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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05화 (205/326)

205화. 기회 왔냐?

최은호는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아니! 아니! 저거! 저! 저!”

“은호야, 쉿.”

“아~ 서폿 애시 저렇게 하는 거 아닌데! 원딜 웨이브 다 태우잖아요, 저거!”

“드래이븐이라서 괜찮아. 막타 커버 범위가 넓잖아.”

“아니죠! 원딜을 믿으면 안 돼! 라인 밀린다! 밀려! 나도 피드백 적어야겠다.”

“은호도 참. 그러면서 또 상준이 격려하려고..”

“오기만 해봐, 내가 아주 기강을..”

“또.. 또 저런다.. 저 가짜 꼰대.. 그렇게 자꾸 시비 걸면 애들이 네 맘을 오해해. 가끔은 솔직하게..”

“아.니.라.고.요!”

박스 안은 아까보다 훨씬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솔직히 탑 차이가 심하다.

지난 시즌 후 실력이 수직으로 향상된 이유찬과 탑 매물을 구하는 데 실패한 미라쥬.

여전히 탱커 챔피언을 할 때는 숙련도가 떨어지는 면은 있었지만 라인전 센스 자체가 워낙 좋은 편이었고.

“아니! 아니! 차니가 그냥! 수박통을 그냥! 아주 그냥! 어!”

심지어 지금은 이유찬이 가장 좋아하는 챔피언 중 하나를 들고 있다.

“벌써 여름이 왔나요? 수박이 너무 잘 익었어요! 갱플, 또 한 번 수박 터뜨립니다! 같이 터져나갑니다, 텐! 이거 요른이 하루종일! 하루조오오오오오옹일 맞느라고 라인에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해요!”

“기가 죽은 것 같은데요? 탱커가요, 초반에 성장이 밀리더라도 괜찮다고 말하긴 하는데. 이거 이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말해주기가 좀 힘들어요!”

“그렇죠. 최소한 레벨은 따라가 줘야 하거든요. 근데 지금 상황 너무 어렵습니다.”

“어우우우우우우우! 또 한 번 뜯어냅니다! 지금 이거 착취예요, 라인 착취!”

- 벌써 질 것 같다 씨바ㅋㅋㅋㅋㅋ 서폿이 문제가 아니었다

- 형들 여기 재미없죠? 우리 나가서 놀래요? 제발제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라쥬 너네나 꺼져

- 응 존나 재밌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쟤 게임 공격적으로 하는 거 맘에 쏙 들어ㅋㅋㅋㅋㅋㅋㅋㅋ

- 이게 탑이지ㅋㅋㅋㅋ 알앗냐????

- 솔로킬 또 내나? 아ㅋㅋㅋㅋ

- 기똥차다 기가차니ㅋㅋㅋㅋ 우리 망나니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리고 이 탑이 제멋대로 설치는 것의 배경에는, 상체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정글러가 있었다.

“지금 권건이 또 돌고 있거든요? 이거 상체 쪽 봐주고 있다는 신호를 충분히 보냅니다.”

“이러면 텐 선수, 또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진짜 짜증 나. 왜 자꾸 저기서 서성거려? 지금 요른이 어른이 되질 못한 상황이거든요. 막막합니다, 막막해요! 쟝글러! 우리 팀 쟝글러는 어디 있는가!”

“어어, 왔는데요, 미라쥬도 못 참겠다는 것처럼 와봤는데..! 라인이 밀려서 땅굴을 파기는 어렵거든요! 정글러의 루트 하나가 줄어드는 겁니다!”

“FWX는 이런 걸 놓치지 않는 팀이죠, 또 기가 막히게 알고 있습니다! 이거 봐요, 이거, 이거, 차니, 모르는 척, 모르는 척! 이 선수 연기가 진짜 많이 늘었어요!”

“테러, 테러! 자르반의 깃창..은! 어림없이 빗나갑니다! 볼만 살짝 스쳤죠! 테러 선수, 또다시! 시간을 낭비하고 맙니다!”

- 야 시바 손민수 하려면 좀 제대로 해

- 카피카피 능력 (fail)

- 어이어이 마사카 권건 흉내를 내본 거냐구www

- 테러형.. 이런식으로 너틀않을 보여 줄 필요는 없는 거잖아..

시즌 극초반만 해도 혹시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권건을 노리는 전략이 횡행했다.

일단 정글을 말리고 시작하면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에서 시작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전략은 얼마 가지 않아 폐기됐다.

FWX를 상대로 하는 인베 성공률은 0에 수렴했다.

공짜 이득은 얻어 본 적이 없고.

드물게 아군이 스펠을 투자해서 상대 주요 라이너의 스펠 하나 정도 빼는 걸 성공하더라도 그 원한은 반드시 두배로 돌아온다.

혹은 밴픽상 유리할 때 정글을 반으로 가르고 게임을 시작해도.

더 이상 만만한 라이너가 없는 FWX는 순식간에 격차를 회복하거나 오히려 이 점을 역이용하곤 했다.

특히 정글러들이 괴로워진다.

게다가 권건이 자기 마음대로 동선을 돌리기 시작하면 그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었다.

모든 캠프를 임기응변으로 처리하니까.

정글러 대 정글러의 두뇌 싸움이 시작되면서 벽을 느낀 선수가 한둘이 아니다.

차라리, 차라리 공정한 풀캠이 낫다.

이게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그 사이에 캠프 털리는데요! 이거, 이거 또 털립니다!”

“또오오오오오오!”

“이걸 또오오오오오오!”

하지만 돌고 돌아 늘 제자리다.

각 선수의 역량이 올라온 FWX를 상대할 방법은 도대체 무엇일까.

머리가 아파온다.

“이거 권건이 지옥의 숨바꼭질 시작한 거에요!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됩니다! 아, 괜히 자르반 했나? 그냥 리싱 다시 할 걸 그랬나?”

- 또 약 판 거야?

- 권건이 할 때는 존나 좋아 보였는데 왜 우리가 하니까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냐?

- 존나 쉰내 나는데 자르반?

- 사기꾼 새기.. 구챔프 플래티넘 판매원 새기..

- 우리가 할 땐 (구)리싱이었는데 저기 가면 프레스티지 레전더리 드래곤 에디션 시벌

- 아ㅋㅋㅋㅋㅋㅋ 억울하면 3세트 가서 다시 리싱 하세요ㅋㅋ

- 그럴까? 한 번만 져줄래? 제발 원코

- 고객님~ 저희 카드밖에 안 받아요~

- 어떻게 밴 카드 한 장이면 될까?

- 응 꺼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ㅎ ㅏ 미라쥬가 우리 눈앞에서 벌벌 기는 이 쾌감

- 뭐 상어가~~ 어쩌구~~ 우리 봉구형 착취하던 개새뤼들이~~~ 이제 정신이 좀 들어?

미라쥬는 초반부터 기울기 시작하는 상체로 마음이 조급해졌다.

“희종이 형, 혹시..”

“아니? 트페는 CS 조금 밀려도 괜찮아. 패시브 있어서 괜찮아. 예성이랑 내가 친해서 그래. 아, 이 짜아식. 오늘 안 봐주네.”

미드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님 뭔 소리? 첫 전령 싸움 타이밍 물어보려고 한 거였는데. 누가 CS 소리를 내었는가?”

“아차.”

“야. 희종이 형을 위해서 탭은 누르지 말자.”

“확인.”

“바텀, 바텀은 괜찮아?”

“저 형 말 돌린다.”

“냅 둬. 모두에게는 감추고 싶어 하는 비밀이 있는 법이니까.. 우리 다 누르지 말자.”

“믿을 건 바텀뿐이긴 해. 상체는 탭 누르는 거 금지다.”

“아니? 뭐 언제 버전 생각하는 거야? 탭 누르면 아무것도 안 나와. 난 아무것도 못 봤어.”

“그래. 정신 승리라도 해. 절대 누르지 않는 걸로 해..”

“왕쥬가 좀 봐줘라. 지금 어때?”

“...”

상체가 강해진 이 팀을 이기는 방법.

그 유일한 가능성은 바텀이다.

FWX 바텀을 재기할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부숴버리는 것.

그나마 올 시즌 강력한 하체를 가진 팀.

미라쥬는 바텀에 기대를 걸었다.

“괜찮아.”

아까보다 훨씬 집중한 표정의 왕지우가 중얼거렸다.

“진짜 너무 짜증 나긴 하는데, 괜찮아. 이따가 한 번만 타이밍 내봐. 아예 전령 포기하고 바텀에 한 번 오는 것도 방법일 듯.”

“천천히 볼게.”

정글러가 대답하고.

“근데 쟤는 왜 자꾸 지네 원딜 CS를 훔쳐먹냐?”

“골드 패시브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희종이 형. 애시 추골 삭제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슈퍼 슈프림 리치 골드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골카나 잘 던져.”

“아.”

“진짜 형 타임머신 타고 왔음? 내가 형 신드리 원챔이었을 때부터 알아봤다.”

“자르반, 말 다 했냐?”

“다 했겠냐, 윙 가르디움 레비오우사?”

미드와 정글 사이에서 쓸데없는 이야기가 잠깐 오가는 사이.

“아직 호흡이 안 맞나보지.”

평소보다 조용한 원딜러 고수호가 답을 내놨다.

그래, 분명히 아직 바텀이 완벽하지 않다.

원래도 곽지운은 방어적인 타입의 원딜러.

드래이븐이나 칼리처럼 몸을 깊숙이 밀어 넣는 챔피언보다는 오히려 아펠이나 자이야같은 중장거리, 혹은 미포처럼 날래고 최소한의 유사 CC를 가진 챔피언을 선호하는 타입이다.

서폿이 뺏어 먹은 소량의 CS를 합치면 총량은 거의 같은 상태.

이 균형을 무너뜨려야 한다.

“각 보자.”

“오케이.”

서포터 왕지우는 화면을 뚫어질 듯이 바라본다.

1세트에서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는 다시 권건에게 증명할 것이다.

네가 구해줬던 내가 괜찮은 서포터라는 사실을.

그전까지 느꼈던 단순한.. 그래, 그러니까 그냥 연봉을 올리기 위해서 게임을 한다기보다도.

아니면 누군가에게 잘난 척 하기 위해 랭크를 올리고 방송하던 그런 것보다도.

뭔가 선명한 목표 의식.

왠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평소보다 뭔가 더 깨달을 것 같은 감각이 돋아난다.

이득.

지금이 이득을 낼 찬스.

상대는 아직 호흡이 맞지 않는다.

그러니까..

- 팡!

진지한 왕지우의 눈앞에 갑자기 매가 날아와 꽂힌다.

바텀 부쉬 투 부쉬.

초단거리 작은 매 호크샷.

“이..”

굳이 아까운 매를 날리기에는 너무나 짧은 거리.

여기 있는 걸 뻔히 알면서.

정글러를 위해 매를 쏠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낭비의 미덕을 뽐냈다고.

- !앗 들킴!

- 띠요옹! 너 여깄었네? 까꿍?

- 어프로치 샷! 로우~ 로우~ 퀵!

- 으앙 면상매 십ㅋㅋㅋㅋㅋㅋ

- 저거 데미지 잇는 거 맞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ㅅㄱㅅ

반짝반짝 빛나는 이펙트가 촉촉하게 어깨 위로 떨어져 내린다.

그러니까 이 말은.

“씨벌롬이?”

너희가 곧 들어 올 걸 안다는.

강력한 도발.

그거 말고 다른 뜻이 있을 리가 없다.

뭔가 깨달을 것 같았던 감각은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진정, 진정! 왕쥬, 캄 다아아아아운!”

“이 새끼가 지금 나 도발한 거 아니야?”

“노오오오오! 절대 그럴 리 없어, 헤이, 캄 다아아아운!”

성격 좋은 안희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렸지만 오늘따라 어디 정신이 팔렸는지 멘탈이 약해진 왕지우가 씩씩거린다.

“야, 정글. 진짜 빨리 갱 와라.”

“아, 또 왜.”

“10초 준다. 매 없어. 당장 달려와라.”

“아~.. 매 없어? 그래. 그럼. 전령 버리고 바로 바텀 다이브 가자.”

괴로운 정글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미라쥬 정글러는 선뜻 바텀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오늘은 운이 좋군.. 이런 나이스 챈스가?”

“형, 핑퐁이나 잘해. 갱플 궁 있으니까 타워 거리 조절.”

“잃을 염려가 없다면 도박이..”

“집중해, 성북동 주문 할아범.”

상대 미드를 전령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빙을 치던 미드도 바로 준비한다.

한편, FWX에서는.

“어.”

“아이고! 아까운 매! 아이고!”

“이런.”

왕지우의 생각과는 다른 진상이 밝혀졌다.

“상준이 너, 긴장했나 보다. 실수를 다 하고.”

이게 긴장인가?

왠지 여기 쏴야 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들었는데.

유상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갈까?”

다만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물어오는 정글러의 질문에.

“우리. 드리블. 너. 성장.”

단순하게 대답할 뿐이다.

“좋아. 나랑 이유찬, 전령. 예성. 지원 준비.”

권건은 할 수 있다는 선수의 의사를 절대 무시하지 않는 선수다.

“오케이.”

덕분에 의사 결정은 빨랐다.

“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박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준이 눈치 제법 빠른데? 지금 건이 말 다 알아 들은 거지?”

“그런 것 같은데요.”

“눈치가 빠르긴 뭐가 빨라요, 아, 진짜! 진짜 너무 아까워! 아! 저거 또 작업 치네! 또! 또! 그냥 오라고 해야지! 오라고! 뭘 성장이야! 그냥 안정적으로 한 턴 빼고 전령 한타 보면 되는데! 바텀 다이브 오겠네! 이거 못 피해!”

최은호는 방방 뛰었고.

그리고 정말 전령을 등한시한 채 바텀으로 미라쥬가 달려오는 그 순간.

“이거, 미라쥬가 상체 싸움 밀리면서 전령 포기했죠!”

“달립니다! 바텀 달립니다!”

“트페 대기 중!”

“아래로 뛰어요! 순식간에 전장 결정됩니다! 바텀, 바텀, 바텀!”

- 어 이거

- 이거 좀 방심한 거 같은데

- 맞아? 바텀 버려? 바텀 버려?????

- 낙장불입 왔다

- 자~ 신입 신고식 드가자~ 드디어 온다~~~ 미라쥬의 붐이 온다~~

- 꼴값 떨고 있네 진짜 나는 믿어 우리 세자

- 사이다 너만 잘하면 된다~~~

“FWX는 차니와 권건이 전령 치는 중! 주변에는 텐이 있습니다! 이거 요른이 궁으로 지연시킬 수 있어요!”

“이거 위기입니다, 위기에요! 완벽하게 다이브 타이밍 나오거든요!”

“전령 주면 뭐 어때? 우리는 바텀 둘 다 잡고 타워 터뜨린다아아아아아아악!”

“6레벨, 6레벨, 서포터도 곧 6레벨 타이밍!”

“들어갑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악!”

소름끼치는 트페의 운명의 눈이 FWX 선수들의 머리 위로 뜨면서.

정답지가 펼쳐진다.

미라쥬가 바텀으로 향할 것을 예측했던 FWX는 그들의 움직임으로 확신을.

상대가 전령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던 미라쥬는 황급하게 뒤로 물러나고 있는 FWX 바텀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미라쥬의 바텀 듀오와 정글.

그리고 이제 운명의 눈을 켠 미드까지.

“멋지군.”

“정말 끝내주는 날이야.”

“원딜부터.”

“오케이.”

“물어 죽여.”

“확인.”

무려 4인이 둘만 남은 FWX 바텀을 향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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