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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199화 (199/326)

199화. 사람 일 모르는거야

이제 ‘구 채팅방’이 된 옛 방은 여전히 폭파되지 않고 남아 있다.

- 윤도형 : ??????????????대답하라고??????????????

사실 이직 후 이런 채팅방들이 난처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윤도형은 아예 다른 리그권이라 좀 더 편한 것도 있다.

- 곽지운 : ㄲ

- 최은호 : ㄲ

- 탑병이유찬 : ㄲ

- 나 : ㄲ

- 윤도형 : 이유찬 건방진 새기.. 빠져가지고.. 야 니 당장 스페인으로 와

- 곽지운 : 니 왜 건이한테는 머라고 안하냐?

- 윤도형 : 건아 니 빌드 좀 가져다 쓸게ㅋㅋㅎㅎ;; 고맙다

- 곽지운 : 같은 빌드 같은 챔을 썼다고 결과까지 같을 거라는 생각을 버려

- 윤도형 : ㅇ ㅏ 꺼져 숟가락

- 곽지운 : 응 픽완건

- 최은호 : 건이한태 RP라도 내고 써라 개놈아

- 윤도형 : ㅗㅗㅗ 니는 맛춤뻡이나 똑바로 쓰새여 죄은호님

- 탑병이유찬 : 형 스페인이면 축구 잘함?

- 윤도형 : 뭔 개소리야

- 윤도형 : 한국 사람이면 다 게임 잘하는 소리 하고 있네

- 탑병이유찬 : 그거 맞지 않음?

- 최은호 : 지금 너 한국 무시하냐? 박제ㄱ

- 윤도형 : 아니 그게 아니고;;

- 김예성 : ㅈㄱ

- 곽지운 : 예성이가 너 죽으래

- 최은호 : ㅈㄱ 정글 아냐? 재 또 시작이다 또 어휴 정글박에 모르는 바보

- 나 : 즐겜같은데요

- 김예성 : ㅇㅅㄱㅅ

- 윤도형 : 어시 감사

- 최은호 : 니 감 떨어졋냐? 무조껀 역시건신이지

- 곽지운 : 초성 퀴즈 맞히면 뭐 줌? 나는 역시건신에 올인

그리고 윤도형은 생각보다 외국에서 잘 적응한 모양이다.

의외로 포지션은 정글이 맞았고.

첫 출전에서 승리를 따내진 못했지만 윤도형은 자신의 장점인 짐승 같은 피지컬을 잘 드러냈다.

확실히 전보다 많은 연구를 했고 연습도 빼먹지 않았다는 티가 난다.

무엇보다도 거기서 소울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나?

말이 안 통해도 통하는 것이 있어서 제법 팀에도 잘 녹아든 모양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진짜 사람 일 모르는 거라니까.

“얘 좀 괜찮은 것 같네.”

“다행이다.”

최은호와 김예성의 평가에 곽지운이 솜털 머리를 흔든다.

꾸준히 뿌리 염색을 하고 있는 건지 여전히 머리에 눈이 쌓인 것처럼 하얗다.

최근 곽지운의 팬들은 곽지운을 모 영화에 나오는 눈사람 캐릭터로 빗대어 부른다.

자기가 녹아내려도 허그해 줄 작은 운라프라고.

사실 이렇게 좋은 표현 외에도.

대부분 키가 큰 편에 속하는 우리 사이에서 머리 하나 사이즈만큼 작은 곽지운은 도레미파솔에서 파가 빠져서 파업 원딜, 카메라 풀샷 셔틀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뭐 어쨌든.

“리얼. 진짜 진짜 다행이지.. 봉구도 도형이도..”

입으로는 빈정대도 마음은 넓은 오지랖 주장이 작게 중얼거렸다.

저렇게 정을 못 끊어내는 사람은 성공하기 힘들다.

곽지운이 자기 몸값이 최고인 시절에 이적을 선택하지 않고 FWX에 남아있다가 한동안 꼬라박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경쟁 사회니까.

“우리만 열심히 하면 되겠다. 맞지?”

“당연하죠.”

하지만 뭐, 그래서 결국 나를 만난 걸지도 모르겠다.

“근데 진짜 사람 일 모르는 게 맞는 게.”

이유찬이 과자를 먹던 손으로 턱을 벅벅 긁는다.

그 꼴을 본 김예성이 얼굴을 찌부러뜨렸지만 탑은 그런 것 따위를 신경 쓰지 않는다.

“나랑 엄청 먼 사촌 형이 하나 있었는데, 그 형이 고등학생 때 내내 놀다가 가출했어.”

“오.”

“근데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온 거야. 그리고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은 거지.”

“그래서?”

“뭐라고 하면서?”

급발진하는 이유찬의 이야기에 귀가 쏠린다.

이유찬의 삶은 가끔 들으면 다른 사람들과 상당히 다른 부분이 있다.

대부분 도심 속에서 자란 우리들과 달리, 어린 시절 이사를 자주 다닌 이유찬에게서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게 와일드한 사연이 나올 때가 많다.

특히 이런 면에서 김예성과는 정반대다.

“이제 놀 만큼 놀았으니까 공부하겠습니다, 하면서.”

“어어, 근데?”

“그러면서 검정고시랑 수능 다 보고, 대학도 가버렸어.”

“진짜 사람 일 모르는 거 맞네.”

“와씨.. 드리프트 지린다. 윤도형 라이프네.”

“마음 잡고 검정고시 보는 거 어려운 거 아니야? 나는 그거 과정 밟았었는데.. 대체 출석..”

“나도.”

일반적으로 이른 나이에 데뷔 준비를 하게 되는 프로게이머의 특성상.

프로를 지망하거나 현 프로를 위해 제공되는 다양한 커리큘럼이 있다.

정말 게임 특화 고등학교도 있고, 온라인 수업으로 출석 인정을 받는 방법도 있으며.

아카데미에 따라 해외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졸업장을 따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대학교 진학 역시 연계되어 있기도 하고.

“나는 아카데미.”

어쨌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흔치 않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고등학교 자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는 다소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그럼 그 형님은 지금 뭐하셔?”

“변호사나 뭐 그런 거 하고 계시는 거 아니야?”

드라마를 즐겨보는 김예성이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린다.

“존나 인정. 그런 사람들이 꼭 성공하더라.”

“탑, 너도 사촌 형님 좀 닮아라.”

팀원들의 말을 듣던 이유찬은 이제 볼을 벅벅 긁었다.

“그 형 지금은 그거 한대. 그.. 리스크.. 관리 사업? 수금이랑 돈 관리?”

“그게 뭔데? 사업체 운영하시는 거야? 진짜 대단한 거 아니야?”

김예성은 여전히 멋지다는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우리 미드는 노력과 성공 플롯을 무척 좋아한다.

“엉?”

하지만 조금 더 듣던 최은호의 표정은 떨떠름해진다.

“왜.”

곽지운이 소곤댄다.

“지금 쟤가 말하는 리스크 관리 사업.. 별로 안 좋은 거 아니냐?”

“그게 뭔데?”

“상준아, 그게 뭐지? 그.. 수금하고..”

표정 변화 하나 없이 태연하게 앉아있던 서포터 유상준이 대답한다.

“건달.”

“!”

바텀 3인방이 진실을 밝혀내는 동안.

“나중에 그 형님 좀 만나게 해줘. 완전 롤 모델이다.”

“나도 가끔 설날이나 추석 때 보는데.”

“조금 있으면 설이잖아.”

“한번 물어볼게.”

“와. 탑 네가 도움이 될 때가 다 있네.”

탑과 미드는 열심히 형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드리프트에 드리프트.. 사람 일 모르는 거 맞네.”

“진짜 맞다.”

“예성이 쟤도 진짜 허당이다.”

“헛똑똑이 부잣집 도련님이라니까.”

“그걸 자기만 몰라.”

“그냥 계속 모르는 척해줘. 쟨 일코 잘하는 줄 아니까.”

“오케이.”

#

3주차.

“제주 F.L.E와 대전 FWX! 뜨거운 열기가 더해가는 LKL 스프링 스플릿, 그 스물 세 번째 경기!”

목요일 경기.

과거에 순위로는 어깨를 맞댔었던 두 팀이다.

“오늘도 새로운 밴픽이 등장했죠?”

“예! 벌써 상황으로만 보자면 8 대 2다, 이렇게 보시는 게 맞을 것 같긴 한데..”

- 프레도 생각?보다?

- 정글을 잘 데려온 듯? 요즘 LOS 정글겜 ㄹㅇㅋㅋㅋ

- 아자부 쟤 통통하게 살 오른 거 실화냐?

- F.L.E가 밥맛이 그렇게 좋대

- FWX도 그렇다던데 F가 푸드의 F였음?

- LKL 푸드 파이터즈ㅋㅋㅋㅋㅋㅋㅋㅋ

“F.L.E의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당장 아이반 정글을 발굴해낸 것만 해도 솔직히, 칭찬할만해요! 생각보다 트리키한 면모가 있는 정글이거든요! 약간 유사 아뭄무? 그런..”

“그게 진짜 맞아요?”

“제가 뭐 틀린 말 했습니까?”

“그만 싸우세요.”

F.L.E는 항상 열심히 하는 팀인데다, 양측 코치 사이에 인연이 있었던 것을 계기로 올스타전에서 동년배인 감독 두 사람도 제법 가깝게 지냈고.

서포터 유상준이 FWX로 건너갔으며 그 과정 중에 서로 작은 정보를 교류하면서 스토브리그에서 최저 비용을 사용한 팀 중 하나인 F.L.E는 올 시즌 제법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과거 FWX와의 경기에서 진 후 울기 바빴던 신인 서포터를 잘 케어해내면서 자리도 잡아 중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이제는 제법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두 팀.

“오늘은 권건 선수가 차니 선수를 대신해서 세주로 탱커 포지션을 가져가고 있거든요!”

“그래서 F.L.E는 서폿형 정글을 가져가고 미드의 허밋 선수는 탱키하게, 그리고 원딜 갓신 선수가 오히려 비원딜을 시도하면서 밸런스를 맞췄거든요! 아아아아주 요즘 메타에 신경을 많이 쓴 모습이에요!”

“창의력 점수 드립니다!”

초반 대진운으로 잠시나마 3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맛본 제주 F.L.E가 과감하게 FWX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근데 지금 이 상황은, 글쎄요. 아이반이 바라던 평화로운 협곡과는 너무 다른 모습인데요?”

“이게 바로 전쟁, 전쟁입니다. 숲이 불타버렸어요. 하필이면 용도 화염용! 벽도 없어! 부쉬도 없어! 아! 바다 용의 협곡이었다면 어땠을까!”

“솔방울탄이 10초만 더 빨리 리젠 됐다면 어땠을까!”

“데이지가 한 대만 더 때려줬다면 어땠을까!”

“차라리 아이반을 하지않..”

“어쨌든 대자연이 아이반을 배신합니다!”

“이제 이거, 아이반이 새롭게 부쉬 가꾸는 수밖에 없어요! 우리 협곡 푸르게 푸르게!”

물론 도전장을 던지긴 했는데.

“지금 정글 아자부 선수가 무소유를 주장했다면, 권건 선수는 풀소유를 주장하면서 모조리 다 쓸어 가버리고 있거든요? 이 경기 지금 상당히..”

- 극한의 탱

- 저게 무슨 탱이야 파괴전차지

- [탱크 탱]자 였던거임ㅋㅋㅋ

- 아ㅋㅋㅋㅋㅋ

“이기적인 딜교를 하면 뭐해! 아무리 때려도 탱커가 쓰러지질 않아!”

“GG!”

게임도 같이 던졌다.

“박 감독님. 혹시 EMP 머신 같은 거 들고 다녀요?”

그리고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F.L.E 감독 오지현은 FWX를 찾아가서 물었다.

“예?”

“우리 애들 스킬 콤보가 뚜두둑뚝뚝 끊기는 게, 이거 혹시 뭔 공격 받았나 싶어서. 펄스 공격? 디도스? 막 이런 거?”

진지한 오 감독의 얼굴에 박 감독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엔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 지고 나면 좀 이상한 사람이 된다.

“으아아아아아아! 박진현 감독님, 죄송합니다. 이 형님이 가끔 농담에 과몰입하는 거 아시죠?”

후다닥 달려온 F.L.E 코치가 오 감독의 입을 막았다.

“우리 감독님 또 이러신다.. 갑시다, 명상 수업 들으러.”

“그래. 나 담배 한 대만 피고..”

“금연하신다고 했잖아요.”

“나옹아, 나 벌써 세 시간 째 안 폈잖아..”

“혹시 금연이 뭔지 모르세요?”

“끽연이 뭔지는 아는데.”

“감독님, 너 진짜 끽고싶냐?”

“끼기긱끽끽.”

김한빛 코치와 인연이 있는 F.L.E 이수민 코치가 오 감독을 끌고 가며 다른 이들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박 감독! 좋은 거 있으면 꼭 좀 알려줘요! 내가 말 절대 안 할게! 나만 쓸게!”

“입닥쳐, 로이. 이제 가자옹.”

멀어지던 두 사람을 보던 박 감독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백산아. 저 형님 가끔 저렇게 웃거든? 되게 점잖은 척하는 데 사실은 남 무시하고 그러는 사람이야. 알았지.”

“예, 최 코치님! 반드시 체크 업 해두겠습니다!”

“그런 거 아니다.”

그리고 이어진 토요일.

수원 해머스와의 경기에서도.

“협곡에에에에에에엑! 피바람이 불고 있습니다아아아아아아아악!”

“이거 지금 권건 미쳤어요! 가는 곳마다 시신이 즐비해요. 썩은 내가 진동합니다. 이거, 지금, 완전히 기세 넘어갔어요!”

“이거, 이거, 이거, 뭔가 혹시 해머스가 잘못했나요?”

“저도 그걸 잘 모르겠는데.. 오늘 FWX가 왜 이렇게 화가 났죠? 권건이 강타 점화를 들었잖아요! 왜 이렇게 화가 났냔 말이에요! 지금 살인마처럼 쫓아오잖아요! 이거 완전 살인 예고잖아요!”

“여기서 다시 한번 정글 붐보이가아아아아아아악! 끊깁니다!”

- 야 권건 버튼 눌렸다

- 뭐야ㄷㄷㄷ 왜 저러는 거야 왜 오늘 짐승이야?

- 정글만 죽어라 파는데?

- 님들 그거 암? 전에 스톰에 붙어있던 표어 해머스한테 붙어있음

- 남 탓 금지였나 그거?

- 범인 나왔네 붐보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시바 폭탄 돌리기 지리네

FWX는 수원 해머스와의 첫 번째 세트에서 최단 경기 시간 및 최다 정글 데스를 선물했고.

“다시 달려옵니다! 다시! 다시!”

“이거 도망칠 수가 없어요! 권건이! 걸을 때마다! 지금! 정확하게! 붐보이 동선 맞춰서! 따라갑니다! 이거! 이거! 안 느껴지나요!”

“경고! 경고! 경고! 진도 6.. 7.. 8.. 9!”

“최악의 지진이 몰아칩니다! 진도 9! 진도 9! 소방 비상 대응 3단계! 비상, 비상, 비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거! 게임! 완전히 터집니다!”

- 이거.. 이거??? 뭐야????!!! 그럼 우리 폭탄 매물 산 거야?

- !축하드립니다! 동부 관광권에 당첨되셨습니다!

- 시발시발 환불해줘요.. 환불해줘요.. 우리 정글 돌려줘요.. 아자부 돌려줘요..

- 걔는 F.L.E가서 살도 찌고 행복해보이더라 공짜 정글 아이반도 하고

- 나 같으면 절대 안돌아옴ㅋㅋㅋㅋ

- 이번 시즌.. 와타시타치 좆이 되어 버린 것일까나..

- ~스코시 코와이네~..ㅎ 시발시발 유배지 공기 향긋하고~

두 번째 경기까지 완벽하게 동일한 구도를 만들어내면서.

스톰에서 데려온 정글러, 붐보이를 이번 시즌부터 중심으로 세울 해머스의 계획을 완벽하게 박살 내버렸다.

그리고 끝내 아직 원딜이 적응하지 못했던 부산 호넷과의 일전 역시 손쉽게 무너뜨린 뒤.

결국 2월 중순의 설 연휴를 앞둔 이때.

연휴 직전, 마지막 경기로.

FWX가 광주 미라쥬를 만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새로운 서포터 유상준의 첫 출전이 결정된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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