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불씨
- (TRT) 우리 애들 손 흔드는 거 봐라8_8 (사진)
ㄴ 팬서비스 지려 진짜ㅠㅠㅠ
ㄴㄴ 홈 개이득이고ㅋㅋ
ㄴㄴ 이게 전 챔피언의 여유라는 거지
ㄴㄴ 막판 이겨 주겠지?
ㄴㄴ 아ㅋㅋ 일부러 아슬아슬한 척 해준 거라고 ㅋ
ㄴㄴ ㄹㅇㅋㅋㅋ
ㄴ 님 현장에 가 있는 거에여? 사진 홈마 수준이네
ㄴㄴ 홈마가 머임? 암튼 현장 맞음ㅋ 여기 장난 아님
ㄴㄴ 트릭스터 전에도 그랬었어여?; 원래 그냥 바로 자리에 앉자나여
ㄴㄴ 기억 안나는뎅
ㄴㄴ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에여? FWX 견제하려고
ㄴㄴ 뭔 음모론이야ㅋㅋㅋ 저걸로 뭔 견제ㅋㅋㅋ
ㄴㄴ 그냥 애들 기죽이려고..?
ㄴ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ㅋㅋㅋㅋ 함성으로 기죽을 거였으면 오프닝부터 무덤갔지ㅋㅋ ㅅㅂ 하다 하다 별 소릴ㅋㅋㅋ
ㄴㄴ 아님 말고여..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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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경기가 5세트까지 오게 됐는데요.”
“저도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이거 진짜 접전이었죠.”
“사실 이길 때 한쪽 팀이 확 이기는 경향이 있어서, 이번 세트도 선취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선취점을 먼저 가져간 팀이 모두 이겼거든요!”
비는 점점 거세졌다.
경기도 점점 달아올랐다.
선수들 입장에서 5세트 경기는 체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시험과 같았지만, 특별히 응원하는 팀 없이 이 분위기를 즐기는 일부 팬들에게는 가장 즐거운 양상이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마지막 세트 이기게 해주세요. 제발, 제발.”
“우리 지운이 손가락에 날개를 달아주시옵고, 은호 팔 안 아프게 해주시고, 우리 유찬이 딱 4세트만큼만 잘하게 해주시고, 예성이 정신 차리게 해주시옵소서.. 건멘.”
“동흔이 형, 클래스 선수 어디 아파요?”
“아닌데?”
“그때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보다.”
“지금은 괜찮거든?”
“아팠었나 보네?”
“아차.”
“근데 기도는 왜 해요? 다 나았다며?”
“아니, 그게.. 다 낫는 그런 개념이.. 휴, 그냥 만약에 대비해서.”
지난 세트가 끝나고도, 이번 세트가 시작할 때도 트릭스터는 좀 더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오래 가졌다.
트릭스터 팬들은 기쁜 일이었지만 FWX 입장에서는 약 오를만한 일이었다.
“왜 저런대요?”
“몰라. 아, 진짜 짜증 난다. 완전 재수 없어.”
강동흔은 투덜거렸다.
카메라에 잡히는 FWX 선수들은 조용히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건 틀림없이 선수들에게 체력 소진을 가져온다.
특히 우리 애들은 이 경기장, 이 공기, 이 함성이 익숙하지 않으니까.
소음과 공기는.
저울로 잴 수는 없지만 부담이라는 무게를 가지고 있다.
“제발 인베에서 터뜨리고 시작해라.. 제발..”
“제발 타워 골드 무리하다가 끊겨라..”
“제발 대포 집착하다가 퍼블 당해줘라..”
이런 팬들의 마음과 달리.
- 무야~ 무슨 일이냐고~
- 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나
- 혹시 이거 챔프 키우기 스크린 세이버인가요 ㅅㅂ
- 본격 CS먹기 A.S.M.R
-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있는 거임?
- 픽은 뭔 일 일어날 것 같더니만
5세트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채로 20분여분째 진행되고 있었다.
“블루 진영의 트릭스터가 세주, 비예고, 아라, 그리고 드래이븐 레나타 조합으로 한타형 조합을 갖췄고.”
“레드 진영의 FWX가 요른, 뽀비, 아자르, 그리고 졔리와 루루 조합을 들고 있습니다.”
“뒤로 갈수록 레드 진영이 인기가 많아졌죠.”
“두 팀의 싸움에서 밴픽 싸움이 정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평소 같았다면 루즈하게 느껴질 수 있었겠으나 마지막 세트.
관객 역시 집중력이 곤두서있었다.
“양쪽 모두 한타 조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탑 세주가 어디서 나왔냐면..”
“저도 기억납니다. 두어시즌 묻혀있던 픽이었는데, FWX의 팬시 선수가 다시 양지로 끌어올렸었죠.”
“그 이후, 종종 사용하던 팀들이 있었는데 트릭스터에서도 두어번 사용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결승 무대에 등장할 정도라면 다시 세주가 광명을 찾은 걸까요?”
“이거 트릭스터에서 바로바로 옷을 갈아입은 거거든요. 아, 차니 선수가 싸워 줄 생각이 없구나. 그럼 우리도 탱커 해줄게, 같이 크자.”
- 유산 스틸
- 좋은 건 나눠써야지ㅎㅎ
- 니네 픽 쩔더라
- 근데 이제 정작 우리 탑은 못 쓰는 세주..
- 난 차니 요른이 더 불안해 이걸 왜 꺼냈지 자신없나ㅠ
“그렇군요. 그래서 두 팀, 지금 맛이 비슷해요.”
“이렇게 되면 잦은 교전보다는 아무래도 꽝 한타를 노릴 가능성이 있거든요.”
“트릭스터는 출석 번호를 부르지 않아도 누가 제일 앞에 설 지 알 것 같은 조합, 그리고 드래이븐을 앞세운 일확천금.”
“FWX는 때에 따라 호환이 가능한 앞라인과 확실한 군중 제어기를 통해 강한 오브젝트 영향력.”
- 그래서 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냐고
- 이 긴장감이 안 느껴져?
- 뭘 보여줘야 알지
- 둘 다 이 경기에 목숨 걸고 조심스럽게 하는 게 안 느껴지냐고!!
- 모르겠다고!!!!
- FWX는 전령!!! 트릭스터는 용!!! 이래도 모르겠냐고!!!
- 모르겠다니까!!!!
- 사실 나도 모름ㅎ
#
시작은 아주 작은 것들부터였다.
“어, 아, 까비.”
누군가 아슬아슬한 기회를 놓치고.
“아, 건아, 미안. 내가.. 늦었다.”
아주 살짝 늦었으며.
“이거 볼.. 아, 아니야.”
이니시 찬스가 스쳐 지나간다.
물론 이건 상대 역시 마찬가지다.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5세트.
무대 리허설을 비롯한 메이크업, 촬영, 대기 시간을 포함하면 우리는 이미 평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 활동했고.
경기 또한 4시간을 훌쩍 넘겼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정신력뿐.
“지금 이거.. 아직까지도..”
“네, 그렇습니다. 정말 결승 마지막 세트답다고 해야 할까요, FWX가 전령을 차지하고 트릭스터는 용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타워 교환이 일어났고, 각자 타워가 철거되는 와중에.. 심지어 두 팀의 미드 타워가 모두 다 밀렸는데도!”
이유찬은 생각보다 많이 회복했고.
반대로 엔돌핀에 취했던 바텀 듀오는 서서히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퍼블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아! 타이머 나옵니다! 타이머 떴어요!”
“3, 2, 1! 이거! 드디어!”
“또 하나의 기록이 탄생합니다! 국내 역대 최장 퍼블 타임을 넘어! 섰습니다! 시간, 지금 35분을! 지금! 막! 넘기고 있습니다!”
- 그래~ 이렇게 새해까지 계속 게임 해ㅋㅋㅋ
- 좋겠다 카운트 다운도 같이하고
- 아 뭐 하는데 왜 이렇게 사리는데
- 존나 답답하네
- 너넨 게임의 묘미를 몰라
- 묘미고 뭐고 드래이븐 속이 타고 있는 건 알겠어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이제.. 정말로! 정말로 무슨.. 일이..!”
그리고.
“어어어어!”
“라온, 라온 물렸어요! 라아아아아온!”
“이거, 이거, 이거! 너무 강해요! 초시계! 초시계에에에에엑!”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미친 드리프트! 살았어요!”
“귀신같이 날아온 권건이 만루 홈런을 쳐서 걷어내지만!”
“체력이 너무 많이 빠졌어요! 권건의 뽀비 궁도 빠졌구요! 지금 이렇게 아예 킬이 나오지 않는 경기를 하게 되면, 진영에서 한명이 빠지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구멍이 생깁니다!”
“라온의 아자르는 집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요! 심지어 궁이 지금 빠져있고, 생존기 모두 없습니다! 이거 순식간에 트릭스터 쪽으로 경기가 기웁니다!”
경기의 방향을 옮겨오기 위해 기회를 노리던 미드가 상대와 생각이 겹친 찰나 물어뜯기면서 순식간에 타워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후반의 타워란 도미노와 같아서.
“아, 안 돼!”
“참아요!”
붕괴를 막으려다가 오히려 더 빠르게 무너질 수도 있다.
“세자, 세자, 세자가! 세자가! 웨이브를 정리하려는 순간, 물리고 맙니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되면 아무도 뺄 수 없어요! 어차피 여기서 원딜이 죽으면 집니다! 한타! 시작할 수밖에 없어요! 요른! 요른! 붑니다아아아아!”
“인원 수 차이, 인원 수우우우우!”
“이거, 이거! FWX! 버텨낼 수가 없습니다! 후퇴할 수가 없는 순간!”
막아낼 수 없는 파도가 밀려온다.
“라온이 합류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트릭스터! 밀고 들어갑니다! 권건 점사! 점사! 점사아아아아아아악!”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아 안돼 안돼 시발
- 안돼!!!!!!!!!!!!!!!!!!
- 안돼!!!!!!!!!!!!!!!!!!!!!!!!!!!!
- 이런게 어딨어! 싸우지도 않았잖아!! 싸우지도!!!!!!!
- 안돼 FWX!!!!!!!!!!!!!!!!!!!!!!!!
“뽀비, 졔리, 루루, 쓰러지면서!”
“드래이븐 킬 먹었어요! 드디어! 드디어! 쌓고 쌓았던! 함성의 스택이! 모두! 모두 터집니다!”
“트릭스터에게 금빛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려요!”
천둥 같은 함성이 지축을 뒤흔든다.
불쾌한 기분이 온몸을 감싼다.
아무리 예상했다 한들.
아무리 그럴 수 있다고 했다 한들.
한걸음, 한걸음 패배가 다가오는 기분은 절대 유쾌하지 않다.
“남아있는 것은 아자르와 요른!”
“라온과 차니!”
아.
“어떡해.”
끝나는구나.
“이미 스펠과 생존기가 빠진 라온이, 라온이, 라온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순식간에! 순식간에 쓰러집니다!”
경기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구나.
“내가.. 내가.. 내가.. 하..”
“아니야, 아니야, 깍지 네 탓이 아니야! 내가 살렸어야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킬이 나오지 않았던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 자리에 처음 왔던 팀원들이 고요하게 떨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침착해요.”
아마도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
왜 더, 더 많이 성장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쉽게 허점을 내주지 않았던 상대에 대한 두려움.
맞다.
이제 경기는.
끝나가고 있다.
“결승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몇 번을 맞아도 여전히 아픈 패배가 발목까지 차올랐을 때.
“거니.”
집중한 탑이 말을 뱉었다.
“아직, 아직이야.”
아.
“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더 커다란 환호가 울리기 시작한다.
수만 명이 탄식과 환호를 터뜨린다.
후우우우우욱.
불꽃의 소리가 난다.
아직 이유찬이 살아있다.
불씨는 완전히 죽지 않았다.
첫 세트부터 유독 긴장했던 이 선수는 마치 자신이 협곡에 들어가 전투라도 한 것처럼.
눈에는 실핏줄이 터져 충혈됐고.
입술은 물어뜯었는지 피가 고여있다.
“차니가, 차니가, 마지막 미니언을, 미니언을!”
“트릭스터, 웨이브 지켜야 해요! 웨이브 지켜야! 경기 끝낼 수 있습니다!”
“쌍둥이 타워 하나!”
“미니언, 미니언, 미니어어어어어어언!”
“요른이! 요른이! 아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 뭐예요 시발 다 피해 저 몸뚱이로
- 저걸 어떻게 피해?
- 궁 많이 빠졌으니까
- 아니 시발 존나..
“너무! 너무 완벽해요! 지금! 평타 빼곤 다 안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플레이를.. 해내면서!”
나는 이유찬이 문봉구와 ‘특훈’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실 문봉구가 이유찬에게 게임적으로 가르칠 것은 없다.
“마지막 미니언 쓰러지고! 요른! 이거, 타워 쪽으로..!”
“화염 돌지이이이이이이이이이인!”
하지만 문봉구의 포기하지 않는 마음.
적이 자신보다 훨씬 강하고 많더라도 쉽게 쓰러져주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만큼은.
여기에 틀림없이 계승되어 있었다.
“타워, 타워 어그로 받던 무사 선수가! 무사 선수의 비예고! 쓰러집니다!”
이유찬은.
“이거, 이거, 드래이븐이 아직 쇼핑을 안 해서! 이거! 잘못하면! 계속 시간 끌리면! 다 쓰러질 수도 있어요! 그럼 진짜 곤란해집니다! 이제 슬슬 FWX 살아나거든요! 3초! 2초!”
“이거 잘못하면 역전당해요!”
“어어어어어어, 네, 네! 빠집니다! 빠집니다!”
한순간에 빨려 들어가 쓰러진 우리들의 위에서.
이유찬은 꺼져가는 생명에 다시 불을 지피기라도 할 것처럼.
불꽃 같은 풀무질을 하고 있었다.
“트릭스터가! 군사를! 물립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회군.
거대한 함성으로 온몸의 솜털을 쭈뼛 솟아오른다.
“FWX가 마지막 기회를 다시 얻었어요! 이러면! 이러면, 아직 모릅니다! 몰라요!”
- 시발 레전드 경기 지리네
- 이게 안 끝나?????????
- 미쳤어 존나 깡존쎈차니
- 아직 몰라! 아직 몰라! 아직 몰라! 진짜 몰라!!!!!!!!!!
- 희망찬! 희망찬! 희망찬! 희망찬!
- 백도어! 백도어! 백도어! 백도어!
“이 선수가 언제부터 이렇게 요른을 잘했죠? 이건 마치!”
“마스터 오브 요른!”
“마치 팬시 선수가 이 자리에 온 것 같습니다!”
이유찬의 목소리가 떨린다.
“아직.. 내 게임은 안 끝났어.”
손도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로 떨리고 있다.
“1분이라도, 더, 이 게임에 숨을..”
“유찬아..”
“지금의 모두와, 1초라도 더 이 무대를..”
“탑..”
“더 오래 밟고 싶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