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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59화 (259/326)

259화. 풍년이오

“근데 솔직히 둘이 어울려.”

“그냥 거니 형님도 배우 하실?”

“그럼 우리 팀은 어떡해? 말조심해라.”

“호잇. 주둥아리.”

선수들이 제기한 건 억지 삼각관계다.

이런 이슈를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한참 불타는 청춘이니까.

어쨌든 당연히 편집되겠지만 이런 질문은 게스트가 대답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내가 대답하는 게 맞다.

“감사한 일이죠.”

상대가 불쾌할 수도 있으니까.

“아마 사신지 얼마 안 된 모양이네요. 올해 버전인 걸 보니까.”

제가 이렇게 사회적인 사람입니다.

“맞아요! 근데 이전 버전도 갖고 있고..”

“야, 건이 개노잼이다.”

“또 사회 생활한다. 지겹다 지겨워.”

“모든 면에서 완벽할 때부터 알아봤는데 혹시 쟤 어딘가 문제가..”

“깍지 너 나랑 같은 생각 하냐? 혹시 그것이 실력 주머니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했는데? 제정신입니까 휴먼?”

내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

들어올 때부터 알고 있었다.

에이린이 몇 번이나 보여줬으니까.

근데 진심으로 내 이름은 별 뜻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뇨. 마킹 그거 어차피..”

“뭐?”

그야, 뭐.

“새로 들어온 팬분들은 다 제 이름 마킹하지 않나요?”

“...”

“그래서 샵에서도 아예 그렇게 팔잖아요.”

아닌가?

“...”

굿즈샵에 가면 내 이름 박힌 유니폼이 대부분이던데.

물론 빈 유니폼도 있지만 구매자가 올 때마다 마킹지나 패치를 붙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미리 붙여놓은 걸 전시해놓은 셈.

“그래서 오프라인 구매를 하시게 되면 보통 제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거니 형님? 혹시 정중하게 닥쳐주실 수 있습니까? 하던 사회생활이나 계속하시지 왜 그런 재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까, 듣는 이유찬 서럽게.”

“이유찬이 예의 발라졌어?”

“야, 그래도 세자가 2등인 거 알지? 전원협 다 내 편인 거 알지?”

“잠깐만. 형. 나는 아직 빅스 유니폼 입고 찾아오시는 팬분들이 있어서 그런 건데?”

“니가 아직도 빅스야? 당연히 새것 사야 하는 부분 아니냐?”

“그렇게 말하는 은호 형 내가 알기로 읍읍.”

“팔로워 수는 내가 1등이거든?”

“혹시 그건 형밖에 SNS를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읍읍.”

나비효과로 인해 변하는 미래가 있다지만 항상 변하지 않는 건 있었다.

유니폼 판매량.

그런데도 내가 내 인기를 모른다고 하면 좀 웃긴 이야기잖아.

나는 2군일 때도, 개인 방송을 할 때도, 1군에 갓 콜업됐었을 때도 항상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외모지상주의를 부정하기에는 어머니 덕을 너무 많이 봐서.

“뭐.. 새롭게 유입되신 분들의 방향성은 뭐..”

오히려 이게 내 실력을 깎아서 피해를 봤던 케이스에 가깝긴 해.

물론 그것도 곧 사라졌지만.

얼굴은 사소한 문제고 이 판은 실력이 더 중요하잖아?

“얼빠가 당연해? 건이 너어는 진짜..”

“야. 가랑비. 진짜 순전히 얼굴 때문일까? 넌 저기 벽에서 거시기 잡고 반성이나 좀 해.”

급발진 전문가 최은호의 생각은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세상 무섭다, 이런 식으로 얼굴이 다라는 걸.. 잘생긴 놈들 다 뒤져야 된다 진짜..”

내가 한마디 해주려는 순간.

이번에는 반대로 나보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이 있었다.

“휴지님? 지금 혹시 제 욕하시는 거예요?”

에이린이다.

“그으으으럴리가 있나요오오오옥!”

“휴지님 눈에는 제가 안 예뻐요?”

“예쁘죠! 예뻐요! 너무 예뻐요!”

“연기는 잘해요, 못해요?”

“잘해요! 외모보다 빛나는 건 실력!”

“외모 덕을 안 본건 아니지만 노력했죠?”

“그럼요! 제가 제일 잘 압니다!”

연기자는 방긋 웃었다.

“정말 그렇겠네요. 클래스님도 실력으로 유명해진 분이잖아요. 그렇죠?”

“어? 네? 그렇죠? 맞죠? 저 실력파죠? 근데 네? 제 이름 아시는? 근데 왜 휴지라고?”

“그러면 저기 가서 벽보고 반성 좀 하세요.”

“네! 어?”

“자, 출발!”

“어? 네? 네? 알겠습니다? 출발!”

오.

이거 신기하네.

“길들였네?”

“은호 형 저거 구제 불능인 줄 알았는데 진짜 구제 불능이네?”

최은호가 벽을 보고 서 있는 동안 에이린은 팀장님에게 어떤 수신호를 보냈다.

아마 적당히 잘라달라는 신호인 것 같다.

최은호가 욕 먹을까 봐.

“저 형이 너무 들떠서 그래요. 미안합니다.”

나도 가볍게 곁눈질로 인사를 건넸다.

어쩌면 기분이 나빴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 그게 다른 것 때문이라고 말하면 기분 좋을 일은 아니니까.

“아뇨. 괜찮아요.”

고운 눈웃음이 돌아온다.

“저한테 한 얘기도 아니었는데요, 뭐. 근데 공감이 가서요. 건님은 그런 적 없어요?”

방금 했던 생각이라 약간 찔리는 부분이 있긴 하다.

“뭐..”

나름대로 날 감싸려고 한 건가?

“저를 도와주신 건가요?”

“그렇다고 말하면.. 음, 한번 웃어주시나요?”

“그렇진 않을 것 같은데요. 어차피 저 형은 별 생각 없이 하는 말이라.”

“그럼 아닌 거로 해요.”

“만약 도움이 됐다고 한다면?”

“제가 웃을게요.”

여배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밝게 웃어 보였다.

이건 나도 웃음이 좀 나오네.

기특하기도 하고 그래서.

“..발단은 됐네. 딱 발단까지지만. 쟤 일 잘하는 사람 좋아하거든.”

“조용히 좀 해, 삼류 악역 김예성..”

이제 슬슬 끝나가는 촬영.

“자자, 어떻게 사실상 팀 승리는 권, 예, 린 팀으로 결정됐죠? 근데 마지막 보너스 문제를 저희가 준비했는데~”

잠시 팀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콘텐츠 팀 팀장님이 손을 흔들며 이목을 집중시킨다.

“특별 선물 있습니다, 집중하세요!”

“네네.”

“팀장님, 저 지금 마상이 너무 심한데 혹시 이거 산재 처리 되나요?”

“그럼 마지막 보너스 문제 나갑니다! 이건 방송에 따로 안 나가요!”

“방송 안 나갈 걸 왜 찍.. 저기요? 혹시 제 말 들으신 분?”

“오늘 우리와 함께 해주신 에이린님의 본명은?”

“저요!”

진짜 팬이었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듯, 산재 타령을 하던 최은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멀리서 문백산 코치님도 손을 들고 있었다.

“저요! 쉽다 쉬워! 김예린! 김예린! 김예린!”

“야, 너 또 팀명 말 안했..”

순간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에 시선이 모인다.

“그.”

“김예?”

당당하고 앙큼한 여동생 캐릭터.

“응? 김예린?”

닮은 듯 안 닮은 듯.

안 닮은 듯 닮은 얼굴.

“누구 이름이랑 되게 닮은 것 같.. 은.. 데..”

바로 놨던 말, 자연스럽게 티격태격하는 모습.

“어. 쟤 그러고 보니까 여동생. 있다고..”

그리고 에이린과 엮일 때마다 기절초풍할 것처럼 입을 틀어막던 DNA 적 거부 반응.

“진짜 아니지?”

“진짜 아니지? 진짜 아니지? 진짜 정신 나갈 것 같은데 아니지?”

온종일 일품 연기를 선보인 여배우가 상큼한 웃음을 짓고 김예성에게 팔짱을 끼고 있었고.

김예성은 태초부터 이런 사람이라는 것처럼 썩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딴 건.. 큐 카드에 없잖아..”

“있었어요, 보세요, 자. 보이시죠?”

“안 보이는데?”

“하하, 눈이 나빠졌나 봐, 예성씨. 똑똑히 봐요.”

“안 보인다고. 족발 치우라고. 관절 빠질 것 같아.”

“킹치만 오?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쪽팔림을 줄 수 없는걸?”

“제발 꺼져..”

“예성이 너 그게 에이린님한테 무슨 말버릇.. 아니.. 그게 아닌가 아니 그게.. 예성.. 제부님? 형부? 형제? 매부? 헤이, 브로!”

“은호 너는 혹시 아는 게 없니?”

“반갑습니다, 여러분! 다시 인사드려요, 김예린입니다!”

모든 진실이 풀린다.

내가 착각했던 김예성의 그런 모습은 아마 지극히 여동생을 아끼는 오빠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나도 외동이라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겠지?

“나 얘 몰라.. 진짜야..”

“아쉽지만 저는 얘랑 멀디먼 이촌 사이랍니다!”

이게 드라마였다면 밑에 카페X네가 뜨고 끝났을 거다.

#

“힝잉잉.”

“빙수야, 왜 그래?”

“힝잉잉. 나 너무너무 속상해.”

“빙수야, 시끄러우니까 밖에 나가서 울어.”

이촌 사이.

마지막 퀴즈는 선수들을 놀래켜주기 위해 준비된 것이기에 편집됐지만, 팀 내에는 김예성과 김예린이 남매라는 사실이 퍼져나갔다.

진행하던 팀장도 중간에 알았다.

흥선 대원군 FWX 채널은 이 사실을 공식 방송 콘텐츠로 소비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어차피 촬영 직전 올린 SNS에 김예린이 올린 인증, 그 전의 관계, 묘하게 드러냈던 캐릭터 성이나 이름, 주거 지역의 유사점 등으로 천천히 이 진실에 다가가는 사람들이 있을 게 뻔하다.

부산 호넷 선수 등 일부 연예계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전부터 예측했었던 것처럼 어차피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그만큼 관심은 더 오랫동안 이어질 테고 그게 진정한 의미의 윈윈이었다.

FWX는 참여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최종 진실을 밝히는 권리를 김예린에게 선물했다.

“왜 자꾸 빙수라고 불러, 나쁜 새끼들아..”

다만 최은호의 충격은 깊었다.

“니가 에이린.. 예린.. 에이린.. 와, 이걸 왜 몰랐냐? 아무튼 예성이 여동생.. 아? 야 뭐라고 해야 하냐?”

아직도 호칭 정리는 안 되고 있었다.

“아무튼 니가 마지막에 그분한테 이린씨빙쉬머거러가쉴래여? 이랬잖아.”

“억.. 빙쉰? 형? 눈새?인가? 성이 에씨임?”

“아니! 내가! 언제! 그랬어! 그냥 맛있는 빙수집 안다고..”

“어휴, 저 빙수.”

“빙수.”

“빙수. 빙.수. 말고. 사이다를. 주전으로.”

“대머리 엔딩 요정은 닥쳐.”

“...”

어쨌든 촬영은 모두 끝났고, 선수들 앞에 남은 관계자는 한명 뿐이었다.

“예성아.. 우리만 몰랐냐? 팀에 그 민증? 호적? 제출 안 해?”

“그것만 보고 어떻게 알아. 김예린이 한둘이야?”

“그건 그래. 내 육촌 동생도 이름이 예린임.”

바로 사옥으로 함께 돌아올 수밖에 없는 사람.

오빠 쪽이었다.

“하.. 이 돼지 이거 촬영장에 일부러 장갑 두고 갔네.”

어쨌든 한 시대를 뒤흔들고 있는 최고의 여동생이.

한없이 현실 여동생인 남자.

“빅토리아 시절에나 하던 걸 지금 하고 있네.. 미친..”

촬영 스탭에게서 김예린의 ‘의도적 분실물’을 습득한 김예성은 이마를 짚고 앓는 소리를 냈다.

혈육이 사용하는 고전적인 수법 따위를 눈앞에서 보고 싶지는 않은 법이었다.

“어? 장갑 두고 가는 건 결투 신청 아님?”

“그래. 탑. 니가 옳은 말 했다. 나한테 하는 결투 신청인 것 같다.”

수신인이 잘못되긴 했지만 어쨌든 그랬다.

“야, 처남. 왜 미리 말 안 했냐?”

“처남은 지랄. 미안하다, 예성아. 우리 서포터가 아직 산재 처리를 못 받아서.”

“됐어. 굳이 이런 걸 말해서 뭐 해.”

“그래. 빙수 너 같은 놈들 때문에 말 안 했겠지.”

“내가 뭘!”

물론 이쪽에서도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별거 없었다.

“빅스는 아까워서 어쩐대? 이런 거 되게 좋아하는 팀이잖아.”

“내 알 바야?”

사실 김예성의 태도는 뾰족했지만 기분 나쁜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남몰래 제안을 넣은 적도 있었다.

한참 FWX가 주가를 올리고 김예성이 인생의 즐거움을 되찾았을 무렵.

어머니인 고 여사의 어패럴 브랜드와 팀 모델 협약에 관한 제안이었다.

FWX 선수들의 얼굴은 천차만별이었지만 옷발은 잘 받는 편이다.

권건이 강제한 운동 때문에 더 그랬다.

영 캐주얼 스포츠 라인에 적합.

제안은 김예성이 가족들을 만나고 온 뒤 구두로 운을 띄운 정도였지만 사실 결과는 뻔했다.

FWX에는 이미 자사 의류 브랜드 협찬이 있었으니까.

지금도 그들은 빵빵하게 협찬받은 S/S 시즌 의류로 생활한다.

“너 그럼 건이한테 여소 해준다고 했던 게 여동생 소개였던 거임?”

“개소름이다. 혈연 노렸네.”

"혈.연? 결혼.시키면. 혈연!"

그런데도 제안을 해본 건 이 팀의 가치가 계속 올라갈 것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어서다.

어쨌든 그도 사업가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권건과 더불어 스스로가 그런 팀으로 만들 생각이었고.

거기서 잘나가는 연기자 김예린이 끼어든 건 좀 의외긴 하지만.

눈치 빠른 돼지도 자기가 치고 들어올 타이밍을 알고 들어온 거다.

우승 직후, 게임 쪽 팬들이 FWX가 뭘 해도 너그러워질 때.

그래도 솔직히 FWX 소속 미드 라이너 입장에서 보면 실보다 득이 많은 거래였다.

제 인생은 지가 책임지겠지.

“뭐.. 건이 너한테.. 뭐.. 관심도 좀 있는 것 같고..”

사실 처음엔 김예성이 영업하긴 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인데 사람이 참 괜찮다고.

대부분의 소개는 그런 식으로 일어난다.

처음에는 외모로, 그다음에는 성격으로, 그리고 그다음에는 실력이나 인생관으로.

어쨌든 가족이라 집에 가면 가끔 마주치긴 하니까.

그리고 동생이 남편이라고 데려왔는데 나보다 랭크 높고 캐리해주는 매부면 좋은 거 아님?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의 현실판.

“건이한테? 그거 진심이었음?”

“아, 그냥 호감이지. 관심 있으면 다 사귀고 그러냐? 그냥 그렇다고.”

“사귄다고 안 했음. 근데 게임하기에도 하루가 짧은데 어캐 사귐? 그게 양다리 아님?"

“넌 게임하느라 똥 안 싸냐?”

“오.. 러브.. 그것은 생리현상..? 그렇군..”

“똥테소리 교육 지렸다.”

혈연의 생각을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보이는 게 있다.

어떤 일을 하건 항상 진심인 사람을 좋게 보는 것.

그건 김예성의 인생관도 마찬가지다.

권건이라는 인간의 매력은 그런 데에 있었으니까.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여동생이 만나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게.

그게 이런 식이 될 줄도 몰랐고, 가족 연애사를 보기도 싫지만..

그리고 이게 권건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는 걱정마저 들지만..

“나도. 누나. 있음. 나도. 누나.”

이건 또 뭔 굴러들어온 돌이야?

“혹시. 연상.에는. 관심. 없음? 궁합.도. 안보는. 4살. 차이. 누.소. 가능. 권건. 팬. 클럽. 회장.”

내가 정말 오랫동안 짜온 판인데 어디서 숟가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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