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167화 (168/326)

167화. 득점왕이던 내가 도움왕이라고?

김예성은 이유찬에 대해서 많이 알았다.

먹을 것만 쥐여주면 TMI를 쏟아내는 이 선수는.

처음에는 권건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강한 것처럼 보였다.

마냥 게임을 잘하고 싶다는 열정이 가득한 사람.

나보다 조금이라도 잘한다 싶으면 감탄보다는 이겨보고 싶어 하는 타입.

그래서 처음에 김예성은 이유찬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김예성은 자기 자신을 참모나 책략가 타입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두 사람은 마치 장비와 제갈공명.

하지만 남에게 자기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이 선수와 티타임을 했을 때.

권건이 이유찬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유찬은 자기가 가장 아끼는 보물 2호가 마우스라고 했다.

그리고 당연히 키보드나 자기 자신일 줄 알았던 보물 1호는..

#

- (FWX) FWX는 공식 팬티를 만들어달라

ㄴ 요일별로 입을 수 있게 7개 세트로

ㄴㄴ 왜 7개나 필요함? 경기는 두 번인데

ㄴㄴ 중간에 지리니까?

ㄴㄴ 아니 그 전에 팬티 매일 안 갈아입으세요?

ㄴㄴ FWX 특혜! 최소 주 2회는 꾸준히 팬티 갈아입기 가능

ㄴ 팬티 서명 운동 갑니다

ㄴㄴ 당신을 싸게 만들어버려 매우 유감

ㄴㄴ 쉬바 아까까지는 와장찬이었는데 이제 희망찬이네

ㄴㄴ 저게 얶덖계 가능한 건데

ㄴㄴ 쟤네 탑 신인 아니야? 내가 여태까지 왜 쟤를 몰랐어?

ㄴㄴ 존나 여태까지 어디서 공작 당한 거 아니냐?

ㄴㄴ 탑을 너무 믿지 마라

ㄴㄴ 이번에는 럭키픽이었구연ㅋ

ㄴㄴ 던질까 말까 던질까 말까 던 던 던 던!

ㄴ 근데 셋이 존나 한 호흡인 거 아니냐?

ㄴㄴ “삼위일체”

ㄴㄴ 동시에 들어가면 이걸 어캐 반응해요 ㅅㅂ

ㄴㄴ 어떡하긴 뭘 어떡해

ㄴㄴ 그냥 웃어

ㄴ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거 편해졌다.”

“안돼. 절대 방심하지 마.”

“그래. 한 톨의 CS조차.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딱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우리 깍지 혈당 떨어졌냐? 껌 씹고 싶어? 빅스 껌 줄까?”

바텀 듀오는 어떻게 해서든 긴장감을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나 이거 먹어도 돼?”

“나 이거 먹어도 돼?”

“내가 먹을 건데?”

“내가 먹을 건데?”

우리 쪽으로 유리한 스코어에서 꽤 큰 득점을 해서일까.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 상체 듀오가 내 좌우에서 분위기를 깬다.

김예성은 평소와 달리 텐션이 굉장히 높다.

첫 세트에 비해 완전히 달라진 모습.

잘 풀려서 그런가.

뭐, 어쨌든 남의 정글을 두고 종알거리는 두 사람은 차치하고.

“미드, 미드, 미드!”

- 어 드디어

- 드디어 리벤지가 뭐 좀 보여주나

- 리벤지! 리벤지!

“미드에서 라온이 맞아주는 것 같은데, 이게!”

“지금 타이밍이 참 편하거든요? 사일 마나 뽑을 만큼 다 뽑고 자긴 집 갔다가 텔 타면 됩니다. 이거 완전 전략적인 맞아주기예요.”

- 불여우ㅅㅂ

- 밀당 존나 잘하고

- 저 개 같은 거 진짜

“지금 이제 요공 대놓고 CS가 밀립니다! 지금 빅스, 돌파구 찾아야 해요! 이대로 시간 쭉 끌린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닙니다!”

게임 자체는 생각보다 불안감 없이 진행되고 있다.

뭐, 나도 사실 몸이 약한 정글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 하는 건 아니거든.

“지금 권건이 굉장히 노련하게! 갱을 보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역갱 각 보고 있거든요? 이게 상대 입장에서는 너무 불편해요, 아니 화가 나잖아요! 저거 몰가 거북목 와가지고 구부정하게 고개 숙이고 서 있는 게!”

다만 일반적으로 정글러들이 갑자기 보조형 정글을 요구하면 어려워하는 이유는.

정글러는 할당된 라인이 없는 만큼, 정글 운영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귀신! 귀신이 나타났다! 정글 귀신이야!”

“저게 몰가가 근본적으로 천사 느낌이긴 한데, 이건 진짜 사람을 너무 열받게 하거든요!”

- Q 심리전 초고수

- 저건 맞는 놈이 못하는거냐 아님 때린 놈이 잘하는거냐

- 아무튼 맞으면 영겁의 시간을 속박당함

- ㅈㄴ ㅇㅈ

이건 파이어볼러에게 갑자기 제구력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처음부터 제구되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에겐 문제가 없겠지만.

“지금 탑 간다.”

“너 온다고?”

“아니, 상대.”

“아.”

“잘 죽어.”

“멀리 안 나간다, 탑. 아디오스.”

아니, 나는 잘 죽으라고 했지 잘 가라는 인사를 한 건 아니었는데.

김예성 얘는 왜 텐션이 이렇게 높아졌어.

“빅스의 올인 다이브! 차니 선수, 최대한 버텨보지만..!”

“쓰러지고 맙니다!”

“이만하면 됐지? 플궁 두 개나 뺌.”

“굿.”

이유찬은 뭔가 개운한 얼굴이다.

음.

아까 의견이 받아들여진 게 기쁜 건가?

사실 내가 안전 제일을 주장하는 이유는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아직 이 선수들이 유치원의 어린아이들 같이 느껴진다.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하는 그런 기분.

노약자는 보호해야 하는 거잖아.

특히 이유찬이 그렇다.

무슨 말을 해도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다.

나는 신인 탑과 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

우승권 팀의 탑은 대체로 베테랑이거나 경력이 긴 선수들이 많다.

탑은 포지션 특성상 수명이 긴 편이기도 하고.

심지어 이유찬은 이번 시즌에 올라왔으니까.

“대각선에서 FWX가 바텀에 전령을 풀어 산뜻하게 이득을 챙깁니다, 포블!”

“아.. 밥차가 달콤하구나.”

“마음껏 드시옵소서, 저하. 탄수화물은 사랑이옵니다.”

“너는 누구와 다르구나..”

“두꺼비도 드세요.”

“들었느냐?”

“들었사옵니다.”

“하하하하하, 내가 곧 왕좌에 앉으려나 보다.”

“맞사옵니다. 이제 닥치고 템 뽑아오시옵소서. 용 시간이옵니다.”

“야무진 조언 고맙다.”

둘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바텀은 어쨌건 간에.

“용 볼 건데.”

브리핑 시간이다.

“이미 우리 2용이라 빅스 성격상 무조건 싸움 붙으려고 할 테고..”

생각해보면.

“예성, 이 위치로 시선 끌고. 유찬, 두 번째로 진입. 혹시 먼저 물리면 바로 은호 형이 레나타 궁 덮고, 아니면 아끼다가 써주세요. 그리고 스펠 체크 다시 한번.”

멀찌감치 떨어져서 명령만 내리는 건 오랜만이다.

다른 사람이 헛발질하다가 먼저 끊기는 걸 보느니 내가 들어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어그로 끌리지 말고. 주의.”

“용 앞, 양 팀 신경전!”

“라온, 라온, 라온이 시선 끄는 사이! 레넥이 진영 붕괴!”

“끌어당겨서.. 쳐냅니다! 이거, 빅스 체력 많이 빠졌어요!”

“더 싸우나요? 더 싸우나요? 이거 아직 라온 날개 안 폈어요. 너네 들어 올 거야? 나 날개 편다? 옆에 지금 권건도 언제든지 날개 펼칠 수 있거든요! 이거, 굉장히 불편한 구도!”

“지금 이거 FWX의 두 날개가 든든합니다? 처음에는 아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FWX가 앞 라인이 엄청 튼튼한 조합이에요!”

“빅스, 빠지면서! FWX가! 3용을 차지합니다!”

조금 편한 것 같기도 하고.

귀환하며 슬쩍 눈이 마주친 김예성이 활짝 웃는 걸 보니.

왠지 아니꼬운 기분이 들어서 이 감정은 묻어두는 게 좋겠다.

#

“와, 이거, 이거, 이거!”

탑 고재길이 소리를 지른다.

스플릿.

어느 순간 다이브 당하던 상대 탑이 스플릿 푸시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끊었다.

그런데 그 후, 웬 벽 너머에서 날아온 권건의 Q와 김예성의 초장거리 눈알 빔에 우리 정글이 순식간에 객사하더니.

또라이 탑은 솔랭이라도 도는 것처럼 무지성 푸시를 하고 있다.

“이 미친 새끼 막아!”

뭐, 시간 끌기?

전략?

우리가 경험이 더 많아?

그딴 건 존나 센 총 앞에서 뻥뻥 터져나갔다.

솔직히 지금 와서야 하는 생각이지만.

그럴 거였으면 1세트나 2세트라도 이기고 나서 그런 말을 해야 설득력 있는 거 아니야?

“내가 갈게!”

허겁지겁 달려오던 미드 이지원은.

“억, 좆같은 눈깔! 시발시발!”

“바른 말 고운 말!”

“발씨발씨!”

또 상대 미드한테 체력을 뜯긴다.

김예성 저 새끼는 어떻게 하는 챔피언마다 저래?

궁 뺏고, 몰래 목 긋고, 체력 뜯고.

사람들 앞에서는 수줍은 척하는데 게임에선 순 악마가 따로 없다.

“그거 밟지 말라고!”

“아니!”

“왜 못 피해? 뭐 적이 천라지망이라도 펼쳤어? 그걸 못 피하네?”

또 시작된 탑의 집중포화에 이지원은 정신이 쏙 빠진다.

FWX만 만나면 이런다.

아니, 저 개 같은 놈들은 어떻게 된 건지.

특히 김예성.

빅스에 있을 때는 설렁설렁했나?

아니면 저 새끼들 단체로 약이라도 하나?

“권건 어딨어?”

“미드 근처!”

“간다!”

그래, 어쨌든 탑만 계속 끊으면 길이 열릴 것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잖아!”

“어? 그게 왜 거기?”

길 끝에서 발길을 붙잡는 건 권건의 암흑 속박이다.

마음이 급했다.

야속한 속박 소리가 심장이 철렁하도록 크게 들린다.

- 아니 리벤지 자석이세요?

- 아ㅋㅋㅋㅋㅋㅋㅋㅋ

- 저걸 맞냐고ㅋㅋㅋㅋㅋ

- 권건 시야의 마술사ㄷㄷㄷㄷㄷ

- 우리는 다 보이지만 시야 차이 때문에 저거 끝에 가서 보였음

- 끝에 가서야 보여? 시발 이게 무슨 마구임?

이 미친 핀포인트 제구.

대체 뭘까?

몰가 Q 좀 던져본 사람들은 안다.

이 스킬이 얼마나 쓰레기같이 느린지.

이즈 Q가 야구공이라면, 이건 농구공 사이즈다.

날아오는 속도가 워낙 느려서 그사이 라면도 끓여 먹겠다.

그래.. 큰 만큼 판정도 후하지만.

멍청할 정도로 눈에 띄는 이 스킬은 후루꾸가 아니면 도저히 맞출 수가 없는..

“나 죽을 것 같은데?”

그걸 맞은 병신이 나였지..

이 볼, 슬라이더 아냐?

맞지?

“자랑이세요?”

이지원은 억울하다.

왠지 FWX만 만나면 항상 억울해진다.

아니, 나도 꽤 하는 미드인데.

김예성 저 새낀 제 발로 빅스에서 나가놓고 어디서 나온 복수심인지 빅스만 만나면 각성한다.

“응, 미드 땡땡.”

김기태가 또 긁는다.

아, 이 강렬한 기시감.

“사일, 끝까지 초시계까지 사용하면서 버텨보지만!”

“오히려 합류하던 세자가 잡아먹습니다! 이 킬이! 저 입에! 저 입에 들어갑니다! 이거 마구에 마구마구 흔들려요, 빅스! 시간 끌기 실패로 돌아갑니다!”

“자연스럽게 탑 타워까지 철거! 혼자 왔니? 응, 이번엔 아니야!”

“이게 처음에는! 막 들어오는 것 같았는데! 이게 호응이 되기 시작합니다!”

“장판 엄청 아파요! 저기 진짜 밟으면 안 됩니다! 막 끓잖아요! 이거!”

빅스 선수들의 호흡이 빨라진다.

휘둘린다.

휘둘리고 있다.

시즌 종결의 패배를 앞두자 아예 정신이 아득해진다.

모두 친하지만 특별한 정신적 지주가 없는 이 팀을 흔들어 놓는 것은 상체.

공격력 원툴 허수아비인 줄 알았던 탑이 고재길을 흡수한 것처럼 플레이하는 것.

그리고 ‘우리 팀’이었던 선수가 ‘상대 팀’이 되었을 때 더 잘한다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

그리고..

“또다시 유유하게 빠져나갑니다! 이거 LOS 최고의 사기 스킬 하면 절대 안 빠지는 게 몰가 블쉴이거든요! 저거, 오늘 진짜 값어치 해요. 아니, 두배, 세배, 네배, 백배! 그냥! 블쉴 하나면 오오오케이!”

- 오 시바 저걸 끝까지 참네?

- ㅋㅋㄹㅇ나였으면 맞자마자 켬ㅋㅋㅋㅋㅋ

- 사기캐 아니야 저거ㅅㅂ

- 응 그럼 니나 해ㅗㅗㅗ

- 몰가 정글은 연습 모드에서 하세요.. 제발

“근데 앞에서 자꾸만 살랑살랑! 살랑살랑, 들어와 봐! 들어와 봐! 한번 쳐 봐! 내가 반응 못 할 수도 있잖아, 자꾸 이런 말 하잖아요! 이걸 어떻게 안 때리나요, 빅스! 이거 못 참아요! 못 참아! 야, 나 말리지 마! 내가 쟤 때리고 지옥 간다아아아악!”

“근데 권건에게 여전히 오답은 없습니다악! 그냥 바로 지옥 퀵 배달 서비스! 정말 좋은 의미로 제정신이 아니에요, 권건!”

“지금 이건 상대 동력원을 끊은 거예요! 중간중간 태클 넣는 게 보통이 아니에요, 지금! 이게 흐름 끊는 게 그냥! 누구랑 다를 바가 없어요! 날아가던 찬스도 살리는 전무후무한 수비수우우우욱!”

“불타는 공명체 4개가 모두 무력화!”

저 지독한 새끼가.

설마 실드챔 숙련도까지 높을 줄은 전혀, 감코진조차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이번에는 바텀 갑니다!”

“진짜 차니 오늘 자기 마음대로 막 하고 있어요! 아니 이거 어떡해요! 이 선수 왜 이러냐고! 이거 허락받은 거 맞아요? 이거 진짜 미쳤잖아요! 아예 합류라는 걸 잊어버렸어요! 형, 스플릿은 우직해야 돼!”

“지금. 이 선수 자기가 강하단 걸 알아요. 지금 둘만 와서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 선수 지금 무빙 예술이거든요? 손끝이 살아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어도 손해가 아니다, 계산이 섰다는 거죠.”

“근데 또 빅스는 차니 쪽으로 가다가 피 다 깎여요! 아니 이거 사기 아니에요? 왜 이렇게 멀리서 스킬을 쏘나요, 라온!”

숨이 턱턱 막힌다.

살짝 버벅대던 FWX가 갑자기 혈이라도 뚫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라아아아아아온! 지금 플 앞으로 쓰면서 막 들어가요! 이리! 와! 이리! 와아아악! 너! 머리채! 너! 이리! 와아아아악!”

“스웨인 날개 펼치고! 그냥 막 긁어요! 이게! 사일이 궁 뺏어서 함께 펼쳐보지만! 라온의 날개는 급이 다르거든요! 지금 이거 그냥 던전 보상 날개 같은 게 아니에요! 오리지널 특별 한정판 초특급 레어 영원한 빛!”

“그게 뭔가요!”

“그만큼 강하시다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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