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Be Gun
바론 승부.
게임은 선택의 연속.
하지만 특히 미라쥬 입장에서 이번 승부는 숨 막힐 만큼 무겁고 중요한 결정이다.
스프링 시즌의 마지막, 마지막의 최종, 최종의 진짜 찐 막막 기회가 될지.
아니면 이 기회를 통해 다른 기회를 더 얻어낼 수 있을지.
이미 패색이 완연했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이런 선택 앞에서 모든 선수는 진중했다.
그들도 프로니까.
그 분위기는 게임 속 움직임에서도 드러난다.
그걸 가장 먼저 읽은 건 옵저버였고.
화면은 서서히 느린 탑 뷰로 전개된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해설진에게도 전달된다.
해설진은 이제 막 바론 앞에서 모인 두 팀을 바라보면서 멘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라온 선수의 르블란을 상대로 포킹 시간을 너무 많이 줘서는 안 된다던가.
차니 선수가 탑에 고속도로를 뚫어 놨으니 미라쥬는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던가.
혹은 딩거의 성장률이 떨어지긴 하지만 간신히 코어를 뽑았으니 탈리아의 궁극기를 통해 진영을 가른 뒤 꽝 붙는 식으로 싸워보면 답이 없지는 않을 거라는 등의 말들이었다.
그렇지만 이 분위기에 반기를 드는 악동이 있다.
“간다! 이니시이이이이이이이이익!”
곽지운이 쾌활하게 외치며 야무지게 적진 한 가운데로 들어간 건 ‘간다, 이니시!’에서 ‘간’ 정도의 타이밍이었다.
해설진이 미처 첫 마디를 뱉지도.
침을 한 번 더 삼키기도 전의 엇박이었다.
- 헥
- 흡
- 엨
“으어어엇! 세자 선수!”
그건 FWX 입장에서도 항상 적진을 들락날락하던 김예성의 르블란보다 빠른 타이밍이었고.
“으어어어어어어아아아아아아아아!”
상대 탑을 반쯤 으깨버린 이유찬보다 저돌적이었으며.
“세에에에에에에에에자아아아아아아아아!”
이제 눈감고도 곽지운의 무빙을 예측할 수 있는 서포터 최은호의 상상보다도, 아주 아주 조금 더 빨랐다.
“부우우우우패의 사스으으으으으으으으을! 점멸!”
그래서 더욱더 순식간이었다.
“적중합니다아아아아아아아악!”
마치 권건이 오늘 미라쥬와의 경기에서 했던 플레이처럼.
중간의 퍼즈를 제외하고서라도 그랬다.
뒤에서 계속해서 지원 사격하던 원딜의 급작스러운 선 돌입.
패턴과 규칙 뒤집기.
이건 권건이 미라쥬에게 선보였던 완급 조절 기술에 곽지운이라는 선수가 올라탄 것처럼 보였다.
깃털처럼 한없이 가벼운 일격.
궁극의 생존 포기술.
곽지운은 눈치가 빠른 선수였다.
이게 모든 분야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텐 선수의 레넥! 위기!”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게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바류스는?”
권건이 먼저 전략을 선보였고.
우리는 팀이라는 것.
곽지운의 오늘 픽은 떠밀리고 떠밀려서 선택하게 된 챔피언이었다.
상대가 집중적으로 바텀 밴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있다.
사실 이 챔피언이 선호하는 챔프냐, 이번 버전의 대세 챔프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하겠지만.
어차피 원딜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다만 애시를 보고 바류스를 가져온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둘 다 활을 쏜다는 이유다.
활쟁이는 활쟁이로 맞서는 게 옳다.
총잡이는 비겁하잖아.
곽지운은 짧은 새에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이건 농담.
둘의 궁극기가 비슷한 면이 있어서다.
원거리 딜러의 CC기 중 최고로 꼽히는 이동 불가 궁극기와 한타 기여.
“깍! 미친 새낀가 진짜!”
최은호의 외침이 들린다.
아, 저런 말 하면 오더 씹히는데.
생각해보니 상관없나?
어차피 우리 한타 순간에 오더 안 한 지 꽤 오래됐잖아.
협곡에서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지금 뭐 바람 협곡인가?
하긴, 그게 지금 중요한 건 아니다.
바람 소리의 원인은 상대 애시의 거대한 화살 때문이니까.
반사적으로 쏘아져 나온 애시의 궁극기가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달려든다.
마법의 수정 화살.
“세자! 위기!”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이니시에 0.01초를 다투는 동일한 반응.
세주의 빙하 감옥.
부패의 사슬을 쏘아 보낸 손이 미처 원래 자리를 찾기도 전.
앞 라인을 향해 완전히 역병이 전이되기도 전이다.
온도를 낮춰서 세균의 감염 속도를 느리게 만든다는 과학이 이 세계관에도 있었나?
쓸데없는 생각이 스치는 사이.
끼이이이이이잉.
거친 금속음이 바론 둥지 앞을 뒤덮는다.
이명.
“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언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언!”
발뒤꿈치 뒤에 붙어 서 있던 정글이 날아들어 간다.
정확히 같은 타깃.
상대의 궁극기를 대신 받아내면서 적진을 가르는 빛과 같은 움직임.
“저어어어어지 불가!”
첫 번째 엄호.
또 한 번의 빨아들임.
이 미친 정글러의 센스는 이제 곽지운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가버렸다.
“벨 선수의 탈리아아아아아!”
바류스의 몸을 오른쪽으로 트는 순간 대지가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너무 빨라서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
다른 바람 소리.
옆을 스쳐 지나가는 건 짐승같이 재빠른 탑이다.
완전 개화 피지컬 원탑.
생각해보면 이유찬은 미라쥬에 갔다면 꽤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우전드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탑이 됐을 텐데.
“차아아아아아아아아니!”
칼끝이 빛나고.
이유찬이 벽에 밀려나는, 아니 밀려나려는 순간.
“응..응수!”
두 번째 엄호.
“응수?!”
거대한 벽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마법을 시전한 바위 술사도 순간적으로 벙 찐다.
아니, 서서 기절했어?
- 이게 진짜 버그 아니야?
- 이거 막혀? 원래 됨? 해본 사람?
- 있겠냐?
- 미친 새끼 아니야? 저걸 막아?
- 지가 0.75초 브리움인 줄 아는 거야?
곽지운은 목뒤가 쭈뼛 서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둥지를 중심으로 135도로 돌아들어 간 김예성이 적 후방을 터뜨리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이게 세 번째 엄호.
전장의 폭음.
그리고 곧 최전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뱌이의 정지이이이이이이이! 명려어어어어어어엉!”
“스플래쉬 들어갑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번개처럼 들어가고.
“피해욧!”
뒤이어 따라오는 천둥소리.
꽈과광.
아까까지 적과 가장 가까웠던 건 곽지운이다.
하지만 이미 곽지운을 대신해서 적진의 중앙에 있는 건 권건이다.
하나, 둘, 셋의 엄호.
이런 원딜.
안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딨어?
생각을 거치면서도 발걸음은 뒤로 한 번.
그리고 활을 겨눈다.
집중한다.
몸이 느려진다.
기다렸다는 것처럼 적진 가운데의 정글러가 상대를 밀어내 예쁜 줄을 만든다.
아, 진짜 제대로 미친놈.
게임 너무 잘하네.
덜컥.
오래도 걸렸다.
전이된 역병이 적의 발을 묶는다.
“간다.”
고요 속에서 입을 다시 연다.
쭉 뻗어나가는 화살이 연달아 역병을 터뜨린다.
하나, 둘, 셋.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 빠르게 흘러간다.
“꿰뚫는..!”
팡, 파팡, 팡.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화살, 화살, 화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알!”
액션 쾌감!
압도적인 타격감과 ‘사이다’ 같은 액션 콤보!
“세자의 트리플.. 트리플 킬!”
“경기이이이이이! 확 넘어갑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이다 유상준, 0참여 1기여.
“레넥..!”
아차.
잠깐 잊었던 최전방의 상대가.
악어가 입을 벌리며 달려든다.
다시 한번 발걸음을 뒤로하는 그 순간.
“미친 새끼, 또라이 새끼, 숟가락 새끼야!”
뾰족한 목소리가 들리고.
“혼자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
속박된 악어의 숨소리가 코앞에서 멈춘다.
“너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머리가 숭숭 빠진다!”
아, 어머니.
네 번째 엄호도 있었구나?
존재감이 너무 없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네.
웃음이 나온다.
화려한 별빛이 나를 감싸고.
이유찬이 다시 곽지운의 옆을 스쳐 앞으로 나간다.
적의 발밑에는 원형의 결투장이 펼쳐진다.
낭창한 칼날이 찌르고.
또 찌른다.
악어 학살이 잔인해서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다.
그렇구나.
미라쥬에 어울리겠다는 건 취소다.
이유찬은 앞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은 걸 참고 원딜을 봐주고 있었던 거다.
“F..”
“F-W-X!”
시간은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사실 이건 불과 몇 초 사이에 일어난 일.
곽지운이 들어가고 정말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말 그대로 궁극기를 통한 ‘한타 기여’를 하고 그 한 호흡 속에서 일어난 일.
“라온의 르블란, 르블란이 딩거 터뜨리고!”
후방에서는 짙고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세자가 트리플, 마지막으로 차니가 레넥 마무리하면서!”
“FWX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에이스를! 띄워어어어어어어어어 냅니다아아아아아아아악!”
바로 눈앞인 전방 역시 마찬가지다.
“미친 이니시! 돌아버린 엇박자! 완벽한 스킬 배분!”
몸을 돌린다.
“타격 제로!”
바론은 이제 필요 없다.
“사실상 경기 종결을 알리는 마지막 한타!”
- 시발시발 한 호흡 한타시발시발
- 대미친대미친대미친
- 존나 못된 새기들 진짜 아무것도 못 봤어
- 찐따였던 새기들이 이걸? 이걸? 이걸?
- 야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
- 이게 FWX다!!!!!!!!!!!!!!!!!!!!!!!!!!!!!!!!
넥서스로 달린다.
“이대로, 이대로, 이거, 경기, 승부 정해집니다..!”
“부활, 부활, 부활 되나요? 부활 안 됩니다! 시간 모자라요! 탑 고속도로! 탑 고속도로 뚫려있습니다!”
“라온! 텔! 텔 갑니다! 라인 완벽합니다!”
“차니, 점멸까지 사용하면서 달립니다!”
“이대로 밀고 들어가면! 밀고 들어가면, FWX!”
쌍둥이를 부순다.
“너무 빨라요, 너무 빠릅니다!”
하나의 타워가 허물어지기도 전에 하나가 마저 허물어진다.
“결승, 결승! LKL 결승 갑니다!”
“FWX가! FWX가 결승 무대를! 코 앞에에에에에에에! 두면서!”
곽지운은 알았다.
아무도 말이 없지만 알 수 있었다.
“새로운 역사! From the New World, 신세계로부터!”
제법 먼 길.
승승장구라고 하지만 결국 꽤 멀었던 이 길을 다시 걸어서.
결국 우리는 다시 이 산 앞까지 왔다.
“FWX의 새 역사의 시작, 강자 미라쥬를 상대로 3대0 스윕뿐만 아니라 경기력 면에서도 완벽한 모습을 선보이면서!”
“2026 스프링 스플릿! 그 대망의 결승전의 문으으으으으으으을!”
드디어.
“ㅡㅡㅡㅡ!”
인제야.
“ㅡㅡㅡㅡㅡㅡㅡ!”
다시 한번 결승이다.
“두드립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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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 PO 2R 대전 FWX vs 광주 미라쥬 총평
: [ FWX가 FWX 했다 ]
공격성을 내세운 미라쥬, 팔방미인 FWX의 결승 티켓을 둔 싸움.
첫 세트에서는 탑 차니가 막강한 체급을 바탕으로 솔로킬로 활약을.. (중략)
두 번째 세트에서는 미라쥬가 부족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기껏 구르기 시작한 스노우볼이 주춤한 사이 틈을 놓치지 않고 미드 라온이 슈퍼 플레이를.. (중략)
앞선 세트에서 권건은 빠짐없이 위크사이드 역할을 수행해 경기에 활기를 더했다.
마지막, 세 번째 세트에서는 퍼즈 이슈가 있었으며 이는 미라쥬의 착각에서 비롯.. (중략) 천상계의 반응 속도뿐만 아니라 순간 판단 면에서 권건이 지난 시즌에 이어 솔랭 1위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증명.. 3초 탱커 뱌이에 관한 새로운 시청각 자료로..
결국 FWX는 한 경기에서 매드 무비 클립을 두 개나 뽑아내는 기염을 토했고, 윈나우 구단이 아님을 증명해냈다.
해당 경기의 인터뷰에서 상당히 오랜만에 세자의 주도적인 오더가 재발굴된 것은 덤.
이는 권건이 경기 초반부부터 이어온 운영적(Jack 해설의 표현에 따르면 Gun’d *권건이 권건식 운영으로 이겼다) 전략을 팀 전체가 이어받은 것을 시사한다.
이후 새로운 코멘트가 등장했다.
FWX는 권건(GwonGun)을 만나고 Begin.
정규 시즌을 마감한 그들의 전설은 Begun.
그리고 권건의 흐름을 받아들여 점점 완전체가 되어가면서, Be Gun.
이들은 결승에 선착해 상대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