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51화 (251/326)

251화. 티키타카 카운터

트릭스터 탑 이상하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그도 성격이 무던한 편이었지만 언젠가부터 인지 더 예민해졌다.

장비 강박증이 심해진 것도 물론이다.

“이거 진짜, 아. 씨바..”

진짜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밴픽에서 진 것 같다.

마오 정글.

블츠 서폿.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진짜! 이거! 언제 나오나! 언제 나오나 했어요!”

“그게 하필, 이렇게, 이렇게 중요한 순간!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나오나요?!”

결승 현장은 블릿츠크랭크로 대동단결했다.

트릭스터 팬, FWX 팬 할 거 없이 모든 이들이 열광하고 있었다.

- 갸아아아아아아아악

- 그랩! 그랩! 그랩! 그랩! 보여줘!

- 사이다 그는 신인인가?사이다 그는 신인인가?사이다 그는 신인인가?

- 오우! 제대로 놀아보자!

- 건끼얏호우 사끼얏호우

- 블츠? 오히려 좋아 발라버려 제발 이거 원코야

그럴만한 픽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블츠가 나오면 게임이 재밌어진다.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간에.

어쨌든 예능감이 충만하고 상징성이 큰 픽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자리에서 나왔다는 건 최소한 장난으로 하겠다는 건 아니라는 뜻이니까.

“요즘 들어서 메이지 서폿이 정말 뜨고 있는 추세였거든요!”

“오늘만 해도 그랬죠! 메이지 서폿이 계속! 계속 나오고 있었죠?! 그럼 이때! 진짜 나올 만한 픽이다, 이 말입니다!”

“메이지 서폿 잡아먹는 데에는 역시 블츠만한 게 없어요!”

“리스크는 있지만 정말 예리한 선택, F-W-X! 이 팀 진짜, 진짜 미쳤어요!”

함성과 시선.

이게 이렇게 무서운 거였던가?

전에 여기서 만났을 때만 해도 내가 유도한 함성 속에 파묻혀 쩔쩔매던 상대 탑은 온데간데없다.

지금은 오히려 이상하의 등이 무겁다.

오롯이 다른 팀을 바라보고 있는 모든 사람, 그리고 그 함성에 억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숨이 답답해진다.

벌써 두 번의 패배.

이제 한 번만 더 지면 끝.

“트릭스터에게는 어쩌면 최고의 기회입니다아아아아아아악!”

“지금 양측 바텀! 스펠 굉장히 공격적으로 세팅했죠!”

“블츠가 할 일 없어지면 저어어어엉말! 아예! 존재감이! 0이거든요!”

- 저 개새들 여기서 저걸 꺼내?

- 매운맛을 보여줘라 트릭스터

- 우리가 ㅈ으로 보여? 우리가 ㅈ으로 보여? 우리가 ㅈ으로 보여?

- 이건 기회야

- 지금부터 역전 시작!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그려지는 팬들의 기대감.

“아.. 이건.. 불편하네..”

“형, 쟤 블츠 어떤 식으로 플레이하는지 알아?”

“몰라.. 준비성 철저한 나조차도.. 블츠는.. 에바야..”

그만큼 다가오는 불안감.

“야! 진짜 다른 건 몰라도 실수로라도 한번 땡겨가면 대역 죄인 되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짜증 나는 심리적 압박감.

원래 그런 챔피언인데 왜 끌려가는 사람이 욕을 먹어야 하지?

맞춘 사람이 잘한 건데 왜 못 피한 사람이 욕을.

숨이 가빠진다.

상대 탑, 차니가.

그놈이 느꼈던 감정이 이거 비슷한 거였을까.

그런 생각을 할 필요까진 없었지만 밴픽 당시 이길준 감독이 남기고 갔던 휘둘리는 모습은 트릭스터 선수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정규 시즌과 다른, 긴 경기니까.

체력전이니까.

그리고.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어어어어어어어어! 이거어어어어어어어어어?”

“으아, 으아, 으아! 어우우우우우우우우!”

“자, 자, 이거, 이거, 끌었, 끌었죠! 포탑! 포탑!”

“여기, 점화까지 들어가면서!”

“현재 경기 4분대, 그래서! 4타아아아아아!”

“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터집니다!”

결국 생각보다 이른 타이밍에.

“퍼블!”

바텀에서 나오고만 패전보.

“세자 사이다, 세사 듀오! 결승 무대에는 처음 데뷔한 사이다아아아아악!”

“멋진 그랩으로! 깔끔하게 FWX에서 퍼블을! 가져갑니다!”

“이거 리싱이 바텀 쪽 동선 타주고 있어서 안심했던 것 같죠! 완전 근처에 있었거든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세자, 사실상 지금 왕귀! 왕귀합니다!”

“벌써요?”

“진은 지금 말곤 딱히 왕일 때가 없거든요!”

“아!”

“트릭스터의 바류스와 칼마, 이런 포킹 바텀을 상대로는 신속 신을 얼마나 빨리 띄우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인데! 이게 벌써 나와버렸어요! 이러면 1세트의 진과는 아예, 아예 느낌이 다릅니다아아아아아악! 발 빠른 세춘기!”

“이제 바텀은 안심입니다! 아직, 권건이 오지도 않았는데! 자력으로 해결!”

“하지만 진은 딜 기댓값이 높은 챔피언이 아니거든요, 그럼 딜은 누가..”

“권건은 지금..!”

이상하는 귀가 윙윙거리는 것 같았다.

노이즈 캔슬링으로 발생한 이명일 거다.

아마 그럴 거다.

탑은 전보다 훨씬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중간중간 칼을 가는 모션을 쑤셔 넣고 플레이한다.

어쩌면 저것 때문일까?

끊임없이 춤을 추는 게 실력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변태같이 느껴진다.

어차피 냐르와 요내의 초반은 성장.

서로를 막장까지 들여다보기에는 무리.

이상하는 조심스럽게 몸을 뒤로 빼다가.

“어어, 조심해야 합니다!”

상대의 칼날을 자연스럽게 피하며 몸을 옮긴다.

그때.

“어어어어어어?”

“오드 선수? 오드 선수?”

- 퍼엉

이상하의 영역, 탑.

여기에 또 다른 낯선 이가 있다.

어쩌면 이 리그 최고의 강자.

이상하가 갖지 못한 능력을 갖춘 사람.

“이거, 이거 좀 뻔했는데! 이걸, 이걸 왜?!”

“위기! 위기, 위기입니다! 오드 선수! 마오 묘목 밟았어요! 그 말은?”

“권건이 탑에 있다는 뜻!”

“점멸!”

탑 수풀 속에 몸을 숨겼던 거대한 나무 정령이 따라온다.

등에 부쉬를 업은 것 같은 유령 같은 몰골을 향해 스킬을 사용해보지만 대상 지정 불가.

그래서 정령인가.

“따라가요! 이걸, 아니, 마오한테 이런..!”

“압박! 압박 들어갑니다!”

이상하의 고향, 인천.

여기도 이제 낯선 장소처럼 느껴진다.

“권건, 권건, 권건! 보기 드문 초반 탑 갱! 진짜 이거 진짜 보기 드문 이야깁니다! 이 선수 탑을 그렇게! 자주 안 가거든요!”

“궁극의 미끼술로 주로 사용하곤 하죠!”

이상하의 무대, 결승.

낯선 함성이 들린다.

어쩌면 여기는 이제 우리의 무대가 아닐지도 모른다.

솜털이 오소소 솟아난다.

“하지만, 이 경기! 이거, 여기서 이거 오드 선수가 무너지면 곤란합니다!”

“진한테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 어딜까요!”

“정답! 탑! 요내!”

무너진다.

“권건! 압박! 오드 선수가 오히려 앞쪽으로 나가면서 반대로 뚫어보려는 시도!”

“하지만 바로 차단됩니다! 몸 쭉 내밀어서 공간 차단합니다!”

“으아아아아! 권건! 미친 압박!”

잇단 타격으로 집중력이 무너지기 시작한 이상하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의 치명적인 단점인 강박이 다시 시작된 모양이었다.

더 이상 이곳이 우리의 장소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이거, 갑자기, 갑자기, 갑자기이이이이이이이!”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쌍코피를 터뜨리며 힘겨워하던 상대 탑이.

노 스킨 페티쉬 고인물이 되어 칼을 들고 쫓아오고 있다.

수비적인 픽을 가져갔다고 생각했던 권건이.

연달아 어시스트를 올리고 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두 번째 킬이! 넘어갑니다아아아아아아!”

손 쓸 도리 없이 게임이 터져나가고 있다.

#

- (TRT) 집중력.. 실화냐?

(냉무)

ㄴ (노댓)

ㄴㄴ (대충 트릭스터 보이콧하겠다는 말)

ㄴㄴ (댓글도 달지 말자는 이야기)

ㄴㄴ (게시글도 올리지 말자)

ㄴㄴ (선곡은 DJ okawari로,, 부탁드립니다)

ㄴㄴ (경기력 처참하네.. 하..)

ㄴㄴ (이럴 거면 그냥 댓글을 달아ㅆㅂ)

ㄴㄴ (이렇게 무너무너 무너질 거면 일라라도 하지 그랬어)

ㄴㄴ (문어 문어 문어 여자~)

- (FWX) 야 진짜 오냐? 진짜 오냐? 진짜 오냐? 진짜 오냐?

ㄴ 우승 각 섰다;;;

ㄴㄴ 이번 콜로니 사람들도 우주로 보내드려야겠어요^^

ㄴㄴ 이거 기분 존나 이상한데 나만 그러냐?

ㄴㄴ 기분이 상하이~

ㄴㄴ 정규시즌 전승이 ㅈ으로 보임?

ㄴㄴ 그건 그거고; 포상 많이 받았다고 전역일 당겨지는 거 아니잖아

ㄴㄴ ㄹㅇ;; GPSD오네;

ㄴ 그나저나 얘들 군대 안 가게 좀 해줘라 10년 뒤까지 같이 있게

ㄴㄴ 어! 그래 빨리 아시안 겜 준비시켜라

ㄴㄴ 아아 군 면제를 위한 유일한 정당한 수단

ㄴㄴ 고등학교는?

ㄴㄴ 요즘은 온라인으로 졸업해요 아카데미 커리큘럼에도 있음

ㄴㄴ 오 MZ..

ㄴㄴ 그래~~ 박 감독 뭐해? 지금 결승이 문제야? 애들 군 문제 해결해야지ㅎㅎㅎ

ㄴㄴ 아시안겜 올해 아님?

ㄴㄴ 월드컵때매 밀렷서 내년에 함

ㄴㄴ 아시안겜이 뭐임?

ㄴㄴ 우승하면 면제

ㄴㄴ 면제가 아니고 예술체육요원으로 복무하는 거라고요

ㄴㄴ 암튼;ㅎㅎㅎ

ㄴ 태극마크 단 거 보고 싶다

ㄴㄴ 혹시 거기 나도 끼워주지 않을래?

ㄴㄴ 유니버스..정인이야..? 이제 회복 좀 했니?

ㄴㄴ 우리가 옥히 너 많이 보고 싶어 했어;; 있다 없으니까 좀 그렇더라

ㄴㄴ 나 최정인 아닌데..

ㄴㄴ 이 말도 정겹다ㅎㅎ

ㄴㄴ 얘 오니까 그냥 잡담방같네ㅎ

ㄴㄴ ㅋㅋㅋ피스풀 똫트~ㅋㅋㅋ

ㄴㄴ 진짜 나 그리웠어? ㅠ

ㄴㄴ 응~ 이제 해후 끝났어 가서 서머 시즌이나 준비해라

#

지난 무대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그때 뭐였지.

이전의 트릭스터 결승 승리 플랜은 소름 끼치게 단순한 전략이었다.

이건 심리에도 해당하는 얘기고, 게임에서도 해당하는 얘기였다.

밸런스 팔방미인 트릭스터.

특별히 강한 라인 없이 정글러가 공평하게 공간을 분배.

좋은 픽과 적당한 실력 우위를 통한 라인전 점유.

그리고 이 무대에 처음 섰던 우리 팀, 특히 탑에게 심리적 압박.

용어로 정리하자면 티키타카 전술.

게임에서 저 세 가지를 하는 게 너무 당연한 말 아니냐고?

아니지, 저건 삼위일체 다 노리는 욕심쟁이들의 생각이지.

실력이 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야.

LOS도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전략 게임이다.

망치와 모루 전략을 사용해서 포위 공격을 한다던가.

타르핏 역할,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낮은 밸류를 맡은 사람이 고가치 상대를 붙잡고 늘어진다던가.

불렛 마그넷, 상대가 투자하기 아까운 계륵 같은 탱커 쪽에 가치를 투자해 상대와 자원 소모전을 벌인다던가.

아니면 뭐 벌떼처럼 몰려드는 전략도, 스트라이커를 내세워 한점 돌파를 하는 전략도 있다.

이게 해설진이 ‘누가 이 조합에서 핵심’이라느니.

‘희생’ 이라느니, ‘든든한 앞 라인을 내세워서..’ 라느니 이야기하는 것들의 요체인 셈이다.

뭐, 오늘의 1, 2세트는 다르긴 했지.

트릭스터도 선수 변화로 전략이 변했으니까.

미드 중심으로.

하지만 결국 이번 세트.

암살 미드를 통한 한 점 돌파에 실패한 트릭스터가 회귀하고만 기존 전략.

티키타카.

똑딱이.

여기서 툭, 저기서 툭.

이른바 6초 룰에 의해 스노우 ‘볼’을 유지하면서 공의 소유권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한 전술.

근데.

“미드, 미드, 미드 갱! 미드 갱 들어갑니다! 리뉴 선수의 멋진 황제의 진영!”

“라온 선수의 신드리가 쓰러집니다!”

“곱게 죽었죠?”

“아자르에 리싱이 궁극기까지 쓰고 들어오면 사실상 골대 안까지 머리가 들어가는 거거든요.”

“사실 이러면 죽어주는 게 예의입니다.”

이걸 깨는 방법은 틀림없이 있다.

“어어? 어어어어! FWX! 이거 미드 수습 안 하나요?!”

“무한 압박 들어갑니다! 두 번째 탑 갱!”

단순하게 말하면 실력이고.

“쉴 시간을 아예 안 줘요! 바로 들어갑니다, 권건! 활동량 미쳤다, 돌았다, 지렸다!”

좀 더 고급스럽게 말하자면 전방 압박 전술.

“아니, 한 수를 보여줬으면 또 다음 턴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요! 너네 진짜 왜 그래! 왜 평화 협정 깨고 그래!”

압박, 재압박.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거, 이거, 또! 또! 이게 마음 놓기 따아아아악! 좋을 때였는데!”

“나무 정령! 나무 정령 권건! 날아.. 갑니다아아아아아악!”

“넌 못 지나간다!”

“이러면 냐르 완전히 망해요! 아직, 아직 탈압박 능력 부족합니다!”

그리고 역습.

“궈어어어언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언! 두우우우우번째 직진으로! 또 한 번! 킬을! 차니에게! 선물합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티키타카 카운터.

“나 이거 알아. 게겐프레싱!”

옳으신 말씀.

냉정하게 말해서 지난 결승은 우리 승률 반, 적 승률 반이었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훨씬 더 강팀인데도 더 강팀을 상대하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는 거거든.

“어. 억?”

그때.

정말 느닷없이.

“너 왜 그래?”

이유찬이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떤다.

이건 또 뭐야?

“저거 왜 또 결승 와서 저래? 야! 미쳤어?”

“아.. 저거 알 것 같다..”

“나도..”

킬 받아먹고 배탈이라도 난 거야?

불안하게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왜 이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