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왜 이렇게 쉬워?
경기 시작에 앞서 오프닝 타이틀이 흘러나왔다.
시즌을 이끌어갔던 주역들의 분량이 많다.
과거 강대한 팀이었던 스톰을 제치고 트릭스터가.
그리고 그 트릭스터를 위협하는 FWX의 이빨이 표현된 영상이었다.
시즌 티저에서 공개된 내용에 이미 있었던 것도 있었지만, 사서가 잘 정리되어 모든 팀의 팬들이 만족스러워할 만한 영상으로 평가가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시즌의 시작을 알리며 거대한 문이 열린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26 LKL 스프링 첫 번째 라운드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온다.
“벌써부터 열기가 달아오르는 이곳, LOS 파크!”
“와아아아아아안벽하게 재개장을 거치면서, 더욱 안전하게 개선한 이 완벽한 플레이스에서! 여러분들 만나게 되어서 저어어엉말! 반갑습니다!”
“예! 맞습니다! 예! 마음껏 뜨거워지셔도 괜찮습니다! 지금 어마어마한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는데요! 예! 여기가 지금 내열 부분까지 완벽하게 방비 되어 있거든요!”
“어, 그. 확인된 이야기가 맞습니까? 아무 말이나 하시면 곤란해요?”
“확실한 건, 함성을 지르셔도 지붕이 날아가거나 벽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이죠! 안심하고 응원해주세요! 여러분!”
“역시 안캐형!”
스토브 리그까지 끝나고 약 한 달 반.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사이 축적해온 에너지를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경기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 크으
- 오늘이 진짜 “개막”ㅠㅜㅠㅜㅠ
- 미친구아니냐구 기다렸다구!!!!!!!!!!!!!!!!!!!
- 촛도 오늘 경기 너무 노블하다
- 첫 경기부터 스톰 VS FWX? 아 못참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경기를 기다리던 것은 FWX나 스톰의 팬들만이 아니었다.
- 아 왜 평일 다섯 시 경기야 이러면 보기가 힘들잖아
- 근데 어떻게 보고 계신?
- 회사에서 몰래 람쥐썬더
- 직관 간 사람들은 어캐 예매햇누ㄷㄷㄷㄷㄷ
- 표 3초 컷 결승인줄아랏다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럴 땐 옛날이 그립다.. 직관 자리 남고 그랬는데.. 상대팀 팬들이 남는 자리 가져가고..
- 하나도 안 그립다 ㅁㅊ
- 개소리 좀 작작 해 ㅅㅂ
시즌 오픈 전.
각 구단의 모아놓고 각종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미디어 데이에서 역시 ‘올해 가장 경계하는 팀’으로 FWX를 꼽으면서.
“사실 어제 경기에서도 약간의 업셋이 있었는데요. 지금 우리가 업셋이라고 말하는 게 옳은가 싶은 정도로, 상당히 각 팀 로스터에 많은 변화가 있었거든요?”
FWX가 ‘과연 겨울을 제대로 났는가’에 대한 것은 최대 관심사가 됐고.
이 경기는 올해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경기가 됐다.
“그렇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정보에 얽매여선 안 됩니다. 이번 시즌 멘트는 ‘신세계로부터’!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팀들이 정말 많다는 거죠!”
“하지만 지금 경기를 준비하는 대전 FWX를 보자면, 예! 이 팀은 아예! 아예 안 바뀌었어요!”
“새 만남은 있었지만, 작별은 없었다. 지난 시즌에 미라클 런을 보여준! 열등생에서 우등생이 된 팀! FWX입니다!”
새로 찍은 선수들의 사진이 펼쳐진다.
“이야. 이거 선수들이 아주 개성이 넘쳐요.”
“시그니처 포즈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했죠. 이렇게 보면, FWX가 정말 당돌한 팀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이유찬의 만세 한 포즈.
탈색한 곽지운이 손가락 총을 장전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최은호가 자신의 예언자 밈을 바탕으로 머리를 가리키고 있는 자세까지.
“이럴 때 보면, 정말 이 팀이 신생팀이라는 게 느껴져요!”
“신생이요?”
- 성적다운 성적을 받아온 걸 시작으로 치자면 신생 맞지ㅋㅋㅋㅋ
- 그 전엔 성적이 아니라 패작이었지ㅋㅋㅋㅋ
- FWX 마우스 패드 떴냐?
- 야 저 얼굴에 어떻게 마우스를 올림ㅋㅋㅋ
- 난 그래서 마우스 패드 밑에 키보드랑 마우스 넣고 씀
- 미친놈이세요?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성남 스톰!”
“스톰의 경우 이번에 체질 개선에 도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빅스에서 정글과 서포터를 데려오면서, 밸류 자체는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네, 그렇습니다! 프랜차이즈 스타인 미드 킹 선수를 중심으로 이번에야말로 다시 한번 우승을 노리는 스톰입니다!”
- 너네 믿고 멤버십 가입했다 스톰ㅠㅠㅠㅠ
- 이제 보여줄 때 됐어
- 그래 복리 이자였던거임
- 근데 왜 하필 개막 상대가 FWX
- 존나 부정타..
- 잠깐! 당신! FWX를 만난 약팀들은 잘 나간다는 전설을 잊으셨나요?
- 우리가 왜 약팀이야?
- 그래서 스톰 작년 순위가?
- 그님순 ㄷㄷㄷㄷ
-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가 이걸 해보네ㅋㅋㅋㅋㅋㅋㅋㅋ
“스톰도 정말 강한 팀이었거든요. 부진은 있어도 몰락은 없다! 오늘의 관전 포인트는 이렇게 새롭게 거듭난 스톰이 얼마나 잘 맞는 팀 합을 보여주면서, 과연 FWX라는 강팀을 꺾을 수 있을지!”
이제 FWX가 ‘강팀’이라고 불리는 데에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좋습니다! 밴픽부터.. 만나보시죠!”
양측의 포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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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재드 정글 하겠냐?”
“그래도 일단 밴하자. 우리가 1호가 될 필요는 없지.”
“네.”
스톰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빅스에서 스톰으로 이적한 정글과 서포터.
두 사람은 다소 들뜨는 타입이었기에 기존 스톰의 성향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이번 패치가 좀 깎여 나갔지만, 저쪽은 첫 번째 싸움을 바텀 쪽에서 걸어올 가능성이 높다.”
자리를 유지한 스톰 감독 김지훈은 벼락같은 타입이다.
고지식하고, 열정 마인드를 강조하는 맹장.
“주호는?”
“네, 넵. 그. 방어적인 거. 할게요.”
그래서 이적해온 서포터, 진주호는 다소 기가 죽어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야자를 째도 슬쩍 눈감아주는 스타일의 선배와 일하다가.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호랑이 같은 도덕 선생님과 한 팀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괜히 다른 팀에서 스톰 출신을 선호하는 게 아니다.
어쨌든 감독 입장에서는, 선수들이 군기가 바짝 들어있으면 편하긴 하니까.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로 선호하는 감독이 다르다.
자유로운 선수 중심 분위기를 선호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군대 체질 선수들도 있으니까.
잘하는 사람 + 잘하는 사람이면 당연히 성적이 좋을 것 같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담임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모두 바뀐다고 생각했을 때, 적응하는 게 쉬운 사람과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는 법.
이건 성격마다 다르지만 이적 경험도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어떤 선수들은 둘, 혹은 셋이 꼭 붙어 다니곤 한다.
이적의 기준 역시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다.
서로 매우 친밀한 나머지 김예성을 다소 놀림거리로 삼았던 빅스였기에 이런 면은 다소 두드러진다.
어쨌든, 속도의 차이일 뿐.
결국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이야기다.
스프링은 그런 시간이다.
“그래. 그럼 절대 만만한 상대 아니니까. 긴장 풀지 말고. 마인드 셋 똑바로 장착해라.”
김 감독이 등을 돌린다.
“예!”
“알겠습니다!”
유독 목소리가 큰 건 두 사람이다.
가치를 보여줄 기회.
상대가 그대로라고?
하지만 시너지 효과는 모르는 일이다.
모든 싸움은 까봐야 안다.
로스터가 그대로라고 무조건 잘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거든.
그걸 ‘겨울나기에 실패했다’고 부른다.
그러나..
“아직까지 놀라운 밴픽을 꺼내는 팀은 특별히 없는 것 같죠?”
“약간 숨기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이게 시즌 첫 밴픽에서 색다른 걸 들고나오는 팀에게 저희가 늘 하는 말이 있죠..”
“약을 판다고..”
“근데 이게 실패하면 그냥 패가 누적되는 거라서 도전하기가 쉽지 않은..”
겨울나기고 나발이고.
세상 모든 말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 호흡이, 이거 완전히 다른데요?”
“마치 같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들어갔어요! 완벽한 타이밍!”
“이게 시즌 첫 경기라는 게 믿어지지 않거든요!”
“원래 경기력이란 게, 스프링을 넘어 서머에서 무르익어야 하는데!”
“깔끔합니다, FWX!”
스프링이 ‘팀 합을 맞추는 시간’이라고 불리는 데에 이유가 있고.
로스터를 그대로 유지한 팀에게 유리하다고 불리며.
그리고, FWX가 이제 강팀이라는 이야기까지.
모두 맞는 말이었다.
“어, 어어, 어어, 시발.”
살짝 호흡이 맞지 않았던 정글이 빨려 들어가고.
“내가, 내가 마무리 지을게!”
미드의 스킬 끝자락이 권건의 발목을 스치는 듯했지만.
“권건, 권건, 권건이이이이이익! 이걸 또! 또 피했어요!”
“완전! 완전! 이거 그냥 프리 패스! 빈 공간! 물 흐르는 듯한 드리블! 그냥! 이대로 바로!”
“턴 가져갑니다!”
어림없는 볼.
정글러의 초반 개입이 어려워졌다는 건.
정글 성장에 안정성이 더해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미드에서 성장형 챔피언이 가용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팀의 판단은 같았다.
시간이 필요한 스탠딩 미드를 선택한 부분에서 그랬다.
현시간 솔랭에서는 갱 위협이 적으니 몸이 들어가는 챔피언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지만.
리그에서는 끊기지 않고 오래 살아남아 한타에 기여할 수 있는 챔피언이 유리하다.
게임사가 중반부 싸움의 중요성을 크게 높였다는 부분에 대해 동일한 분석을 한 것.
“진짜 딱 5분 뒤에 싸웠더라면..!”
하지만 두 팀에서 풀어나가는 방식은 달랐다.
스톰에서 충분한 성장 이후 큰 싸움을 노린다면.
FWX는 안정성을 바탕으로 시간을 쪼개 흔들어놓는 플레이를 노렸다.
“하. 쟤 진짜.. 너무 건방지네..”
이제 제법 권건과 친해진 미드 강준윤은 숨을 골랐다.
이제 좀 친해진 것 같지만, 권건은 참 변함없는 사람이다.
한결같이 게임을 더럽게 한다.
심리전에서 절대 지지 않고, 사람을 제대로 엿먹일 줄 아는 개자식이다.
“지금 이거..! 권건 선수가..!”
“몸 한번 털어주고 갔죠? 지금 혹시.. 도발인가요?”
“와.. 이걸?”
- 와 십 너무 부럽다 권건 트월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극찬”
- 나도 받고 싶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무냐고 킹 인정받은거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저런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정글 봇 아니었어?
- 권건 Ver. 2.0.1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펌웨어 업그레이드 받으세요^^
- 업데이트 내역 : 제스쳐
- 개웃기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개빡쳐..!”
“준윤아~ 너~ 말 그렇게 하면.. 애들이 오해한다?”
나붓한 말투로 원딜 강수달이 달랬지만.
“호에에엥.”
한번 썰리고.
“테에에에엥.”
두 번 썰리자.
순해 빠진 원딜의 눈에 독기가 서린다.
“야, 태태야. 나 정글 좀 먹자.”
“형 그.. 아직 경험치가..”
“어허. 얼른 내놔봐. 깎이면 어때, 들어오는 건 들어오는 거지. 아니면 일부러 죽어주고 나한테 제압골 넘기던가?”
“저 형 솔루션 골때리네 진짜.”
“결국 원딜이 그렇지..”
메타가 변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권건이 등장하기만 하면 팀의 정글과 나머지 선수들의 사이가 벌어진다는 점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이거, 이거, 마지막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모든 라인을 돌아다니기에 메타 변화에 가장 민감하다고 평가받는 라인 중 하나인 정글.
“생각보다 정말 쉽게 무너졌죠?”
그래서 이번 시즌 권건이, 그리고 신인이 많은 편인 FWX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을 점쳤던 일부는 구겨진 얼굴을 펼 수 없었다.
“분명히 스톰의 대처가 나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항상 먼저 찌르고 들어온 권건 선수가! 이렇게!”
“그리고 그 뒤를 든든히 다른 선수들이 받쳐주면서!”
“손쉽게 첫 번째 경기를 FWX가 차지합니다!”
“GG!”
- EZ
- 너무 쉽다 쉬워;
- “메타 불문 FWX”
- 우리가 강한 거냐 스톰이 약한 거냐?
- 뇌피셜 : 아직 스톰은 합이 덜 맞음
- 지금 승리 쫙 땡기자 일단ㅋㅋㅋㅋㅋ
- 근데 예능감 살짝 부족하고?
- 첫 경기는 원래 찍먹이야ㅋㅋㅋ
- 확인
팬들은 지난 시즌 부진이 심했던 스톰의 실력에 의문을 표했다.
여전히 약한 것인지.
아니면 FWX가 강한 것인지.
아직 스프링 첫 경기니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이제 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래. 보여줘. 스톰의 힘. 간다. 최강의 무기.”
“풍풍! 태풍! 스톰! 즐겁습니다! 즐겁습니다!”
“즐겁습니다!”
“그 올드하고 병신같은 기합은 누가 만들었냐?”
“나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대로.
“생각보다.. 쉬운데?”
“우리가 이렇게 강했어?”
“우리 스크림 여포였잖아.”
“그건 스크림이라서 약한 척? 한? 거? 아니야?”
자신들의 강함을 확실하게 깨달은 FWX는 오히려 잠시 머뭇거렸다.
“이거 그냥..”
“그럼 이제.”
그리고 가만히 첫 경기를 바라봤던 권건이 입을 열었다.
“혼란을 좀 줘볼까요.”
“아.”
“상대가.. 스톰인데?”
누군가의 물음에.
“그래서. 어려웠어요?”
정글의 눈이 새파랗게 빛난다.
“어, 야. 왜 이렇게 무섭냐.”
“모, 몰라. 건이 진짜 업데이트 했나 봐.”
“나는 항상 건이 의견에 동의해.”
“저, 저.. 아첨꾼 미드 진짜..”
“메타 적응 안 되신 분? 손.”
“나, 나는 다 적응했지! 그러엄! 난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오브 콜스!”
“감독님은?”
“어? 나.. 나도? 나도? 동의.”
박 감독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갑시다, 주가 조작하러.”
“어.. 쿵쿵짝.. 쿵쿵짝.. 자.. 주가 조작 들어갑니다..”
새로운 시즌에는.
새로운 챔피언이 등장해야 하는 법이다.
물론, 그게 진짜로 좋은 픽인지.
모든 팀이 할 수 있는 픽인지는 FWX가 배려해 줄 필요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