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물레방아 (Feat.)
[ 문봉구의 LIVE : 탁주,, 한 사바리,, 걸쳤읍니다,,, ]
“여러부우우우우우우우우운.”
문봉구는 걸쭉하게 목소리를 뽑아냈다.
“그거어어어어어어어 아임다!”
하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제가 딱 말씀드립니다. 아임다, 진짜 그거 아임다.”
- 왜ㅋㅋㅋㅋ
- 건이는 되고 우리는 안되나
- 할 수 있지 딱 갈쳐줬자나~
문봉구는 올해부터 고정 방송을 시작했다.
종종 FWX 스트리밍 룸을 빌리기도 했지만, 얼마 전부터 집에 제대로 된 방송 장비를 꾸려 편하게 방송을 진행한다.
이제부터는 이게 업이니까.
아쉽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사자가 풀을 뜯어 먹고 살 수 없듯.
사람에게도 맞는 옷이 있는 법이다.
문봉구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지, 아이지. 그거 아이지. 들어보소.”
- 무우우우훈봉구~ 벌집됐네에에~ 흐어응~
- 배인이랑~ 눈 맞아 삣네~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구수한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이 챔 저 챔 손대지 말고호~ 둘만 낳아~ 자알 길러허~ 그으러면으흔~ 갈 수 있어 플래티넘~”
방장 문봉구 역시 구성진 가락을 뽑아낸다.
시청자들과 한참 열창하던 그가 연습 게임을 켠다.
“어이구, 어이구, 행님들. 그러니까.. 봐봐, 응? 여기 딱..”
그리고 쭉 정글을 돌아내리며 해설을 진행했다.
“봐봐요. 이게 보통은 건이처럼 빨리 잘 안된다니까는. 만약에 상대 정글이. 어? 다른 거면은..”
흐르는 대로 방송하는 문봉구의 오늘 방송 행선지는 권건 플레이의 현실성.
문봉구는 탑 라이너였지만 다른 라인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막말로 2군에서라면 모든 라인에서 뛸 수 있을 정도.
문제는 그 재능이 탑 쪽으로 쏠리지 않았다는 것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방송을 할 때는 큰 도움이 된다.
- 그래서 왜 우리는 하지 말라고 허냐고~
- 야 차니처럼 탑 배인 고르고! 세자처럼 탱 배인 트리 타고! 권건처럼 극딜 볼베 정글 딱 돌아라! 이게 말 아니여?
- 고것이 맞지잉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방 무슨 컨셉이에요? 문봉구가 선수명? 본명?
- 놀랍게도 본명이여
- 왜 봉구가 어뗘서 그려? 좋기만 하구먼
“건이가 하는 플레이? 이거는 비 오는 데 우산 안 쓰고 비를 다 피하겠다 뭐 그런 거지. 햄들. 우리는 이러면 감기 걸려요. 그라문 곤란하잖어. 걱정? 응. 맞지. 행님덜 걱정이에요. 발바닥 땀 나도 양말 잘 갈아신고. 하루에 한 번 꼭 빠시고..”
다양한 시각으로 판단한 분석 자료는 문봉구 특유의 말투로 좀 더 쉽게 전달된다.
- 나 봉구형 은퇴 기원했었는데 미안해
- 솔직히 난 악플 좀 달앗엇어
- 어차피 여기 전과자들 뿐이여..
- 괜찮어 봉구형님이 주기적으로 죄를 사해주시니께
FWX 스트리머 컨셉 리스트에는 ‘코지하고 친밀한 분위기’라며 제법 그럴듯한 단어로 설명되어 있었지만.
“어엉.. 맞아. 편히 머물다 가셔요잉. 대신 극딜 볼베하지 마쇼. 진짜. 왐마. 상상만 해도 코가 촉촉해지구 땅콩이 축축 처진다. 어, 응. 그거 아이다.”
- 이잉이이잉~ 형님 그럴거면 걍 땅콩 떼쇼~
- 쓸 일도 없는 거 무겁기만허지 왜 달구다녀~
- 어유~ 형님덜~ 떼면 더 끔찍혀~ 우리 봉구 장가는 가야지~
- 그럼 그 담에 뗘~
- 고것이 좋겠구먼ㅋㅋㅋㅋ
현실은 언제나 기획과 다른 법이었다.
하지만 결국 문봉구에게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편한 반말방이자, 그를 닮은 엉망진창 사투리 컨셉의 채팅이었다.
“행님덜. 손잡고 같이 떼러 가면 내가 생각은 해보께요. 지금은 안돼.”
- 왜 안돼 떼자 떼~~~~ㅋㅋㅋㅋㅋ
- 아따 우리 봉구! 형님덜 말 안 듣는거여?
- 뗀다며~~~~~ 형님 말 무시하냐???
때론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방장을 곤란하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왜냐꼬. 나는 지금 탑.배.인.해야되니까.”
- 햄 뭐야
- 왜 니는 하는데
- 행님 이거 완전 트롤 아니여?
- 함 봐야것어 얼마나 잘하는지
문봉구는 타고난 성격상 그런 부분들을 유들유들하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 그러니까 봐봐. 내가 약하디약한~ 탑의 배인을 보여주겠다는 거여. 나랑 여러분들이랑 또오오오옥 닮았잖어요. 그치?”
- 앗씨ㅋㅋㅋㅋ
- 우리 봉구가 약하긴해ㅋㅋㅋㅋ
- 눈높이 교육 쉽ㅋㅋㅋ
여전히 랭크로는 천상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스스로 ‘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캐릭터 역시 그랬다.
리그에서 가졌던 이미지가 있으니까.
약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라이너가 방송에서 시청자를 모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당연하지만 성적이 좋은 강팀일수록 팬이 많고.
그런 강팀의 라이너가 대놓고 약하다는 평가를 들을 일은 없다.
오히려 팬들이 놀릴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과거에는 정말로 강했거나 커리어가 대단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리그와 방송이 다르다는 것은 과거에 은퇴했던 수많은 프로게이머로도 알 수 있다.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뒀던 프로들조차 방송에는 실패한다.
시장이 다르니까.
그러니까 약팀의 팬, 그중 특정 라이너라면 기존 스트리머들에게도 밀리는 것이 현실.
팀 팬층도 얇은 데다가 개인의 팬층 역시 얇으니까.
일부는 코치나 스태프 등 여전히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길을 택하지만.
수많은 이들이 뒤늦게 새 인생을 시작하거나 모아뒀던 돈으로 작은 자영업 혹은 사업을 시작한다.
리그에서 뛸 수 있는 시간은 짧지만 살아야 하는 인생은 기니까.
“엉. 자. 보소! 똑똑히 지켜보소. 내 이름은 문봉구. 선수명보다 본명이 더 유명한 남자.”
그런 면에서 플레이로는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문봉구가 고른 길은 그에게는 과감한 선택이었고.
“그리고 이유차니에게 배인을 전수해준 사람.”
- 아 그거 형이야?
- 구라지
- 근데 FWX 영상 보면 봉구형이 뭐 많이 가르쳐줬다던데
- 우리~~ 봉구가~~ FWX의 구루~~ 뭐 그런거여~~~
- 구루가 뭔데 쉬펄~~~~~ 양놈 말이여~~?
- 아따 스승 말이야~~ 정신적 스승~~~
- 아~~ 사부님이여???
- 그치~~ 봉사부~~~ 봉사부여~~~
- 인정이여~~~~
현재 FWX의 순위 급상승.
권건이 떠난 뒤 흔들리던 퓨처스 리그 성적의 안정화, 새롭게 데려온 2군 탑의 성장.
팀을 위해 ‘스스로’ 신인 이유찬을 추천했다는 미담.
그리고 지난 시즌 말미 FWX에서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을 때도 선수들이 여전히 문봉구를 한 팀으로 표현하던 일까지.
문봉구의 선택을 응원한 FWX, 그리고 선수들로 인해 일어나는 낙수 효과.
“빙빙~ 돌아가는~ 물레방아~ 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츠어러어엄~”
- 물레방아 맞어?
- 뭔가 묘하게 가사가 구수혀
- 회전목마 ~The 의문의 방앗간행~
- 등속력 회전 운동이라는 부분만 같은 것 같은디?
문봉구는 쏟아지는 물을 바라만 보지 않았고.
어떻게든 그것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가하~ 이 게임 끝나고오~ 듀오 함 보여 줄게~”
- !
- FWX 최초의 스트리머 봉구쟝! 응원해!
- ??? : 저도.. 있어요..
- 누구랑? 누구랑? 누구랑?
- 믿지..말어라.. 저래놓고 전에도,, 지니랑 하더라,,
선수 때보다야 훨씬 적었지만 계약을 통한 기본급도 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역시 썩 편안하고 괜찮았다.
좋아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긍정적인 마인드의 문봉구는 어쩌면 평생 찾을 수 없었을지도 모를 천직을 만났다는 것을 느꼈다.
항상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문봉구는 자신이 받은 것들을 언젠가 반드시 돌려주기 위해.
묵묵하게 물레방아를 돌려 곳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매일이,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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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물에 비유할 때가 있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시간.
시간은 점점 더 빨라진다.
FWX 선수들은 전보다 일정이 많아졌다.
수요가 늘어났으니까.
이제 FWX에서 팬들에게 공유한 1월의 캘린더는 게임 방송, 멤버십 라이브, 그리고 콘텐츠 업로드로 가득 메워져 있다.
[ (FWX 여섯 분 토론) 권건의 패악질? 해명합니다 ]
깔끔하게 정돈된 공용 피드백 룸.
“..건이가 패악질은 몰라도 악질은 맞긴 한데.”
토론 논제는 ‘피드백 내용 확인을 위해 휴식 시간에 찾아가도 되는가’.
“지금 발언하신 분이 바텀 맞습니까?”
권건의 질문에 폴짝 뛰어오르는 건 곽지운이었다.
“아뇨? 쟨 그냥 서포터인데요? 원딜과 서포터의 견해는 다릅니다.”
“지운이 형.. 손절 속도 지렸다.”
“바텀은 하나 아닌가요?”
“아니 사람이 둘인데 무슨 소리예요! 정글러! 정글러! 이 사람아! 우리가 어떻게 하나가 돼! 쟤랑 나는 분리된 생명체야! 절 믿으세요! 저는 이 팀에서 원딜을 맡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말이 쏟아진다.
“와씨.. 지운이 형 아무 말이나 한다. 진짜 웃겨.”
“우리 하나 아니야! 나는 원딜이고! 쟨 서포터야! 그리고 저놈이 임포스터야!”
“뭔 개소리야!”
“최은호 어시 압수.”
“다른 서포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사회자의 지목.
“LOS는.”
묵묵하게 입을 다물고 있던 유상준이 입을 연다.
“캐리.해주면. 끝.”
- 삑
짧고 굵은 한마디에 ‘그럴 수 있다’ 쪽의 표가 순식간에 올라간다.
“아니! 아니! 아니! 그런 게 어딨어! 아니, 그럼! 어! 캐리해주면 막! 맘대로 내 방에 들어오고 그래도 괜찮아?”
억울해진 최은호가 방방 뛰었지만.
“상관없는데? 니 방에 뭐 있어?”
“저 형 수상하다.”
“아니! 개인 시간이잖아!”
“그러니까 형 개인 시간에 뭐 하시는?”
“여러분, 여러분, 최은호 저렇게 말해놓고 진짜 찾아가면 엄청 반가워하거든요? 저는 그거 꼴 보기 싫어서 안 가요.”
사실 관심받는 걸 좋아하는 최은호는 양치기 소년 역이다.
“아니이이이이! 너네는 피드백 안 받냐고오오오!”
“형. 나는 그런 적 없어.”
암기력이 뛰어난 미드가 어깨를 으쓱이고.
“또 들으면 되니까 그건 상관없긴 함.”
어차피 만인의 피드백 속에서 살아가는 탑은 고개를 흔든다.
“오히려 나는 기상 알림 노크 쪽이 좀 아쉽긴 해.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서. 어차피 노크로는 못 깨거든.”
사람을 좋아하는 원딜도 마찬가지다.
“근데 진짜 좀 무서울 때는 있지 않..”
“그럼 착한 정글과 계속 지기 vs 무서운 정글과 계속 이기기.”
“PD님, 지금 도형이랑 건이 비교하는 거예요?”
“아니지. 윤도형은 착하지도 않았어.”
“인정.”
“와.. 씨.. 닥후..”
“아.. 그래.. 아.. 어쩐지.. 최강 탱커 윤도형이 없어져서 내가 이렇게 갈굼 받는 거구나.. 아.. 서럽고 그립다 릴라퐁..”
우당탕, 한참 말이 새고.
결국 그들은 프로게이머다운 결정을 내렸다.
“그럼 정정당당하게 미드빵을 떠서 이기는 쪽 말이 옳은 걸로 하자.”
“너랑?”
“아니? 건이랑.”
“그걸 어떻게 이겨? 차라리 주먹싸움을 시켜라.”
“주먹으로 붙으면 이길 수는 있고?”
곽지운의 말에 최은호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얘 기권한대요!”
결론이 났다.
“그럼 이제 아침 말고.”
“그래! 그래! 건아! 그래!”
“자러 가기 직전에 할게요.”
“여긴 지옥이야.. 피드백 지옥..”
이제는 사소한 것들도 콘텐츠가 되고.
“그럼 오늘 패배하신 클래스 선수. 벌칙 받겠습니다!”
“뭔데요?”
“‘FWX 채널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부분 녹화해 주고 가시면 됩니다.”
“잠깐만요! 그거 최은호한테는 포상이잖아!”
“내가.. FWX 채널의.. 주인공..?”
“솔직히 시청자분들도 너보다 건이가 하는 거 보고 싶을 것 같은데.”
“은호 형보다는 건이가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야! 권건 충신놈들! 다 조용히 해! 저 당당하게 벌칙 갑니다!”
“그리고 이 머리띠와 대머리 가발을 착용..”
“잘 갔다 와, 은호 형.”
“화이팅.”
흐트러지기 십상인 것들도 자리를 잡는다.
“나 갑자기 몸이 아픈 것 같아요. PD님. 나 진짜 아파. 너무 아파. 감기 기운 있는 것 같아. 아니면 먹은 게 체했나? 촬영 힘들 것 같은데..”
“은호 형. 아프지 마세요.”
“건아.. 그래도 내 걱정 해주는 거야?”
“우승해야 하니까.”
“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다 잦아진 콘텐츠와 올라간 관심이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 내가 이 꼴을 봐야겠어?
- 클래스 뭐야? 신흥 광대야?
- 이게 진짜 수요 없는 공급
- 클혐을 멈춰주세욬ㅋㅋㅋㅋㅋ
- FWX 되게 소탈하네,,^오^ 우승이 목표라니
- 나.. 형들 믿어..
이런 핵심 추가 촬영을 비롯해.
선수단의 다른 1월 일정으로는 실제 경기와 12월에 미리 촬영했던 워크샵이나 연초 콘텐츠, 광고 공개 등이 있으며.
앞으로는 성큼 다가온 2월을 위해 게임 말고도 설날 콘텐츠나 정규 구성 코너 등에 참여해야 한다.
선수들은 한배를 탔다.
그리고 흐르는 시간의 물살에 몸을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