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40화 (240/326)

240화. 현장 부검

FWX 입장에서는 꽤 오랜만의 퍼즈였다.

한참 열기를 올리는 게임 중에 맥을 끊는 퍼즈였기에 장내가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뭐야? 왜 한참 경기하다가 저래?”

“전혀 모르겠는데?”

“하늘로 날아가는 정도는 되어야 퍼즈 거는 거 아니야?”

“아.. 뻐킹 버그겜..”

현장에는 퍼즈가 왜 걸렸는지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들도 있었고.

- 돌려봐도 아예 보호막 게이지가 보이질 않던데?

- 패시브가 그냥 터진 버그 아님?

- 그럼 크로노 돌려야지

- 아; 존나 오래 걸리겠네;

버그라고 확신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저라도 헷갈렸을 것 같습니다.”

“저도요. 하지만 일단 미심쩍다면 확인을 해보는 게 옳습니다. 버그로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거든요. 계속 신경 쓰면서 경기를 할 수는 없죠. 그만큼! 오늘 경기가 중요한 경기라는 뜻입니다! 시청자분들의 너른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관련해서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안내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조금 전의 리플레이를 보실까요?”

충분히 이유를 짐작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패시브가..”

그리고 퍼즈를 건 장본인.

마음이 급했던 미라쥬의 정글, 이인혁의 손은 아직도 P 키에 올라가 있다.

“이게 버그가 아니에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네, 이의 제기하신 부분을 확인한 결과..”

심판은 침착하게 로그 데이터를 전달했다.

이인혁의 세주가 권건을 띄우는 것과 동시에.

권건의 챔피언인 뱌이의 패시브가 발동됐고.

순간적으로 완벽하게 미라쥬가 밀어 넣은 데미지에 의해 보호막 게이지가 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사라졌으며.

그 뒤 들어간 최은호의 회복기가 지금의 상태를 만든 것.

“자, 이렇게 보시면..”

옵저버와 해설진은 궁금해하는 관객들을 향해 느린 화면을 돌렸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권건 선수의 패시브는 적에게 ‘스킬’을 맞춰야 생깁니다. 그런데 논점은 여기서 스킬이 어디에 있었냐죠?”

“그렇습니다. Q는 쿨이었고.”

마우스가 쿨타임을 가리킨다.

“패시브 W, 미습득 R을 제외하면 E가 남는데요. 아시죠? 끈질긴 힘. 쉽게 말해 뒤로 뻗어나가는 통배권같은..”

“그런데 세주 진입 직전에 이 E의 쿨이 돕니다.”

- 그러니까 형들 E는 평타자너

- 평타 판정임?

- 그런 것도 모르고 겜함? ㅇㅅㅇ 그러니까 니들이 브론즈지

- ? 안물 안궁

- 고작 게임을 누가 그렇게 진지하게 하냐고 아ㅋㅋㅋ

- 뱌이는 바보 주먹밖에 몰라!

“맞아요, 평타. 평타 판정 맞습니다. 끈질긴 힘은 온 넥스트 힛! 그러니까 E를 켜고 세주를 때렸다고 하더라도 뱌이의 보호막이 터지지 않는 게 맞아요. 세주를 직접! 때렸다면 안 터집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켜고 나서 다음 타격이 평타인데! 이게 힛은 평타고! 정작 뒤로 쏟아지는 광역 데미지는 스킬 판정이라는 거!”

- 오

- 오?

- 추리쇼 ON

- 빠람빠람빠람 빠라바라~ 빠라 밤

- 내 이름은 강기수.. 탐정이죠

“테러 선수의 세주 역시 점멸까지 사용해서 들어간데다 상당히 깔끔하게 스킬을 넣었고, 혹한의 맹습은 배치기만큼 판정이 좋은 스킬인데..”

“화면 더 슬로우.. 더더 슬로우 어렵나요? 아. 네, 좋습니다. 여기! 지금 보시면. 들어오기 직전에 권건 선수가 몸을 틀어서 딩거 포탑을 향해 평타와 함께 E를 바로 쏟아부으면서..”

“찰나, E의 후방 광역 데미지를 진입하던 세주한테 적중시키고!”

“바로 패시브가 터지는 겁니다! 바로 지금! 지금 툴팁 창을 보시면 패시브가 다시 쿨이 돌고 있어요!”

“스킬이 없으면 스킬을 만들어서 터뜨린다는 거죠.”

“그래서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면, 유일한 증거물이었던 딩거의 포탑은 사라지고.”

“권건이 터뜨린 패시브 보호막은 미라쥬의 딜 집중으로 인해서 거의 보지도 못할 만큼 순식간에 사라졌고.”

“미라쥬 선수들의 챔피언 스킬 쿨은 전부 돌고 있고.”

“클래스 선수의 소랴카의 지원까지 들어가면서, 사실상 이 단계에서 치명적이었던 미라쥬의 모든 스킬이 빠져버렸다는 얘깁니다.”

“미라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이야기를 마친 화면이 다시 퍼즈 시점으로 돌아온다.

각 챔피언의 스킬 세부 조건까지 즉시 추론할 정도는 아니었던 캐스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그런 연구를 오랫동안 해왔던 해설진은 각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알고 있더라도 순간적으로 그렇게 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 게 뭐야?

특정 스킬이 뭐는 평타 판정이고 뭐는 스킬 판정이다.

그러니까 이걸 어떤 아이템이랑 조합하면 어떤 꼼수가 나온다, 어떤 아이템과 어떻게 활용하면 최대 딜을 뽑을 수 있다 정도는 정해진 공식처럼 쓰이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도 잘 사용하는 게 프로.

하지만 이걸 순간적인 적의 오브젝트와 진입 타이밍을 예측해 응용해내는 건 어렵다.

그래서 일방적 구도를 짤 수 있는 기습 갱킹에서 활용되는 전략들..

“권건 선수.. 포탑 밑장 빼기냐?”

“어어. 손모가지.”

게다가 게임사에서 애당초 들어가야 하는 챔피언인 뱌이에게 이 패시브를 부여한 건.

한 번의 교전에서 여러 번 돌려가며 터뜨리면서 최소한 진입 후 바로 죽는 상황을 막고 딜을 뽑아내라는 뜻이다.

하지만 권건은 이걸 상황을 만드는 데에 사용했다.

상대의 스킬을 뽑고.

아군 바텀 듀오가 강가로 진출할 수 있게 하는 교두보를 만들기 위한 탱킹 용도로.

“예측을.. 그러니까 아마 예측을.. 근데 예측을 해도.. 타이밍이..”

- 뭔.. 들어올 줄 알고 있었다고?

- 딩거가 범인이야?

- 그렇다긴 좀;

- 아아 이것이ㅡ [반응]

- 안거야 반응한 거야?

- 몰?루 그의 센스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불과 1차 교전이 끝난 몇 초 사이에 이럴 계획을 짠 건가.

“와. 그러니까 이걸.. 이 선수는..”

“이번 교전 직전까지 피해 다녔던 것과 정반대의 플레이..”

어쩌면 이건 운영보다 더 어렵고.

피지컬보다 더 나아간 것이며.

그저 소름이 끼치는 응용력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다.

- 아까 ㅇㅅㅇ하던 불편충 어디 갔어?

- 얘 나와봐 뭔 말을 좀 해봐 버그라며

- 이것이 “게임 로그”

- 로그가 되고 싶은 자는 나에게..

- ? 고전겜

- 나 빡대갈이라 이해 못했는데 어쨌든 권건이 권건했다는거지?

- 그래 그게 맏따;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임 밖에서 스킬 쿨과 조건을 볼 수 있는 상태와.

인게임에서 여러 명의 적과 오브젝트를 동시에 의식하는 상태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 그 데미지로 포탑이 사라졌었구나.”

게임 안에 있던 선수, 정글러 이인혁이 그랬다.

외부에서 해설진이 설명하는 사이, 심판진에게 해당 상황에 대한 내용을 전달받은 그는 훨씬 더 빠르게 이해했다.

권건이 너무 빨랐다.

상황 판단부터 포지셔닝, 실행까지가 너무 빨랐다.

그리고 자신의 움직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예상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버그라는 쪽이 더 설득력 있어서건 퍼즈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로그가 완벽한데다 그도 당연히 알고 있는 챔피언 특성이니까.

하지만.

알면 따라 할 수 있는 게 있고 알아도 따라 할 수 없는 게 있다.

이건 명백하게 후자였다.

“이해 완료되셨으면 5초 뒤에 경기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라쥬의 다른 선수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이때 말을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잠시만요.”

한참 설명을 들은 이인혁은 머리를 굴렸다.

“그럼 이거 저희 페널티 들어가나요?”

문제가 있다고 확신했지만 문제가 아니란다.

그럼 롤백도 없다.

그렇다는 건.. 이제 곧 게임이 터질 것이라는 뜻.

“네.”

“페널티 커요?”

“아뇨. 정규 시즌과 플옵은 별도로 집계되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괜한 질문을 던지며 시간을 끈다.

이인혁은 스스로가 좀 추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다.

당장 퍼즈 원인은 하나였지만 되짚어보니 완전히 속았다.

처음에는 계속 갱과 교전을 생략하면서 첫 용에는 들어오지 않을 것처럼 속였고.

그다음에는 퍼블에 만족한다는 것처럼 속였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순간 탱커로 용도 변경을 해버렸다.

“그럼, 어, 또..”

그러니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권건 한 놈한테 다 속았다.

“선수님.”

이 마음을 짐작이라도 한 건지 심판이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경기를 지연시키는 행동이 더 큰 페널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타개해야 하는데.

이 현장에 있는 모든 챔피언의 스킬의 특징은 쿨타임이 길다는 거다.

경기가 이대로 재개되면 이 상황은 누구 것일까?

“잘못했어요..”

씨방..

하위 씨방 중위 씨방 상위 씨방 속씨식물 씨방 씨 발아.

쟨 뭘 먹고 게임을 저렇게 잘하지.

말이 되냐?

지금 말로 듣고서야 생각나는 걸 현장에서 바로바로 한다는 게.

“아, 아. 블루 진영. 광주 미라쥬. 블루 진영. 경기 재개 준비 완료. 이상.”

이 경기가 마지막 세트라는 예감이 확신이 선다.

그리고 뭣보다도 너무.

너무너무너무너무 쪽팔린다.

“양측 준비 완료. 카운트다운 들어갑니다, 5.”

권건 못된 새끼..

“4.”

이럴 거면 세계 무대도 다 먹어라.

“3.”

햔꾹뿐뜰먄 얄야뽈쑤 있꿰 쑬꼐여.

“2.”

쩌 깨쌔끼 쩐냐 깨무써웅니꺄 빵씸하찌 마쩨요.

“1.”

찌 혼쨔 쩡끌 댜 해쪄멍뉸 쌔끼뉘꺄 꺙 삐햐는 껴 츄쩐뜨링니땨.

“경기 재개됩니다!”

정신이 빠진 이인혁은 짜릿한 타격감에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거 또! 또오오오오오오!”

“또오오오오! 빼앗겼어요!”

“이게 도대체 뭐죠!”

준비한 오백가지 전략이 있었지만.

미라쥬는 벌써 타격을 크게 받은 것 같다.

퍼즈가 풀린 뒤.

바로 용 쪽으로 포커스하던 상대에게, 돌격기가 없는 나를 대신해 곽지운이 첫 용을 뺏어내고.

그 뒤엔 무사히 전장으로 복귀한 김예성과 함께 상대 바텀 듀오를 집요하게 추격해 박살 냈거든.

원래 용도를 할 수 없게 된 바텀이 무너지면 미라쥬 전체가 흔들리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우리 팀 원딜은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 최고의 힘을 뽑아내는 타입이고.

“세에에에에에에에자아아아아아아아! 이러려고 바류스 골랐다! 정글도 내거, 오브젝트도 내 거!”

“큐우우우우우우웃! 또 뺏어갔습니다! 벌써 꿰뚫는 화살로 용을 두번이나아아아아악!”

“FWX가 손쉽게 4용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이대로라면! 이거 그냥! 바아아아아로! 플레이오프 2라운드의 첫 번째 경기가 끝나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미라쥬의 정글이 맥을 못 추고 있었다.

“이게 또 들어오네?”

“퍼즈를 건 자, 고통받을지어다.”

이런 상황은 정글러에게 데스보다 더 큰 고통이다.

“네이스~”

퍼즈 후 팀원들은 한결 가벼운 분위기에서 경기를 진행했다.

조금은 무게감이 있을 수 있었던 3세트였지만 퍼즈를 통해 부드러워진 느낌.

게임이 기울어진 만큼, 진지한 태도로 임하던 선수들의 대화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왠지 도형이 형 생각난다.”

“아, 그거. 도형이 퍼즈 사건?”

“그땐 걔도 참 미친놈이었지.”

“추억이다.. 아.. 윤도형 생각하니까 마음 심란해지네..”

“그 형 얘기하니까 똥 마렵다.”

사람은 다 비슷하구나.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루리퐁 윤도형 FWX 주전 정글 시절.

내가 이 팀 1군으로 콜업된 계기는 윤도형의 ‘스킬을 파악하지 못한 퍼즈’.

“근데 그거랑 비교하는 건 미라쥬한테 좀 실례 아님?”

“그건 맞다. 압도적 죄송.”

그때 윤도형이 퍼즈를 걸고 따졌던 게.

스톰이었던가, 미라쥬였던가?

“근데 솔직히 나라도 퍼즈 걸었겠다.”

“난 나 한정 소랴카 힐량 버프 된 줄.”

“니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솔직히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 나긴 한다.

윤도형은 진짜 몰라서 건 거고.

미라쥬는 알긴 했지만 설마 하고 건 거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지.

현장 부검 유죄 판결은 선수 인생에서 가장 민망한 일 중 하나거든.

이제 다음 시즌 미라쥬는 우리에게 함부로 퍼즈도 못 걸 거다.

당연하지만 오인으로 인한 퍼즈 페널티도 받을 테고.

제가 이렇게 미래까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예?

“건이 왜 웃냐?”

“그러게. 게임 잘해서 그러는 거 아니냐?”

“쌉인정이지. 나도 쟤만큼 했으면 맨날 웃고 다님.”

“아! 그래서 은호 니가 항상 한번 데친 얼굴로 다녔구나?”

“지랄 노.”

어쨌든.

이제 재벌집 막내 원딜이 된 곽지운의 몸이 근질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초장거리 슈팅으로 정글 뺏어 먹는 데에 질렸나.

“나 탑 2차 철거 중.”

“이제 바론 오겠지?”

“네.”

“모일까?”

자신만만한 제안.

“좋죠.”

그리고 아마 자연스럽게 우리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를 끝낼 마지막 한타의 시간이 다가온다.

“얘네 다 왔네.”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근데 그거 알아?”

아.

“나 점멸 있다?”

우리 원딜.

“깍지야, 하지 마라. 서포터 간 떨어진다. 제발 하지 마라.”

“이렇게 잘 풀린 게임에서. 원딜은 다시 태어난다.”

정말 많이 늘었구나.

“지랄하지 말고. 제발.”

근데 너 지금 이즈 아닌데.

“열려라! 결승 문!”

“야. 깍지 진짜 너 설마아아악!”

“간다! 이니시이이이이이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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