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악질 폭군 대장
최정인 혼자만의 세계를 깨는 날카로운 푸시.
그리고 그 상대는.
- 내 동생 : 생일 축하드려요
- 내 동생 : 예성이도 형 어머님께 전해달래요
- 똥싸개 : 축
- 내 동생 : 정말 고생하셨다고
바로 기다려왔던 사람과 떨거지 하나의 소식.
“!”
잊지 않았구나!
그 순간, 고개를 돌린 최정인의 사방으로.
스탭과 선수들이 케이크를 들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어이, 너희들..!”
그래, 이거지.
“알고 있..”
여전히 이어폰을 통해 울려퍼지는 소리와 함께.
- 유니버스, 유니버스, 마지막 기회!
- 쏴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케이크가 얼굴에 날아와 꽂힌다.
“었풉!”
툭, 최정인이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이 떨어진다.
현실에서 케이크 샷을 날린 원딜이 심술궂게 웃고 있다.
“축하해, 똥쟁이 형!”
“축하합니다!”
“워후!”
“못난 놈이지만 그래도 우리 팀이니까 괜찮아!”
얼굴을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산딸기 티라미수를 느끼며 최정인은 입맛을 다셨다.
목에 대충 걸쳐진 구식 유선 이어폰에서 해설진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 이대로 완벽하게 승기를 굳힙니다, FWX!
환호와 박수.
모든 사람이 주목하는 이 순간이 그에게는 가장 희열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잠깐 까먹을 뻔했다.
“후후.. 나는 최고의 탑..”
“뭐래? 오늘 딜량은 착한 사람 눈에만 보였냐?”
“쉿. 생일이잖아.”
“저 형 저거 피 아니지?”
“딸기잼이야..”
- 리그 오브 서머너즈 코리아 리그 스프으으으링 시즌!
“LKL 최강의 탑솔러.. 내 이름은 써머.. 여름이죠..”
그리고 언젠가 여기로 올 ‘내 동생’을 위해서.
쓱 닦은 케이크가 콧구멍 아래로 흘러내린다.
“오, 쒯.”
주르륵, 덩어리진 잼이 입가에 닿자 최정인은 날름 핥았다.
“나 비위가 약해서 이제 가볼게.”
“돌았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끄떡없다.
드디어 해설진의 마지막 멘트가 2배속으로 흘러나온다.
- 그 2라운드, 이름하여 혼돈의 LKL!
“나는 결국 일으켜 세우고야 말 것이다.. 대 유니버스 제국을..”
“형, 소설 작작 보랬지?”
- FWX가 이변 없이 승리를! 가져갑니다아아아아악!
“기다려라.. FWX.. 써머의 서머 시즌을..”
충분히 의도된 타이밍.
스프링 말미, 생일을 맞은 독하고 이상한 자의 흑염룡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
스프링 시즌은 스토브 리그의 결과를 확인하는 첫 번째 장인만큼.
후반으로 갈수록 순위 변동은 격렬하게 일어났다.
6위 이하의 팀인 ‘동부권’에서는 한 시즌 만에 10위로 처박혀 단 한 번의 승리도 따내지 못하고 있는 해머스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인 이미지로는 제주 F.L.E가 패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득실 관리로, 후반으로 갈수록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5위 이상의 ‘서부권’에서는.
성남 스톰이 인천 트릭스터를 잠깐 밀어내고 광주 미라쥬가 대구 유니버스를 잠깐 밀어내는 등 2위에서 5위까지의 순위 쟁탈전은 접전으로 치열한 상황.
미라쥬의 시즌 초 불안 요소였던 탑이 생각보다는 빠르게 자리를 잡으며 치고 올라와 저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만 동부와 서부권의 경계가 슬슬 벌어지고 있는 만큼 매치 오브 더 위크는 전보다 뚜렷해졌고.
해설진은 승패가 명확해 보이는 경기를 준비할 때마다 전보다 더욱 철저한 레퍼토리를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말할 필요도 없이 FWX가 가장 뜨거운 감자다.
오히려 동부와 서부 경기보다도 더 해설이 어려운 FWX의 경기.
전승 무패의 팀.
[ 미라쥬 감독 김병우, “이번 시즌 가장 완성도가 높은 팀이 FWX의 장벽을 부술 것, 그것이 바로 우리 미라쥬!” ]
[ FWX 감독 박진현(PerBe), “언제나 최선을 다할 것” ]
작년 서머까지.
혹은 이번 스프링의 1라운드 초까지만 해도 FWX는 일종의 빌런 취급을 받았다.
때론 고꾸라지기도 하고.
때론 긴장하기도 했던 ‘신생아 팀’.
그런 FWX가 기존에 구성되어있던 ‘강팀’의 구도를 깨부수면서 계속되는 승리 대행진.
어느 순간 이들의 승리가 당연시되기 시작하면서 팀들의 목표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바로 FWX의 무패 행진을 막아서는 것.
[ (LKL)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팀은 어디? ]
[ 비정상적인 FWX의 행보, 잃어버린 시간선 ]
[ FWX의 ‘무패’.. 1라운드 전승 무패, 2라운드에는 쭉 이어지나? ]
하지만 기존의 서부 패왕, 유니버스와 미라쥬가 이 격전에서 탈락했고.
[ 유니버스 원딜 강은찬(Killshot), “역시 세자(곽지운)는 나의 라이벌.. 다음에는 반드시 D의 의지를 빼앗아 오겠다” ]
[ 유니버스 탑 최정인(Summer), “제가 무슨 말 할지는 이제 다 아시죠?” ]
자연스럽게 유니버스처럼 FWX를 ‘선의의 라이벌’로 명시하거나.
[ (LKL) 광주 미라쥬 vs 대전 FWX.. 이변 없는 FWX의 승리 ]
[ 여전히 무패? FWX, 올타임 레전드 득실 차로 “기염” ]
[ 미라쥬 미드 안희종(Bell), “(권건의 플레이는) 솔랭에서나 할 수 있는 플레이, 도저히 막아낼 수 없었다. 우리에게만 그런 것이 아닐 것” ]
[ 미라쥬 서폿 왕지우(Hexa), “그(권건)는 문무를 겸비한 선수.. 한 번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직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아쉽다” ]
미라쥬처럼 은근슬쩍 FWX를 고평가하면서 패배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에 이르렀다.
미라쥬는 항상 다른 팀에게 불친절해 인기가 없는 편이었던 팀.
하지만 과거 특수 범죄 사건을 겪은 후, ‘털보’ 한상열이 주축이 되어 인사 개혁을 거쳐 전보다 나은 팀이 되어가고 있었다.
올바르지 못했던 관행과 악습을 많이 탈피한 것.
“좋아. 이번 인터뷰 나쁘지 않았다.”
“땡큐, 털보 형.”
“너희 내가 이 수염 관리하느라 얼마나 고생인 줄 알기나 하니?”
“응, 털보 형. 어제 바보샵 다녀왔음?”
“바버라고.. 어휴. 제발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나도 돈가방 들고 죄송하다고 말하러 다니는 거 지친다. 혹시 여유 되면 사고도 치지 말고, 게임도 잘하고, 승점도 좀 따오고, 응?”
“형 욕심 지려.”
“존댓말 좀 써라, 이 철없는 것들아.”
최고 연장자였던 탑의 은퇴 후.
어찌 보면 나이가 어린 편인 선수들이 마음을 정착할 곳이 생긴 것도 한몫했다.
“우리 털보 형이 쇠질 좋아해서 다행이다.”
“리얼 철을 든 남자. 응애 나는 테러! 수염 없는 애기.”
“미친놈. 면도나 똑바로 해. 니 면상이 테러야.”
“앨랠랠래. 꺼져주세요.”
[ 미라쥬 미드 안희종(Bell), “예성아(RAON), 우리 다음에는 순수 메이지로 붙지 않을래?” ]
[ FWX 미드 김예성(RAON), “(그것마저 안희종 선수가 지면) 형이 실직할까 우려..” ]
[ 미라쥬 정글 이인혁(Terror),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너희가 다 이겨라, 그게 낫겠다” ]
원래부터 직설적인 미라쥬의 팀 성격을 살리면서도 유쾌한 방향으로의 변화였다.
FWX 한정이긴 하지만 그들의 태도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어차피 FWX는 지금 전설을 써 내려가는 중.
확실하게 진 이상, 상대가 강해서 진 게 낫지.
우리가 실수만 줄이면 된다거나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좀 구차하니까.
그리고 FWX를 상대로 함부로 언플을 하거나 섣불리 건드리면 개박살이 난다는 걸 지난 1년간 모든 팀이 체감하고 있었다.
FWX에는 몹시 악질인 폭군이 살고 있었으니까.
[ FWX 정글 권건(GwonGun), “진심 어린 응원에 감사” ]
다른 팀들의 입장이 어떻든.
FWX도 이런 인터뷰를 적당히 받아넘기면서 전보다 발언권과 체급을 올려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 보이지 않는 조력자도 존재했다.
‘FWX 별동대’ 같은.
그렇게 대전 FWX와 광주 미라쥬의 경기 후.
정규 시즌 마지막 주차인 9주차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7주차의 막바지.
미라쥬를 잡아낸 FWX가 다음 경기로 성남 스톰을 상대할 차례.
여기에 또 다른 행동 패턴이 더해졌다.
시작은 별거 아닌 인터뷰였다.
[ 스톰 감독 김지훈, “우리 성남 스톰이 FWX를 잡겠다” ]
늘 하던 승리 각오 인터뷰에 생뚱맞은 사족이 붙었다.
하필 포털 사이트에 연달아 업로드된 기사의 방향성이 달랐던 것.
[ 스톰 탑 최영광(Glory), “(미라쥬의) 탑 장훈이(Ten)가 아직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잠재력이 충분한 선수라고 생각” ]
ㄴ FWX랑 싸우는데 갑자기 미라쥬 얘길 왜 꺼내?
ㄴㄴ ㅋ 너넨 졌잖아ㅋ
ㄴㄴ 너네도 질 건데??
ㄴㄴ 그건 모르지 ㅋ 지금 스톰이 2위야ㅋ 붐보이 보내고 개같이 부활~
ㄴㄴ ㄹㅇ 개같이 부활 ㅋㅋㅋㅋㅋㅋㅋㅋ
ㄴㄴ 너네도 똑같이 처맞을 거다. 똑같이 처맞을 거야.
ㄴ 아~ 그러니까~ 미라쥬가 탑을 제대로 키우기만 했으면 FWX를 이겼을 것 같다?
ㄴㄴ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ㄴㄴ 사우전드 형 은퇴하고 나서 급히 데려온 애라서 어쩔 수;
ㄴㄴ 텐 얘는 피닉스 출신 아니냐? 쓰레기통에서 주워 왔는데 어쩌라고 이런 말을 하는 거임?
ㄴㄴ 쓰레기통이라니?? 피닉스보고 쓰레기통이라고 했냐?
ㄴㄴ 꼴등 불닭을 쓰레기통이라고 하지 머라고 함?
ㄴㄴ 시1발아 우리 10위 아니다 9위야 해머스가 10위야
ㄴㄴ 그거나 그거나
ㄴㄴ 얘들아 우리 FWX도 9위였어
ㄴㄴ 1위는 빠져
ㄴㄴ 응..^^ㅎㅎ 1위는 빠질게ㅎㅎㅎㅎㅎㅎ
ㄴ 그냥 좋게 평가해준 거 아님? 왤캐 화가 낫어들??
ㄴㄴ 아니? 백퍼 꼽주는 것 같은데?
ㄴㄴ FWX vs 미라쥬 경기 탑 차이 좀 나긴 했지
ㄴㄴ 그래서 지금 프로끼리 “훈수”를 두시겠다..?
ㄴㄴ 피닉스 비하 의도 아니냐고!!!!!!!!
평범한 타이밍이었다면 일상적인 ‘응원’에 해당하는 말.
하지만 최근 FWX와의 경기에서 탑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서 진 이 상황에서는 결코 선한 의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말.
심지어 스톰과 미라쥬는 그리 가까운 팀이 아니다.
스톰이 부진에 빠지면서 잊힌 감은 있었지만 둘은 전통의 앙숙 사이.
실제 의도가 어쨌건 스톰 탑의 미라쥬 탑 평가가 뜻밖에 불을 붙이면서.
1위 자리에서 신선놀음을 하는 FWX를 제외하고 생뚱맞은 세 팀이 엉켜 들었다.
[ 미라쥬 정글 이인혁(Terror), 개인 방송 발언.. “쟤넨 FWX랑 붙어나봤대요? 우습다” ]
방송 팬들이 물어다 준 소식에 미라쥬는 상어처럼 난폭했던 원래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급발진했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기사로 옮겨대는 사람들이 있다.
자극적인 건 돈이 되니까.
[ 스톰 탑 최영광(Glory), 개인 방송 발언.. “1라운드를 아예 기억 못하는 사람들과는 대화하기가 너무 어렵다” ]
하지만 스톰 역시 한때 최강의 자리에 앉았던 팀.
지난 시즌 완전히 가라앉았었지만, 뼈를 내주고 살을 취하면서 다시 2위까지 올라온 그들 역시 이런 ‘시비’를 사람 좋게 웃으면서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 피닉스 감독 최필립(Pio) 소신 발언, “사소한 기사 순서 정렬 문제가 아닐는지..” ]
그리고 나머지 한 팀, 9위 울산 피닉스.
피닉스의 의견은 정당했다.
언론을 조작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도 아니었고 뜻도 불분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약팀의 발언권은 한없이 약했다.
기사 조회수는 100 이하, 1 참여 0 관심.
다행인 건 상위권 두 팀은 원래 싸움의 원인인 ‘탑 차이’에 관해서는 이미 잊은 지 오래고 그냥 둘 중 누가 더 강한지에 대해 소소하게 다투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FWX와 스톰의 경기 바로 이틀 전.
[ (윤’s 겜터뷰) FWX 권건, “광주 미라쥬와의 경기는 항상 좋은 동기부여.. 굿 팀” ]
정규 인터뷰 외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인물인 권건이.
갑자기 유명 채널 콘텐츠를 통해 장작을 집어넣으면서 꺼져가던 모닥불에서 더 큰 불길이 일어났다.
리그와 선수들의 본진이 온라인이라는 것은 정보 전달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일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MRG_Hexa_SUP
- (사진)
배치고사는 모두에게 평등한 것
#FWX #화이팅 #형제팀 #우린생사를함께한사이 #ㄱㄱ
인터뷰에 즉각 반응해 FWX와의 경기를 ‘배치고사’로 표현한 미라쥬의 서포터 왕지우는 은근슬쩍 FWX가 스톰을 이겨주기를 바라는 게시글을 개인 SNS에 올렸고.
@STM_King_MID
- (사진)
아무리 친해도 이번엔 안 봐줌.
내가 ‘진짜’가 뭔지 보여줄게.
기대해라.
#권건 #근데얜왜SNS안함? #STMWIN #감사합니다
권건과 친구 추가되어있는 창을 인증한 스톰의 미드, 강준윤은 원딜 강수달의 도움을 받아 SNS 스토리를 바느질해가며 촘촘하게 압박을 가했다.
이 두 사람뿐만 아니라 각 선수가 이용하는 커뮤니티나 채널, 방송 잡담에서도 아주 소소한 불씨들이 간헐적으로 타오른다.
언뜻 한 채널만 지켜봐서는 알기 어려운.
다양한 플랫폼과 수단을 넘나드는 이 전투는 해박한 커뮤니티 사용자들에 의해 정리되어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 중.
왜 갑자기 권건의 인터뷰 영상 콘텐츠가 그 타이밍에, 그런 섬네일로 올라왔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거나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청자나 팬 입장에서.
그들이 알던 권건은 말수가 적고, 단 걸 좋아하며, 팬을 아끼는 사람.
무엇보다 오직 게임만을 보여주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리고 드디어 제대로 된 대화의 시간을 가진 두 사람.
“난 궁금해.”
눈치 빠른 주장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