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감독 차이
“미드는.. 똑똑하고 예술 감각이 뛰어나대.”
하지만 다른 채팅도 선명히 보인다.
이미 선수 개인을 넘어 일반적인 미드 라이너들에 대한 성격론.
- 미드들 똑똑한 건 인정이죠~
- 그래서 재수 없긴 해.. 존나 이래라저래라..
- 캐리병이 거의 슬개골 탈구 수준임..
- 보통은 허세도.. 아 물론 우리 라온님 이야긴 아니구요..:b
- 성격도 더럽게 예민함 아 물론 형 얘긴 아니구요..:d
슬슬 라이브에 들어오기 시작한 팬들도 참을 수 없어 몇 마디씩 던진다.
다들 생각하는 이미지란 게 있잖아.
그리고 섣부른 일반화는 안 될 말이겠지만, 스톰 미드 강준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말이라 소름이 끼친다.
그 형이 진짜 그래.
까칠한 캐리병에 허세도 있는데 안 받아주면 삐지거든.
“또? 그거는? 픽과 생년월일..”
“내가 나서는 것보다는 남을 치켜세워주는 것을 좋아한대.”
“음.”
김예성은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이거 그냥 플레이 스타일 이야기 아니야?
우리 미드는 선호하는 픽을 경기에서는 잘 쓰지 않는 타입이거든.
폼과는 별개로 캐리롤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있는 편이라고 해야 할까.
“좀 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한 해가 될 거래.”
“오.”
“허리를 조심하고.”
“어. 맞아. 나 그래서 운동하는데. 흠. 족집게네?”
에이.
오래 앉아서 일하는 사람 중에 허리 좋은 사람이 어딨어.
고질병인데.
- 형 솔직히 똑똑하고 예술 감각 뛰어나다는 말 좋아서 맞다고 하는 거 아니야? ㅋㅋㅋ
- 야 조용히 해 우리 온이형은 예민한 미드니까
- 눈치 챙겨요^^
- ㄷㄷㄷ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내용이 꽤 선수들에게는 그럴듯하게 느껴졌는지.
“나는 무슨 내용이 있어도 신경 안 써. 나는 보통의 원딜이 아니니까..”
마지막까지 버티던 곽지운도 은근슬쩍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뭐래?”
“원딜놈들은 그냥 다 자기가 특별한 줄 아는 무한 이기주의래. 숟가락만 들고 오는데 심지어 숟가락질도 자기 손으로 안 하는 정신 연령이 낮은..”
“그거 너무 개인 의견이 많이 들어간 거 아니냐?”
“아닌데.”
“그 챗 봐봐. 어? 동작 그만..”
- 존나 니 도움 따윈 필요 없으니까 다른 라인으로 꺼지라는 원딜
- 그리고 출장 다녀오면 은근슬쩍 포골 챙겨주는 원딜
- 씨발데레 세자
- 말넘심;
- 아니야 우리 세자는 이런 말 좋아해ㅋㅋㅋㅋㅋㅋㅋㅋ
- 쟨 우리가 뭔 말을 해도 좋아해
- 댕댕이 재질 원딜
- 희멀건하게 탈색했으니까 말티즈?
- 놉
- 그럼 비글
- 협의 완
“그리고 서포터는 착하대.”
응, 아니야.
- 새디스트와 마조히스트의 바텀 궁합
- M 중 M 클래스
- 멋지게 죽는 것에 목숨을 건 남자
- 어머님께서 태교를 아놀드 슈워제네거로 하신 듯
“여기 계신 분들도 아니라는데?”
“웃기지 마. 지금 다 연기하는 거야. 여기 내 팬분들밖에 없어.”
- ?
- 우리 형은 근자감이 매력이긴 해
- 예언은 할 수 있지만 자신의 미래는 볼 수 없는 그
“유니폼 판매 개수 체크해 볼까요, 클 선생님?”
“그거론 소용없어..”
“?”
“내 팬들.. 일코 지려.”
- 나도 모르는 사이 일코하는 덕후가 되어버린
- 형 미안한데 아니야.. 형 솔직히 착한 건 아니야..
- 우리 서폿 형 좀 그만 놀려라
- 아무리 아재 같고 자뻑 심하고 겉멋이 심해도 그렇지 알고 보면 착한 형이야
- 놀릴 때 타격감 지리는 걸 어떡해요ㅍㅋㅋㅋㅋㅋㅋ
“서폿 해방 전선 독립투사라서..”
- 일단 은호 오빠 팬이면 숨기긴 숨겨야 함 일단 건이 오빠로 영업해야 댐
- 그리고?
- 건이 오빠 팬만 늘어남ㅎ 독립 실패ㅎ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마라, 최은호. 결국 서포터가 착하려면 조건이 하나 있다.”
“착하면 착한 거지!”
“아니?”
“그럼 뭐.”
“좋은 원딜을 만나야 착하게 살 수 있음.”
- 존나 천생연분
- 형들 싸우지 말고 행쇼해
- 세자 포지셔닝 받아주는 서폿 또 없고 클래스 감당하는 원딜 또 없을 듯?
“...”
음.
오늘도 최은호는 말싸움에서 진 것 같다.
어영부영 두 사람 이야기가 넘어가고 남은 시선이 내게로 꽂힌다.
“건이는?”
“저는 별로 관심 없는데.”
내가 어깨를 으쓱했지만 나보다는 다른 선수들이 더 난리다.
“아냐, 뭔가 분명..”
“읽어줄게.. 봐봐.. FWX의 정글, 그림자 속에 제 정체를 감추었으나,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이제 날아오를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잠룡과 같다.”
- 오
- 건신! 건신! 건신! 건신!
- 잠룡! 잠룡! 잠룡! 잠룡!
- 건룡! 건룡! 건룡! 건룡!
“너무 멋있는데.”
“재미없어.”
채팅에도 시팅류 정글러는 최고의 죽마고우다, 정말 성격 좋은 사람이다 따위의 호평밖에 올라오지 않는다.
“하지만..”
“?”
“천년의 그날이 머지않았으니. 승천을 위해 패악질을 부리기 십상이니 조심하라.”
- 오.
- 오.
- 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아.. 패악질..?”
“아앗.”
“음. 우승.. 해야지.. 아암 우승해야지..”
왜 내 눈치를 봐?
- 마냥 순해 빠진 인상은 아니긴 해..
- 주연 자리 없으면.. 조연시킬 바에 악역 시킬 것 같은..
- 너무 강해서 주연 잡아먹는 상ㅋㅋ
“여러분. 사실은.. 건이 쟤도 보통 또라이가 아니거든요? 최근 들어서 심해졌는데..”
바짝 독이 오른 최은호가 소곤거리고.
“은호 형. 지금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운동 때문에 그래?”
김예성이 당황해서 꼼지락거린다.
“예성아, 내가 운동이면 말도 안 해. 근데 연습 안 하면 할 때까지 쳐다봐요.”
“그냥 본 거겠지.. 할 일 없나 싶어서.. 형 안부도 물을 겸..”
- 그럴 수 있지
- 걱정하나보당ㅎㅎ
맞다.
그거야.
잘한다, 김예성.
“오랜만에 늦잠 좀 자려고 하면 깰 때까지 문 두드리고.”
“기상 알람을 해주는 거 아닐까? 혹시나 형이 지각할까 봐..”
- 같이 가려고ㅜㅠㅜㅠ
- 마음 씀씀이가 곱네
- 근데 말없이 문만 두드리고 있는 건 좀 무서운데
“질문 하나 해서 답 받으면 다음 날 아침부터 문밖에서 물어봐. 잠결에 대답 못하면 다시 피드백 한 시간 조져.”
“복습.. 복습이지.. 다.. 도움이 되라고.. 그래서 형 많이 늘었잖아..”
대답하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 우리 엄마가 나 구구단 외울 때 그랬는데..
- 우리 교수님도 연구실에서 밤새고 간신히 잠들면 꼭 아침에..
- 우리 부장님도 업무 외 시간에..
음.
내가 그랬나?
“그리고 이래 봬도 같은 팀인데 솔랭에서 만나면 유독 우리만 찢어. 사람들이 나 건이랑 만나면 어뷰징하냐고 의심해.”
“억. 음. 엄.”
결국 김예성의 말문이 막힌다.
- 건신..
- 우리 건신 해킹 당했던 거 아닐까?
- 해킹한 놈이 진랭킹 1위?
- ···
아니, 왜 이걸 대답을 못 해?
그럴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래야 다음에 같은 각으로 안 죽지.
내가 뭐 그런 거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인 줄 알아?
“용하시네..”
몸을 뉘이고 있던 이유찬이 중얼거린다.
점 같은 건 믿을 게 못 된다니까.
#
@FWX_LOS
- (사진)
감사합니다! vs 유니버스 다시 한번 승리!
독하게 돌아온 FWX의 진면목(폭죽 이모티콘)
차근차근 준비해온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b
이제는 FWX의 시대입니다.
#FWX #FWXWIN #BeLegend
SNS 역시 시동을 제대로 걸었다.
전보다 훨씬 늘어난 구독자 수와 팔로워.
그리고 한층 더 빨라진 업로드 시간.
그리고 FWX는 이제 다양한 언어를 추가했다.
그전까지는 한국어로만 서비스하던 다양한 콘텐츠에 자막을 비롯해 각종 공지, 콘텐츠 내용 역시 하단에 다른 언어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전에는 왜 안 했었냐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볼 사람이 있어야 하지.
해당 글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의 넥서스가 터지기 일보 직전에 업로드되는 것처럼 빠른 이 SNS는 팬들 사이에서도 많은 화제가 됐다.
다만 중요한 건 여기에 세로 드립이 있다는 것을 모든 팬이 알아차렸다는 점이다.
- 미친ㅋㅋㅋㅋㅋ 감독차이ㅋㅋㅋㅋㅋㅋ
- 배인 골라 준 감독 vs 칼리 골라준 감독ㅋㅋㅋㅋㅋ
- 영어 번역판도 COACH GAP임ㅋㅋㅋㅋㅋ
- 존낰ㅋㅋ 중국어도 그러냐?
- ㅇㅇ
- 어휴ㅋㅋㅋㅋㅋ 속이 다 시원하네ㅋㅋㅋㅋㅋ
- 유니버스는 코치진이 몇 명인데 저걸 못 이겨..
- 그러니까 탑 칼리를 왜 시킴;;
- 이해가 안 되네 진짜 유니버스 감독 존나 멍청한 듯
배인에게 향할 뻔했던 화살은 그대로 유니버스로 돌아갔다.
“감독님 아직도 히스테리?”
“응. 지금 진짜 극대노하신 거 아니야?”
유니버스 코치들은 몰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동원 감독은 FWX의 SNS를 보자마자 얼굴을 찌그러뜨렸고, 지금껏 피드백 룸에 틀어박혀 있다.
“아.. 이게..”
쿨한 태도로 ‘역시 외국계’라는 평가받는 유니버스의 김동원 감독.
그는 밖에서는 주로 Jack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다른 LKL 감독들이 다소 노안이고 스타일 관리가 잘되지 않는 것과 달리, 플라워 패턴 셔츠 등 힙한 스타일링을 즐기는 그는 인기가 꽤 많았다.
사실 그가 끙끙 앓고 있는 이유는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정인이가 다 해버려서..”
팀의 최정인이 나서서 했던 짧은 인터뷰.
세상의 모든 시원시원함을 합친 것 같은 그의 발언에 칠 대사를 모두 빼앗겨버렸다.
‘다음에는 다를 것이다’, ‘탑 대 탑은 비긴 거나 다를 바 없다’, ‘이렇게 호적수가 나타나다니 나는 행복하다’, ‘유니버스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져놓고 못 하는 소리가 없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워낙 성격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 유명해서 팬들 역시 최정인의 태도를 받아들였다.
워낙 자신감이 넘쳐서 다음에도 믿어 줄만 하다는 의견이 주류였고, 최정인이라는 사람 자체가 미움받기 쉽지 않은 스타일이니까.
다만 패배의 원인은 칼리를 골라줬다고 추정되는 감코진에게 쏠리고 말았다.
물론 그건 진실이 아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중요한 게 아니다.
“뭐라고 하지? 아, 이거 빨리 대답해야 하는데. 늦으면 지는 건데..”
감독 외에 인력이 많은 유니버스.
코치들 앞에서는 짐짓 엄중한 얼굴로 자중하라고 말하고 돌아온 그는 FWX의 SNS를 켜놓은 채 손끝만 달달거렸다.
“호넷에 물어볼까.. 걔들이 이런 거 잘하는데..”
홍보팀이 보내온 사내 메신저 메시지가 반짝인다.
- 추가 업로드 없으십니까?
“아니, No! Not yet!”
이대로 넘어가면 안 되는데.
뭐라도 대답해야 하는데.
그래야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는데.
대외적으로는 시크한 이미지를 추구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소심한 그는 뜻밖의 타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Chill..한.. 표현..”
한참을 검색하던 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이번엔 패드에 끄적인다.
“그러니까.. 노.. 프라블럼..”
감독 역시 자기 PR의 시대.
포트폴리오와 능력이 비슷하다면, 그다음으로는 감독 개인의 스타성도 중요한 법이다.
개인 팬덤을 가진 드문 감독으로 은근히 다른 감독들을 무시하던 잭 감독은 불현듯 위협을 느꼈다.
“아씨.. 박 감독 번호가 뭐더라?”
약팀일 때는 단점에 가까웠던 FWX 순정남 이미지나 선수를 우선시하는 것 같았던 박진현 감독의 발언들.
이건 FWX가 날아오르기 시작하면서 모두 장점으로 승화됐다.
말을 깔끔하게 하는 편인데다 동안인 박 감독 개인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었다.
특히 FWX에서 권건 영입 콘텐츠 업로드 며칠 후.
비하인드 영상으로 권건을 직접 차에 태우고 운전했던 가죽 장갑의 남자가 박 감독이었고, 특별한 스타일링이라도 받은 듯 평소 LKL 밴픽 때 입던 유니폼이 아니라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이 화제가 됐다.
사실 복장보다는 진중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팀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사였기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기억에 남는 건 비주얼이다.
여태껏 선수단과의 유대를 위해 정장이 아닌 유니폼을 입고 밴픽을 진행한 게 틀림없다는 둥.
진짜 기다리고 기다려서 꽃신을 신고 만 일편단심 감독이라는 둥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태까지 유일한 라이벌일 줄 알았던 미라쥬의 김병우 감독보다 위협적인 상대.
팀이 지는 것도 안 될 일이지만 김 감독은 자신의 캐릭터를 빼앗기지 않는 것 역시 중요했다.
“일단 한번 만나자고..”
어차피 삶은 개인주의니까.
절대로 여태 쌓아놓은 이미지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이런 사소한 싸움에서도 질 수 없다.
여기 감독.
아니, ‘감독’이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개인들에게도 작은 기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