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새 친구를 찾아보자
FWX는 시즌 오픈을 앞두고 미루고 미뤘던 굿즈 샵을 리뉴얼했다.
간신히 FWX 타 스포츠 계열에 붙어있던 샵을 아예 이스포츠 전용 오프라인 샵으로 분리한 것이다.
그 중 LOS 팀의 상품이 가장 많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흥이 난 쏘닉스와의 광고뿐 아니라 본격적인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컴퓨터 주변 기기들을 생산한 것이 컸다.
그뿐만 아니라 모기업이 식품사인 빅스와 라이벌인 타 식품사, 스포츠 의류, 건강 관리 플랜 등 다양한 업체와의 작은 제휴들이 이루어졌다.
드물게 ‘많이 어려운 팀’의 경우는, 팀 단위로 들어오는 광고에 대해 선수들에게 짧은 영상 촬영이나 언급을 요청하고 선수들에게는 출연료 수준의 금일봉만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애초부터 성적이 나빴을 뿐, 모회사의 탄탄함은 이루 말할 필요 없었던 FWX였기에 아예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업체들의 콜라보나 광고 등은 사측에서 반려했다.
받아들인 것은 일정 수준 이상 업체들로, 그마저도 방송 하단 광고 배너나 화면 노출 정도로 선을 그었다.
선수들이 신경 쓸 부분은 적었다.
“홍이 트레이니님, 이 브로마이드 좀 걸어주세요.”
이는 선수들에게 자세히 전해지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사옥 생활은 미묘하게 윤택해졌다.
휴게실에 신상 안마의자가 들어오거나, 식단이 전체 유기농 제품으로 바뀌고 과일 배송에 영양제가 포함되기 시작한 것.
알게 모르게 다양한 복지 혜택들이 늘어난 것 등이 있었다.
“그리고 진열 상품은 여기!”
상품팀 및 샵 크루원의 확장 역시 많았다.
기존에 있었던 복지 혜택에 더해, FWX는 어느새 일하고 싶은 팀이 되어있었다.
“와! 저! 이거! 티! 실물 처음 봐욤! 촉감 너무 좋다! 뭐야? 그냥 면이 아니구나?”
“이 티가 지금 온라인에서 베스트 상품군에 들어갔거든요.. 진짜 소량 입고됐어요.”
오픈을 목전에 두고 마무리 중인 샵 크루원들이 속삭인다.
“권건의 ‘GG’ 티셔츠.”
“이건 진짜 밖에 입고 다녀도 되겠다! 저 할인 찬스 쓸래욤! 레터링 큰 버전도 있어요?”
“네. 근데 그건 다 나갔고, 레터링 사이즈 큰 거라면 차니의 ‘TOP GAP’ 티셔츠가..”
“그건 싫은데용?! 그냥 GG 레터링 작은 버전 할게요!”
“오케이.”
“리더님, 정리 다 했어요!”
“그럼 마지막으로 QR코드랑 NFC까지 설치하면 얼추..”
그리고 가장 주목받는 것은 메타버스 플랫폼과의 제휴.
더욱 양지로 올라온 ‘온라인 문화’의 선두 주자인 그들에게 주어진 영광.
연고지인 대전, 모기업인 FWX.
그리고 그 하위의 스폰서는 대부분 모기업의 자회사들이었으나, 이제는 여태까지 함께 걸어왔던 쏘닉스와 더불어.
새로운 스폰서로 세계적인 검색 엔진에서 내민 ‘Tales.io’라는 버추얼 메타버스 플랫폼이 따라붙었다.
‘Tales.io’는 대개 테일즈로 불리며.
FWX의 온라인 이야기가 현실에서 전설이 되고 있다는 내용을 표현한 것이 메인 카피였다.
“아, 진짜 잘생겼당.”
이제 할 일을 마친 견습생이 카운터 근처를 서성거렸다.
샵의 점장 격인 리더가 다가가 어깨를 으쓱했다.
권건의 등신대.
쉽게 손상되지 않게 아크릴로 만들어졌다.
폰을 들고 있는 위치에는 다양한 코드와 접촉 및 비접촉 기술이 적용되어있어 고객들이 권건과 손을 맞대는 기분을 낼 수 있게 제작되어 있다.
“이거 해요? 메타버스?”
“네. 저 벌써 권건 스트리트 221G까지 만들었는데용?!”
“아니, 홍이님.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선수들.. 얼굴 보고 응원하고 뭐 그런 건 아니죠?”
점장이 뒷머리를 긁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FWX의 진지한 팬이라고 자부하는 그로서는 소위 ‘얼빠’들로 인해 팀이 아이돌화되어가는 것이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솔직히 LOS는 실력이 전부고, 그것만 보는 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반대에용.”
그 맘을 읽었다는 듯 견습생이 샐쭉 웃었다.
“반대요?”
“처음에는 그냥 대체 저게 뭐하는 꼬락서니인가 싶어서 봤는데용.”
역시 게임을 진지하게 보는 건 아닌가?
점장은 툭툭, 앱으로 점심 식사를 검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팀 성적이 좋으면용, 여기저기 둘러봐도 우리 팀 최고라는 콘텐츠, 댓글, 반응이 많아져요. 그래서 내가 이긴 것 같구, 내 선택이 옳은 것 같구. 대리 만족이 되니까 응원하는 거잖아요.”
“음.”
“그래서 지금 얘네가 뭘 해도 예뻐 보여요. 그 감정을 퉁쳐서 잘생겼다고 하는 거에요.”
“하긴..”
점장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으며 FWX 선수들의 브로마이드를 바라봤다.
확실히.
메이크업이나 관리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성적을 꼬라박을 때보다 훨씬 잘생겨 보인다.
꼭 어떤 버프라도 생긴 것처럼.
“팀이 잘 나가면. 팬들이 유치해질 수밖에 없어용. 이쁜 조카를 보면 나도 모르게 우루루루 까꿍하잖아용?”
“그건.. 그렇긴 하죠.”
솔직히 우리 형이니, 매부니 하며 주접 댓글을 달아 본 적이 있는 점장은 할 말을 잃었다.
“뭐, 그리고 얼빠할 아이돌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프로게이머를?”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등신대에 멈춘다.
"예외는.. 있지만.. 에헴, 어쨌든 그 팀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용. 안 그래요? 사람마다 좋아하는 방식은 다르니까용. 전부 아군이다!”
“그렇군요.”
완전히 다른 성향의 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흠, 오늘 우리 크루원들 다 같이 나가서 먹는 거로 할까요?”
어쩐지 조금은 이해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엥? 갑자기용?”
“이따가 오후 팀 오면 다 같이 나갑시다!”
“앗! 좋아용!”
그 다양한 팬들로 인해.
내일 오픈런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들의 마지막 행복이었다.
#
올 시즌 표어는 “From the New World”.
신세계로부터.
재밌게도 카피는 매번 바뀌는 편이다.
LKL에서도 제법 고심해서 고르는 모양.
내가 스톰에 있었던 시절에는 ‘전설이여, 영원하라’.
트릭스터에 있었던 시절에는 ‘과거를 넘어 미래로’.
그 외에는 ‘놓칠 수 없는 지금’, ‘LOS의 새로운 기준’, ‘전설을 만들어갑니다’ 등이 등장했었다.
아무래도 한국이 살짝 주저앉은 상태에서 등장한 우리 팀과 최근 들어 평가가 올라가기 시작한 호넷과 F.L.E의 영향이 아닐까 싶긴 한데.
뭐, 어쨌든 갑자기 대전에서 ‘게임 도시’라는 컨셉을 밀고 있는 걸 보다야 노골적이지 않은 접근 방식이다.
“오늘 경기 어땠어?”
우리는 개막날 경기가 없었다.
“흠. 픽들이 생각보다는 평이한데요. 약간 작년 스프링 정도 느낌?”
개막 첫 주차의 첫 경기는 해머스와 유니버스.
그리고 두 번째 경기는 F.L.E와 미라쥬가 치렀다.
소위 맛보기 경기 정도로 시작하는 느낌.
미라쥬 이슈 후, 주최측은 상당히 관객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었는데.
그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스톰은 어떻대? 애들 잘 맞대?”
그래서 FWX의 개막은 바로 내일.
“선수들끼리는 괜찮겠지만, 감코진과의 궁합이 안 좋겠죠.”
나는 최 코치님이 바라는 대답을 내놨다.
경기가 없는 동안 나도 나 나름대로 친분이 늘었다.
그중 가장 익숙했던 미드, 강준윤과의 관계가 처음에는 많은 이들을 불안하게 했던 모양이다.
“최근에 플랜 선수 연습 픽이 대부분 방어형 서포터로 이뤄져 있던데..”
최 코치님은 큰 위안을 얻은 듯 다시 수다 비슷한 회의에 참여했다.
“내일 다 보여줄 거야?”
“그러기엔 좀 아깝죠. 시즌 초인데..”
밤의 연습 시간.
사실 우리는 제법 유리한 스타트다.
다른 팀에서 이적해온 선수들과 호흡을 맞춘다는 게 스프링 초반에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아직도 좀 꿈같아. 이게 현실이 맞나? 시즌 첫 경기 상대가 스톰인데 부담감이 아예 없다는 이 기분이, 이게 맞아?”
“그럼 들어가서 자라. 오늘은 정해진 연습 시간 없어.”
“아, 잠이 덜 깨서 그런 거였던 거임?”
“맞지.”
지난 경험에 대한 기억은 좋은 경험치가 됐다.
내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우리 팀원들은 각자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크게 해소한 것처럼 보였다.
게임 말고, 글쎄.
뭔가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사람은 모두 각자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이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좋은 건 그 고민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우면 고민이라고도 하지 않겠지.
차선책으로는 그 고민을 둔 채로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른 일이 잘 풀리게 된다면 어느 순간 원래의 고민이 작아 보이거나, 쉽게 풀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근데 다른 일도 잘 안 풀리게 된다면?
고민은 두배가 되곤 한다.
그런 면에서.
아쉬운 결과긴 했지만 개개인에게는 이게 꽤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너 내 플레이 리스트는 들었어?”
“아직.”
감독님이 새로 도입한 훈련은 제법 괜찮았다.
오감 훈련.
종종 LOS 프로게이머는 게임만 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물론 대부분의 시간에 게임을 하긴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야구 선수도 필라테스를 하는 것처럼 다양한 훈련은 선수의 역량을 증진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오감 중 가장 강조된 것은 청각.
들어보지 않았던 다양한 음향을 들어보거나.
조용한 환경에서 평소에 놓쳤던 소리를 잡아내는 등의 훈련이다.
“명상이나 해라.”
“확인.”
듣는 감각에 집중하는 것은 집중력의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나 그럼 이제 명상하러 갈게..”
“야, 지운이 형 자러 가신단다!”
“형, 들어가.”
아주 오랫동안 한 건 아닌 만큼 갑자기 뭔가 개화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응? 뭐라고?”
최소한 흘려듣지 않는 습관은 생겼다.
“건아, 너야?”
“아뇨.”
“나도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방금 분명히, 누가.. 나보고..”
곽지운이 솜털 같은 머리를 흔든다.
“헛걸 들었나?”
“..형..”
“지금 또 들렸어!”
“..고.. 가..”
“뭐야! 나와!”
아.
“자지.. 말고..”
깜빡했다.
“나랑.. 게임.. 하고.. 가..”
“걸렸네.”
“쯧쯧. 말하지 말고 튀지. 불쌍한 형.”
“니가 크게 말했잖아!”
우리에겐 새로운 가족이 있다.
“형. 나랑. 게임. 하고. 가. 딱. 열 판만.”
스산한 기운이 몰아치며 구석 자리에 앉은 이가 몸을 일으킨다.
체격은 그리 크지 않지만 사람을 세로로 길게 늘여 놓은 것처럼 극도로 마른 체형.
꼭 어떤 귀신을 보는 것 같다.
“지운이 형 이제 뒤졌다.”
“상준아, 듀, 듀오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같이. 돌려. 돌리고. 상대로. 만나면. 피드백.”
매번 닦고 있는 것 같지만, 항상 지문으로 더러워 눈빛이 잘 보이지 않는 안경이 희번덕거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일 우리 경기 있..”
“나는. 궁금한 게. 아주. 많아..”
작지만 칠판을 긁는 것 같은 음침한 목소리가 귀를 찌른다.
“플레이 전후 피드백 시간 포함하면 형 오늘 잠 못 잠.”
최약체 곽지운은 속절없이 그의 손길에 이끌려 자리에 앉았다.
“지금. 바로. 고.”
“내 마우스! 안돼!”
새로운 동료 유상준.
제주 F.L.E 출신.
솔랭에서는 이렐을.
리그에서는 리싱을 꺼냈던, 리그 유이(唯二)의 사파 서포터.
“재밌.겠다. LOS. 너무. 좋아.”
그리고 LOS에 집착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어.느.챔.을.고.를.까.요.”
“무서워!”
“알.아.맞.춰.보.세.요.”
“너 너무 무서워!”
“지운이 형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