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산산조각 나더라도
내가 바텀이 투수와 포수 같은 환상의 배터리라는 말을 한 적이 있던가?
꼬꼬마 탑과 미드 역시, 2루수와 유격수처럼 연계 플레이를 펼치는 키스톤 콤비라는 말도?
했던 것 같다.
그럼 나는 뭘까.
나는, 현장에서 뛰며 선수들에게 두 번째 눈이 되어주는 주루 코치이자.
작전 수행의 핵심인 대주자.
그리고 때론 9회 말 만루 상황에서 대타자가 되는 만능 포지션이다.
감독은.. 박 감독님이 섭섭하실지도 모르니까 양보하도록 하자.
우리 정글은 그렇지 않다고?
글쎄..
잘난 척할 생각은 아니지만.
나 같은 정글이 흔한 건 아니거든.
그게 정글의 맛.
#
트릭스터의 정글, 무사는 냄새를 맡았다.
바텀 다이브.
이건 틀림없다.
“바텀, 빠져!”
FWX에서 권건은 다이브의 위험성을 감수하지 않았다.
딱 서머 초까지 그랬다.
하지만 팀원들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자, 이 선수는 마치 여태까지 못했던 게 아니라 할 수 없었다는 것처럼 과감한 다이브를 시도하곤 했다.
솔직히 FWX는 결점과 한계가 있다.
하지만 강하다.
그렇기에 빅스보다 불편한 상대.
FWX 대신 빅스가 올라오기를 바랐는데.
“미래, 아자르 텔?”
“아까 복귀할 때 빠졌어!”
달린다.
숨이 차오른다.
머리 위로 바람이 불어온다.
하지만 비예고는 발 빠른 뽀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아니, 발이 빠른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완전히 속았다.
챔피언이 달라도 동선에는 기본 관성이 있다.
챔피언은 바뀌지만, 선수는 바뀌지는 않으니까.
권건은 1세트와 2세트에 돌던 동선 관성을 이번 세트에서는 완전히 바꿨다.
대체 어떻게?
“권건! 들어어어어어어어갑니다!”
우리 팀의 소중한 고양이와 쥐가 어떻게든 몸을 숨겨보려고 하지만.
원딜의 정면에서는 야쓰오가 전신에 회오리를 휘감고 다가오고 있었고.
후방에서는 타워 어그로를 받아낸 뽀비가 굳건한 태세로 달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 시작은.
“셰나! 셰나의 속바아아악!”
“이게! 트윗치를 맞춘 게 아니라! 속박을 맞은 미니언이 죽으면서 바로 범위 속박에 걸린 거에요!”
- 지저스
- 그런 기능이 있어?
- 미니언이 무조건 막아주는 거 아니야?
- 응 아니야
“이러면 피할 수 없습니다! 회오리! 공중에..!”
이건 마치 번개 같은 장면이었다.
“뜹니다!”
- 홀리 쓋
- 안돼
- 구미야!!!!!!!!!!!!!!
허공으로 떠오른 쥐가.
“소리에게에에에에 돈! 칼이 웁니다!”
관중의 환호와 함께 또다시 허공에 붙들리고.
“다시 한번! 권건이 높이! 쳐올립니다! 수호자의 심파아아아안!”
지상에 다시는 발도 디디지 못한 채.
“이렇게! 바텀에서! 트윗치가! 또!”
삭제되기까지.
3초도 되지 않을 시간 속에서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
최선을 다해 달려온 정글러 김은검은 다시 한번 유마의 궁극기가 들어가고 있는 권건을 향해 칼을 뻗었지만.
세 번째 파동이 미처 뻗어나가기도 전이었을까?
미니언에게 돌진기를 사용해 빠져나가 버린 권건의 잔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고.
그림자 끝자락이라도 잡아보려 성큼성큼 다가가 봤지만 이 흔적마저도 곧 셰나의 장막에 가려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와아아아안-벼어어억-한! 다이브!”
“무사도 알아차렸지만! 딱 3초 늦었어요! 이게 절대 늦은 게 아니거든요! 정확한 정보도 아닌데 캠프 먹던 걸 포기하고 그냥 뛸 수는 없잖아요!”
“진짜 미쳤어요, FWX! 미쳤어요! 핑퐁이 미쳤어요!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습니다! 아주 그냥, 체력이 남아돌아요! 내가 뭘 본 거야! 진짜 뭘 본 거냐고요!”
“이번에는 권건 선수가 대체 어떤 말을 하면서 들어갔을까요? 저는 이제, 이게 궁금해요! 첫 어그로부터 서로 다른 챔피언들 간의 스킬 활용 순서, 빠져나가는 방법까지! 완벽한 계산을 거친 것 같았습니다!”
- 정신나갈것같아정신나갈것같아정신나갈것같아
- 점심나가서먹을것같아점심나가서먹을것같아
- 미니언에게 고함 니넨 아군이냐 적군이냐
- 정신 차려 트릭스터 정신 차려 제발제발제발!
“FWX가 다시 한번! 바텀에서! 득점합니다!”
정신이 아찔하다.
뭐 이런 미친 새끼가 다 있어?
게임 뭐같이 하네..
트릭스터는 재빨리 전열을 가다듬었다.
“권건 점멸 썼지?”
“안 썼어..”
“씨발.”
하지만 정신까지 가다듬기는 어려웠다.
그때.
“아니, 내가 이겨줄게. 침착해.”
트릭스터의 탑이 낮고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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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근데 어떻게 잘 안 뚫리네.”
원딜이 없다는 말은, 팔이 짧다는 얘기고.
그건 타워를 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건 FWX 조합의 단점이다.
“상대도 지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킬을 줬다고 무조건 무력한 조합은 없고.
킬을 땄다고 무조건 이기는 조합도 없다.
그렇기에 리그가 존재할 수 있다.
트릭스터는 상대적으로 강력한 상체 주도권을 바탕으로 전령을 사수해냈다.
바텀에서는 FWX가 용을 챙겼지만 나눠먹기식.
트윗치와 유마는 망했다.
당장 FWX 바텀 듀오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도 못하는 수준.
하지만 트릭스터는 상처를 회복할 줄 아는 팀이다.
10분 정도만 버티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트릭스터의 본진은 최대한 싸움을 피하면서 트윗치에게 자원을 배분하고.
탄탄하게 성장한 갱플은 적절한 궁지원을 해줘 가며 FWX의 흐름을 끊었다.
몸을 둥글게 만 아르마딜로 식 운영.
이렇게 되면 점점 싸움이 길어지고 트릭스터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FWX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싸움 보자.”
권건의 말에.
모두 누군가의 대답을 기다렸다.
트릭스터는 똘똘 뭉쳐있다.
끊어먹기를 할 틈을 내주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FWX는 두꺼운 등껍질을 단박에 부숴야 한다.
“후욱.”
이유찬이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전투 기회가 어디에서 생겨날지 예상은 할 수 있지만, 완벽하게 점지할 수는 없는 노릇.
이유찬의 대답이 중요했다.
탑 라이너의 참전 여부에 따라 이번 경기 초반에 가져온 모든 이득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인베 싸움 등에서 승리해 초반 이득을 당긴 뒤, 인원수 배분을 느슨하게 하다가 뒤집어지는 경기는 흔하다.
“..할 수..”
탑에게서 미지근한 긍정 신호가 떨어진다.
“음.”
권건은 이유찬이 긴장해서 체력 분배를 실패한 것 같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극복해야 할 문제니까.
“탑, 힘들면 우리끼리 만들어도 돼.”
김예성은 이유찬이 지나치게 흥분해서 떠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승부욕이 크고 우승이 간절한 선수였으니까.
“그래! 지금 나 무적야쓰오야. 무쓰오.”
곽지운은 그가 관객들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했다.
다수 앞에서 발표나 연설을 하지 못하는 타입은 흔하니까.
“나는 무나.”
“무료 셰나 나눔?”
“아차차. 무진장 쎈 셰나.”
최은호는 승리 욕구가 너무 강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로열 로더’ 타이틀이나, 뭔가 멋진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잡아먹힌 걸지도 모르겠다고.
각자 이유와 태도는 달랐지만.
탑이 신고식을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
다만, 분명히 타임 리미트가 있다는 점.
“아니.”
권건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해. 이유찬.”
단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이 있다.
아주 먼 과거의 자신과 닮은 이유찬이.
“해야만 해. 너와,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해서.”
부딪혀서 몸이 산산조각으로 깨지더라도 끝내 승리를 향해 달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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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WX) 야 이거 왜 싸움 안 나냐?
ㄴ 트릭스터 잘 피하네ㅎ
ㄴㄴ 우리가 무서운가바ㅎ
ㄴㄴ ㅄ들아 그런 거 아니야
ㄴㄴ 이대로 시간 계속 끌면 불리해져
ㄴㄴ 후반 캐리챔 셰나가 있는데 몬 상관 ㅎ
ㄴㄴ 무슨 경기 70분 하려고 그러냐? 걘 출신이 서폿이잖아
ㄴㄴ ???
ㄴㄴ 어휴 답답이들아!!!!!!!! 원래 FWX같은 약팀은 게임을 너무 길게 가져가면 안 돼!!!!!!!
ㄴㄴ ???
ㄴㄴ 권건이 왜 게임을 빨리 끝내려고 하겠냐? 뒤로 갈수록 변수가 늘어나니까 그런 거잖아!!!!!!!
ㄴㄴ 존나 애매하게 맞는 말인데.. 왜 빡치지..
ㄴㄴ 팩트) 약팀이면 흔들리고 나서 다시 일어설 힘이 없어서 게임이 빨리 끝나고, 강팀은 코어가 강해서 서로 경기가 길어짐~
ㄴㄴ 팩트) 챔피언 성능과 별개로 뒤로 갈수록 변수가 늘어나는 건 맞음~ 그래서 끝낼 수 있을 때 끝내는 게 좋음~
ㄴㄴ 이게 듣기 좋구나
ㄴ 우리 FWX 응애들 힘내라
ㄴㄴ 응애는 해충입니다
ㄴㄴ ?
ㄴㄴ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고 약 치면 다음 세대는 면역 지리게 타고나는 놈들
ㄴㄴ 어? 우리네?
ㄴㄴ 응애 FWX 파이팅
ㄴㄴ 이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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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바람이 협곡을 뒤흔들었다.
아까 FWX가 바람용의 영혼을 가져간 탓이다.
트윗치는 완벽하진 않지만 구색은 갖춘 무기를 소중히 쓰다듬으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곁에서는 고양이가 사주경계를 하고 있다.
문득, 불편한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시야를 빼앗겨 어둠이 드리운 숲 방향.
해가 저물기라도 한 걸까?
시야 없는 숲이 오늘따라 더 어두워 보인다.
유심히 들여다본 풀숲이 들썩거린다.
실제로 뭐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회피 스프레이도 없는데 굳이 저길 들어갈 필요는 없다.
“나옹이, 컴.”
“바론 시야 잡고 올게.”
원딜인 쥐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고양이는 든든한 정글러에게 환승했다.
상대의 압박과 합이 무척 거세다.
“미래야, 아자르는 조금 뒤쪽으로 빠져서 따라와. 가능하면 사일한테 궁 주지 말고.”
바텀에서 갑자기 등장한 야쓰오에, 신경 쓸 게 늘었다.
아군 아자르의 궁 가치가 급상승해버린 것.
적의 마지막 피스는 이쪽에 있었다.
“아마 뺏은 네 궁으로 이니시 시작하려고 할 거야.”
“오케이.”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디딘다.
안전거리를 유지한다.
쥐는 숲의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다.
좀 더 안전한 방향으로 돌아서 가려다 말고.
잠깐 스톱 무빙.
“호오오오오우! 잘 참았어요, 고구미 선수!”
“바로 코 앞으로 회오리 지나갔죠?”
“진짜 감 좋았습니다! 괜히 이 선수가 뛰어나다고 하는 게 아니거든요!”
심장이 두근거린다.
버틴다는 건, 어떨 땐 완벽하게 지고 있는 것보다도 힘들다.
“아예 빠질래?”
“아니, 백업만 살짝 볼게.”
“형, 정글 지원 해야 해. 이거 여기서 정글이랑 서폿 둘이 같이 끊겨버리면 답 없어.”
“거기 있어?”
“이쪽 방금 냐르 살짝 보였다.”
시야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은 그야말로 눈을 가리고 게임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트릭스터는 최대한 정보를 교류하려고 노력했다.
단 한 번.
팔이 짧은 FWX가 타워를 공략하기 위해 반드시 가져가야 할 오브젝트.
그리고 타워를 보호하며 시간을 끌어야 하는 트릭스터가 밖에 나올 수밖에 없는 타이밍.
바론.
“두 팀, 시야 싸움 치열합니다!”
“이거 굉장히 중요한 싸움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근데 지금 트릭스터 챔피언들은 궁극기 중요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갱플, 비예고, 아자르, 트윗치, 유마! 모두 말 할 필요도 없지만 사실 이 조합, 정말 중요한 건 트윗치입니다!”
“네! 쥐가 마스코트인 조합! 원래 주인공은 항상 노란색 쥐가 맡는 거거든요!”
- 고수호의 미라쥬 이적 예고?
- 서포터 헥사 왕‘지우’와 함께하는..
- ‘쥐’의 남자..
- 원딜 쥐와 응원하는 서포터.. 지와 쥐우..
- 어? 탐난다 수호야 여기서 똥 싸고 저렴하게 이적해라
- 경기에 집중 좀 하실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 킬이 안나잖아ㅋㅋㅋㅋ
- 트릭스터가 존나 비겁하게 게임하니까 그렇지
- 야 야 조용히 해봐 오고 있어
“사실상 나머지는 트윗치가 안전하게 딜을 할 수 있는 각을 만들어주는 역할이에요. 트윗치가 궁을 사용하게 되면 순간 DPS가..”
“트릭스터도 그 사실, 자신들의 컨셉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자원을..”
가물가물, 헤드폰 너머에서 관객의 함성의 떨림이 전해져온다.
적들은 분명히 이 근처에 있다.
귀맵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조우하기 직전.”
“냐르는 이쪽. 점 부쉬 근처 배회.”
LOS의 자연은 평등하다.
패치의 방향은 늘 한번 승기를 잡은 팀이 손쉽게 승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역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바론은 그 기회 중 하나다.
“수정초.”
이런 변수 창출 개체 또한 마찬가지다.
트윗치는 어두운 숲에서 적을 향해 불을 켠다.
채앵, 바람의 협곡이 꽃가루를 날려 보낸다.
찰나.
불편했던 시야가 밝아지길 기다렸던 쥐의 등 뒤에서.
싸늘한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