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194화 (194/326)

194화. 제발 그만해

펜타킬.

혼자서 다섯명을 마무리 지은 것.

골프로 치면 홀인원과 비슷할 것 같다.

포지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의 유저들도 펜타를 해본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니까.

실제로는 팀원들의 협력이 있었을지언정 어쨌든 이건 기분 좋은 기록이다.

리그 공식 펜타킬에 대한 기록을 따로 남기거나 ‘최고의 펜타킬’ 등으로 등재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 폭발력이 마치 만루 홈런과 같아서 상대 팀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놓는 데에 도움을 주고.

‘중요할 때 해주는 선수’라는 이미지를 부여한다.

그래서 프로씬에서도 트리플 킬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가능하면 그 사람에게 킬을 밀어주려고 하는 편이다.

뭐, 일부러 뺏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번 내 펜타킬에서 우리 팀원들은 나에게 펜타를 주기 위해 집중력을 다 끌어다 썼다.

풀딜을 꽂은 건 아마 서포터인 최은호 뿐일 거다.

특히 김예성은 돌아오는 내내 자신이 얼마나 충신인지를 어필하기 바빴다.

베이거로 막타를 먹지 않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이유찬은 다음에는 자기 차례라고 선언했고, 곽지운은 배인으로 이겨서 행복해했으며.

최은호는 ‘쟌나 더 매드 무비’라는 숏 클립을 계속해서 돌려봤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서포터 유상준이 이유찬에게 무언가 속삭이자 우리 탑은 처음 보는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말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

펜타가 그렇게 신기할까?

앞으로도 계속하게 될 텐데.

어쨌든 이건 먹은 쪽 이야기고.

펜타를 내준 쪽은 당장 컴퓨터를 꺼도 이상하지 않다.

아마 그날 잠도 못 자고 이불만 찼을 테니.

그래서 지금.

- 강준윤 : 야 후배 내가 그림 하나 만들어준 거다;;;;;;^^ㅋ

- 강준윤 : 나 그때 궁도 있었고 ㅇ어?/?;;;;;;;;;;;ㅋ; ㅋㅋ;;;;;

- 강수달 : 근데 준윤이 쟤 게임 끝나고 너 욕 엄청 했다?^^*

- 강준윤 : 형 좀 닥쳐 내가 언제 그랬어ㅋ; 바로 피드백 하느라 바빳는데;;;;;;

- 강수달 : 자기 죽는 장면 0.25배속으로 보더라고^^* 많이 억울했나 봐

- 강준윤 : ㄷ

잠시 톡이 끊긴다.

- 강수달 : 근데 건아 너 너무 심했어*^^*

- 강수달 : 나 팔이 부러진 것 같아^^~ 어떡해?

스톰의 강준윤은 든든한 우군인 원딜 강수달을 불러 그룹 채팅을 만들었다.

오리지널과 분신 같다.

- 강준윤 : 씹냐? ^^;;;;;;;ㅋ

- 강수달 : 1 사라진 거^^* 보여~

- 나 : 지금 좀 바빠서요

- 강준윤 : 완전 아침인데 바쁘긴 뭐가 바빠 뭐 벌써 연습함????ㅋ;;;;;; 존나 소름 끼치네; 밥 안먹어?;;

- 강수달 : (준윤이 진짜 무서워하는 중*^^*)

해가 중천이다.

우리 일정상으로는 아침이 맞을지도 모르지.

- 강수달 : 연습 많이 해서 유니버스 원딜 찢어 놓으려고 그러는 거지?*^^*

- 강수달 : 내가 많은 거 안 바래~*^^*

- 강수달 : 다른 애들 KDA만 나보다 낮게 만들어줘^^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 강준윤 : 니는 자존심도 없어????????ㅋ;;;

- 강준윤 : 지금 청탁하냐? 이거 불법이야;;;ㅋ;;;

- 강수달 : 어디 형한테 이 건방

결국 톡이 멈춘다.

휴대폰을 잠근다.

사실 강수달이 강준윤을 잘 돌봐주는 타입이지만, 강준윤은 자기가 더 형이라고 생각하는 면이 있다.

뭐 어쨌든.

“저기.. 건아..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해?”

“나 이제 너무 힘들어.”

“아직 10초 남았어요.”

“게임 못할.. 것 같은데.”

“야.. 깍지.. 말대꾸하지 말라고..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여기는 FWX 트레이닝 룸.

나와 곽지운, 최은호는 나란히 스쿼트를 하고 있다.

시즌오프 동안 나는 선수들에게 방학 숙제를 내줬다.

그건 기초 체력 향상과 하체 운동.

“삶에서 성취감을 느낄 때 가장 필요한 게 뭘까요?”

“나 그거 알아.. 뭐더라.. 자존감? 나 사랑하기?”

곽지운이 후들거리며 대답했다.

“또?”

나와 눈이 마주친 최은호가 울상을 짓다가 입을 연다.

“어.. 사람.. 인간관계..?”

“아니.”

단호하게 대답한다.

정신 건강 시간에 배웠잖아.

“몸. 체력. 힘. 근력.”

그건 바로.

“근육.”

“선생님은 근육이라고는 안하..”

내 눈빛에 황급히 곽지운이 입을 다물고.

“건아.. 10초 지난 것 같은데.. 우리 오늘 딱 1분만 하기로 약속했잖아..”

“진짜 이제 못 버텨.. 진짜, 진짜 나 쓰러진다? 진짜 쓰러져?”

두 사람은 이제 눈을 질끈 감았다.

딱 이런 기분이 들 때 운동을 조금만 더 하면 근성장을 이룰 수 있다.

우리 회원님께 말할 기운이 남았으니 조금만 더.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활짝 웃는다.

“지운이 형. 은호 형.”

“어..”

“두 분, 시즌오프 동안 운동 안 했잖아요. 그렇죠?”

“했.. 했.. 했.. 안했..”

“약속을 먼저 안 지킨 게 누구?”

“...”

“...”

원래부터 자기 관리에 철저한 김예성과 운동을 시작한 이유찬은 통과.

하지만 단 걸 좋아하는 곽지운과 여전히 혓바닥 운동만 즐기는 최은호는 탈락.

저체중 유상준은 아예 다른 커리큘럼이 필요해서 제외됐다.

인생을 위한 피라미드.

그중 가장 아래 칸, 그러니까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몸’.

그리고 중간 칸이 ‘사람’, 가장 꼭대기가 ‘나 자신’.

꼭대기는 쇼트케이크 위에 올라간 딸기처럼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밑에서 받쳐주는 시트와 생크림이 없다면 이건 케이크가 아니게 된다.

그러니까.. 대충 운동이 중요하다는 소리다.

우리는 각자 부족한 부분을 메워가며 좀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자, 따라 해보세요.”

어쩌면 나도.

텅 비었던 중앙부에 무언가를 채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일어났다 앉으며 깊게 스쾃.

“쟤 좀 미친 것 같은데..”

“천재들은 원래 다 좀 또라.. 아니 미쳤대..”

“우리 벌 받는 거야? 게임만 해서?”

“엄마 말 들을걸.. 게임 작작 할걸..”

[ 지독한 놈.. ]

남들 몰래 참여하고 있었던 제3의 인물에게서까지.

원망의 소리가 들려온다.

왠지 혀끝에서 달콤한 쇼트케이크의 맛이 느껴진다.

이게 바로 인생의 맛?

아주 나이스.

#

그 주 토요일의 첫 번째 경기.

대구 유니버스와 대전 FWX의 경기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각각 지난 월챔에서 4선발, 3선발이었지만 1, 2선발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한 두 팀은 꽤 사랑받는 팀이 되어있었다.

연고지 앞 글자가 같다는 점에서 ‘D의 계보’라는 둥.

과거 FWX가 꼴찌에 가까웠다는 점을 떠올려 ‘유꼴라시코’라는 둥 많은 밈이 등장했다.

그리고 유니버스로 이적한 사람이 바로 FWX를 이겼던 작년 트릭스터의 미드, 퓨처 오미래라는 점까지.

유니버스는 올해 전력을 꽤 잘 보존한 팀이었고 평가 역시 좋은 편이었기에 이 경기를 볼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1세트.

기대한 것과 다른 평이한 밴픽에 팬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했지만 경기 내용은 또 달랐다.

“이거, 유니버스! 지금 이렇게 플레이하면 안 됩니다! 세자 선수와 권건 선수가 유니버스를 급하게 만드는 거거든요!”

“벨튀! 벨튀! 저놈 잡아라!”

“맞서 싸워줘도 되는데! 지금 FWX가 살살 뒤로 빼면서 계속 함정을 파고 있단 말이에요!”

“이걸 들어가? 말아?”

“지금 이게 야바위 같은 거거든요? 분명히 뒤에 있을 것 같은데, 없고! 없을 것 같은데, 있고!”

“야바위라뇨..”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심리전.

“실피! 실피! 저거! 권건 실피! 잡으러 쫓아가나요?”

“아, 이거 옵저버님이 시야를.. 히이이이이이이이익!”

굳은 각오라도 하고 나온 양 끊임없이 시청자들에게 시야 플레이를 해 준 옵저버의 능력.

- 아니 시발 그래서 저기 FWX애들 숨어있어? 없어?

- 우리가 모르면 어떡해 보여줘요 옵저버

- 오늘 방송 유니버스 VR이에요?ㅋㅋㅋㅋㅋㅋ

- 나는 없다에 건다

- 완전 있지 저건 절대 권건 혼자 온 거임

- 지금 관전방에서 포인트 배팅하세요! (영상X, 베팅만 가능)

- 야 FWX 지니도 이거 라이브 함ㅋㅋㅋㅋ 근데 전 프로도 못 맞춤ㅋㅋㅋㅋ

- 아;; 유니버스 왤캐 몰려가냐고

- 너무나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

“잡히.. 잡..히..지! 않습니다아아아아악!”

“권건, 권건, 어그로 핑퐁! 핑퐁! 핑퐁 미쳤어요! 여기 다 숨어있었어요!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끝까지 권건을 잡아보려고 하지만!”

“오히려 라온이 킬을 가져갑니다!”

“이렇게 되면 써머 선수의 리타이어로 이번 오브젝트도 넘어가요!”

하지만 그중 가장 혹독하게 당한 것은 심리전에 약점을 가지고 있는 유니버스 탑, 써머.

최정인이었다.

- 야! FWX!

- 왜

- 나 최정인인데! 나, 너 좋아하냐?

- 어ㅋㅋㅋ그런 듯ㅋㅋㅋㅋㅋㅋㅋㅋ

- 야.. 나 최정인인데..!! 권건.. 나 진짜 너땜에 미치겠다.. ㅎA..

- 존나 좋아함 다 속아줌ㅋㅋㅋㅋ

- ??? : 잡힐 수 없어 잡히고 싶은데 그런 슬픈 기분인걸

- 시발시발 요망한 것.. 존나 요망한 것..

- (사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름 ‘늙은 호랑이’니.

‘미친개’니 하는 지독한 별명을 가진 최정인이었지만 그는 어느 순간부터 FWX 앞에서 약한 남자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발시발시발시발시!”

“이번엔 있었나 보네.. 그만 죽어.. 형..”

“아까도 있었나? 없었나? 진짜 빡치네.. 내가 이거 리플레이 꼭 돌려본다.”

“야.. 타워, 타워 깨졌어.. 이번엔 이쪽이었어..”

- ㅎ성동격서ㅎ

- 그게 몬데 십덕아

- ?

“FWX가 첫 번째 세트르으으으을! 승리합니다!”

“GG!”

킬이 많이 나온 경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끌려가는 경기.

압도적인 시야 점수.

일견 유니버스가 중간중간 킬을 따가며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듯했지만, 결국 FWX가 불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답답했던 경기에 유니버스 선수들은 머리끝까지 열이 오른 채로 코칭 박스로 돌아왔다.

“시야 관리 철저하게 하고 움직임을 잘 관찰해서..”

“서로 정보 교환 좀 더 빡빡하게..”

코치진은 많았지만 이번 세트 후에는 할 말이 별로 많지도 않았다.

패배해서 얻을 게 없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밴픽이나 한타를 할 때 실수가 나온 것도 아니고 그냥 상대의 설계에 넘어갔을 뿐이니까.

“이씨.. 이시환 그 새끼가 우리 질 거라고 저주해서 이렇게 됐잖아!”

다혈질 탑이 이를 뿌득뿌득 갈며 으르렁거린다.

최정인이 꼬셔왔던 이시환은 작년까지 유니버스 미드였지만 지금은 없다.

“또 개가 짖네? 정인이 너는 저주를 믿니? 혹시 탑이 트롤해서 진 거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니? 반성할 마음은 없는 걸까?”

누군가 종알거렸지만 강철 멘탈의 최정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은 통째로 흘려버렸다.

라인전에서 개유찬에게 진 건 아니니까 탑이 진 건 아니다.

그게 탑의 마음가짐이니까.

실제로 최정인만 흔들린 건 아니기도 했고.

“그냥 권건 무서워서 튄 거 아님? 걔 작년에 권건한테 연달아 세 번 죽은 적 있잖아. 라인에서 한번, 걸어오다가 한번, 텔 타자마자 한번.”

“그거 좀 심했지. PTSD 올만 하지.”

“그러고 나서 걔 건자 들어가는 거 다 못하지 않았냐?”

“뭔 개소리야.”

“건식 사우나?”

“정인이 형. 개소리 좀 하지 마라.”

“진짠데.”

탑의 개소리에 서포터 이주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유니버스 막내 이주원은 LKL 사파 서폿의 권위자다.

괜찮은 무기를 꺼내보고 싶지만 아직 팀원이 적응기라 잠시 그 마음을 묻어놓고 있다.

“시환이.. 나한텐 권건 만나면 같이 버티자고 그랬는데.”

이적한 새 미드 오미래가 옹알거렸다.

그 말이 전 이시환이 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이시환은 중국으로 떠나버렸다.

“버티자고?”

“제발 버텨.. 버텨.. 버..튀어.. 튀어..”

“아.”

“미싱링크 지렸네.”

선수들이 탄식을 흘리는 사이.

“야. 존나 이날을 위해 준비해온 픽이 있어. 기억나지?”

지치지 않는 탑의 남자 최정인이 눈빛을 이글거린다.

휴가 때 만나자고 해서 마음을 설레게 하고.

우리 팀에 올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밀당을 한 권건.

감히 탑의 마음을 가지고 놀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물론 권건은 단 한 번도 그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지만 어쨌든 최정인의 마음속에선 그랬다.

“잭 감독님! 꺼내도 되겠습니깟!”

유니버스의 잭, 김동원 감독은 최정인의 에너지를 싫어하지 않았다.

스타성.

유럽 감성을 충만하게 지닌 해외파 감독에게는 어딘가 탑의 열정이 웅장하게 다가온다.

김 감독도 같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가자! 우리도 보여주자! 빌런 FWX를 뭉개버리자!”

이제 막 시작한 시즌.

새로운 도박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 진짜 그거 한다고..”

“탑 중심 게임 진짜 존나 지친다 지쳐..”

“저 새끼가 마음대로 인터뷰하고 SNS 올려가지고 코치님 표정 썩은 거 모르냐?”

선수들은 욕을 퍼부었지만.

“정인이 형 때문에 나 어깨 무거워서 키 작아졌잖아.”

“닌 원래 작아.”

“닥쳐.”

분위기는 유쾌해졌다.

FWX가 확 끌어왔던 시선을 단박에 유니버스에게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

그렇게.

탑 대 탑.

개 대 개.

끝까지 서로 예측할 수 없는 밴픽을 거듭한 끝에.

상단 진격로에서 만난 것은 이유찬의 배인과 최정인의 칼리스터.

둘은 LKL 최고로 장대하게 폭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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