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185화 (185/326)

185화. 라스트 피스

박진현 감독은 일어났다.

밤이었다.

그래서 그냥 다시 누웠다.

한 시간만 더 자면 24시간째.

신기록이다.

정말 오랜만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잘 수 있었다.

긴 시간이었다.

스포츠에는 희노애락이 있다고 했다.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박 감독은 그 모든 감정의 결정체가 눈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쁠 때도, 화가 날 때도, 슬플 때도, 그리고 즐거울 때도 눈물이 난다.

하지만 눈물의 온도는 다를 것이었다.

지난 한 해.

한 해의 졸업장을 받아 본 박 감독은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세상의 모든 기쁨을 합치고 그 위에 아쉬움을 한 스푼 휘저은 맛이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감독의 경력’에서 승리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짜릿하고 달콤한 맛을 본 적이 있는가, 없는가를 가늠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다시 맛보고 싶다.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다.

몰랐던 때라면 모를까.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번에는 반드시.”

잠이 오지 않는다.

이 감정의 간지러움을 참을 수가 없다.

머리를 엉망으로 긁던 박 감독의 휴대폰이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났다.

허겁지겁 휴대폰을 잡은 박 감독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피어올랐다.

“FWX.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

슬슬 로스터가 발표될 시기.

루머는 많았다.

별다른 소식이 없는 팀도 있었고.

뜻밖의 선수가 이적이 유력하다는 말도.

실제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팀도 있었다.

SNS에 무언가 암시하는 듯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리고 때론 프런트와의 마찰로 재계약 논란이 일어나며 방송을 켠 선수도 있었다.

“아니.. FWX는 왜 SNS도 이렇게 안 해? 미친 거 아니야?”

“왜, 뭔 이상한 암시 글 올렸다가 욕먹는 것보다 낫죠. 이 나이대 애들이란..”

“애들 너랑 동년배 아니냐?”

“맞아요. 그래서 더 잘 알지. 나,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나이거든?”

몇몇 팀은 빠르게 로스터를 짰지만, 상위권 팀들은 여전히 눈치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권건의 행보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들끓었던 스토브 리그.

과연 권건의 파트너가 될 팀은 어느 팀인가.

그의 간택을 받을 팀은 어디일 것인가.

고요한 전쟁이었다.

승승장구해준 후배들 덕에 객원 해설로 나갔다가 원딜 개인주의 캐릭터를 얻어 온 강동흔은 긴장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더 잘나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정말 복귀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이 뛰던 때보다도 더, FWX라는 팀의 팬이 되어버린 강동흔은.

“찌세야. 너무 걱정하지 마. 단장님이 꼭 잡는다고 그랬어.”

자다가도 권건 생각에 잠을 깨곤 했다.

‘미라클 런’을 보여준 팀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강동흔은 권건을 잡지 못한다면 프런트가 개짓거리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긴 했다.

우리 건이 형이라면 뭘 요구해도 해줘야지.

암, 그렇고말고.

“필요하다면 내 밥솥을 팔아서라도..”

“무슨 개소리예요? 형 밥솥을 어디다 쓰게.”

옆에서 지세현이 놀린다.

그는 과거 권건 관전방의 주인이었지만, 지금은 강동흔의 곁에서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형. 이번 영상 편집본은 받았어요?”

“아직.”

“편집자한테 잘해줘요. 영상 편집이 얼마나 힘든데.”

“잘해주는데.”

“보너스도 좀 주고.”

“어유, 또또 잔소리. 이걸 가까이서 들어야 한다니 너무..”

대학생인 지세현은 FWX 콘텐츠 팀에서 인턴 과정을 밟기로 했다.

방학 동안 3개월간의 체험형 인턴 과정이었으나.

지난 1년간 FWX 팬의 니즈를 자사 콘텐츠 팀보다 잘 파악하고 이끌었던 그였기에 갑과 을은 따로 없었다.

특히 이번 [직관! FWX 현장 카메라] 콘텐츠가 결정적이었다.

“와.. 나도 진짜 존나 신기하다.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되지?”

지세현 역시 이번에 현업의 맛을 보고 학업을 미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 아직도 랭크는 브론즈고?”

“아, 형. 진짜. 형은 다딱이잖아요.”

“난 진짜 브실골이 나보고 다딱이라고 하는 거 이해가 안 돼. 플레만 가도 게임 못하는 애들이 수두룩한데 브론즈는 대체 어떤 세상일까?”

“세상이 원래 그런 거지.”

지세현이 낄낄댔다.

얼음 컵에 콜라를 붓자 솨아아, 소리가 나며 사방으로 거품이 튄다.

방구석에서 콜라 병나발만 불며 게임만 하던 때와 다르다.

게임은, 돈이 된다.

그리고 즐겁기까지 하다.

코인 떡상.

권건 코인도 떡상했고.

주변에는 많이 알리지 않았지만 과거에 빅스 팬이었던 친구 최인규에게 받아 시작한 코인 역시 나날이 상승하고 있다.

말 그대로 인생이 폈다.

“나 건신 이적하면 그 팀 가려고.”

이게 다 그분 덕이다.

“어어? 얘 봐라?”

“일생의 은인이라.”

“말뽄새 보소? 너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형, LKL 파트너 크리에이터 신청은 했어요?”

“어어.. 그거 어떻게 하는 건지..”

“그거 뭐 대단한 거라고. 폼 작성해서 보내면 되잖아.”

“폼?”

“아니. 프로게이머들은 다 이래? 왜 게임 말고는 컴맹이야?”

“원딜들이 게임을 열심히 하느..”

“다딱이 닥쳐.”

“내게 진짜 정글이 있었다면 어땠겠나?”

두 사람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근데 나 형 전속 아님.”

“그럼? 나 말고 뭐 스트리머가 또 있어?”

치킨을 시키던 강동흔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LKL에 권건이 있다면 스트리머 계의 최대어는 바로 이 남자.”

“그게 누군데?”

“미스터 문. 문 선생. 이 시대 최고의 탑 라이너이자 광대. 우최탱 봉구쟝.”

“홀리.”

강동흔은 눈 앞을 가렸다.

“걘 군대도 안 간대?”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던 게 누구더라?”

강동흔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원딜과 탑, 게임에서도 가깝다고 보기 힘든 관계였지만.

강동흔이 보기에도 문봉구는 사교성이 뛰어났고 방송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느릿한 말투, 트로트, 사투리.

그리고 우주 최강 탱커 이미지.

문봉구의 입담과 지세현의 정신 나갈 것 같은 편집이 합쳐지면..

“야.. 이거 나라는 레전드에게도 드디어 라이벌이..”

그때.

“잠깐만.”

지세현이 날카롭게 외쳤다.

“메신저에 전체 공지 왔다. 곧 새 영상 업로드된다고.”

지세현의 폰에 설치된 업무 협업 툴에 연달아 메시지가 뜨기 시작한다.

“나는 왜 그 업무 메신저 없..”

지세현은 강동흔을 무시했다.

아직 현업인은 아닌만큼 내부 소식을 빠르게 들을 수는 없지만 이 정도 정보는 얻을 수 있다.

동시에 기사를 무한히 새로고침하고, 각 팀 감독 SNS와 공식 팀 창구를 들락거리던 팬들이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FWX 채널에 영상이 떴다.

“쉿.”

“쉿.”

2분 남짓한 영상이었다.

영상을 클릭하기 직전.

두 사람은 알았다.

이 영상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계약 발표.

아마도.. 권건.

결승만큼이나 긴장되는 이 순간.

하지만 빨리 감기를 하지 않는다.

[ FWX OFFICIAL_1 ]

원래도 점잖은 성향의 FWX 채널.

이번 영상 역시 마찬가지다.

특별히 배경 음악을 넣지 않았고.

그저 환경음이 강조되어 있을 뿐이다.

장소는 고급스러운 리무진 안이다.

귀빈들이나 탑승할 것 같은 대단한 내장재가 화면을 메웠다.

사람이 들고 있다기보다는 어딘가에 설치해놓은 듯.

이제 카메라의 시선은 부드러운 가죽 장갑을 낀 운전자의 손을 보여주고 있다.

- 딸깍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운전자의 손이 떨리는 듯하더니.

- 탁!

가벼운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다.

누군가.

리무진에 탔다.

차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도로 위를 나아간다.

대화는 없다.

화면을 보고 있던 누군가 침을 꿀꺽 삼킨 순간.

영상에 속도가 실린다.

마치 결승과도 같은 엠비언트 뮤직이 아주 작게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차는 점점 빠르게 달리고.

리무진을 뒤에서.

앞에서.

그리고 하늘에서 촬영한 구도가 스쳐 지나가지만.

탑승자와 운전자의 모습은 모두 보이지 않는다.

음악은 점점 빨라진다.

최소한의 악기만으로 흘려내는 선율이 긴장감을 불러온다.

제법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음에도 차 안에는 적막이 흐른다.

외부에서의 배경음 볼륨과 실내에서의 볼륨의 밸런스가 맞아떨어진다.

바깥의 속도감과 차내의 정숙함이 대비를 이뤄.

아무도 숨을 쉴 수 없게 한다.

짧았던 1분.

강동흔에게 익숙한 거리가 스쳐 지나가고.

결국 리무진은 멈춘다.

카메라가 올려다보는 곳은 FWX의 사옥.

“으..”

강동흔은 점점 다가오는 짜릿함을 느낀다.

목뒤로 뭔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다.

탑승자가 발걸음을 옮긴다.

발걸음은 거인의 것처럼 크고 무거웠다.

사옥, 사옥 계단이다.

저긴 내가 수백, 수천번을 오르내렸던 사옥의 계단이다.

FWX에서 활동했던 강동흔이었지만 평범한 계단이 이렇게 높아 보일 줄은 몰랐다.

이제 화면에 잡힌 것은.

하얀 서류 봉투.

선수 계약서.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빨리..”

이미 편집된 영상이건만.

1초라도 더 빨리.

빨리 보고 싶다.

하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아니, 영상을 보는 그 누구도 스킵하지 않았다.

멀리서 들리던 음악 소리가 점점 커진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스산한 노이즈가 귀를 찔러, 실내가 긴장감으로 극에 달하는 그 순간.

누군가 펜을 잡았고.

청자를 괴롭히던 소리가 모두 사라지며.

평화가 찾아온다.

“하.”

“허.”

1초나 되었을까.

화면에 잡힌 것은.

펜대를 쥐고 오만하게 그들과 눈을 마주하는 권건.

“씨이발..”

지체할 수 없이 최고급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아주 짧은 조우였음에도.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심장을 뚫어버리는 것 같았다.

수도 없이 상상했던 그 순간이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온몸의 털이 수직으로 솟아오르며 소름이 돋는다.

손은 땀으로 흥건했다.

“와..”

강동흔과 지세현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소식이었음에도.

그리고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되어있었던 소식이었음에도, 두 사람은 영상에서 전해지는 힘에 눌려 입을 열기 힘들었다.

“촬영 지리네..”

간신히 강동흔이 입을 뗐다.

“형 영상.. 재미없는 거.. 편집자가 문제가 아니었네.”

“또 무슨 얘기 하려고.”

“주인공이 문제였어.. 권건이.. 진짜 주인공이었던 거야..”

“존나.. 인정.. 인정이오..”

어느새 영상은 끝이 났고.

남은 시간, 검게 변한 화면에 띄워져 있는 것은.

망설임 없는 한 획으로 휘갈긴 권건의 사인.

“죽을 때까지 응원한다. FWX.”

검은 어둠을 밝게 빛내는 그의 서명이.

네온사인처럼 고요하게 반짝거린다.

영상 그 어디에도 문구나 대사 따위는 없었지만.

단 한 폭의 화면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최고의 선수.

마지막 피스.

모두의 정글.

그가.

파트너로 FWX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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