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48화 (248/326)

248화. 퀀텀 점프

에스컬레이터식 전개라는 말이 있다.

대충 약한 적부터 나와서 점점 강해지는 그런 전개 말이야.

정석의 왕도.

마왕 만나러 가는데 슬라임부터 만나고, 오크 잡다가 언데드 잡고 뭐 약체 사천왕도 만나고.

그거 다 쓰러뜨리고 나면 다음 사천왕은 ‘인간 따위에게 패배하다니 그 녀석은 마족의 수치..’ 이런 말 하면서 또 코딱지만큼 강한 놈 나오고.

결국 마지막에 마왕이랑 일대일 대결.

LOS의 솔랭도 그런 식으로 비슷비슷한 상대를 이겨야 더 높은 곳으로 가서 강적들을 만날 수 있게 티어가 있잖아.

결국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

근데.

“클래스, 클래스 정말 꼼꼼한 선수거든요! 시야가 확인되지 않는 길은 가지 않는다! 끊어먹으려던 아칼린이 오히려 위기!”

- 아 제발 1킬만 먹게 해줘 제발 진짜 잘할 게

- “꺼져”

“세주 또 붙습니다!”

말했지?

우린 빌런이라고.

썩 맘에 드는 호칭은 아니지만 이번 시즌까지는 아무래도 좋다.

그렇게 해주면 되니까.

“막상 붙으면 진짜 너무 짜증 나죠? 이미 아칼린 몸에는 상처가 가득합니다, 이거 아직 템도 제대로 못 뽑았어요!”

센 사천왕부터 내보내고.

“분명 눈앞에 케틀럭스가 있었는데! 이게 웬 돼지야!”

- 세자 저하~ 죽어주시옵소서 저하~~~

- ㅋㅋㅋㅋㅋㅋ충신 코스프레

- 듣기 싫다! 참형에 처하라

“비비기의 진수! 이어지는 속바아아아아악!”

마왕이랑 같이 출격하면 마무리 짓기에 좋은 거 아니겠어?

“네이스~”

“진짜 아칼린 고르는 애들은 대체 뭐 하는 애들이냐? 사람 맞냐?”

“암살자 혐오를 멈춰주세요.”

“이건 진짜 전국 원딜 협회에서 이의제기해서 없애야 하는 챔피언이다. 너무 집요해.”

“결승인데 설렁설렁하겠냐?”

“오.”

그게 빌런이 또 다른 빌런을 키워내는 방법이지.

리그는 소설이랑 달라서 대충 마왕과 사천왕으로 이뤄진 팀이 9개나 있는 거거든.

월챔가면 또또 새로운 맵이 열리는 거고.

생각해보면 좀 토 나오긴 하네.

이게 게임과 스포츠의 차이점인가?

그럼 게임이면서 스포츠인 우린 뭐지?

오픈 월드?

새로운 모드?

뭐 어쨌든.

우리는 지금 올타임 LOS 인생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단판 단판으로 이루어진 게임을 말하고 있다.

채지한이 원하는 건 점점 투명해진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암살자의 한계.

“세자의 스펠을 빼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포탑 철거에 킬까지 가져간 바텀 사천왕 듀오는.

신뢰의 도약을 마구 갈기는 암살자가 있는 환경에서 양날의 검.

“결국, 결국 킬을 먹지 못하고..”

몸이 무척 약하지만.

“도망.. 도망을.. 칠 수? 칠 수가!”

“권건이! 권건이! 권건이 막아요! 막아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반대로 그것만 해결되면 강력하다.

한 가지 재밌는 건 채지한과 내 생각이 꽤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팀전으로는 세계 무대에서만 만나봤던 선수라 플레이나 판단은 잘 몰랐는데.

나와 생각이 비슷한 거로 미루어보아 잘하는 놈이 틀림없다.

나 닮으면 잘하는 거 맞잖아.

“라인 스왑 들어가거든요? 이게 트릭스터 쪽에서 밀어주기를 시도하려는 중인데!”

꽤 좋은 수.

“근데 이걸 또 귀신같이 냄새 맡고 세주가 달려오고 있어요, 이렇게 빠른 챔피언이었나요!”

“혹시 리뉴 선수 목에 방울이라도 달아놓은 것 같습니다!”

“리뉴는 암살을 해야 하는데 권건이 협곡에서 계속 붙어 다녀요! 너 나랑 대화 좀 할래?”

“사실 지금 아칼린 말고는 FWX 입장에서 신경 쓸 만한 게 별로 없거든요! 이제 탑은 고속도로 뚫려버렸고!”

“바텀은 애저녁에 없어졌고!”

“좋은 선택!”

자기가 맡은 역할과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계산.

“이번에는 바론, 바론, 바론 쪽..”

“스틸? 스틸 시도하지 않고! 스틸 시도하지 않고 오히려! 아칼린이 뒤쪽으로 돌아들어 오면서 원딜 목숨 노립니다!”

- 이제

- 만나러

- 갑니다..!

그리고 제 피지컬을 믿는 과감한 행동력.

“권건 선수가 바로 반응! 그 자리에.. 묶입니다아아악!”

그 모든 게.

정말 괜찮은 선수라는 기분이 든다.

이게 인재를 탐내는 악역 수장의 기분?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거 진짜 최후의 수단이었는데! 이거 최후의 수단이었는데, 도박 수 실패! 실패했어요!”

“차니가 도박으로 성공했다길래! 저도 한 번 해봤습니다!”

“도박 중독 없는 나의 일상! 함께 만들어가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가 준비한 보기 안에 있는 선택뿐.

아직 충분한 성장을 거치지 못한 주인공은 아쉽지만 여기까지.

- 이만.. 갑니다..

- 테에엥! 아! 건이 형! 세상이 왜 이래!

- 저 새기 연막 꿰뚫어 보는 거 맞지???? 핵쓰냐?

- 개잘핵

- ㄷㄷㄷ;; 풍화된 드립

근데 어디서 이런 걸 배웠지?

트릭스터는 왕도를 걷는 팀이다 보니 이렇게 뒤집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잘 못 하는 팀인데.

중국에서 배웠다기에는 뭔가 너무 내 냄새가 난다.

왠지 나랑 손발이 잘 맞을 것 같은 느낌.

바로 갖다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정파는 사파가 될 수 없고.

천족은 마족이 될 수 없으며.

얼라는 호드가 될 수 없는 법이다.

진영 변경권이라도 판매하는 게 아니면 말이야.

변경권 판매는 한참 먼일이기도 하고 지금 내가 신경 쓸 것도 아니다.

근데 더 중요한 거.

무대 리허설 때 눈빛을 봤더니 좀 사납더라?

나 인상 면접 좀 빡세게 보거든.

역시 인상은 김예성 쪽이.

김예성이.. 좋나?

처음 만났을 때는 기가 좀 죽어 있어서 순해 보이긴 했는데.

요즘은 이유찬이 또라이고 김예성이 싸가지를 맡지 않나?

“라온, 라온, 라아아아아아아아아온!”

“라온 선수가! 스플릿 하던 차니 선수와 합류해서 단박에 탑 방향 억제기 뚫어냅니다!”

“곁을 지키고 있던 제이슨은.. 제이슨은!”

그리고 얘 시그니처 챔피언이 그러니까.

“라온의 사일이 강탈한 무결 처형에..!”

“쓰러지고 맙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악!”

“목을! 목을 그었어!?”

“맙소사! 이거 진짜 사기 아니야? 사일은 중간에 더 편하게 돌진하잖아!”

“무결 처형 중에도, 끝나고도 한 번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억압으로!”

- ㅋ ㅑ

- 존나 잔인한 새끼

- 솔직히 이 암살이나 저 암살이나 똑같이 ㅈ같음

- 아아 내 솔랭 아아

- 그래도 장막 때매 아칼린이 만났을 때 더

- 아니? 너 냐르 헤크림 갈레오 애시 아뭄무 아무 것도 안 해봤니?

- 아ㅋㅋㅋㅋㅋ 계수때매 뺏겼을 때 더 ㅈ같은 챔피언 모둠 세트

- 어쨌든 어느 쪽이건 개빡침;;

“어째서! 우리 암살자는 저기 있는데 왜 내가 표창에 맞아 죽어야 하죠?”

“이대로! 또 한 번 뚫어내는 FWX! 첫 세트부터 FWX가 무서운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온한테! 사일! 주지! 말라고! 했잖아요!”

음.

얘도 뭐.

빅스 시절에나 갈레오 같은 픽을 했지.

“그걸 들어가네.”

“봤지, 탑?”

“와, 우리 미드 누가 키움?”

진짜 취향은 암살자라고 하더니.

이제 아주 자기 멋대로..

“정글. 정글이 키움.”

판단이 좋은 편이다.

“이래서 갈색? 머리 미드들이란..”

역시 우리 미드는 김예성.

“클래스, 클래스으으으으으으으으!”

“최후의 섬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이기는 게임에서 더 잘하는 바텀 듀오의 패시브도 발동.

“암살 럭스야?”

“아까부터 클래스가 정말 너무 중요한 순간에 좋은 점사를 보여주면서!”

“이번 킬은 서포터에게 들어갑니다! 아칼린이 벌써 다섯번째 실점을 기록합니다!”

- 전원협에서 나왔습니다ㅡ.ㅡ

- 얏빠리 클래스메이토다제!

- 모처럼이니까 괜찮을지도www

- 서포터가 먹지 않았다면 그냥 놓쳤을 킬이었다구요?

- 다른 사람이 가져가기엔 무리무리www

- 전원협 그냥 지나가겠습니다..;;;;;;;;;;;

이런 바텀 듀오를 지닌 게임에서는 보호하는 쪽이 더 어렵긴 하지만 결국 막으면 그만이다.

“저하께서 너무 화가 나 있으셔서 킬은 제가 먹어 드렸습니다.”

“최은호 꺼져 진짜.”

“그러게 딜 좀 잘 넣지.”

“서폿이 욕심만 많아가지고. 너 지금 딜템 가냐?”

“아니? 아닌데?”

“메자.. 뭐? 장난하지 마라, 진짜. 반지까지만 해라.”

“아, 그런 생각 안 한다고! 당연히 되돌리기 했잖아!”

“내가 말 안 했으면 샀을 것 같은데.”

어쨌든 서로 아이템 훈수를 둘 지경까지 오면 게임은 꽤 재밌어진다.

“힝. 들킴. 담판에 템 계승되면 조켓당.”

“추은호 혀 짧은 소리 내지 마라.”

“서폿 맘도 모르는 나쁜 원딜 새낑.”

“너 이거 녹음되는 거 모르냐?”

“나둥 나둥! 계속 탑만 밀구 십땅!”

“와씨.. 쟤 목소리에 털 난 것 같아.. 미친 개소리 반성합니다.”

“죄은호 거울 치료 지렸다.”

그럼 여기가 무슨 무대인지도 잊을 수 있다.

“팀 FWX.”

더 또라이와 싸가지인 척 인터뷰하며 숨겼던 불안도.

“어.”

“응.”

“충성, 서포터 최은호 외 1명!”

사실은 조금 긴장해서 평소보다 더 말이 거칠고 많아졌던 모습들도.

“어렵냐?”

“...”

그냥.

내가 조금 더 디테일하게 오더를 주고, 팀원들은 제자리에서 자기 게임을 하기만 하면 됐다.

“트릭스터 어렵냐?”

우리는 쌍둥이 타워를 앞두고 있다.

“속이면 속고. 싸움 걸면 이기고. 위험하면 보호받고. 평소랑 똑같지?”

공간이 바뀌었다고 우리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정규 시즌에 모든 팀을 무너뜨리고 여기까지 왔다.

다만 여기, 이 거대한 무대와 장소에 남아있는 패배의 기억.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트릭스터에 대한 불안감.

오늘은 그걸 부수는 날이다.

“나 여기 있다.”

구구절절 말할 필요가 있나.

“잘 봐.”

내가 전할 수 있는 건 그냥 상남자식 위로.

“쌍둥이, 쌍둥이, 쌍둥이! 못 막습니다! 이거! 못 막아요!”

“진짜 다 왔어요, FWX, 진짜 다 왔어요! 78.6%의 우승!”

그저 여태 해왔던 것처럼.

“권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날립니다! 초장거리 세주 얼음 럭비궁 슈우우우우우우웃!”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어시스트를 올리는 순간!”

팀원을 믿고 몸을 던지면.

“피요라가 대결투로 받아냅니다!”

“마지막, 마지막 목숨을 어떻게서든..?”

“이걸 놔줄 리가 없는 집착계의 초신성, 라아아아아아온!”

“날아갑니다, 날아갑니다! 조준, 발..!”

“바텀 듀오의 비장의 한 발과 최후의 섬광!”

번쩍.

눈이 부실 정도로 커다란 빛.

“합쳐서 최후의 한 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알! 쭈우우우우우우우우욱!”

- 나 저거 알아 에네르기 파 ====@

- ㄷㄷㄷ 레이저 광선 (물리)

- 전 함대 포격 개시!

- 빔 샤벨 아시는구나!

- 하핫 다양한 세계관에서 오셨군요?

- 인게이지ㅡ 빔ㅡㅡㅡ

- 도.. 돌려줘요! 돌려줘요..! 모두를 돌려달라고요!

- ? 저 찐은 뭐야?

- 원코..

그 속에서 트릭스터가 내세웠던 용사이자 주인공은 사라지고 만다.

“트릭스터, 트릭스터, 넘어어어어어어어! 갑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커다란 함성과 함께.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F-W-X!”

“오늘, 오늘 경기 무슨 일인가요, 단 한 순간도! 단 한 순간도오오오오오!”

“아니, 아니, 아니이이이이이! 이 팀 진짜 미쳤어요!”

“전통의 명가 FWX! 그 진짜 부활의 신호타아아안!”

“전장! 지배하고! 있습니다아아아아악!”

시원하게 적 진영을 뚫어버리는 길이 열린다.

“이기고 가자. 여태까지처럼.”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첫 우승을 앞둔 너희들이다.

“다들 잘하네.”

“...”

“지금 쟤가 우리 칭찬한 거.. 맞냐?”

퀀텀 점프를 위한 성장 에스컬레이터는 우리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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