.. 한국 리그의 발전만을.. 생각하는.. 흡..”

FWX는 이번에도 트릭스터를 ‘돕기로’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그 도움을 간절하게 바라는 어떤 이가 트릭스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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