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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06화 (206/326)

206화. 응, 어림 없어

다이브.

탑은 다이브가 원래 흔한 라인이고.

미드는 짧은 타워 간의 거리 탓에 다이브가 적은 편이며.

바텀은 어지간해서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구성에 따라 변수가 무궁무진하고, 실패했다가는 상대 원딜만 키워주는 리스크가 존재하니까.

하지만 반대로 성공했을 경우 다른 라인보다 이득이 최소 두 배.

제대로 원딜을 잡아냈을 때 뒤처지는 성장 속도까지 생각하면 달콤한 열매가 아닐 수 없다.

“미라쥬우우우우우! 드가자아아아아아아아잇!”

김예성에게 짓눌려 압사당할 뻔했던 안희종이 기운차게 외쳤다.

미드에서 차이가 크게 벌어질 때 미드들이 뭐하고 싶은 줄 알아?

예로부터 로밍이 답이었다.

열려라, 어디로든 문!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간다.

손에 꼬나쥔 것은 골드 카드.

도착한 곳은 아슬아슬하게 FWX의 바텀 타워 범위 안.

상대 갱플의 궁극기를 계속해서 되뇐 안희종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짜잔.

미드에서는 대접받지 못하던 내가 바텀에서는 비밀 요원?

등장만으로도 적이 위축된 이 공기.

던질까 말까, 던질까 말까, 던던던던?

“던져!”

카드가 빛을 뿜는 그 순간.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다른 사람들보다 느린 시간을 사는 것은 빠른 반응 속도를 가진 사람들의 특권이다.

뜨든, 얕은 경고음이 흐르며 FWX의 타워가 그를 인식한다.

그 사이 금색의 투사체는 느릿하게 뱅글뱅글 돌며 곽지운의 드래이븐을 향한다.

미처 타워 안까지 들어오지 못한 적 원딜이 엎어질 듯 굴러들어온다.

“피해 봐.”

어, 닷지 디스?

검은 선글라스에 블랙 롱코트를 입은 남자가 느리게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 그 느낌?

치키 둔, 둔, 둔, 둔 둔둔 둔, 둔둔 둔, 둔둔둔 둔둔.

이게 그 노래가 아니던가?

이건 미션이 불가능한 노랜가?

둘 다 너무 고전이라 잘 모르겠다.

어쨌든 곽지운은 발재간이 좋은 원딜이긴 하지만 무쌍 네오는 아니었고.

이미 던져진 카드는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권건!”

비상이다, 요 어린놈들아.

메이지 덕후 노익장을 무시하지 마라.

“네가 없는 사이에 우리가 본진을 털러 왔다!”

이 작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간절하게 트리니티를 불러봤자 발사된 골카는 결국 FWX 원딜의 팔을 스치고 만다.

원딜은 칼 같은 정화로 위기에서 벗어나지만.

아주 찰나.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었다.

아, 그래!

제대로 된 멜로디가 떠오른다.

파아아앙, 디제잉 스크래치.

총성을 밀어 터뜨리는 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베이스 기타 튕기는 소리다.

4분의 4박자를 16비트로 마구 쪼개 엇박을 밀어 넣는다.

둥둥두구둥둔둔 둥둥 두구둥두둥두둔.

옛날 사람 안희종은 입으로 SF 첩보물이라도 찍는 것처럼 리듬을 탄다.

오랜만의 득점 찬스?

아, 이건 못 참지.

“간다! 웨이브 간다!”

믿을만한 서포터, 왕지우의 레나타가 방금 막 찍은 궁극기를 점멸과 함께 한 호흡으로 쏟아낸다.

그리고 그만큼 성큼 다가온 적대적 인수 물결에 잡아먹힐 가능성은 올라간다.

하나의 정화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을 만한 정확한 엇박 타이밍.

“가자잇!”

아군 정글러인 자르반도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후욱, 하늘로 뛰어오른다.

화려한 액션씬에 빠지지 않는 장면이다.

16비트.

이건 그야말로 완벽한 호흡.

얹고 얹는 플로우.

둥둥 두구둥 둥둥, 그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 순간은.

서로의 스킬샷이 빨랐다가 확 느려지는 느낌을 준다.

그게 상대 타워의 첫번째 포격이 안희종에게 닿는 순간이었다.

그만큼 모든 일은 한순간에 일어났다.

그르르르륵, 온갖 소리가 한 번에 귀로 쏟아 들어온다.

이 소리가 안희종의 귀에는 마치 음악처럼 들렸다.

FWX 바텀의 종말을 고하는 강렬한 일렉트로닉 비트.

매드 무비에 왜 발라드가 아니라 EDM이 어울리는지 알아?

그만큼 빠르니까.

“포덕킹!”

“뭔?”

적대적 인수의 거대한 파도가 FWX 원딜을 덮칠 때.

알 수 없는 기합을 외치는 정글러의 외침과 함께 바닥에서 지형이 솟아오른다.

권건이 했던 자르반과는 어딘가 달라 보이지만 결국 챔피언 성능은 같다.

잇달아 쏟아진 CC 연계에 상대 원딜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르반의 우물 안에 주저앉는다.

레나타를 운명의 부름으로 불러들인 우리 칼리가 매섭게 따라 들어오고 있다.

이제 두 걸음 남았다.

그야말로 유유자적.

이걸 마무리 못 할 리가 없다.

이제야 타워의 두 번째 타격이 안희종을 향한다.

고작 그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 틈을 노려 2순위로 소외당했던 유상준의 애시가 궁극기를 쏘아낸다.

“안 맞지.”

갓 찍은 것 같은 큰 매가 허공을 쓱 가르고 날아간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노렸으면 어땠을까?

안타깝지만 빗나가버린 화살에 애도를 표한다.

“..만! 탈리아 온다!”

그리고 마지막 타이밍, 어디선가 계곡풍이 불어오는 낌새.

완벽하게 타워 어그로를 받아낸 안희종은 정확한 점멸로 몸을 빼며 어그로를 자르반에게 넘긴다.

깔끔한 핑퐁.

이 전투, 만족.

“드래이븐 궁 조심! 의식해!”

현시점의 최대 딜러, 칼리의 창이 드래이븐에게 닿기 시작하고.

마지막으로 레나타를 던지기 직전의 그 순간.

또 한 번 두 원딜이 동시에 점멸을 사용한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점멸을 아꼈던 곽지운.

그리고 그걸 보고 끝내 점멸을 아꼈던 고수호.

빼어난 두 원딜이 수많은 갤러리 사이에서 칼춤을 추려는 순간.

맵을 꿰매어 붙이며 달려오는 거대한 지각 변동의 소리가 들린다.

둥둥 두구둥, 아니.

이 멜로디가 저쪽에 들리면 안 되는데.

“혹시 라온 탈리아 존나 잘 크지 않았냐?”

“둘 잡고 셋 뒤지면 뭐다?”

“창 뽑고 튀어!”

그리고 그 순간.

“어.”

한발 늦은 만큼 완벽하게 진영을 가르는 토목 공사.

벌컥, 탈리아의 통곡의 벽이 세워지는 바로 그 타이밍.

안희종은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입안으로 읊어내던 리듬을 꿀꺽 삼켜버렸다.

“싯.”

마지막 핑퐁을 위해 빠져나가려던 쉰챔 자르반의 스킬 판정이 씹히고.

“팔.”

순간적으로 남아있던 자르반의 벽과 탈리아의 벽 사이에 끼어버린 칼리.

“낑뀽껑?”

그리고 성급하게 몸을 던져 악수를 내밀던 왕지우의 레나타가 냉큼 타워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꼈어!”

각자 생각하면 아주 사소한 실수들.

“이 새끼 자르반 할 줄 모르냐?”

“없앴어!”

“드래이븐이라도! 왜 저거 또 안 죽어? 또 피했어?”

“수호! 왜 이렇게 점멸을 아꼈어? 처음부터 딜 했으면 진작 잡았을..”

“형들 다 플 쓰면서 들어가서 처음부터 거리가 좀 멀었는데.. 애시도 있고..”

“숟가락은.. 없어요..”

하지만 알 수 있는 건 있었다.

이번 작전이 실패라는 것.

“저 새끼 또 피 1!”

“이거 시발 그냥 미션 임파서블이었네!”

3대 4, 하지만 미라쥬 미드와 정글은 못 큰 상태.

판단이 갈린다.

순식간에 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선택을 도와주겠다는 듯.

곽지운이 죽음의 소용돌이를 쏟아낸다.

“피해!”

끝까지 막타를 노리다 원형 톱니바퀴에 딸려 들어가 처형된 레나타의 전사 소식이 들려오고.

몸이 갈렸지만 다행히 죽지는 않은 주력 멤버들은 황급히 몸을 돌린다.

이건 진짜 위험하다.

“와! 와, 와 씹! 나 안 죽었어! 빼! 쭉 빼! 쭉!”

목소리 가장 큰 누군가가 고함을 지르자.

“빼!”

누군가 따라 외친다.

“골카!”

그나마 상대 미드가 팔이 짧다는 건 다행이다.

안희종도 아슬아슬한 체력으로 김예성을 묶어놓고 다시 도망친다.

“오케이!”

“얼음 날파리 뭐야, 이거!”

“괜찮아 괜찮아! 서폿 무시해!”

소외당했던 애시가 아장아장 화살을 쏟아내지만 더 이상 견제할 스킬이 없다.

CC를 너무 칼 타이밍으로 넣었나?

분할해서 시간을 늘릴 걸 그랬나?

우리 딜이 너무 부족했나?

거리상 가까웠던 서폿부터 잡고 들어갈 걸 그랬나?

타워 근처에 도달한 미라쥬는 아주 잠시 숨을 돌렸다.

실패는 했지만.

당장 게임이 끝날 손실은 아니다.

너덜너덜해도 살아있는 건 살아있는 거니까.

“까비, 까비. 노 남 탓, 노 남 탓!”

“오키오키. 다음에 다시 가자. 그냥 정비하고 용 보자.”

“근데 세자 저거 왜 저렇게 안 죽어? 쟤 안 죽는 패시브 있어?”

각자 귀환을 준비한다.

“와. 탈리아 템 너무 잘 나왔는데요? 진짜 큰일 날 뻔했다.”

잊고 있었던 목소리가 들린다.

전령 쪽에 보내놨던 탑 도장훈이다.

“넌 또 언제 탭을 눌렀어?”

“시간이 남아서..”

“왜 시간이 남아?”

“저 부활 대기 중이거든요..”

“?”

“니 언제 뒤졌어?”

“갑자기 권건이 저를 애시 궁 쪽으로 차던데요?”

“아..”

그래서 레나타가 퍼블이 아니었구나?

그것참 눈물 나게 반가운 소식이네.

문득 지금까지 알짱거리는 애시의 화살 끝에 귀환이 취소된다.

“사이다 저 새끼 진짜 존나 독하네. 이제 좀 꺼져라. 진짜.”

“왜 저래, 진짜.”

“재수 없어.”

“조심하고 쭉 빼. 괜히 개죽음당하지 말고. 안쪽 들어와서 귀환하자.”

다들 발걸음을 옮겨 뭉친다.

이제 여기 남은 건 셋.

“근데 우리 뭐 잊은 거 있지 않냐?”

안희종은 고개를 기울였다.

“뭐더라? 쟤네 둘 다 노플이고..”

“FWX가 전령 먹었고..”

“권건?”

“아니야, 이번에는 진짜 없어. 진짜 없어. 아마 오더만 했겠지.”

뭔가 생각이 날 듯 말 듯.

“어어, 저 새끼 봐라. 아주 타워 안까지 들어오려고 하네? 이것도 권건 오더냐?”

“야, 웃긴다. 구경잼.”

“쟤는 무슨 또라이야?”

상대 서포터가 몸을 쭉 밀어 넣으며 초보처럼 타워 어그로를 타는 순간.

“우리 귀환했나 존나 궁금한가 보지.”

“걍 죽여버릴까?”

문득.

아까 멈췄던 경쾌한 리듬이 다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딱 매드무비 음악.

“야, 피..”

벙벙한 덥스텝.

워블 베이스처럼 흔들리는 강렬한 베이스 사운드.

쿵.

쿵, 쿵.

“해..”

하늘 위에서.

한참 잊고 있었던 상대 탑 갱플의 포탄 세례가 떨어지고 있었다.

달달하게 퍼블 빨고 쇼핑까지 끝낸 묵직한 타격감.

“씨..”

“바..”

아이 싯팔, 양심 엿 바꿔 먹은 갱플 새끼..

어떤 놈이 궁을 마무리용으로 쓰냐..

#

“FWX의 16번째 연속 세트 승리를 축하합니다!”

과거 어느 날 있었다는 FWX의 16연패를 역으로 뒤덮은 새로운 기록.

나는 오늘도 이 무대에 서 있다.

“..래서 오늘, 사이다 선수가 훌륭하게 FWX 데뷔전을 치르셨는데요.”

매주 두 번은 꼬박꼬박 만나는 아나운서 누나가 이제 꽤 익숙하다.

“바텀에서의 호흡은 어떠셨나요?”

“아주 좋아요. 은호, 아니 클래스 선수보다 훨씬 잘하는 것 같습니다.”

2세트에서 장기를 잘 살려 상대를 실컷 가지고 놀았던 곽지운이 흥겹게 대답했다.

곽지운의 팬들이 강아지와 곽지운을 합성한 짤을 흔들고 있었다.

탈색 이후 싱크로율이 확실히 올라가긴 했다.

미라쥬는 이상하리만치 바텀에서 집착을 보였다.

뭐.

예전 탑이자 판단을 맡았던 사우전드가 은퇴하면서 바텀 쪽으로 오더가 쏠리게 되니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데.

우리 바텀도 이제 그렇게 만만하진 않거든.

“그럼 애시를 오랫동안 준비하신 건가요?”

“상준이, 그러니까 사이다 선수는 사실 못하는 픽이 없거든요. 오늘도 너무 잘해서 저 대신 원딜 해도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어쩌면 오늘 나왔던 원딜 중에 애시가 제일 잘하지 않았나요?”

곽지운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우리 원딜은 친절한 편이니까.

유상준의 기묘한 플레이는 색이 조금 달랐다.

죽음에 대한 감각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깡이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이런 건 곽지운의 플레이 스타일과 닮은 면이 있다.

이 조합은 서포터가 노심초사하기보다는 둘이 같이 어울리며 사지를 들락거리는 느낌.

뭐 어쨌든 곽지운은 까다롭지 않은 원딜이고.

유상준과도 그 합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아직 궤도에 오르기엔 멀었지만.

어쨌든 오늘 유상준은 이유찬에게도 점수를 좀 딴 것 같다.

“그럼 권건 선수.”

아나운서가 곱게 눈웃음을 보낸다.

우리 팀은 항상 스탭과 해설진, 아나운서에게 예쁨을 받는다.

왜냐고?

“매번 뵙는 것 같죠? 벌써 POM 점수가 1200점으로 최단기간 최고 점수를 기록하고 계시는데요. 사실상 역대 최고 기록인 1500점을 넘는다는 것은 이미 확정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내가 고정 멤버인 우리의 인터뷰는 항상 뷰 수가 높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칼퇴근의 상징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아님 말고.

“팀원들이 잘 해줘서 그렇죠. 개인 기록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우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와.. 정말. 권건 선수, 이야기를 나눌수록 너무 멋진 분이신데.”

아나운서가 박수를 유도하자 관중석에서 강렬한 호응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제일 열심히 손뼉을 치는 건 옆에 서 있던 곽지운이다.

니가 왜 그래?

“지금 다양한 밴픽을 보여주고 계시는데, 이번 시즌의 목표는 어떻게 되는지 살짝 여쭤봐도 될까요?”

아, 이 단골 질문.

“이제 다음 주는 설 연휴죠.”

“그렇죠. 쉬어갑니다!”

“저희는 이번 연휴를 좀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프링이 절반 가까이 지나간 지금.

“아무래도 그렇죠? 여태 전승을 잡으신 만큼! 선수분들은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시간이 되실 것 같아요.”

또 다른 무기였던 유상준의 픽은 몰라도 호흡까지는 맞는다는 걸 확인했고.

어느정도 판이 깔렸다.

“이 편안함이 추석까지 쭉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목표입니다.”

전승 우승.

이제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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