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154화 (155/326)

154화. 재택 근무

다음 날.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되고 나자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LKL) 선수 대기실 구역 내 흉기 소지한 괴한 불법 침입, 안전 불감증 심각 ]

[ (LKL) 금일부터 전 경기 온라인으로 진행 돌입 ]

[ ‘범인’의 목표는 미라쥬였다.. ]

[ “불미스러운 사건, 국가적 망신”, 이대로 괜찮은가 ]

[ LOS 파크 운영 일시 정지, “보안 절차 강화 예정” ]

[ 팀 경호는 “땅따먹기” 식? 구단 측 경호 인력의 한계.. ]

[ 미라쥬 김병우 감독, “팀에게는 으름장, 내부 보안은 구멍이 숭숭.. 우습다” ]

[ 유니버스 김동원 감독, “유럽에서는 상상도 못 한다, 대규모 소송을 각오할만한 사건” ]

[ 트릭스터 이길준 감독, “용산, e-스타디움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일” ]

[ FWX 박진현 감독, “반드시 노력이 필요한 문제, 정식 항의 예정” ]

[ 책임은 불가피. LKL, 문체부에 안전 권고받나.. ]

[ 미라쥬 공식 SNS, “선수에게 심대한 정신적 피해 발생.. 최선을 다해 대응 예정” ]

[ (사진) 해당 사건이 발생한 현장. 갈 길이 먼 문화의 성숙.. ]

[ 경기장만의 문제 아니야.. 본사, 숙소, 이동 동선 등에서 끊임없이 불거지는 이슈들 ]

[ 스토킹 이슈 재조명 ]

- 이거 역대급인데.. LKL 망하는 거 아님?

ㄴ 프로게이머가 이렇게 극한 직업이냐고

ㄴㄴ ㄹㅇ 대기실에서 칼 맞고 골로 갈 수도 있다고?

ㄴㄴ 미친 새끼 아니야? 걔 전과 있는 거 아님?

ㄴㄴ 선수 보호 좀 잘해라 어이없어 진짜

ㄴ 얘네 은근 스토킹도 많고 스트레스 개많이 받음

ㄴㄴ ㅇㅇ 지난번에 해머스인가 어디에 흉기 배달되지 않았냐?

ㄴㄴ 숙소 침입도 존나 흔함

ㄴㄴ 거기 뭐 볼 게 있다고 가

ㄴㄴ 범죄충들의 생각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겠냐?

ㄴ 근데 범인이 뭐 선수가 자기 팼다고

ㄴㄴ 헥사가 어떻게 사람을 팸? 자기 목도 못 가눠서 거북목인데

ㄴㄴ 원래 자기가 불리하다 싶으면 거짓 진술하고 그러는 거지 뭐

ㄴㄴ 아무도 그런 일 없었다던데ㄹㅇ 하루살이 인간 말종;

[ 사건의 전말 르포 ]

흉기를 소지한 괴한은 스태프를 속이고 침입, 해당 단계에서도 적합한 확인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중략) 해당 스태프가 기지를 발휘하여 선수들을 감싸..

사건의 책임 소재에 관해 협회와 LOS 파크 측은 첨예하게 대립 중..

협회 측, “전적으로 LOS 파크 운영에서 발생한 문제, 순찰 인원 강화 및 선수 보호 촉구”.

LOS 파크 측, “인력 부족으로 인한 이슈 및 협회의 ‘잦은 외부인 밀어 넣기 및 보안 절차 간소화 요구’를 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

협회의 갑질 여부로 거세지는 비판 여론이..

[ 한 스탭의 고백,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모두 제 책임입니다.” ]

ㄴ 이건 또 뭐야 이런 거 올려도 돼?

ㄴㄴ 그만뒀다던데..

ㄴㄴ 잘린 거로 암

ㄴㄴ 꼬리 자르기?

ㄴㄴ 근데 스탭이 뭘 알겠어? 제대로 교육을 못 받았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ㄴㄴ 얘가 선수들 지키겠다고 몸 던졌다던데????

ㄴㄴ 기강 문제지

ㄴㄴ 우리도 말조심 해야하지 않을까?

ㄴㄴ ㅅㅂ.. 반성합니다..

ㄴㄴ 혼란하다 혼란해

ㄴㄴ 그래도 남 탓하는 것보다는 얘가 낫다..

ㄴ 근데 얘 이름이 박성준이라던데?

ㄴㄴ ? 동천동 공식 미빠 박성준?

#

“...”

“건이 혼났나 보네.”

곽지운이 종종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맞지?”

얄미운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

뭐라 대답할 말이 없다.

어제 선수 인터뷰와 이후 일정이 캔슬되면서 모두가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가 두 번째 경기여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만약 첫 번째 경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경기장을 찾은 팬분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도 모르고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있다가 경기 취소를 겪었을 테니.

팬분들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그날 예정되어있던 회식 역시 없었던 일이 됐고, 우리는 모두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대기했다.

미라쥬와 사건을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현장에 있었던 것은 왕지우와 안희종.

가장 먼저 달려온 나, 그리고 주변에 있던 현장 스탭들이다.

그나마 그 장소에 있던 스탭 중 하나가 미라쥬 선수들을 감싸면서 두 사람이 범인과 오래 마주하지는 않았지만.

처음에 칼을 들고 달려오는 모습은 봤을 테니 미라쥬의 두 사람은 충격이 컸을 거다.

그래도 우리 팀원들은 험한 꼴을 보지 않았다.

감독님은 구체적인 상황을 알고 있지만 선수들은 잘 모른다.

양 팀의 대응과 내 요청으로 나에 대한 내용은 기사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내가 밀쳐내서 미라쥬 애들을 지켜줬다더라, 정도다.

실제로 그게 맞기도 하고.

왠지 말로만 들으면 별로 어렵지 않은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그래서 대체로 반응은 와, 신기하다, 용기있다 정도였다.

현장을 못 본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혼났냐니까?”

어쨌든.

난 혼난 게 맞다.

나도 생각 없이 달려든 건 아니다.

달리면서 릴리에게 브리핑을 요청했고.

상대가 나이프 파이팅을 익힌 사람이 아니며, 타깃이 내가 아니라는 것 역시 알았기에 나쁘지 않은 대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 감독님은 처음으로 불같이 화를 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그리고 오늘까지 내내.

나는 잔소리를 언제 들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는 사람이다.

왜냐고?

글쎄, 항상 완벽하기 때문이 아닐까..

“너 은근 소심하네? 기죽었어? 하긴.. 너 좀 위험했어. 그런 일은 이 주장한테 맡겼어야지.”

곽지운은 어설픈 스텝을 밟는다.

“내가 한주먹 하거든. 봐라. 형이 복싱도 배웠어.”

무게 중심이 너무 상체에 가 있는데?

“잽. 잽.”

곽지운이 주먹을 훅훅 뻗는다.

풋워크와 펀치의 이동이 서로 반대다.

이러면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주먹이 아니라 민들레 씨앗이 날아다니는 것 같아서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요.”

“어?”

“이렇게.”

내가 가볍게 자세를 취하며 주먹을 뻗자 부웅,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난다.

“좀 치네?”

곽지운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근데, 그래도 나한테 맡겨.”

민들레 씨앗을 꼭 쥔 채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너보다 형이잖아. 이런 건 나이 많은 사람이 하는 거야..”

나이.. 내가 더 많을걸?

어이가 없는 건지 웃음이 나온다.

“걱정되니까 그런 거 하지 마라.”

어떻게 이렇게 박 감독님과 똑같은 말을 하지.

#

다행히 금요일 경기였던 두 팀은 모두 금주의 경기 일정이 끝난 상태.

하지만 업무가 끝나지 않은 곳이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가 있죠?”

미라쥬의 털보.

털보는 사실 재무팀의 팀장이다.

군대로 따지면 행보관.

LOS 팀 전속이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에 공격적으로 대응할 사람이 부족하다.

그로서는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처지였다.

“기사 최대한 막으시고, 저희 선수들 입방아에 오르지 않도록 처리 바랍니다.”

털보는 왕지우가 무서워했던 표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상 문제도 따로 이야기하시죠. 예? 당연한 말 아닙니까? 그럼 그냥 넘어가려고 하셨습니까? 이건 업무상 재해 아닙니까? 산재요! 지금, 저희 선수는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저, 한 팀장님..”

옆에서 다른 직원이 문서를 톡톡 두들긴다.

“그런 식으로 어영부영 넘어가시려고 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여태까지 불합리하게 넘어갔던 부분! 전부 다 터뜨려버릴 겁니다!”

고성과 함께 통화를 마친 털보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털보의 이름은 한상열.

“네. 주세요.”

직원에게 종이를 건네받은 한상열이 미간을 찌푸렸다.

“사직서?”

LOS 팀 매니저의 사직서다.

“네, 생명의 위기를 느꼈다면서.. 오히려 산재 요청을..”

“하!”

그래서 여기까지 넘어왔구나.

아니면, 또 인사팀에서 일을 넘겼나?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한대요? 업무 태만인 사람이?”

한상열의 눈이 번뜩이자 앞에 서 있던 직원이 움츠러들었다.

게임 관련 기업들이 복장과 두발 규정이 자유로운 부분이 있지만.

상투 머리와 수염이 아주 선호 받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디에나 꼰대는 있으니까.

하지만 그가 자유로운 스타일링을 추구할 수 있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능력.

“그리고. 이거 문서 포맷도 아주 웃기네. 편지를 써놨어. 15일 전에는 말해야 하는 거 몰라요?”

“그, 매니저님은 오늘도 출근을 안하셨..”

“못 참겠다. 면담 잡아줘요. 무단결근으로 처리하기 전에 당장 오라고 해요.”

“때리거나 하시면..”

“때리긴 뭘 때려요. 대리님,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예, 예. 말 편하게 하셔도..”

한상열은 이마를 짚었다.

미라쥬의 이런 구시대적인 직급이나 존대 문화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일단. 그리고.. 후. 그 사람. 동천동 미빠 박성준 씨.”

“예?”

“LOS 파크 스탭이셨던 분. 그분 연락처나 SNS, 그게 어렵다면 인터뷰 한 기사 기자님 연락처라도 찾아봐 주세요.”

“아. 네, 네.”

“FWX에도.. 감사 인사를 해야 할 텐데. 운영팀에서 이런 것 좀 알아서 챙기지.. 쯧.”

부서 순회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던 한상열 팀장은 문득 머뭇거리던 왕지우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춘기 조카 같은 모습.

“음..”

무섭게 생긴 한 팀장은 까슬까슬한 투블럭 부분을 매만지며 커피 캡슐과 음료를 넉넉하게 주문했다.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외모로 구분할 수는 없는 법이다.

#

“야! 우리 재택근무래!”

“진짜?”

“아앙! 달아!”

유니버스 선수들은 기사로 자세한 소식을 접했다.

머리로는 불행한 사건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 자체로만 보면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일이 된다.

"와 그럼 나 맨발로 있어도 돼?"

"나는 반바지 입고 해야쥐."

“오우. 재택근무 룩 지리고. 나도 애착 바지 입고 할거임.”

“그거 존나 냄새나.”

“니가 맡아 봤어? 아, 너도 개였지."

“대화 수준 실화냐?”

아직 이번 주의 경기를 마치지 않은 유니버스 선수들은 흥에 겨워 뛰어다녔다.

이때.

국내 리그에서 최다 숫자를 자랑하는 유니버스의 코치단.

“얘들아..”

코치들이 회의를 마치고 연습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나서기 좋아하는 서브 원딜과 서포터는 소파에 올라가 헤드뱅잉을 하고 있고.

트래쉬 토크를 했던 원딜은 곽지운은 괜찮은 거냐며 탑에게 물어보고 있었으며.

정글과 미드는 이상한 춤을 추며 뒷걸음질 치고 있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와.. 진짜.. 나 온라인 경기 진짜 싫은데.."

코칭 경력이 꽤 긴 누군가 말했다.

온라인 경기는 이 스포츠만의 특권이지만.

동시에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경기 방식이다.

"저도요.. 진짜 악몽이야.."

대외적으로는 강하게 발언하기는 했지만 리그 중단은 구단에서도 원하는 바가 아니다.

모두 알고 있기에 결국 협조할 수밖에 없다.

"외부인 출입부터.. 이거 뭔 일 생기면 또 구단 책임 만드는 거 아니냐.. 하.. 우리도 보안 단계 추가 개설하자. 이건 원대한 코치가 확인 좀 해줘."

김동원 감독이 지시를 내린다.

“네. 통신망 점검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전처럼 또.. 무한 지연이라도 되면..”

“뒤지게 욕먹겠지. 그래. 비싼 인터넷 써야돼.. 그건 공기철 코치. 엔지니어 팀 협력 좀 부탁해.”

“좋습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선수들이 좋아하는 것과 달리, 코치들은 머리가 지끈거린다.

"심판진 출장 문제도 너무 복잡하고.. 감독님이 경험이 있으셔서 다행이다.”

"진짜. 웬 미친놈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난리야."

"어휴.. 애들은 완전히 노났다, 노났어."

“재택근무. 좋긴 해. 오프라인이 처리는 빠르긴 하지만.. 그래도 출근 시간에 더 잘 수 있는 게 소소한 행복이었지.”

다른 기업에 재직 경험이 있는 누군가가 이야기하자.

“근데.. 우리는.. 아니네..”

누군가 대답했다.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저도 그 맘 압니다.”

누군가 불쑥 끼어들었다.

“어, 정인이.”

유니버스 탑 라이너 최정인이다.

“얼른 경기장에서 경기 했으면 좋겠어요. 이게 뭡니까.”

경력과 나이가 좀 있는 만큼 역시 코치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걸까?

한 코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너도 그렇니? 역시..”

“그래도 다음 주 토요일 경기 전까지는 정상화되겠죠?”

“그거야 다다음주면 시즌 끝이니까. 아무래도 LKL도 플옵과 결승 티켓 판매를 포기할 수는 없을 가능성이..”

“진수 코치님.”

이충호 전략 분석관이 정진수 코치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쟤.. 그런 의미 아닙니다.”

“야! 근데 너네 권건이 칼 든 새끼 주먹으로 때려잡았다는 얘기 들었냐?”

“엥? 뭔 격투기 선수야? 구라치지 마라.”

“안희종이 직접 봤다던데? 나님 미라쥬 절친.”

“시발? 어쩐지 정글링도 범상치 않았어. 걔 운동했었나? 봉 들어달라고 하고 싶다.”

“헬스장부터 가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어떨까요? 주둥아리 헬창아.”

“그렇네요.. 그날 FWX랑 경기가 있으니까..”

이 분석관은 여전히 신난 선수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아직 남아있는 코치들을 손짓으로 불러 모았다.

“자. 공간 확보 필요하니까 책상부터 옮깁시다! 방송 나가니까 개인 물품 정리도 좀 하시고!”

“아.. 내가 먼저 엔지니어 팀 간다고 할걸..”

“아..”

책상과 장비는 무거우며 예민하다.

“운동한다고 생각하시고!”

“운동과 노동은 달라요..”

“하..”

“노는 게.. 제일 좋아..”

“빨리 오세요!”

“코치들..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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