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35화 (235/326)

235화. 지키지 못할 약속

아.

강준윤이 채팅이 아니라 톡을 한 이유를 알겠다.

- 강준윤 : 이 ** ** 너는 ***야;;;;;;;;;

게임 채팅으로는 이런 욕을 못 보내긴 하지.

내가 바로 정지를 먹였을 테니까.

하지만 나도 게임을 한 두 해 한 게 아니라서.

이 정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애교부리는 건가?

- 강준윤 : ㅇ ㅑ 결승에서 만나자^^;

뭐.

강준윤이 말하는 본새만 보면 채팅 로그에 남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걸지도 모르겠지만.

- 나 : 제일 어려운 상대로 배정해드릴게요

- 강준윤 : 그게 누군데??

아, 이거 찔러보기야?

- 나 : 어차피 다 못 이기시잖아?

사실 6위의 호넷은 아직 2라운드까지 올라오기엔 부족하다.

호넷을 상대할 미라쥬가 그렇게 약한 팀도 아니고, 최근에 독이 바짝 올랐으니까.

그래서 하나는 미라쥬.

하지만 트릭스터와 유니버스의 싸움은 결과 예측이 쉬운 건 아니다.

우리가 최정인을 자극해 둔 것도 있으니까.

- 강준윤 : 아닌데 존나 다 이길 건데 너무 쉬운데? 너네가 누굴 골라도 상관없는데?^^;;;;;;

어쨌든 2위인 스톰 입장에서는 우리가 누굴 고를지 궁금해 미칠 지경일 거다.

팀 색이 꽤 다른 팀들이거든.

그리고 최근 LKL 경향도 그렇지만, FWX는 선택을 예측할 수 없는 특급 빌런 역할.

물론 이미 우리는 다 정해놨다.

- 나 : 와 우승하시겠네^^ 미리 축하드립니다

- 강준윤 : 개새야^^; 진짜 넌 진짜 나쁜 새끼야;;;;;;;;;;;;;;;;;;;

- 나 : 제가 뭘요?

- 강준윤 : 너랑 말 안해^^;;;;;;;;;;;;;;;;;;;;;;;;;;;;;;

- 나 : 설마 저희 이길 자신 없으세요?

- 강준윤 : ** ***;; 너 진짜 ** ** 못된 **;;

쏟아지는 폭언에 그냥 웃음이 나온다.

작은 포메라니안이 몸을 떨면서 짖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 나 : 그럼

이제 좀 달래줄 때가 됐다.

어쨌든 우린 러닝메이트 아니야?

아니면 훈련사와 입질이 심한 강아지의 관계.

방금 그렇게 정했다.

- 나 : 우리 인천에서 만나겠네요?

결승까지 올 수만 있다면야.

- 강준윤 : 맞지 시벌 성남에서 해야 하는 건데 졸라 첨단과 혁신의 희망 도시 성남

인정.

성남에서 결승을 하면 도시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병목 현상 같은 데이터 정체 이슈가 터지지는 않는다.

하드웨어 이슈 대응도 빠른 편.

- 나 : 아쉽게 됐네요

물론 도시별로 특성이 있긴 한데 상위권 팀들이 대부분 연고지가 수도권이라 특별히 큰 차이는 없다.

미라쥬의 연고지인 광주와 유니버스의 연고지인 대구는 수도권과는 거리가 멀지만 거대 광역시로 기술력이 뛰어났었지.

뭐, 어쨌든 이건 옛날얘기고.

- 강준윤 : 인천 존나 멀어 진짜 지구 끝인 것 같아^^;;;;;; 멀미 지려;;

실제로 정규 시즌과 플옵은 서울 LOS 파크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팀은 연고지와 관계없이 수도권 혹은 서울 내에 사옥을 가지고 있다.

스톰은 연고지가 성남이라 성남에 사옥이 있고.

이건 일치하는 팀도, 아닌 팀도 있다.

아, 근데 생각해보니 얘넨 작년 월챔 못 갔지?

한국에서 했는데.

월챔 코리아 일산 안 가보셨구나?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긴 했는데.

더 자극하면 차단당할 것 같으니까 조절하자.

- 나 : 다음에는 대전에서 할 텐데 큰일이네요

- 강준윤 : 닥쳐;;;;;;;;;;;;;;;;;;;;; 닥쳐닥쳐닥쳐닥쳐 대전절대못가

오히려 이게 더 셌나?

- 강준윤 : 절대 못가 절대절대절대 존나 개멀어 진짜 절대 안돼;;;

제주 F.L.E로 갈 걸 그랬나.

그랬으면 이 포메라니안 기절했겠다.

그럴 때는 먹이로 달래주자.

- 나 : 맛집 소개해드릴까요?

- 강준윤 : 대전 유명한 거 없는 거로 유명한 도시 아니야?

사실 나도 잘은 모른다.

여기 온 건 처음이고 나도 대전과 연고가 깊은 건 아니라서.

기분이 조금 숙연해진다.

매번 현수막도 걸어주고 계시는데.

반성.

앞으로 대전에 대해서 알아보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항상 결승을 거기서 할 텐데 몇 개는 뚫어 놔야지.

아니면 우리가 명물이 되면 어떨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주기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테고.

어쨌든 타이틀은 확실하다.

LKL 결승 관광의 도시 대전.

어, 이거 괜찮은데.

내가 대답이 없자 강준윤은 계속해서 톡을 보내온다.

- 강준윤 : 야

- 강준윤 : 아무튼 트릭스터^^ 인천 절대 못 가게 해

- 강준윤 : 우리 동맹이다^^; 알앗지

- 나 : 왜요

- 강준윤 : 존나 눈꼴사납잖아 지네 홈가서 경기하는 거 존나 팀 컬러로 도배해놓고

- 강준윤 : 은근슬쩍^ 지네 브금만 훨씬 멋있게 깔고 쉽

성남에서 경기하면 뭐 안 그랬는 줄 아나?

그건 당연한 건데.

- 강준윤 : 너네도 뭐 작년에 너네 탑

- 강준윤 : 아니다;

지난 결승 때 있었던 소소한 함성 유도 이슈는 자연스럽게 기정사실로 되어 있었다.

이유찬의 사연이 마이크로 통해 전해졌고, 그건 알음알음 퍼져나갔으니까.

근데 그것 때문에 졌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FWX에서 막았다.

일을 키워서 굳이 동정표를 사려면 못 살 것도 아니긴 한데.

결국 그건 큰 무대 적응 이슈에 불과하고 무엇보다도 좀, 구차하잖아?

실력으로 보여주면 되는데.

- 나 :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 강준윤 : 쏘리;;;;;;;;;;;;;;;;;

- 강준윤 : 어쨋든;;; ^^

- 강준윤 : 그 썌끼들 홈에서 다른 색깔 나오는 꼴 좀 보여줘야 정신을 차리지ㅋㅋ 존나 두들겨 패ㅋ

- 강준윤 : 이왕이면 트릭스터 데려가서 미리 패줘라; 우리가 미라쥬 존나 패버리게;

- 강준윤 : 고놈들 요새 건방져.. 아주 건방져..

스톰과 미라쥬의 라이벌 구도는 잘 정착된 모양이다.

사실 스톰은 트릭스터보다는 미라쥬를 상대하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이거 아주 영악하네.

우리가 트릭스터 골라달라고 청탁하는 거였어?

- 나 : 중국에서 온 미드가 무서우세요?

- 강준윤 : 누구? 트릭스터 리뉴?^^;;;

- 강준윤 : 유학생?

- 나 : 네

- 강준윤 : 야 니 신토불이 무시하냐?^^;;;;;; 한국의 매운맛을 보여주지^^^ㅗ

생각해보면 ‘근본 스타 미드’이자 로열 로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강준윤은 개인 팬덤도 상당히 커다란 스톰의 프랜차이즈 스타.

스톰의 주장이기도 하고.

주장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났는데.

지난 스토브 리그 때 유니버스 원딜 강은찬이 주장 자리를 주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겠다고 해서 그 자리에 앉혔다는 얘기가 돌았다.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우리 주장인 곽지운에게 절대 지기 싫어하는 타입이거든.

강은찬은 우리한테 트래시 토크 했던 걔니까.

와, 그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주장 아무한테나 막 주네.

- 강준윤 : 그럼 우리한테 트릭 보냄????

- 나 : 그건 모르죠

강준윤은 이리저리 재고 찌르면서 우리가 만든 중간고사 답안지가 뭔지 엿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교무실 캐비닛에 들어가 있다.

오히려 스톰이 누구를 원하는지만 우리한테 알려줬을 뿐.

- 강준윤 : 어차피 상관업어^^;

- 강준윤 : 다 이기면 되니까;;; ^^

- 나 : 네

- 강준윤 : 알아들엇지???^^;;;;;;;;;

- 강준윤 : 결승에서 만나자^^

- 강준윤 : 약속!

#

플레이오프 1라운드.

3위 광주 미라쥬와 6위 부산 호넷의 경기.

그리고 4위 인천 트릭스터와 5위 대구 유니버스의 경기.

1라운드가 끝나고 결과가 나왔다.

호넷을 상대한 미라쥬의 완벽한 3:0 승리.

이건 대부분의 해설진이 사전 예상으로 정확하게 맞췄다.

하지만 트릭스터가 유니버스를 상대로 3:2 승리.

관계자들은 대부분 3:1을 예측했지만 뜻밖에 마지막 세트에서 7용 전설까지 가는 첨예한 대립 끝에 결국 승리를 차지한 건 트릭스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기가 끝난 후 유니버스 탑, 최정인이 흘린 뜨거운 눈물이 많은 사람을 자극했다.

“지고 싶지 않았는데..”

종종 우는 선수들이 있었지만 최정인은 조금 남다른 구석이 있는 선수였기에 더욱 주목받았다.

[ 아듀, 유니버스의 스프링 시즌.. ‘또라이’의 눈물. ]

모든 공식적인 자리, 개인 방송, 팬 미팅, 심지어 사석에서조차.

이 전형적인 탑 또라이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벙글벙글 웃기 바빴던 눈치 없는 사람으로 유명했기 때문이었고.

[ 단 하나의 길만 있어도 그곳으로 가리라, 유니버스의 새로운 정신적 지주 ]

그리고 마지막 세트에서 그의 포기하지 않는 플레이가 화면을 넘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짧은 프로 기간, 벌써 내 나이 스물다섯.. 다들 슬슬 접으라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성장기예요. 성장기라고요!”

강한 욕심을 보였던 마지막 인터뷰 역시 마찬가지.

- 나는 금년 스물 다섯살 난 사내애입니다. 내 이름은 최정인이구요. 아직도 성장기죠. 우리 집 식구라고는 밥값 한 예쁜 원딜과 단 두 식구뿐이랍니다. 아차! 큰일이 났군, 관심쟁이 잭 감독을 빼놓을 뻔했으니.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씨불;;;;;

ㄴㄴ 아이고 옥희야~~~~!!! 아저씨는 어디로 갔니ㅠㅜㅠㅜ

ㄴㄴ 사랑방 미출석

ㄴㄴ 쉽ㅠㅠㅠ 마지막 세트 탑이랑 원딜밖에 안보이더라ㅠㅠㅠㅠㅠ

ㄴㄴ 존나 무능했어ㅠㅠㅜㅠㅜㅠ 거의 이길 뻔했는데 ㅠㅠㅠㅜ

ㄴㄴ 남들은 다 서포터가 있는데, 우리 원딜만은 서포터가 없지요! 서포터가 없다고 아마 ‘젓가락’이라나 봐요.. 오키는 슬퍼욧.

ㄴㄴ 총평 : 우리 원딜은 서포터를 잃고 과부가 되었답니다?

ㄴㄴ 애들 너무 지친 듯; 유니버스가 너무 늦게 시동 걸렸어ㅠ

[ 선생님.. LOS가.. 하고 싶어요..! ]

물론 감동이 희석되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놀림당하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점점 더 플레이오프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계자와 팬들은 경기 종료 직후 FWX가 누구를 상대로 지목할 것인지에 주목했다.

정규 시즌 1위였던 FWX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두 가지.

광주 미라쥬를 선택하고 인천 트릭스터를 성남 스톰에게 보내느냐.

혹은 인천 트릭스터를 선택하고 광주 미라쥬를 성남 스톰에게 보내느냐.

대부분의 예측은 FWX가 트릭스터를 지목할 것이라는 쪽으로 향했다.

일단 정규 시즌 순위에서 미라쥬가 3위, 트릭스터가 4위였고.

FWX가 트릭스터에게 원한이 있어서 제 손으로 복수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만약 그렇다면 정규 시즌부터 쭉 이어지는 바쁜 일정 속에서 지쳐있는 트릭스터를 잡아먹기에는 지금이 적기라고 여겨졌으니까.

예전의 LKL이 정규 시즌 막바지에 상당히 힘을 뺐던 것과 달리.

경기가 끝까지 치열했기 때문에 모든 팀은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며 싸웠다.

그래서 각 팀은 숨겨놨던 카드를 평소보다 일찍 꺼내 들 수밖에 없었고, 이건 트릭스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딘가 각성한 것 같은 유니버스 탑의 공격적인 모습에 트릭스터는 끝까지 숨겨뒀던 카드 중 대부분을 노출했다.

“감독님, 곧 대진 발표됩니다.”

소소하게는 상호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 스톰과 미라쥬의 팬들이 두 팀의 경기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진짜 강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여전히 두 진영은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애당초 FWX를 뚫고 두 팀이 결승에서 만날 수 있다고 상상하는 팬들은 없었으니까.

“좋아.”

FWX는 고민하는 척을 거듭했지만 선수들을 비롯해 감코진은 한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에게는 승리의 토템이 있었으니까.

“스톰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한번 보자고.”

스프링 플레이오프 2라운드가 시작됐다.

이건 FWX가 출격할 시간이 다가온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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