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고양이가 처치했으니 안심하라구
이유찬의 서브 플랜을 가동했다.
“이게 진짜 금단기거든요! 2차 타워 프리징!”
- 타워 허깅 오졌고
- 같은 팀도 적도 속 터지는 플레이ㅋㅋ
- 악어의 기세는 어디로? ㅋㄹㅋㅋ
- 졸라 나약하네ㅋㅋㅋㅋ 솔랭 우리 탑ㅋㅋㅋ
- 탑 차이는 좀 나는 듯?ㅋ
- 사우전드가 판정승ㅇㅇ
- 그래 ㅋㅋ 이래야 우리 대라쥬의 탑이지ㅋㅋㅋㅋ
“이러면 탑은 봉인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거 오랜만에 좋은 흐름 나옵니다, 미라쥬!”
이 탑이 죽기보다 싫어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이다.
“아. 이거 아닌데.”
하지만 사람은 배워야 한다.
브루저로 상대 챔피언들을 썰어버리며 뎅겅파 수장이 되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겠지만.
때로는 우직하게 스플릿을 할 때도.
때로는 영원히 오지 않을 정글을 욕하며 탑에서 버틸 줄도 알아야 한다.
뭐, 이론으로는 충분히 주입되어있지만.
이유찬은 수행이 잘 안된다.
“씨이..”
아직까지 특별히 탑을 파는 팀들은 없었다.
생각보다 이유찬의 체급이 괜찮았거나.
우리가 이유찬에게 밴, 픽, 갱, 로밍으로 유리한 구도를 충분히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팀을 한 번씩 만났고.
이제 보호 기간은 끝났다.
야생의 ‘싸우르스’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다음에 만날 탑들도.
이유찬의 특성을 살리려면 내가 떠먹여 주기만 해서는 안 된다.
“예성.”
“탑 너 CS 진짜 잘 먹는다.”
내 호출에 김예성이 자동응답기처럼 이유찬에게 칭찬을 뱉는다.
“그래?”
“왁왁하니까 라인이 다 사라지네. 정말 든든해.”
사실 지금쯤 라인 먹기 쉬운 게 당연하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순한 말일 뿐인데.
이유찬은 눈썹을 위로 실룩거리며 기운을 내기 시작했다.
“내가 좀.”
“그래. 네가 얼른 사람이 되면 좋겠다.”
“마늘 먹을까?”
“흑마늘.”
"으. 오케이."
서로 면역이라도 생긴 건지.
어쨌든 뜻은 통하니까 됐다.
“하지만 대신 나머지 라인에서 지금 조금씩 미라쥬가 밀리고 있거든요!”
“바텀, 바텀! 권건이 바텀 쪽으로 힘주면서! 타워, 밀어냅니다!”
“고양이.”
“나 이 말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탑승.”
“오케이. 나는 먼저 간다. 잘 있어라. 숟가락. 혼자 있는 게 너무 무섭겠지만..”
“건아, 고마워.”
“별말씀을요.”
곽지운도 이런 윤도형과 함께하면서 참 많이 늘었다.
“그럼 이제 입양하는 거지?”
“그건 좀.”
“큰일이네.. 이 아이를 보살펴주실 분을 찾습니다..”
“야. 너네 나 무시하냐?”
이제 진출 시간이다.
“미라쥬는 지금 사일이 충분히 성장을 못 했어요. 이거, 이번 전령 양보하나요?”
“양보..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아니.
아마 양보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미라쥬, 너희는 우리 팀원들을 조금씩 성장시킬 양분이 되어줘야 하거든.
#
코칭 박스.
“전령 올까?”
“안 올 것 같은데요.”
“올 것 같아요.”
최수철 코치와 최은호의 의견이 갈렸다.
미라쥬가 오지 않을 이유는 있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그 시간 동안 상대 미드 타워를 공략할 수 있으니까.
올 이유도 있다.
어차피 전령을 내주면 미라쥬 역시 미드 타워를 빼앗길 테니까.
“쟤네.”
최은호는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미라쥬는 한번 방향을 정하면 그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어서. 미드에 투자를 적게 하고 있어요. 벨 선수가 자생력은 좋지만, 그건 순수 메이지일 때..”
정리가 되지 않은 정보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만 최 코치는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캐치할 수 있었다.
“미라쥬는 자신들이 CC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할 테고요.”
“하긴. CC가 좋긴 하지. 좀 더 대충 써도 되니까. 우리 레넥은 앞장서기 힘들고.”
머릿속을 빠르게 휘젓는 것들.
이유찬이, 김예성이, 곽지운이 그랬듯이.
최은호 또한 권건에게서 무언가를 얻었다.
그날.
비바람이 몰아치던 잊고 싶었던 날.
권건이 말해준 말들 속에서 찾아낸 것.
내가 가진 장점은 즉각적인 심리전보다는.
상대 서포터, 상대 바텀 듀오, 상대 팀, 심지어 팬, 대중.
개인부터 그룹 단위까지의 심리 경향성의 파악.
왜 바도를 할 때 즐거웠을까.
맵을 가르고 동선을 예측할 때, 왜 잘 들어맞았을까.
그전까지 무엇이라고 정할 수 없었던 이 감각이 정체를 드러냈다.
재능이란 놈은 얄미운 부분이 있어서.
양손으로 꽉 움켜쥐고 눈을 마주쳐야만 깨어난다.
“그라의 탱킹력, 킬 먹은 리싱의 메이킹, 덜 큰 사일은 늦은 타이밍 합류, 징탐치 듀오는 중간에서 치고 빠지며 프리딜하는 그림. 지금 예성이 랴이즈는 딜탱 트리, 지운이 아펠은 잘 컸지만 혼자서 앞 라인 녹이기는 불가능.”
어쩌면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단순 예측.
“미라쥬는 어차피 없어질 미드 타워보다 경기 결과창에 뜨는 오브젝트 스코어를 더 신경 쓰는 경향.”
하지만 한 가닥을 더하고.
“그라 잡았을 때 난전 자신감 높음.”
또 한 가닥 더해질수록 늘어나는 가능성.
권건이 숨 쉬듯 행하는 판단.
그걸 따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훈련한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는 것.
나중에 선수들에게 이유를 물어봐도 잘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그렇게 된 것들.
“자기 팀 미드에게 소홀한 것처럼. 우리 고양이 윤도형에게 소홀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브젝트 앞에서, 우리 정글의 위압감. 이걸 잊었어요.”
어쩌면 게임의 심리전에서 이기는 제 3의 눈.
최은호는 상대가 스스로의 플레이를 자각하기 전에.
자신이 적을 먼저 파악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다.
“그러니까. 충분히 잡아먹을 만 하죠. 아마도요.”
이 분야에 조예가 깊은 김한빛 코치는 따뜻한 시선으로 최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
“야. 우리가 이겨. 이거 보자.”
서포터 왕지우가 말했다.
비슷한 상황에서 어지간하면 이겼다는 데에서 오는 감이다.
경력이 긴 선수들이었기에, 이 판단의 근거는 데이터이기도 하다.
말로 설명은 못 하겠지만.
왕지우는 급발진 성향이 있는 서포터다.
높은 수준에서의 급발진은, 호흡이 맞는다면 적이 생각지도 못하는 순간 압살해버릴 수 있는 장점이다.
물론 아군조차 눈치채기 전이라면 기부 천사가 되는 거고.
다행히 미라쥬와 왕지우는 잘 맞았다.
“어엉. 괜찮을 것 같은데? 오늘은 권건 조용하네."
앞에서 적당히 비비는 데에 자신이 있는 김진승이 고개를 끄덕인다.
탑도 충분히 압박해놨고.
대단한 위협은 없다.
“권건 견제하면서 전령 먹고 그다음에 바텀 선?”
그리고 김진승은 그 누구보다도 ‘기세’를 믿는 선수다.
“어, 가능.”
“얘들아, 이 매치 먹어야 된다?”
“왜?”
“그런 게 있어. 이기면 좋지, 뭘.”
“뭔데 말 안 해주는데 자꾸?”
아무것도 모르는 정글을 향해 웃음이 터진다.
“야, 우리 서포터가..”
“선전포고라도 했어?”
“비슷한 거 했어.”
“아닌데? 나 그런 말 안 했는데?”
합류하며 짧은 수다.
정글러 이인혁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워낙 말이 거칠고 장난을 많이 치다 보니 뭐가 진담인지 잘 모르겠다.
“일촉즉발!”
“지금 먼저 자리 잡은 쪽은 미라쥬 쪽이거든요!”
“칩니다! 치기 시작해요! 이거, 틈 주면 안 돼요! 권건 상대로 강타 싸움하는 거 옳지 못한 일이거든요!”
예상보다 두 번째 전령 싸움이 커졌다.
메타에 따라 중요도가 오르기도 내리기도 하는 오브젝트지만.
지금 두 팀 사이에는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위치 지켜! 위치 지켜!”
“지금! 지금 권건 오른쪽 도는 중!”
“내가 마크할게!”
“전령 점사! 점사! 점사!”
“레넥? 레넥 어딨어?”
“텔! 텔탔어! 뒷산 방향!”
일단 결정을 내렸으면 포식자처럼 달려들어야 한다.
미라쥬의 콜이 엉켜 든다.
“전령에 내가 침 발라놨어, 어린놈들아!”
이인혁이 외치며 눈을 치떴다.
물론 이것은 정글러의 역량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기에.
팀원들에게 견제를 맡겼다.
그러니까.
집중한다.
“싸우다가 기회 보이면 바로 돌아! 전멸시키는 거 나쁘지 않아! 우리가 더 잘 컸어! 아펠만 끊으면 돼!”
“난전 괜찮아!”
“전령은!”
“봐서!”
다른 콜이 들린다.
잠깐 호흡이 가빠진다.
저것도 맞는 말이다.
머리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권건이 근처에 있을 때 오브젝트를 챙기는 것은 언제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동선에서 손해를 조금 본 것을 빼면.
여태까지 좀 편했다.
“아니, 그냥 전령 먹어! 절대 강타 못 쓰게, 아니, 아예 못 다가오게 막아!”
“오케!”
그래서 압박감을 느낀다.
권건, 저 미친놈은 할부를 하건 일시불을 하건 받을 건 받아 가는 사채업자라는걸.
이인혁은 자기도 모르게 전령 쪽으로 몸이 쏠린다.
먼저 쳐놓고 뺏기는 건 정글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니까.
전령에게도 한 눈.
권건에게도 한 눈.
그러다 아주 잠깐, 권건의 움직임을 놓친 순간.
안개.
비예고의 안개가 깔린다.
이건 진짜 엿 같은 스킬이다.
개 같고, 거지 같고, 아주, 존나, 마음에 안 드는 스킬이다.
순식간에 권건을 찾기 위해 핑와가 중복으로 박힌다.
낭비라는 생각할 겨를은 없다.
“뒤질,”
순간 방호를 위해 남겨뒀던 와드란 생각이 스쳤지만.
“씨,”
곧이다.
약, 2초, 풀딜 기준, 2초면.
강타로..
“야! 이거! 싸움 봐! 물어! 물어! 물어! 원딜! 원딜! 아펠! 아펠! 아펠!”
누군가.
“죽여, 이 개새..!”
누군가 말한다.
이렇게 순간 판단력에 집중하는 팀의 경우, 목소리 큰 오더가 이긴다.
귓가를 스치는 심연 잠수 소리.
목소리는 구분이 되지 않지만 스킬 소리는 알겠다.
평소와 같은 급발진 서포터.
“죽여, 이 간나 새..!”
왕지우.
“돌아!”
어.
바로 돌기로, 돌기로 했었..나?
그거 완전히 협의가 끝난 거 맞아?
상대 정글이 권건인데.
대체 왜?
판단에 균열이 생긴 거지?
원래 하던 방식이랑 다를 게 없는데?
집중력이 깨진다.
이인혁은 오브젝트 앞에서 순간적인 팀 콜, 그리고 정글러로서 권건에 대한 의식이 양분되기 때문이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세에에에에자! 아펠의 왕자님! 지금, 지금! 반응! 반응! 오늘 컨디션 미쳤어요! 나는 바람과 같지이이익!”
“그라 궁 피해, 피해내면서어어어억!”
“차아아아아아니! 바로 끼어듭니다! 악어, 악어 휘저어요!”
“아, 근데 너무 아파! 너무 아파요! 아직 안 단단해요! 이거 그냥 도마뱀 같은데?! 야, 이거 뜯어서 가방으로 만들면 되겠다!”
리싱을 잡은 이인혁이 키보드를 누른다.
와드가 박히지 않는다.
아주 찰나의 시간이 뜬다.
그럼 전령?
전령, 이거..?
“강.. 강타! 강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유마! 유마가! 유마가 먹었어요! 사르르르르르르르탄! 전령 스티이이이이일! 포오오오올리! 이거 아주 땡큐! 땡큐죠!”
- 홀리ㅋㅋㅋㅋ 이게 “정글러의 유마”
- 고양이 스틸ㅋㅋㅋㅋ
- 강타 왜 듦? 오토 강타 시스템ㅋㅋㅋㅋ
- 인공 지능 비서냥
- 아예 봉풀주를 들지 그랬어ㅋㅋㅋㅋㅋ
- 야 그거 괜찮다ㅋㅋㅋㅋ
“이거, 스틸 당하고 나면 정신이 아찔하거든요! 미라쥬! 정신 차려야 합니다!”
어느새 고양이를 달고 있는 권건은.
여기에는 볼 일도 없다는 듯 우리 원딜에게 붙어있다.
여유롭게 권건 등에 매달린 고양이가 자신을 보고 샐쭉 웃는 것만 같다.
자기도 정글이라고.
“악어는 양념이었다! 지금, 지금! 본체가 나타났어요!”
“페퍼, 페퍼, 페퍼, 페퍼 선수의 징크시! 이거, 이거! 이거어어어억!”
“떼어 줘! 떼어 줘!”
“스킬이 없어요! 그라 궁이 빠지는 순간! 평등해집니다!”
“아아아아아악! F-W-X!”
뭐야.
뭐냐고.
왜 전이랑 달라?
이 정도 맞았으면 악어도 기가 죽어야 하는 건데 왜 눈을 똑바로 뜨고 달려들지?
“대-단-원!”
“위기! 위기! 미라쥬, 위기! 이거, 일렬로 이렇게 맞아버리면! 과부하 마구 걸려요!”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빼! 빼! 희종 형, 궁 써줘!”
“나 그쪽 못 가!”
“탐치랑 그라 줘! 그냥 줘! 원딜! 살려!”
팀원들의 목소리도 날카로워진다.
숨 가쁜 시간.
“이거, 이거! 이거! 살아갈 수 있나요, 테러, 페퍼 선수! 벨 선수는 전투 이탈!”
“그라가즈와 레넥 교환! 그리고..!”
어느새.
도망치는 길목에는 공간 왜곡으로 도착한 상대 원딜이 총구를 겨누고 있다.
그 뒤를 받쳐주는 것은 든든한 딜탱 미드 랴이즈.
막혔다.
그 광경에 반대 방향을 뚫어보려고 했지만.
그곳에는..
“니 템 쩔더라? 배치기! 이거 아주 그라 배가 남산만 하거든요! 어지간하면 다 맞습니다, 이거! 판정 정말 후해요! 막 퍼주는 판정!”
- 무한으로 즐겨요 남산 배치기
- 차니 왜 저렇게 넋 나간 얼굴로 앉아있음?
- 쟤 죽으면 혼 빠져나감
- 도대체 뭘 보고 있는걸까ㅋㅋㅋㅋㅋ
- 개는 귀신을 본다던데
- ㅅㅂ 저기 귀신 있어?
- LOS의 귀신??
“도망칠 곳이이이이익! 없습니다!”
그곳에는, 권건.
이 나쁜 놈은 그냥 사채업자인 줄 알았더니.
일부러 회수 일자를 미뤄 이자까지 쳐 받아 가는 독한 새끼다.
분명히 전체적인 체급은 우리가 밀리지 않는데.
왜?
이걸 왜 지지?
선수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정보를 모아보려고 했다.
“대애애애량 득점! 지금! FWX! 바로 미드로 갑니다! 이것도 내 거, 저것도 내 거! 다 가져갑니다! 이것이 유토피아, 공동 분배, 이상주의!”
“탑은요?”
“원래 유토피아에 희생자는 필요한 법이죠!”
- 따봉 악어야 고마워!
- 왜곡된 탕평책
- 사실말이야.. 너는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란다
- 손나 킹치만! 탑이 세상의 중심인걸!
- 고양이가 피해서 탑이 맞은 거다
- ㅇㄱㄹㅇ 탑의 숭고한 희생정신
- 야 근데.. 권건이 서포터 안 팠는데?
- 그러게? 도발한 거 치고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거 아님?
- 서포터는 봐주는 느낌? 뭐 그런 건가?
- 아님 유마 스틸?
- 허언증 서포터 새기ㅇㅇ 저 새낀 진짜 맞아봐야 정신차릴 듯ㅇㅇ
- 머야ㅋㅋ 선넘지마라ㅋㅋ
미라쥬 선수들의 머릿속에도 무언가 잡힐 것 같기도 한 기분.
하지만 곧 경기가 터지면서, 이 정보들은 다시 흩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