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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34화 (234/326)

234화. 구단 FWX의 계승

FWX의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는 울산 피닉스와의 경기였다.

사실 두 팀의 경기는 권건 없이 4 대 5로도 이길만한 격차였다.

그리고 그 경기는 피닉스에게도 마지막 경기였다.

FWX에게는 PO가 있었지만 피닉스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정말로 서머 시즌까지는 경기가 없는, 진짜 마지막 경기.

돌아가는 두 팀의 발걸음이 무게에서 차이가 났다.

피닉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FWX 입장에서는 PO를 준비할 시간이 확 늘어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PO는 정규 시즌이 끝나자마자 진행되니까.

“친구 창에 추가했다고 친구인 건 아니지. 진짜 의미의 친구라는 건..”

연습실에 짐을 풀어놓은 최은호가 꺼드럭거렸다.

“야, 은호가 너 친삭했다.”

“내가 어..? 어? 어? 왜 삭제됐지? 야! 야! 곽지운! 야!”

“그러게 누가 컴 켜놓고 돌아다니래?”

“그렇다고 건이를 삭제하면 어떡해? 너 미쳤냐?”

“친구 창에 추가했다고 친구인 건 아니지.”

“그거랑 이거랑 같아?”

“달라? 뭐가 달라?”

“건아, 형 다시 친추!”

“그는. 친삭 후. 추가를. 바랍니까? 은호. 염치리스.”

바텀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떠들어댔다.

사옥으로 돌아온 FWX 선수들은 짧은 휴식 시간을 가진 뒤 컨벤션 홀에 모였다.

평소 회의를 나누는 곳보다 규모가 훨씬 큰 홀 타입의 이 장소는 FWX 사옥 중앙에 위치했다.

주로 FWX 게임 팀 통합 훈련이나 필수 교육 등을 진행할 때 사용되는 장소.

빈 홀에서 전략을 짜고 있었던 타 게임 팀 선수들이 그들을 보고 자리를 비켜줬다.

“망치이이이이이이! 나가신다아아아아악!”

곽지운을 쫓아 구르듯이 홀 안으로 들어간 최은호의 존재감이 대단했으니까.

“두려워 말게! 내가 그대들의 방패라네!”

물론 옆에서 짐승 같은 탑이 문제 행동을 부추겼고.

“탑재의 따아아아앙!”

“불타는 노년이여!”

주변 선수들이 그냥 고개를 돌리고 두 사람을 모르는 척하는 사이 홀에서 나가던 사람 중 하나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클래스 선수 맞으시죠? 오늘도 경기 잘 봤습니다.”

정신 나간 분위기에서도 조용조용한 말투였다.

“어? 네. 맞아요.”

“혹시 카트 타실 생각 없으세요?”

심지어 장난기가 다분하게 묻어있기까지 했다.

“무슨..”

“너무 불타시길래 카트도 잘 타실 것 같아서..”

“아임 쏘리, 팔든?”

“와, 반가워요. 주노 감독님.”

곽지운이 감독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지만 상대가 지나치게 어려 보여서 최은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반갑습니다, 세자 선수. 응원하고 있어요.”

“아니.. 불탄다니? 왜? 왜 갑자기 저한테..!”

“캄 다운. 저스트 키딩. 농담입니다?”

최은호에게 장난을 건 상대가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웬 영어를 쓰고 그러세요?”

“클래스 선수가 먼저 쓰셨잖아요?”

FWX는 LOS 팀만 운영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을 운영하는 구단이었고, 그중 가장 성적이 안 좋았던 건 재작년까지의 LOS 팀.

공간이 잘 확보되어 서로 마주치는 일이 그리 잦은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인 이상 눈치를 보는 게 보통이다.

돈을 쓰기만 하는 팀이 돈을 벌어오는 팀이랑 마주치면 민망한 게 인지상정이니까.

“아니.. 누구신데 저한테 이러세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현 게임 리그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LOS 리그.

그 안에서 ‘절대자’가 된 FWX LOS 팀.

경기나 방송에서의 팬들이 내지르는 환호가 그들의 세계관 안에 있는 것이라면.

이렇게 직장 내에서 가지는 파워는 또 다른 개념이다.

조금 더 사회적인 느낌.

“형. 쉿. 조용.”

“이상한 사람이잖아!”

“형, 저분 레전드 챔피언이야. 미안하지만 형은 못 비벼.”

인물 대사전 김예성이 재빨리 치고 들어왔지만 최은호는 여전히 입을 비죽거렸다.

“나도 챔피언 할 거야! 건아! 대답해 줘!”

“그럼요. 하실 수 있죠.”

1초도 지체하지 않고 평온한 대답이 돌아온다.

“들었냐?”

“건이는 그렇다 치고 최은호 니가 14번을 우승할 수 있어?”

주노 선수, 주노 감독.

레이싱 장르 게임의 전설적인 챔피언.

그는 전 세대의 게임 구단 FWX를 먹여 살렸던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선수이자 현 감독.

FWX가 팀을 넘기려 했을 때, 오히려 대전이라는 연고지를 따내게 만든 주역.

이 팀이 빌빌거릴 때 그나마 명예와 돈을 벌어다 줬던 사람 중 하나.

“어..? 할 수 있어! 내 친구와! 함께니까!”

“기대하겠습니다. 피카피카.”

“이걸 받아주시네. 역시 레전드.”

그렇게 한때 FWX 게임 구단의 명맥을 이어 나갔고, 이제는 감독이 된 한 레전드가 자리를 뜨며 웃었다.

“안녕하세요? 우승해주세요.”

마지막으로 그가 악수를 한 건 권건.

“네.”

“다들 괜찮은 선수들 같은데.”

비교적 어린 나이에 감독의 길을 걷고 있는 그가 가만히 권건의 눈을 들여다봤다.

“잘 부탁해요.”

두 사람은 그 속에서 서로가 걸어온 밀도 높은 시간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왕좌를 계승하도록 하겠습니다.”

권건은 수더분하게 웃으며 바른 자세로 인사했다.

둘은 대화를 따로 한 적은 없지만 공용 피트니스 룸에서 마주친 적은 있는 사이.

“그거 내가 왕이었다는 뜻이에요?”

주노 감독이 눈을 찡긋하며 미소 지었다.

사실 진짜 대화해보고 싶었던 상대는 이 선수다.

권건.

권건이 안하무인으로 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레전드였다고는 하지만, 아예 장르가 다른 게임이었고 LOS와 수익률도 꽤 차이가 있으며.

지금은 은퇴해서 감독일 뿐이니까.

심지어 최근에는 팀 성적도 예전만큼 훌륭하지도 않아서 LOS 팀과는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럼요.”

그래도 팀원들을 대하는 태도를 비롯해 이런 대답은.

LOS 팀의 사람들이 지금 이 선수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을지를 알 수 있다.

“지금의 구단 FWX를 만드신 분인데요.”

그리고 마냥 순하기만 한 선수가 아니라 어딘가 칼을 숨기고 있다는 것도.

이런 사람이 적이라면 끔찍하겠지만 아군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이제 맡겨두세요.”

주노 감독은 아예 다른 장르의 게임 팀이 든든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데에 놀랐다.

“저한테.”

마지막 말에는 더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든든해져서, 그냥 웃었다.

일개 하나의 팀에게 한 가닥의 기대가 더해지고.

이건 한 곳에서, 또 한 곳에서 불어난다.

그리고 FWX의 플레이오프 회의가 시작됐다.

#

[ (LKL) PO 대진표 ]

바로 다음 주에 플레이오프가 진행되는 만큼, 팀들은 정말 바빠지기 시작했다.

플레이오프는 5판 3선승제.

1라운드에서 3위와 6위가, 4위와 5위가 맞붙고.

2라운드에서 기다리는 1위와 2위가 1라운드에서 올라온 두 팀 중 한 팀을 선택해 대진을 가져간다.

물론 선택 우선권은 1위인 우리 FWX에 있다.

결국 정규 시즌 1, 2위가 결승에서 만나는 게 흔한 일이긴 한데.

이번처럼 복잡하게 돌아가는 경우에는 아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특히 현 2위인 스톰이 우리와의 경기에서 비장의 무기를 써버렸으니까 더 그렇다.

그래서 ‘스톰이 원하는 대진표’도 분명히 있을 거다.

하지만 대진표를 휘두를 수 있는 권리는 정규 시즌 1위에게 주어지는 권한.

어쩌나, 나는 내 손에 들어온 선택권을 최대한 유용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인데.

긴장 좀 해야 할걸.

그리고 그 후 결승.

이번 결승 역시 ‘전 시즌 우승팀 홈에서 결승’이라는 기존 원칙에 따라 인천 시립 유니버시아드 체육관에서 치러질 예정이었지만.

이번 시즌을 트릭스터가 4위로 마감하면서 인천 팀 없는 인천 결승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

트릭스터를 응원하던 팬들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

[ 1라운드 대진 : (수) 3위 광주 미라쥬 vs 6위 부산 호넷, (목) 4위 트릭스터 vs 5위 대구 유니버스 ]

ㄴ 호넷 만났으면 좋았을걸;

ㄴㄴ 왜? 우리 팀 만나니까 쫄려?

ㄴㄴ 너 유니버스지?

ㄴㄴ 말해 뭐해

ㄴㄴ 유니버스 지금 광폭화 모드 들어갓따; 다 뒤져따 진짜;

ㄴㄴ 요새 정인이 형 왜 등장 안 해? ㅠ 왠지 아쉽

ㄴㄴ 그 형 요새 빡겜하더라? 뭔 버튼 눌린 듯

ㄴㄴ 편-안

ㄴㄴ 그냥 FWX 관련 글 아니라서 그런 거 아니야?

ㄴㄴ 아ㅎ 맞다ㅎ 우리 1라운드랑 상관없는 사람들이지?^^^^^

ㄴ 한자리 밀린 게 존나 타격이 크네; 5위 유니버스라니 왤캐 왤캐임..

ㄴㄴ 죄송하지만 님들 작년 서머 때도 5위하셨는데요..;;

ㄴㄴ 닥쳐 그 전엔 4위였으니까

ㄴㄴ ㄹㅇ 일등 사위팀ㅋㅋㅋㅋ

일정이 촘촘하다.

정규 시즌이 일요일에 끝나고 다음 수요일부터 플레이오프 1라운드가 시작되니까.

바로 직전까지 경기가 있었던 만큼 1라운드에 배정된 선수들은 리스크를 안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3위와 4위 싸움이 치열했기 때문에 정규 시즌 순위 5, 6위의 팀들도 상대할 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는 것 역시 복잡한 일.

그래서 각 팀은 단 한 순위라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정규 시즌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노력해야 했다.

평소보다 체력 소모가 컸다는 얘기다.

이건 우리가 던진 돌.

플옵이 다가올수록 힘을 비축한다?

내가 짠 이 세계관에서는 없는 얘기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일요일 경기에 1라운드 팀이 없었다는 점.

그래도 고작 하루를 확보한 셈이었지만 이게 갖는 의미도 적지 않았다.

덕분에 일각에서는 LKL이 ‘신의 대진표’를 짰다, ‘사실상 1, 2위를 누가 할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호평이 나왔다.

항상 일정으로 악명이 높았던 주최즉은 이례적인 평가의 짜릿한 손맛을 봤다.

그렇게 촉박하게 수, 목요일의 1라운드 경기가 끝나면.

이때 2라운드에서 기다리고 있는 1, 2위 팀이 상대를 골라 발표한다.

아까 말한 그 권리다.

그리고 금요일을 하루 쉰 뒤.

2라운드는 토요일에 한 경기, 일요일에 한 경기로 배정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뒤가 진짜 스프링의 결승 무대.

사실상 2라운드에서부터 올라가 우승을 노리는 입장에서는 정말 빡빡한 일정이지만.

억울하면 정규 시즌에서 이기시던가.

- 강준윤 : 봤냐^^^^^;ㅋㅋ

- 나 : 뭘요?

스톰의 미드, 강준윤과는 번호를 교환한 사이다.

- 강준윤 : 우리ㅋ 왕조 건설 다시 간다ㅋ^^ 마음먹으니까 바로 2위 찍는 거 봤지?

사실 이런 대화는 게임 내에서 하기 좀 껄끄러운 것도 있고.

- 강준윤 : 응답해라 2R 동기^^;;;;; 형 말 무시????^^;;;

방송 켰다가 이전 대화 내역이 드러나게 되면 분위기 싸해 지는 건 금방이니까.

- 나 : 2위 찍으셨었어요?

- 강준윤 : 몰랐냐?

- 나 : 지금 알았네요

스톰은 지난 시즌 7위로 추락했다가 확 치고 올라왔다.

멀쩡히 상위권에 있던 스톰이 하위권까지 내려갔던 원인이 뭐냐고?

- 나 : 1위는 왜 못했을까?

- 강준윤 : ?????????????;;;;;;;;;;;;;;;;;;;;;;

뻔하지.

곧 이 판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다시 발도 못 붙일 어떤 정글러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해머스를 10위에 묶어놨던 사람이기도 하고.

내가 감독님을 만난 뒤 굴러가는 소식을 들으니 우리 팀에서는 해당하는 사람도 없었고.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한 해머스에서도 조용히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터뜨리는 시기는 아마 결승이 끝난 뒤.

어쨌든 나도 내 근본이 스톰에 있었다고 생각한 시간이 길었던 것만큼.

이 팀 사람들이 불행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 나 : 1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진심으로 그렇다.

어휴, 아쉬워라.

1위가 누구길래 1위를 못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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