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37화 (237/326)

237화. 포식자

2026 LKL 스프링 플레이오프.

토요일 경기, 정규 시즌 1위 대전 FWX와 3위 광주 미라쥬의 2라운드 경기.

“도대체 왜 저희를 골랐을까요?”

미라쥬는 혼란스러웠다.

“어차피. 달라지는 거 없다.”

감독 김병우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늘 차갑고 냉정한 그였지만 오늘만큼은 도저히 안심되질 않는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도저히 오늘 경기에서 이길 길이 보이지 않는다.

플옵을 위해 준비했던 비장의 카드는.

얼마 전, 정규 시즌 마지막 주에서 만났던 스톰과의 경기를 따내는 데에 써버렸다.

분명 연구 분석이 일어났을 테니 전략 수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우연히 FWX에게 한 세트를 가져온 걸로 우쭐하던 성남 스톰을 밟아줬을 뿐만 아니라 최종 순위에서 유리한 고점을 차지할 수 있었던 선택이었으니까.

물론 그것이 일종의 유도된 결과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더 순위도 높고 시간도 많았는데.. 왜 FWX는 트릭스터가 아니라 우리를..”

그런 그들에게 가장 큰 의문은.

이런 노력을 다 수포로 만들어버리는 FWX의 지목이었다.

5판 3선승제, 어쩌면 6시간 이상 걸릴지도 모르는 오늘의 경기.

불안한 감정을 밖으로 내비치면 선수들에게 옮을까 두려웠던 두 사람은 흡연 공간에 와있었다.

“성민아. 진정해라.”

김 감독의 말에도 박성민 코치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어떻게 진정을 해요, 어떻게?”

“그래? 그럼 계속 말해봐.”

“지금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요, 예? 스톰 이겨서 3위 알박기했고, 대 스톰 전략 실컷 세우고!”

박 코치는 입 밖으로 말을 뱉어내면서도 계속해서 줄담배를 피웠다.

급한 마음만큼 뿌연 연기가 시야를 가린다.

“그리고?”

“이제 2라운드에서 딱 스톰 만났으면 완벽하게 그림 완성되는 거였는데!”

“그런 다음에는.”

“예? 그런 다음에는 우리가 결승을, 결승을, 결승을..!”

열변을 토하던 코치가 갑자기 퍼뜩 정신이 든 것처럼 눈앞의 감독을 바라본다.

김병우 감독은 생긴 건 멀끔하지만 상당히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장 잘하는 건 빈정거리기.

“결승 가면. 뭐. 말 계속해.”

“FWX를.. 만나겠죠..?”

“어.”

“아.. 어차피 안되겠.. 아니, 아닙니다.”

이번 인사 개혁으로 입사한 박 코치는 대외적으로는 이름깨나 날렸다는 미드 출신이었지만 스트레스에 예민한 타입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른다.

“언제 만나건 똑같아. 억울해도 월챔 포인트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강자존이니까. 이제 입 닫고..”

그래서 더 말을 아낀다.

“아니, 인제 그만 얘기하고 애들 달래주러 가자. 너도 이렇게 불안한데 애들은 오죽하겠냐.”

김병우 감독은 FWX의 박진현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 장기였던 용병술의 기초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이번에 스크림 요청을 받아주지 않은 건 섭섭하지만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었다.

예전까지는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것도 우스웠던 사람이었는데.

진작 이야기를 나눠볼걸.

언제나 후회는 늦다.

“어후..”

“탈취제나 뿌려라. 너 담배 냄새 너무 심해. 이제 가자.”

“감독님도 담배 피시잖아요.”

“난 궐련형 전담이잖아.”

“그것도 똑같이 몸에 나빠요.”

“최소한 코칭 박스에서 너처럼 냄새 풍기지는 않겠지.”

“그렇긴 한데..”

“그냥 일상에서 불쾌하다고 얘기하는 거 아니다. 애들 다 안다. 말로 안 해도, 담배 냄새가 많이 날 수록 니가 오늘 초조하다는 티를 내는 거라고. 말만으로 서로 이해하는 건 아니니까..”

이것도 박 감독에게 배웠다.

특히나 직감적인 플레이와 피지컬 중심의 팀인 짐승 같은 미라쥬에게는 더 중요한 이야기였다.

선수들끼리 진솔한 대화를 한다든가 하는 건 미라쥬라는 팀에서 있을 수 없는 장면이니까 더 그렇다.

“알겠습니다.”

풀죽은 박 코치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깊은 한숨을 뱉었다.

솔직히 너무 무섭다.

짐승들은 자기보다 강한 짐승을 잘 안다.

그건 숫자나 덩치로 읽어내는 게 아니다.

그냥 안다.

본능적으로.

“가자.”

“네.”

버려진 꽁초 끝에 빨간 불이 남아있었다.

김 감독은 담뱃재를 바라보며 이 장면을 다시 보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를 바랐다.

바쁘게 경기가 진행되는 중에 흡연 공간으로 나올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니까.

“가능한 공격적으로. 그리고 정글을 제일 먼저 물어 죽일 수 있게. 우리 정글 인혁이 확실하게 밀어주자고.”

그리고 다시 담배를 태우는 순간은.

시즌이 끝나는 순간일 테니.

#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올루올루올루올루!”

“후루루루리리이이이아하아아아아!”

“달립니다! 화끈한 경기력! 화끈한 경기력의 FWX!”

- 안녕하세요? 저는 미래에서 왔습니다. 지금 시즌이 어떻게 됩니까?

- 2026년 LKL 스프링 PO 2라입니다

- 아, 그럼 FWX의 20연승 중 첫 번째 해로군요. 감사했습니다.

- ?

- F벤저스의 시간 강탈 작전이.. 개시된 건가..?

“완벽한 경기력!”

“FWX가! 두 번째 세트까지! 단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완벽한 승리를 거둬냅니다!”

“이번 시즌 최대어, 최고의 팀, 최강의 팀, 무결점의 전승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 이거 그냥 게임이 안 되는데?

- ㄹㅇ 탑차이라고;;

- 어휴 진부하다 진부해ㅋㅋㅋ 다른 변명은 없어?

- 건신 오늘 진짜 어시스트 지리네;;

- 망차니 저거 진짜ㅋㅋㅋ 건신 없었으면 열 번은 더 뒤졌겠다ㅋㅋㅋ

- 아 진짜 미라쥬 왜 그래 정신 좀 차려

- ㅋㅋㅋㅋㅋㅋㅋㅋ맨날 체급으로 패다가 맞아보니까 어때?

- FWX! FWX! FWX! FWX!

- 그냥 결승 바로 하자~

승부 예측은 보지 않아도 뻔하게 3 대 0, FWX의 승리.

역배의 신이 와도 양보하기 어려운 두 팀의 싸움.

그런데도 이 자리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기에.

팬들과 해설진은 열을 올린다.

아마.

1, 2세트 총평은 이런 느낌일 거다.

첫 번째 세트의 사연은 미라쥬의 압도적인 패배.

체급 대 체급으로 부딪혀온 미라쥬는 우리 팀, FWX에 대차게 깨졌다.

여기서 활약한 건 솔로 킬을 세 번이나 가져온 탑이다.

두 번째 세트의 사연은 미라쥬의 운영적 패배.

첫 세트에서 기가 산 이유찬이 오히려 갱에 당하면서 살짝 넘어간 힘의 균형을 미라쥬에서 놓지 않으면서 한동안 용 주도권이 넘어갔다.

하지만 미라쥬는 스노우볼을 똑바로 굴리지 못했고.

그 틈을 타 김예성이 미드에서 슈퍼플레이를 펼치며 단박에 경기를 굳혀냈다.

“그래도!”

“미라쥬 입장에서 패패승승승이라는 걸 기대해 볼 수 없는 건 아니거든요?”

동전의 양면을 본 이상 이 경기의 승패 양상은 확실히 정해진 것 같지만.

여전히 드라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있다.

“그렇습니다! 진짜 낭만이란 게 있죠. 패패승승승의 최초는 언제였던가요. 제가 기억하는 건 아마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C 모 팀의 2012년 결승을 시작으로..”

“아, 그때 진짜 굉장했는데!”

“저는 그때 받은 그브 스킨을 아직도 쓰고 있어요!”

“관객이셨습니까?”

“예!”

“와. 벌써 그게 몇 년 전이죠? 14년 전 일입니까?”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하고도 두 해가 더 지난 일이네요?”

- 근데 아직도 해설을 해 먹고 있는 그는 대체..

- 역사는 흐른다ㅋㅋㅋ

- 그리고 과거는 재현되지 않지ㅋㅋㅋㅋㅋ

- 테에엥!

“그만큼! 역사가 깊은 LKL!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 경기, 정규 시즌부터 포함하면 여전히 연승을 이어 나가고 있는 FWX가..”

그래서 오늘의 객석은 뜨겁다.

나는 알고 있다.

‘압도적인 팀’의 분위기를.

“편하게 게임해라.”

“걱정하지 마세요.”

“감독님 오늘은 댑 안 해요?”

“나에게도 위신이라는 게 있다.”

“그런 거 따지다 보면 스타 감독 못 되는 거 아니에요?”

“지운이가 펜타 킬 하면 내가 댑 할게.”

“그럼 킬은 내가 야무지게 먹어야지~ 헤이, 미스터 박. 피스트 범프?”

“콜.”

탁, 맞닿는 두 주먹의 가벼움.

“지금부터! 미라쥬에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세트가 될지도 모르는 경기, 두 팀의 세 번째 세트를 시자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어떤 팀에게는 한없이 상반되는 무거움.

“하겠습니다!”

이게 바로 강자의 분위기.

“정말 오랜만에 미라쥬에서 왕지우 선수의 시그니처 픽인 딩거가 나왔는데요!”

특별히 1, 2세트에 대해 말을 길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여태까지 해왔던 만큼 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이 시리즈를 기대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라면.

상대도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이번 시즌 지배자의 아주 작은 자비이자.

“그 전 세트까지는 FWX에서도 철저하게 밴 카드로 막았었거든요? 하지만 이번 세트에서는 풀어주는 대신 미드를 철저하게 견제하면서 결국 벨 선수가 선호하는 순수 AP의 선택권이 좁아졌어요. 탈리아를 가져갔습니다. 물론 탈리아는 벨 선수의 아주 오랜 친구이긴 해요. 현 메타에서 해석은 갈리지만요!”

“이거 재밌어집니다?”

흥행까지 생각할 수 있는 내 여유이며.

“결국 블루 진영의 미라쥬는 레넥, 세주, 탈리아, 애시와 딩거로 바텀을 완성했습니다!”

“일단 FWX에게서 세주를 빼앗아 왔다는 것만으로도 밴픽 과정에서 꽤 과감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FWX는 세주를 탑, 미드, 서폿으로도 활용하는 팀이거든요!”

“이게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죠!”

팀의 위상을 더 높일 수 있는 일이리라.

“반면..”

“클래스 선수가 선발 출전한 레드 진영의 FWX에서는 피요라, 뱌이, 르블란, 바류스와 소랴카로 밴픽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아까 말했듯 FWX는 상대 미드를 중심으로 밴했지만, 미라쥬는 바텀 중심의 견제를 집요하게 넣었습니다. 사실 바류스는 이번 스프링 메타에서 썩 좋은 평가를 듣지는 못했어요.”

“다만 라인 압박하기 좋은 애시 딩거를 만난 이상, FWX 바텀 듀오는 버티는 모습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이건 미라쥬가 예상하지 못한 조합일 거거든요.”

어쩌면 상대는 조금 숨통이 트였을지 모른다.

“그런데요, 그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아이템 상향 영향으로 현 버전에서 고평가받는 밸류 높은 탑 레넥을 가져가고.

우리 팀의 밴픽 교란용으로 상당히 자주 애용되었던 세주를 빼앗고.

AP 메이지를 사랑하는 미드의 탈리아 픽.

그리고 미라쥬 서포터 왕지우의 시그니처로 알려진 딩거까지 챙겼다.

“우리가 모두 미라쥬에 비해 FWX를 우위로 점쳤지만, 모든 경기가 항상 똑같이 흘러가리라는 법은 없거든요.”

“그리고 말입니다, 진짜 유명한 말인데. 궁지에 빠진 쥐는 고양이도 뭅니다.”

“FWX가 조심해야겠죠. 마지막 세트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긴장을 풀 수도 있는 거거든요? 지금 밴픽처럼요!”

“저도 살짝 쉽게 내준 거 아닌가 싶다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만..”

- 아모른직다

- 그건 그래ㅋㅋㅋ이번 세트는 이길 듯?

- 왜 밴픽 저따위로 해? 우실줄하려고?

- 우실줄은 무슨.. 원래 FWX는 저따위로 해

- 그건 리얼이야

- 뭘 또 하려고 저렇게 막 하는 거야????

- 막 해도 되니까 막 하는 거지

- 시1방새들..

한눈에 알아보기 쉽다.

상대보다 우리 팀 픽의 한타 시너지가 그렇게 뛰어나지 못하다는 것을.

업셋을 노리기에 부적합한 밴픽이다.

“어떨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노려야 할 건 업셋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

“당연한 걸 왜 물어?”

이제 꽤 긴 트레이닝 시간을 거친 최은호가 냉큼 대답한다.

“잘라먹기지. 내가 입 막아줄 테니까 바로 죽여버려.”

어머니 소리를 듣는 서포터를 쥔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가자고.”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1, 2세트 총평했던가.

감히 스포하자면.

세 번째 세트는 더 압도적인 체급과 숨 막히는 운영으로 이뤄질 거다.

미라쥬가 다음 시즌까지 푹 쉬고 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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