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버스 정도가 아니라구
“영!”
“차!”
“영!”
“차!”
노를 젓는다.
“영!”
“차!”
“영!”
“차!”
선원들은 자신이 노인지, 노가 자신인지 알 수 없게 젓고 있다.
우리는 이미 안전 구간인 울산 피닉스를 지나쳐.
또 다른 구간을 지나고 있다.
고요해 보이는 강물이더라도.
그 물 안에는 어떤 지형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빨라집니다, FWX, 빨라집니다!”
굽이굽이 몰아친다.
“선장님! 오른쪽에 암초가!”
물살이 빨라진다.
“넘어어어서어어어! 들어간다아아아악!”
진영이 반대로 뒤집히면서 순식간에 가장 앞장서게 된 선장 곽지운이 고개를 쳐들고 소리를 높인다.
강이 끝나는 지점.
내가 키의 타각을 돌린다.
좌측, 좌측으로.
“접근.”
우리는 오른쪽으로 함께 머리를 두며 홱 돌아선다.
“FWX! 고개 돌렸습니다! 고개 돌렸어요! 용 둥지 우측! 우측으로 확 돌아섭니다!”
“이러면 원딜이 최전선!”
“세자!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정글은 항상 가난한 라인이다.
게임사의 정책이 그렇다.
생각해보면 강한 게 이상한 라인이다.
어떤 라인이라도 한 라인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무조건 캐리가 가능한 건 정상적인 게임이 아닐 터.
하물며 두꺼비가 돈을 막 퍼주고, 버프 지속 시간이 더 길고, 용이 경험치를 몰아줘서.
풀캠 한 번만 돌아도 코어가 뚝딱 나온다면?
그래서 정글이 부자 라인이 된다면?
가장 자유로운 포지션이 돌아다니며 돈으로 라이너를 찍어누른다면, 사실상 정글러 하나로 승패가 결정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럼 모두 다 정글러만 하려고 하다가 결국 아무도 게임을 안 하게 되겠지.
게임 밸런스가 망한다는 거다.
“건아! 우리 원딜 또 저기 간다! 죽는다! 우리 원딜 죽는다!”
이게 라이너보다 정글이 더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뇨.”
그래서 나도 초반에 라이너와의 일대일은 피한다.
아무리 내가 다 피할 자신이 있다고 해도 내 역할은 싸움을 해서 킬을 따는 것보다는 ‘변수 덩어리’가 맞으니까.
“제가 먼저 들어갑니다.”
협의하지 않고 정해놓은 역할을 벗어나 피지컬로 찍어 누르는 것?
그건 언젠가 반드시 역풍을 맞게 되어 있다.
패치로건, 상대 팀의 집중 마크로건, 심지어 언론 플레이로건.
아니면 셋 다일 수도 있지.
수비수로 교체됐는데 내가 스트라이커를 하겠다고 뛰쳐나가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게임 리그라는 건 게임사라는 보이지 않는 심판이 존재하거든.
어떻게 아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권건, 권건, 권건! 쟈크! 쟈크가아아아아악!”
“뜁니다, 뜁니다, 뜁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준비하시고오오오오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가난하다’고 했지 ‘약하다’고는 안 했다.
상대적 가난으로 인해 할 수 있는 챔피언들이 제한되기는 하지만.
사실 지금 내가 못 하는 챔피언은 없다고 본다.
현실에도 시류라는 것이 존재하고.
게임에는 패치라는 게 존재하니까.
지금은 그렇다.
하지만 특정 토지에 지나친 투자 과열 현상이 일어나면 제한이 걸리듯.
나도 이번 메타 해석을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하면 안된다는 거다.
“쏴아아아아아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권건, 날아요! 납니다아아아아아악! 새총 발사아아아아아악!”
촘촘하게.
눈치를 봐가면서.
이건 FWX의 다양한 전략일 뿐.
지금 메타나 패치 사항이 절대 잘못된 게 아니라 내가 잘하는 것뿐이라는 걸 은근슬쩍 어필하자.
어쩌면 정글 너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물살에 흘려버리자.
“빅스, 빅스, 빅스, 피해야합니다! 피해야..!”
“전 승무원, 충격에 대비하라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대로 충각(衝角).
크고 아름다운 뱃머리로 상대의 옆구리를 들이박아.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굉음을 일으킨다.
“진영, 진영! 진영 무너졌어요!”
“지그으으으으음! 권건이 너무 단단해요!”
“이거 젤리 맞아? 아니잖아! 야! 솔직히 말해! 강철 슬라임이야?!”
“차아아아아아아니! 순식간에 따라 들어갑니다! 차니의 카뮐! 카뮐! 야! 레넥! 나와! 오소이이이익!”
그리고 그 즉시 적선의 갑판에 올라타 백병전을 벌인다.
“망나니! 레넥부터!”
항해사 미드가 추가 지휘를 내리면.
“오오오오오오케이! 땄어!”
갑판장 탑이 상대 갑판을 청소할 준비를 마치고.
“깍지! 거기 들어가도 돼! 노와드! 노와드!”
끊임없이 상대의 기물을 체크한 기관장 서포터가 마지막으로 신호를 발하는 순간.
“빅스, 빅스! 이거 퇴각! 퇴각하는 거 어때요! 이거 계속 항전하기에는 이미 바텀 타워가..!”
“다 무너졌어요! 이거 교환이라도 노려보나요! 차라리 교환이라도! 이건 이제 그냥 교환이라도 노리는 게 맞아요!”
“위기는 곧 기회?!”
상대 역시 최후의 저항을 꿈꾸지만.
“아니? 다 뒤졌어!”
선장 원딜이 고함치며 점령을 위한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딘다.
“세자, 세자, 세자! 바로 궁극기! 저어어어어억중!”
강력한 선장이 나서면.
그 순간이 정말 완벽한 점령을 위한 순간이다.
“권건 아직 살아있나요! 살아있나요! 네, 살아있어요! 실피! 실피! 저거, 저거, 마무리! 마무리라도 지어야..!”
“젤리! 젤리! 젤리이이이이이이익! 무한으로 즐기나요! 젤리가 왜애애애애 이렇게 많이 떨어져요! 후둑! 후둑! 후두두두두두두두둑!”
- 그러고 보니 FWX 젤리가 출시되었습니다
- 엌ㅋㅋ 그거 있더랔ㅋㅋㅋ
- 나 편돌이.. 빅스 껌 밀어놓고 FWX 젤리 앞에 전시함
- 프밍아웃ㅋㅋㅋㅋ
- 손나 결과 예측용 DP
“스킬을! 맞추니까! 둔화! 둔화! 무한 둔화!”
“아니 이거 사기 아니야?!”
나는 이런 LOS의 규칙 속에서 재미를 찾는다.
딜이 잘 나오는 챔피언이 최고인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팀전의 꽃은 상대를 흔들어 놓는 플레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때론 킬을 먹는 원딜보다 그랩을 잘하는 서포터가 멋져 보이는 것.
오더를 내리는 모든 순간이 마이크로 나가지는 않지만, 우연히 나간 한 마디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돈으로 찍어누르는 다중 킬 매드무비보다 5대5 한타에서의 완벽한 이니시와 핑퐁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그 이유는 이쪽이 더 현실에서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나도 좀 최근에 깨닫게 된 건데.
그러니까, 이런 장르 스포츠 정신의 원리는.
거창하게 우정이니 희생이니 같은 말을 붙이지 않아도.
결국 남을 빛나는 자리로 올려놓는 것이 결국 나를 가장 빛나는 곳으로 올려놓는 게 된다는 거다.
우리는 한배를 탄 한 팀이니까.
그게 LOS의 재미였던 거다.
“건아! 여기! 원딜! 한빈이! 묶어줘!”
그래서 선장의 요청도.
“라아아아아아아온이! 뒤에서 또 한 번 리벤지를 끊습니다!”
“차니의 카뮐, 날뜁니다!”
캐리하고 싶은 놈들에게 킬을 먹이는 것도.
“나 좀 살려줘! 끼야아아아아악!”
위험한 서포터를 살리는 것도.
“이이이이이이이걸! 이걸! 이걸! 빅스! 빅스! 비이이이이이사아아아아아아아아앙!”
“다시 뛰어요! 뛰어요! 젤리 폴짝폴짝 바운스! 바운스! 바아아아아아운스으으으으으으!”
“이 안에서는 포지셔닝이 아예 불가능합니다아아아아악!”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해주는 게 당연하다.
슬슬 패악질이네 뭐네 투정도 부리긴 하는데.
어차피 입으로는 뭐라고 해도 다 내 덕이라고 말하고 갚을 츤데레 같은 놈들이니까.
아.
그래서 이 배에서 나는 뭐냐고?
“빅스 지원군! 지원군! 지원군 없어?! 지원군 없어요?!”
“없어요..! 정글 하나 남았어요..!”
느낌이 좀 오지 않아?
“쟈크, 쓰러지지만.. 쓰러지지만..!”
“이거 영 별론데!”
“죽지! 않습니다아아아아아아악! 마지막까지! 라온이! 텔로 살려내면서어어어어어억!”
“대전 FWX가 또 한 번, 서울 빅스를 상대로! 완벽한! 경기력!”
“무실점 에이스르으으으으으으으을! 띄웁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지금의 나는.
“FWX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연달아 일곱번의 세트 승!”
“그리고 여덟번째 세트 승, 그러면서 또 한 번 매치 승을! 코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배.
무적함대 FWX의 전함, 그 자체다.
#
리그는 흥미진진하게 굴러갔다.
[ FWX의 밸런스 게임. ]
[ 이게 돼? 상체 중심의 삼각 구도에서 새롭게 찾은 탑 코르기와 정글 리싱, 그리고 미드 소랴카 ]
이 유행은 FWX는 주머니에서 꺼내 먹듯 다양한 챔피언을 사용하면서 무게가 실렸다.
[ 정글 ‘마이’로 승리한 부산 호넷, “요즘 뉴메타가 핫하다. 우리는 꾸준히 연구를 이어 나갔다. 리스크는 컸지만 좋은 도전이었다.” ]
어떤 팀은 뉴메타를 꺼내 들었고.
[ 광주 미라쥬, 드디어 시그니처 픽을 되찾은 미드 안희종(Bell).. “신드리와 오리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 메이지여 영원하라!” ]
어떤 팀은 과거의 픽으로 회귀하기도 했다.
색다른 픽이란 건 항상 리스크를 동반하기에, 섣불리 사용할 수 없어 눈치만 보고 있었던 팀들도 서로 새로운 싸움으로 범위를 넓혔다.
물론 상대를 봐가면서.
시대에 맞춰 틀처럼 존재하는, 성능이 좋고 강력한 메타 밴픽.
상대의 허를 찌르지만 상대적 숙련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뉴메타 밴픽.
그리고 메타에서 벗어날지언정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숙련도가 높은 시그니처 스타일 밴픽.
이 셋은 가위바위보와 같다.
상대의 밴픽을 지켜보다 적절하게 잘 섞은 뉴메타 밴픽은 메타 픽의 카운터가 될 수 있고.
뉴메타 밴픽에 대응하는 시그니처 밴픽은 선수의 숙련도에서 큰 차이를 벌릴 수 있어 카운터가 될 수 있으며.
시대를 타지 못한 시그니처 밴픽은 성능상 메타 밴픽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수들의 시그니처와 메타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시너지 효과로 해당 선수나 팀이 강력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
하지만 결국 실력 앞에 장사 없다.
극딜 볼베 이후 FWX는 한동안 특별한 정글로 뒤통수를 치는 경우는 없었지만.
[ FWX, “어떤 픽이건 전선 구축만 할 수 있다면 관계없다” ]
이로 인해 정글러를 경계하고 나온 팀들이 다른 라인의 픽으로 뒤통수를 맞았다.
[ 모든 픽을 이어주는 것은 정글 ]
다만 자유로운 밴픽 구도를 완성해주는 것은 권건이라는 정글러의 챔피언 폭이었다.
[ 권건의 주력 정글 스타일? “시팅도, 캐리도 아니다. 어떤 롤도 맡을 수 있는 선수.” ]
[ 박진현 감독의 새로운 한 수, “특정 라인이 밀린다면? 그것보다 빠르게 밀 수 있는 라인을 마련해두면 된다, 흔들리는 쪽이 지는 것.” ]
게임을 하되 승리에만 즐거움을 느끼던 권건이라는 선수가.
[ FWX 권건(GwonGun), “한 라인만 주인공이 되면 재미없잖아요.” ]
경기 자체를 즐기기 시작한 것.
그것이 이 유행의 시작이었다.
[ FWX의 트린세스 메이커! 탑 트린을 중심으로 4힐 조합 출동?! ]
[ 권건 캬서스, 노래 한 곡 뽑겠습니다.. “함께 했는데 이별은 너 혼자인 거야” ]
[ 아직 꺼내 쓰지 않은 것들이 수두룩하다. 메타 재해석, 챔피언 자유도의 상승? ]
한동안 선수 중심으로 보였던 리그였지만, 점점 혼란스러운 양상이 벌어지면서 선수들은 보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업무 시간이 늘어났다는 말이다.
지난 시즌 LKL을 1위로 마무리 지었던 인천 트릭스터는 여전히 메타 픽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월드 무대에서는 가장 높은 성적을 기록했던 FWX가 꾸준히 다양한 구도를 선보이면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물론 뉴메타도 메타이기 때문에 현재의 아이템, 패치의 방향 등에 영향을 받아 아무 때나 꺼내 쓸 수 없지만 지금은 자유도가 많이 올라갔다는 것을 FWX에서 증명하고 있는 상태.
결과적으로 미리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던 팀들은 호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팀은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즉, 시험 범위가 ‘누군가’에 의해 광범위해지기 시작하면서.
미리 예습과 복습을 철저하게 해뒀던 학생들이 웃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서로 ‘만만한’ 팀을 찾아 각 팀이 경쟁하기 시작하니 매일 있는 경기 일정이 하나하나 매력으로 흘러넘친다.
하위권 경기를 볼 이유를 잃어가던 리그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이런 경쟁의 심화는 팬들에게도 만족스러운 상황이었고.
LKL 뿐만 아니라 유저들 역시 이런 붐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기 시작한 게임사에도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 ####충분히 가능합니다#### 모데 정글, 야 너두 다이아 갈 수 있어! ]
[ 한☆번☆잡솨봐%% 제주 F.L.E 표 정글 딜탱 &크$샨@테&]
[ ??? : 클래드의 재해석! 우리만 급경사? 단숨에 기울어진 게임 만드는.. ]
[ 요즘 애들은 쉔을 모른다고?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Mirage.광주 ]
[ 워웍. 워윅워웍워윅워윅워웍. 나는 wolf! 나는 wolf! ]
[ 종잣돈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부동산 투자 최강자, 스캬스캬스캬너 ]
뜻밖의 분석이나 채널들이 히트를 치기도 하면서.
‘새로움’면에서 밀렸던 K리그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 LKL 스타일 밴픽에 대한 “주목” ]
[ 유럽으로 역수입된 트린과 볼베 ]
반응은 공식 석상에서뿐만 아니었다.
- 윤도형 : 뭔데 왜 나 빼고 너네만 재밌는 거 하냐?
여기저기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