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미스터 산백문
리그는 구단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게임사의 한국 지사, 협회, 주최 측, 수많은 스폰서.
게임 밖에는 그런 비즈니스가 잔뜩 있다.
그중 게임사는 리그를 통해 뭘 얻을 수 있을까?
당연히 첫째는 ‘명예’다.
리그를 가지고 있을 만큼 거대한 게임이라는 것.
별도의 문화를 형성할 만큼 영향력이 있다는 것.
이 명예는 곧 인지도와 신뢰.
사회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개인에게 그렇다.
리그를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는 얘기 아니냐고?
그래.
‘게임’과 ‘리그’는 분명히 다르다.
공을 차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무조건 축구 경기 관람이나 응원에 열광하는 게 아니듯.
LOS 리그 역시 유저와 팬은 별개니까.
하지만 아예 리그에 관심이 없는 게이머도.
로딩, 로그인 창, 로비, 이벤트 등으로 반드시 리그 소식을 접한다.
클릭하지 않거나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
내가 플레이하는 게임에서 뭔가 거대한 일이 일어나고 있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세계인이 열광하고 있으며.
수많은 아티스트와 협업이 이루어지면서 문화 산업이 움직인다는 것.
그건 알게 모르게 사람의 심리에 영향을 준다.
자부심 혹은 안도감.
보지 않더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게임이 그저 소모적이거나 대충 만들어진 단타용 게임들과는 다르다는 마음.
버그가 없지는 않지만 최소한 웰메이드라는 것.
그리고 신뢰.
설혹 게임에 불만이 있는 상태라도, 저렇게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걸 보면 최소한 운영진이 이 게임을 버리지는 않겠구나.
뭐 그런 것들이다.
그래, 이게 가장 크긴 한데.
자잘하게는 게임사가 리그에서 얻는 효과들은 여러 가지가 더 있다.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리그는 LOS 챔피언과 챔피언 홍보의 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 금지 스킨을 제외하면 모든 스킨의 사용이 가능하다.
뭐, 프로 선수들도 대부분 자신이 쓰던 스킨을 선호하긴 하지만.
그리고 별도의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도 틈틈이 발견할 수 있는.
새롭게 연구되어 올라온 픽이나 빌드는 게임사에서도 반가워할 만한 일이 된다.
특히 게임을 안 하는 사람도 게임을 하고 싶게 만들고.
리그를 안 보는 사람도 리그를 보고 싶게 만드는 장면들.
그게 우리가 뽑아낸 장면이다.
전적 검색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들도 고랭크 유저 중심인데, 프로게이머들이 플레이 한 것만큼 ‘인증된 빌드’가 어딨겠어.
게임에선 누구나 할 수 있는 빌드지만.
이걸 리그에서 꺼내서 이겼다는 게 ‘인증’인 거거든.
그런 면에서.
[ (정글 실험실) 권건의 아이템 선택! 이게 진짜 된다고? ]
해설진의 엄중한 경고에도 결국 사람들의 흥미는 동하고 말았다.
[ (로로TV) 절대 따라 하지 마세요! ]
[ (안은우의 아누누.ch) 권건 템트리의 진실, 그냥 막 간 게 아니다? ]
개인 채널부터.
[ (GG챗) 아이템 순서에 따른 타 라이너 템트리 변동 분석 ]
분석 사이트.
[ (믿거나 말거나 겜로그) FWX의 메타는 먼 과거 NA 스타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
그리고 유명 블로그까지.
우리의 경기야말로 진짜 개막.
각종 LOS 채널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처음에는 내 템트리에서 시작한 호기심과 분석은 점점 팀 FWX의 플레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기존과 다르게 정글러를 극한의 1선발 딜러로 내세운 색다른 플레이.
물론 1세트를 ‘정상적인’ 운영과 포지션으로 끝냈기에 혼란이 더해졌다.
바로 이 포인트다.
‘난이도는 있지만 좋은 것 같다’, ‘팀원들이 도와줘야 가능하다’.
나도 내 말이라면 그냥 믿고 따라오는 팀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
조건부.
누가 무슨 역할을 해줘야 한다던가, 상대가 팔이 짧을 때여야 한다던가.
그냥 좋다고만 말하면 뭔가 미심쩍거든.
이게 바로 약을 잘 파는 거다.
아니라는 걸 알아도 설마 하는 마음이 리그 전체에 혼란을 주고 있었다.
아, 솔랭에만 들어가면 여기저기서 내가 한 픽을 찔러보는 이 기분.
게임에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 같은 쾌감.
곽지운이 말한 영향력이 이거랑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라고?
악질이라고?
원래 게임에선 악질이 최고야.
그래서인지 종종 이럴 거면 다른 포지션을 갈 수도 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지만.
“저는 정글 역시 하나의 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충 던진 답변에 오히려 많은 유저가 정글 포지션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정글이 제일 마음이 편하거든.
오히려 탑이나 미드에 서 있는데 누가 나를 불러서 자리를 비워야 하는 건 너무 피곤하더라고.
어쨌든 스프링 초입은 프리 시즌 후 프로 수준에서의 ‘메타 방향성’이 결정되는 시기.
그러니까 이런 픽과 흐름이 ‘진짜’인가 아닌가를 아는 건 우리뿐.
[ 정글러가 활약하는 메타가 돌아왔다? 정글 펜타킬, 5년 만에 등장! ]
[ 템트리가 어쨌든 지금 꿀포지션은 정글이 확실합니다! ]
[ 정글러로 티어 등반하기! 챔피언 추천! ]
말도 안 되는 폭발력을 눈으로 본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이번 메타의 정글이야말로 힘든 라인전을 거치지 않고 성장해서 적들을 쓸어버릴 수 있는 포지션으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 (LOS 고정 5인 구함) 제가 정글입니다 ]
[ (격전 팟 구함) 정글 있음 ]
지속해서 정글 포지션에 대한 편의성을 부여한 게임 정책도 빛을 발했다.
- 요즘 정글러 늘어난 것 같지 않음?
ㄴ 아; 전에는 밀려나서 가는 무인도였는데;
ㄴㄴ 정글 할 줄도 모르는 샛기들이 다 정글 한다고 난리네
ㄴㄴ 다 좀 꺼져 정글 존나 어려우니까 입문하지 마!
ㄴㄴ 그럴 순 없지!
ㄴㄴ 나도 정글 돌 거야!
ㄴㄴ 꿀포라던데?
ㄴㄴ 어차피 성장해서 만나는 거면 아무 챔피언이나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요즘 정글 쉬워졌잖아?
ㄴㄴ 제발 꺼져
ㄴㄴ 재드로 정글 입문 추천합니다^^ 동선도 유연하고 정글링도 빠르고 쎕니다^^ 혼자 펜타킬 손쉽게 가능한 꿀챔입니다^^
ㄴㄴ 니가 제일 싫어
우리 팀이 이번 시즌 얼마나 치고 올라올지에 대한 것도 주목받기 시작했고.
[ 스톰 감독 김지훈, “우리는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상대가 FWX였을 뿐..” ]
- 어느새 FWX를 상대했다는 게 핑계가 되어버린?
- 비밀무기를 갑자기 꺼내 드니까 그렇지 말을 하고 써야지..
- ㅋㅋㅋㅋ 어리석은 이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는www
- 초라한 펜타 헌납팀 스톰ㅋㅋㅋㅋㅋ
- 맞아 보고 얘기해라.. 진짜.. 진짜다.. 진심이야..
[ FWX 감독 박진현, “극딜 볼베 다시 쓸 거냐고? 당연히 다시 쓸 예정.” ]
- 언플 지려
- 다시 못쓰지;;
- 진짜?
- 아 시발 모르겠어..ㅠㅠㅠㅠㅠ
- 씨이바.. 건신 플레이 존나 야하던데;;;
- 나랑 팬티 수 대결할 사람 인증 필수
- 이걸 어캐 다시 안 보여줘? 나 못 참아 사옥 앞에 텐트 칠 거야
- 음란한 샛기들 꺼져 건신은 못 가져도 볼베만큼은 내가 가지고 말 거야
- 요즘 밴률 “1위” 곰돌이
[ 대구 유니버스, “뭘 들고나오건 자신 있다, FWX가 숨겨뒀던 무기를 모두 꺼내게 할 것” ]
[ FWX, “유니버스의 도전을 받아들이겠다” ]
[ 대구 유니버스, “만만치 않은 픽들이 준비되어있다” ]
누군가 입을 털면서 잠깐 소란도 있었지만.
[ “월챔 막내” 두 팀의 ‘꼴픽’ 예고? 경기에 대한 기대감 상승 ]
[ 대구 유니버스, “좋은 경기 바랄 뿐. 일부 의견이 공식 인터뷰로 와전. 자제 요망” ]
어쨌든 결국 관심은 나에게 쏠렸다.
[ 개막 후 최단기간! 2일 차에 “역대급” 펜타킬 보여준 권건. ]
- 최단기간? 그런 것 좀 갖다 붙이지 마라 편파 기사 십;
- 왜? 틀린 말도 아닌데? 붙일 건데? 붙일 건데?
- “역대 최연소” 펜타킬 정글러
- “데뷔 후 최단기간” 펜타킬 정글러
- “이번 시즌 최초” 펜타킬 정글러
- 1절만 해라..
- “마이 정글 해줄” ㅍㅌㅋ ㅈㄱㄹ
- “손가락이 가장 예쁜” ㅍㅌㅋ
- “밥을 잘 먹음” ㅍㅌ
- “매일 운동함” ㅍ
- “이제 도발도 잘함”ㅍ
- “오늘은 언제 방송을 시작할지 궁금함” ㅍ
- 아 꺼져 미친놈들아
자, 여기서 멈추면 안 될 말이지.
패치로 곧 쓸모 없어질 챔피언과 빌드라도.
나는 그 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유행이란 건 계속해서 쏟아져나와야 재밌는 거거든.
하지만 경고.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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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우리 문 코치가 적어둔 것 좀 보세요.”
“아, 제발. 제발. 진짜 비밀로. 제발.”
문백산 코치가 김한빛 코치를 따라가며 민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림도 없다.
“배인 실사용 평가 좀 적어달라고 요청했더니 내용이 이게 다예요.”
박진현 감독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두 사람을 마주 본다.
“문 코치? 팔로업하겠다더니. 왜, 뭐라고 적혀있는데?”
문 코치가 눈치를 보지만.
“하지만 정말..”
야속한 최 코치가 줄줄 읽어내렸다.
“감독님, ‘우리 팀이 스톰보다 더 쌤!’, ‘리뷰 : 탱 배인 딴딴하고 안 죽음.’, ‘TOP 배인. 별표 다섯게.’. 맞춤법도 틀렸어요.”
제법 야무진 척하던 문 코치의 허술한 점이 여실히 보였다.
“그게 다야?”
“옙.”
“하하하하하핫.”
박 감독이 웃음을 터뜨리자 문 코치는 머리를 긁었다.
“문 코치가 좋아하는 ‘업무 포맷’이 없어서 그래?”
“그게.. 그, 경기를 보니까 저도 모르게 너무 몰입해버려서. 아직.. 리스트업..이 덜 됐습니다. 꼭 다시 컨펌.. 받을테니까..”
여전히 머리를 굴려 가며 필사적으로 비즈니스 용어를 쓰는 모습이 어딘가 엉성해 보여 두 사람은 다시 웃었다.
“편하게 해. 문 코치.”
박 감독은 피식 웃더니.
“그럼 유니버스가 좋아, 우리 팀이 좋아?”
갑자기 훅 찌른다.
유니버스 출신인 문 코치는 잠시 콧구멍을 벌름거리다가.
“당연히 우리 팀이죠!”
납죽 대답했다.
“우리 팀이 어딘데? 유니버스? FWX?”
“아, 최 코치님! 당연히 FWX죠! 최강 FWX!”
문 코치는 시누이처럼 얄미운 최 코치를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별수 없지. 준비시켜.”
“네? 뭘요?”
“유찬이. 탑 배인. 전에 써본 적 있으니까 잘 할 거야.”
박 감독은 부드럽기만 하던 전과는 다르게 씩 웃었다.
“가봐. 탑은 탑끼리 대화해야지. 문 코치는 탑 전담이잖아.”
“예, 예!”
문 코치가 멀어지자.
최 코치가 살짝 입을 열었다.
“형님.”
“왜.”
“솔직히 유니버스한테 감정 있죠.”
“아니? 없는데?”
“유럽 출신 잭 감독이 부러워서..”
“걔 잭 아닌데? 본명 김동원인데?”
“언제 걔라고 부르는 사이가 되셨어요?”
“올스타전 가서 안면 텄는데?”
사실 김동원 감독은 재작년까지 박진현 감독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혹시 새 코치 뽑은 것도 유니버스보다 감코진 숫자 적은 거 밀리기 싫어서..”
“아닌데? 이제 그런 거 없는데?”
“좋은 선수는 다 채가던 유니버스가..”
“아닌데 아닌데? 걔넨 건이 없고 우린 건이 있는데?”
오랜 시간 그를 본 최 코치가 웃음을 참으며 등을 돌린다.
설움을 함께 했었기에 어느 정도 이해한다.
“진짜 아니라니까?”
“어어, 형님. 눈을 왜 그렇게 떠요?”
“진짜 아닌데?”
“알겠어요.”
“이기면 되는데?”
“알겠다니까요?”
박 감독도 이제 쌓여왔던 울분을 풀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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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백산.
탑 라인을 전담하지만 다른 업무에도 발을 걸치는 신입 코치.
유니버스에 과거 T.O를 구두 약속받았지만 자리가 없어서 절망했던 남자.
작년, 인력 충원 예정이 없었던 FWX의 인력풀에 자신 있게 서류를 내민 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새 FWX의 주가는 끝없이 치솟았을 뿐만 아니라 면접 진행 중에도 그랬지만.
결국에는 이 자리를 차지하고만 남자.
그는 아직 완벽하지는 못해도 분명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레퍼런스.. 레퍼런스.. 탑.. 탑 배인.. 모델.. 자료.. 요청.. 요청.. 유찬이.. 준비.. 준비..”
기억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고, 방향도 좀 틀릴지언정 어쨌든 열정만큼은 가득하다는 것과.
“이야아아아아아아아! 유찬아!”
“어 형!”
“내가 지이이이인짜 대단한 거 하나 따왔다! 깜짝 놀란다!”
“뭔데! 말해!”
다른 감코진보다 좀 더 나이가 어린 만큼, 아니 그걸 감안하더라도 싸이코 수준의 친화력을 가졌다는 점.
“그거! 기억나냐? 그거라고! 그거!”
“그거야? 진짜 그거야?”
“어!”
“어이어이! 문! 믿고 있었다고!”
특히 이유찬과 닮은 결이 있다.
“야, 내가 말했지! 나야! 나! 문백산!”
“산백문! 산백문! 산백문! 외쳐! 산백문!”
“아이 세이 San! 유 세이 Moon! 산!”
“문!”
“산!”
“문!”
“이거 뭐냐? 뭐가 빠진 거냐? 내 이름 아닌데?”
“문?”
“산?”
잠시 두 사람은 함께 코를 벌름거렸다.
“어쨌든 축하한다 야! 부럽다!”
“고마워, 형!”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머지 선수들은 황당한 표정이었다.
“대체 저 형이랑 이유찬은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뭔 말이 통해?”
“나도 모르겠는데.”
물론 그 친화력은 아직 다른 라인의 선수들에게까지 닿지 않았지만.
“혹시 문봉구랑 무슨 연관 있는 거 아니냐?”
“탑이라는 거?”
“탑끼리.. 통하는 뭐가 있긴 한가..”
“그런.얘기.하지.마시고. 우리. 게임. 돌리시죠. 고.”
“알겠어.. 상준아..”
어쨌든 새 멤버들이 적응하는 건 그리 멀지 않은 일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