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응원합니다
“어우우~”
“김예스엉~”
“라온라온라오니~”
“제법인데~ 일차 지명 라온 선수~”
“언제 마음을 뺏어버린 거냐고~ 알려줘요! 요령맨!”
김예성이 너무 부적응자처럼 굴어서 신경 써 준 건가?
어쩌면 에이린은 꽤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왜.. 왜.. 나랑.. 왜..”
“예성이 좋아한다. 예성이 부끄러워한다.”
“김예성 얼굴 빨개졌다! 빨개졌어!”
아까 내게 에이린이 호감 표현을 했을 때 김예성이 끼어들었던 건 아마 질투였나보다.
나는 이런 복잡한 싸움에 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일만 해도 바쁘니까.
“힉힉힉! 고개도 못 든다!”
“하하하하하! 너도 어쩔 수 없는 남자로구나! 하하하하하하하!”
“아니.. 아.. 그..”
김예성은 이제 손을 벌벌 떨고 있다.
“부끄.. 그게.. 그런 부끄러움이.. 아니라.. 아.. 조상님.. 이.. 돼지..가.. 가문에.. 수치.. 면목.. 없습..”
에이린은 측은하다는 눈으로 김예성을 바라보고 있다.
닮았다.
"얘 방에 에이린님 포스터~ 유명하지~"
"어 나도 그 방송 봄!"
“그거 유명 코스메틱 브랜드 한정판 브로마이드라더라. 그걸 얻으려고 여자 화장품까지 사러 간 거야, 쟨..”
그렇게까지?
아.
생각해보니 사랑하면 닮는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왜, 노부부가 닮은 그런 거 있잖아.
“예성. 소원 성취 축하한다.”
“진..짜.. 건아 너까지.. 아..이..시..”
“아이시? 아이시떼루?”
“사겨라! 사겨라! 김미드! 고.백.해!”
“안.. 그건.. 범..죄.. 안.. 절대.. 그런 개..”
“그렇긴 하지, 니가 이렇게 예쁜 분과 사귀는 건 범죄지.”
“..발..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제발이겠지?
그렇게 간절한가?
“그만 좀 해.”
“장난 죄송합니다! 너무! 오랜만? 아니.. 처음이라..”
“전 괜찮아요~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구웨..엑.. 미.. 친..”
“하. 역시 나도 에이린님을 포기할 수가.”
“최은호 넌 좀 빠져.”
그러고 보니 닮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설도 들어본 것 같다.
“근데 왜지? 난 예성이가 좀 싫어하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있겠냐? 연애라고는 1도 모르는 원딜 새기야말로 빠져, 좀.”
그런 면에서 둘은 꽤 잘 어울리는 한 쌍일지도 모른다.
“어머. 나 왜 한기가.”
“나..도..”
왠지 두 사람이 몸을 떨었지만 이유는 모를 일이다.
“그럼 그렇게 갑시다! 이번에는 퀴즈! 근데, 이 퀴즈는 예린.. 아니, 에이린님한테는 아주! 아아주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뭔데요?”
“우우우! 에이린 절대 지켜!”
“FWX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딴 걸 에이린이 어떻게 아냐! 우우우우!”
직진남 최은호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딴? FWX가 그딴 거야? 너 진상인 거 너만 모르냐?”
“아니? 진상 아닌데. 작전명 가랑비. 예성이한테 질 수 업뜸! 천천히 에이린의 곁으로..”
“가랑비는 무너졌냐? 니가 저분에 대해 뭘 알아?”
“그거 아냐? 에이린님 얼마 전에 귀 뚫으신 거. 난 항상 보고 있었어. 그래서 나도..”
“뭐? 너처럼 신경통 때문에 뚫으셨나 보지.”
“감수성 없는 새끼 원딜.”
“서폿님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신고해드릴까요?”
바텀 듀오가 투닥거리는 사이 게임 내용을 들은 에이린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아~ 그런 퀴즈구나. 난 또 뭐라고.”
몹시 편한 얼굴이었다.
“FWX 퀴즈? 내가 덕생은 짧아도 덕력은 안 지지. 상품 다 우리 거! 예성이랑 에이린이랑! 그리고 또 같이할 우리 팀 권건! 손 드세요!”
“웩.”
“어디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요?”
#
채널에서 공개되는 콘텐츠는 편집본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시간의 흐름을 알기 어렵지만 사실 촬영은 분량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이다.
힘들어서?
아니, 힘든 것도 있지만 게스트가 끼면 비용 때문에.
일반적으로 게스트와의 계약은 시간 단위로 협의가 이뤄지기 때문.
대충 업계 표준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보면 된다.
아.
프로게이머의 경우에는 애당초 선수 계약에 외부 활동 제약 및 내부 콘텐츠 촬영 협조가 들어가 있다.
일부 선수들은 내부 콘텐츠라 할지언정 특정 횟수를 넘어가게 되면 추가금 지급 특약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
나도 그렇다.
물론 공중파도 고정일 경우에는 회당 출연 비용으로 들어가지만, 이렇게 중간 게스트인 경우는 영화로 치면 카메오의 케이스다.
프리랜서 아나운서와도 비슷하려나?
나도 연예계를 아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스트리머들의 합방과는 다른 면이 있다는 건 안다.
인터넷 방송은 여전히 구두 계약도 많고, 즉시 정산보다 수익 배분을 약속하기도 하니까.
물론 서로 비슷한 방송 투 방송이다 보니 서로 닮은 부분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는 단계.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상대에게 익숙한 공중파 조건 쪽으로 맞춰주는 게 일반적인 경우.
어쨌든 굳이 따지자면.
저쪽은 청춘 연애물을 공중파에서 보여주는 사람이고.
우리는 청춘 열혈물을 온라인에서 보여주는 사람들이니까 닮은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바쁘다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오늘 촬영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진행됐다.
“그거 아세요?”
“뭘요?”
무척 이례적이다.
거의 반나절을 풀로 비웠으니 편하게 진행하셔도 된다는 식이다.
“제가 평소에는 차암 바쁜 편인데..”
그래서 중간중간 잡담이 끼어들 틈이 있다.
“오늘은 한가하네요?”
그렇겠지.
우리에게도 시즌 오프가 있듯, 이 사람에게도 휴식기가 있을 테니까.
“아쉽지만 집에 라면도 없고, 고양이는 안 키워요. 대신 OTT 서비스는 빵빵하게..”
집에 라면이 없는 건 좋은 일이다.
라면 먹고 가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나에게는 큰 공감을 사지 못했다.
인스턴트 식품을 굳이 먹고 싶다면 운동 겸 나가서 사 오는 게 진리니까.
고양이와 OTT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비슷하게 장난스러운 뉘앙스일지도.
“쟤, 강아지 파야.”
“앗! 나돈데. 권건 선수는 도베르만이나 셰퍼드 느낌이 있어요. 저는..”
“부정교합 심한 페키니즈.. 참지 않는 치와와..”
“..고 싶어?”
김예성과 에이린은 나름 가까워진 건지 말을 놨다.
에이린이 우리보다 한 살 어리다고 듣긴 했는데 이렇게 바로 놔도 되는 건가?
“건님, OTT는 어떤 거 쓰세요?”
어쨌든 응원을 위해 나는 선을 그어주는 게 옳은 일일 거다.
“드라마나 영화는 자주 보지 않는 편입니다.”
둘은 따로 속삭거리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내 영화는 봤다? 하.. 고단수네.. 아주 어려워..”
“그냥 너한테 관심 없고 니 두개골만 보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 로코 클리셰 5막 중 제 2막. 전개. 남주와 여주는 서로를 알아간다.”
“전개 속도 차이가 있는데? 건이는 지금 발단 아니야?”
“너 때문에 위기 옴.”
“이 로코 망했네. 왠지 단추가 잘못 끼워진 느낌이다.”
“똥촉 아냐? 두 사람의 속도 차이? 그것도 클리셰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호감도 한 걸음부터.”
“운동 얘기를 해봐. 니 돼둔근 조지는 거 좋아하잖아.”
“운동 얘기 좋아하는 사람 없던데? 너 일부러 나 방해하는 거지?”
“믿기 싫으면 말던가.. 도와줘도 지랄이야..”
“오.빠? 왜. 구.래?”
“웩..”
뭐라고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지만 호칭 면에서 진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김예성은 책임감 있는 선수니까 연애하더라도 월챔 우승은 하고 나서 하겠지?
내가 바라는 건 집중할 수 있는 환경 하나뿐이다.
나름 편한 팀 분위기 속에서.
“자, 그럼!”
상대 팀인 곽지운, 이유찬, 최은호가 속한 ‘곽찬호’ 팀과.
“첫 번째 문제 나갑니다!”
우리 팀인 나, 김예성, 에이린을 합쳐 만든 ‘권예린’ 팀이 승부.
“프로게임단 FWX가 운영하는 게임 팀을 모두 말하세요!”
모두의 손이 번쩍 올라간다.
“찬찬호 팀! 정답! 정답 알아요!”
“네! 찬찬호 팀!”
팀장은 겁을 줬지만 사실 스피드가 더 중요한 게임에 가까웠다.
“하나, 둘, 셋.. 넷.. 네! 정답입니다!”
물론.
“잠시만요!”
“네, 라온 선수?”
“탑이 팀명을 말할 때 곽찬호가 아니라 찬찬호라고 한 것 같은데요?”
“예? 그랬어요?”
“아니, 저 빵빵빵한테 팀 이름 외우라고 하는 거 무리 아니냐고..”
솔직히 이건 팀 밸런스 붕괴다.
김예성과 내가 여기 있는 걸로도 모자라.
“저도 들었어요!”
김예성을 빼닮아 아주 똑 부러지는 게스트마저 여기에 있었으니까.
“그래! 맞아! 그쵸? 권건 선수님도 들으셨죠?”
“네.”
나도 지는 건 싫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럼 제가 정답 말해봐도 될까요? 사실 저도 FWX 공부를 참 많이 했는데, 차니 선수님이 너무 빠르시더라고요. 놓쳐서 아쉬워요.”
그것도.
김예성보다 한 수 더 앞에 있다.
“내가 좀 빠르긴? 함.”
“진짜 FWX 팬이신가? 그럼 뭐.”
“에이린이 옳다.”
단 한마디로 상대 팀 세 사람의 입을 다물렸으니까.
“정답입니다!”
그대로 얼렁뚱땅 기회를 빼앗아 온 연기자는 자연스럽게 다음 문제에서도 분위기를 지배했다.
“FWX 사옥의 정식 이름은?”
“FWX 게이밍 하우스!”
우리가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걸 맞춘다던가.
“이번 시즌 FWX 다큐멘터리의 부제는?”
“Blooming Villain 맞죠?”
“나.. 대-FWX 콘텐츠 팀 팀장은 감동받았다.. 그걸 외우다니..”
우리가 잘 보지 않는 감동 콘텐츠를 꿰고 있다던가.
“권건 선수의 1군 데뷔전 상대는?”
“울산 피닉스! 니픽쩔!”
일종의 업계 용어까지 섞어가며 톡톡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얼굴마담으로만 출연한 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입증하는 셈.
하지만 내게 흥미로운 건 다른 부분이다.
“곽찬호! 곽찬호 팀!”
“권예.. 앗, 늦었다! 역시 빠르셔!”
다른 팀에 대한 분량 배분.
“정답입니다!”
“빼애애애애앰!”
“와! 잘하신다!”
그리고 편집하기 좋게 리액션을 두 번 잡아주는 센스가 넘친다.
“이건 지인짜 저도 몰랐던 건데!”
게스트로 배려받는 만큼 응원을 돌려주고.
이 자리에 있는 선수들을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표현을 아낌없이 푼다.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거다.
그 와중에 마이크도 거의 물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방송 천재.
“팀장님이 이거 정답 미리 알려주거나 그러신 거 아니야?”
“나는 미리 알려 줬어도 못 외웠을 것 같음.”
“그래, 이 빵 같은 놈아.”
확실한 건.
이 사람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이것도 일이니까.
“하나도요. 저 진짜 FWX 팬인데요? 덕후 부정은 중죄입니다~”
에이린이 다른 선수들과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손사래를 친다.
“하긴.. 도대체 우리 사옥 식단 SNS 계정은 어떻게 외우신 거야?”
“우리 특식 메뉴는 또 어떻게.”
“최고의 게임 팀, FWX! 식단까지 완벽해!”
이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콘텐츠 제작이 편하겠는데?
나 말고도 다른 분야의 천재를 보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묘하다.
이렇게 프로 의식이 투철한 사람이라면 김예성의 조기 연애를 허락할 수 있을지도.
“웩.. 왜.. 자꾸 토가 나올.. 것.. 같지..”
기본적으로 프로에게 연애가 도움이 되냐, 안되냐는 말이 많지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대서특필 되어서 그렇지 오히려 안정감을 얻거나 목표가 생겨서 더 잘하는 선수들도 있다.
긴 연애 끝에 행복하게 결혼해서 잘 사는 선수들도 많고.
그래서 나도 마냥 반대만 하는 편은 아니긴 해.
“또 정답!”
근데 진짜 우리 팀 팬인가?
“또또 정답! 에이린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진짜 우리 팀 팬이죠? 연기하신 거 아니고?”
곽지운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 자리에서 자기보다 FWX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표정이다.
물론 곽지운은.. 자기 팀에 대한 팬심이 지극하긴 하지만 우리 팀 스트리밍 실이 몇 층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혹시, 진짜, 아직도 못 믿고 계셨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정말.. 그냥 촬영용 연기이신 줄.”
곽지운이 진심으로 뉘우치는 표정이었다.
우리 주장의 인간 판단 기준은 FWX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다.
“괜찮아요. 세자 선수는 귀여우니까.”
대인배 게스트가 자기보다 키가 작은 오빠를 선뜻 용서했다.
“저는요? 저도 귀엽나요?”
작년에 왔던 가랑비, 죽지도 않고 또 왔네.
“...”
“어쩐지 건이 유니폼 입고 있으시더라고.”
“건이 팬이었나? 근데 왜 원픽은 예성이지?”
“야, 너네가 끼어들어서 에이린님이 대답할 타이밍 놓치셨잖아.”
“대답하고 싶지 않으셨다고는 생각 안 해봄?”
“건아, 어떻게 생각해. 이 삼각관계. 혹시 설레냐?”
시선이 모인다.
“설레냐?”
“너도 사람이지?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
음.
이런 질문은 곤란한데.
“건이 얼굴 빨개지냐? 제발!”
세상에서 가장 유치한 싸움이 이런 거잖아.
“그.. 러냐? 설레..면 좋..? 혈연.. 동맹..! 아니.. 돼지.. 아양.. 꼴도 보기 싫.. 아니.. 안돼..!”
근데 왜 김예성이 자아 분열이 일어나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