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예상대로
“사실은 말입니다, 이게..”
“네네.”
“야구와 LOS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9회 말에도 역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거죠!”
“그것참 낭만적인 말씀이시군요.”
“사실 이런 반응도 비슷합니다. 근데, 역전이란 게 말이죠. 언제 어떻게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게임이 LOS거든요. 여기 계신 모든 분도, 그런 적이 있을 겁니다.”
- ㅇㅈ 이걸 지네ㅋㅋ
- ㅋㅋㅋ너무 관념적인 말인데
- 낭만 맞지.. 그거라도 믿고 있어야 하니까..
- ㅈ같은 야구를 끄고 도망친 LKL 경기에서 야구 이야기를 들어야 하다니
- 너.. 어디 팬이니?
“사실 이건 모든 스포츠가 그렇죠. 낭만적인 역전 드라마. 그래서! 오늘! 부산은! 역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연고지, 스폰서 제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야구팀과 LOS 팀이 아예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몇몇 팀들은 네이밍 스폰서까지 야구와 연관이 있으며.
이렇게 영향력이 클 경우 시즌 오프 때 시구를 하거나 약간의 교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LOS 외에 다른 장르의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
사실 워낙 다른 장르이며, 서울에서만 경기하는 LKL과는 조금 동떨어진 것이 현실이다.
팬층 역시 다르다.
그럼에도 일부 팬들은 두 스포츠의 특별한 결합을 흥미로워했다.
- 붓싼은 수비가 약점 아님?
- 닥쳐 수비‘가’ 약점이라니 수비‘도’겠지 씨뻘러마
- 요즘은 다름, 제구되는 신인 투수가 힘을
- 걔 인터뷰 봤는데 FA 노리던데
- 마! 니가 야구에 대해서 뭘 안다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쌔끼가!
- 왤캐 대뜸 성질부터 냄;
- 대전 야구팀은 특징이?
- 야구 보지 말아주세요.
- FWX랑 닮은 부분 없어?
- 전혀 다른 팀입니다.
- 꼴찌에서 올라간다던가? 대기만성형이라던가?
- 관계없으니까 이제 입 다물어 주시기 바랍니다.
- 얘는 왜 고요하게 화가 나 있음?
SNS에 올라온 FWX의 예언 글 하나가.
빠르게 굴러간다.
거의 매일 진행되는 똑같은 경기.
정해져 있는 픽들 안에서 나오는 비슷비슷한 조합.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채널과 유기적으로 움직여 매일 다르게 뽑히는 해설자들의 멘트.
야구가 공과 배트로 매일 다른 드라마를 만들어가듯 LOS 또한 그랬다.
이 게임은 챔피언의 수만큼이나 그 컨셉과 세계관도 다양하다.
그래서 해설의 자유도가 높은 이 장르의 특성상.
순식간에 경기는 다른 스타일과 맛으로 변한다.
“이 정도면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으로 쳐 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인정!”
“이게 무슨 말이냐면. 장내 홈런이거든요.”
“킬을 낸 건 아닌데, 드리블하는 사이 다른 부분에서 킬 만큼의 득점을 챙겼다. 이런 말씀이시죠?”
- 아 야구 땡기네ㅋㅋㅋ
- 문자 중계 ON
- 둘이 호흡이 달라서 은근 꿀조합임
경기 자체가 1세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꽤 자신감을 보였던 호넷은 탑을 중심으로 기를 쓰지 못하고 있었다.
“야, 태인아. 뭐야? 오늘 차니한테 왜 이렇게 밀려?”
“보여준다며?”
“아, 아니. 진짜 이상해요. 쟤. 처음 만났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알아. 둘이 라인전 거울 들고 플레이했잖아.”
“근데 꼭.. 이제.. 날 파악한 것처럼..”
“파악했겠지. 이 정도 시간이면 초면인 사람을 만났어도 집에 숟가락이 몇 쌍 있는지도 알겠다.”
“그건 형이 잘생겨서 그래.”
“아니 그런 뜻이 아닌데.”
잠시 미드와 원딜이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는 사이.
“진짜로. 탑만 가지고 있는 육감인데.. 이게 뭔가 있는데. 뭐지? 왜? 이게 무슨 느낌이지?”
탑 박태인은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
우리는 호넷과의 2세트 마지막을 트리플 플레이로 장식하면서 간단하게 스윕했다.
사실 경기 자체는 전혀 어려울 게 없었기에 분위기는 무척 좋았다.
“..두 번째 세트에서 카뮐로 굉장히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신 차니 선수인데요.”
오늘의 POM 인터뷰는 나와 이유찬.
이유찬은 오늘이 첫 POM이다.
“솔로킬을 세 번이나 내면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만큼은 최고의 신인 거포다, 라는 말이 있었어요.”
다행히 관중석을 향해 신발을 던지지는 돌발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그, 이 점이 원래 있던 건가요?”
눈 옆에 점을 찍고 나왔다.
아나운서는 웃음을 참고 있다.
누가 봐도 매직으로 그린 못생긴 왕점.
개그 프로에 나갈 것 같은 비주얼이다.
그래도 경기 중 쏟아진 솔로킬 쇼로 이유찬이 POM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짐작한 스탭이, 복귀하자마자 기를 쓰고 이유찬을 사람으로 만들어놨기에 다른 부분은 멀쩡하다.
“아뇨? 은호 형님이 찍어줬는데요.”
“아, 클래스 선수요. 그러시구나. 점은 왜 찍으셨어요?”
“복수.”
“호넷한테요?”
“죽이고 지옥 가겠습니다.”
“아..”
아나운서의 눈빛이 흐려진다.
이유찬과의 인터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사실 이건 나도 처음 보는 모습인데.
이유찬이 평소보다 좀 더 미친 걸로 보아 약간 긴장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음. 저. 권건 선수.”
큐카드를 거듭 들여다본 아나운서 누나가 나를 간절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늘 경기도 화제가 됐지만, 지금 클래스 최은호 선수의 예언 글이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마지막에 정말로 바텀 듀오가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무리 지으면서 이 예언이 전부 실현됐습니다..”
이 질문이 나올 줄 알았지.
사실 최은호는 지난 호넷 전에 자신이 없었던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지난 스프링 때 SNS로 도발했던 호넷에 대한 마지막 복수를 자기 손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나.
그래서 이번에 소소하게 준비한 이벤트.
“특히 폴리, 윤도형 선수가 노데스를 기록한 것은 폴리 선수의 개인 LKL 기록으로도 최초거든요..”
정말?
“그래서..”
노데스라는 게, 당연히 좋은 거긴 한데.
나도 게임을 하다 보면 데스를 기록한다.
공을 잡은 스트라이커에게 몸싸움이 집중되는 것처럼, 주먹을 내밀려면 나도 맞는 것이 당연지사.
다만 득점을 얼마나 내고 맞았느냐가 중요하다.
근데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노데스를 한 적이 아예 없었다니 이건 좀 신기한데?
꽤 경력이 있는 선수니까.
슬쩍 옆을 보니 이 말을 들은 이유찬이 어깨를 들썩이면서 웃고 있다.
윤도형을 놀릴 거리를 또 하나 찾은 것 같다.
그리고 인터뷰 막바지.
이 화제는 다시 한번 돌아왔다.
“..그래서, 클래스 선수의 이 예언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나요?”
“고정하기에는 은호 형이 부담스러우실 겁니다. 이제 시즌 막바지를 향해 달려 나갈 마지막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아쉽네요.. 이 예언 이벤트, 너무너무 신기했거든요. 저도 진짜 흥미진진하게 봤어요! 팬분들도 엄청 좋아하시고요! 그렇죠?”
팬들이 환호성을 터뜨린다.
“그럼 클래스 선수의 최근 컨디션에 대해서도 살짝 말해주시면 안 될까요, 차니 선수?”
아나운서도 최은호의 콘텐츠가 꽤 즐겁게 느껴졌던 듯 이 자리를 빛낸 팬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나는 골치 아픈 탑을 아나운서에게 맡겨두고,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 권건이 잘할 때마다 손뼉을 쳤더니 모기를 다 잡았습니다
오.
여름 최적화.
- 별 수호자 FWX WIN ‘벌’ 수호자 말벌 호넷 DEFEAT
팀명을 이용한 재치 넘치는 치어풀.
왜인지 다 빠져나가지 않은 호넷 응원석의 팬들도 보인다.
- 신 神 (명사) 1. 종교의 대상으로 초인간적, 초자연적 위력을 가지고 인간에게 화복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존재. 2. 기독교 ‘하느님’을 개신교에서 이르는 말. 3. 권 건(GwonGun)
- LKL 3대 미남 : 권건(FWX JUG), 안우진(HNT MID), 강한빈(BGS AD)
- 이토록 잘 생긴 남자는 어떻게 권건? 자신감을 표현하는 어리석은 나에게 손가락으로 하트를 가리킵니다 당신을 보기 위해 멀리서 오다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발 부탁한다 #번역기를 사용
음, 그쪽 분야 팬이셨구나.
호넷이 이런 성향이 좀 있지.
짧은 시간이나마 치어풀을 넘어 팬들과 눈을 마주한다.
그리고 아마도 팬서비스를 기대하는 것 같은 외국인 팬을 시작으로.
관중석을 쭉 훑으며 느긋하게 손가락 하트를 보낸다.
“!”
- 머에요 시바 나도 하트 받을래요!!!
- 팬서비스 뒤졌다
- 원래 이런 거 하는 애였음???? 존나 무뚝뚝했잖아
- 방송물 좀 먹었나??? 아!!!!! 설렌다!!!!!!!! 덜렁덜렁
- 이러니 시발 호넷 팬들이 갈아타 안타!!!!!!!
나를 보고 싶어서 왔다더니.
아무도 나와 눈을 맞춰주지 않고 치어풀 뒤로 얼굴을 숨기기 바쁘다.
그 모습이 좀 귀엽게 느껴져서 피식 웃을 무렵.
“차니 선수, 그럼 슬슬 마지막 질문하겠습니다. 신인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차니 선수인데요. 또 누구와 싸워보고 싶나요? 라이벌이나, 의식되는 분이 있을까요?”
“오. 저는 퓨리 선수요.”
“네?”
“퓨.리 선수요. F.U.R.Y.”
“아아~.. 그러니까..”
아나운서는 굉장히 당황한 눈치로 말을 길게 늘인다.
- ?
- 누구?
- 그런 선수가 있어?
이유찬은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고.
잘 모를만하다.
이쪽 선수가 아니니까.
필사적으로 카메라를 향해 눈짓을 보내는 아나운서를 보다가 나는 마이크를 든다.
“격투 게임계에서 유명하신 그 분이죠.”
“그렇군요!”
눈썹을 찡긋.
“FWX 소속이시고.”
“맞아요! 아, 아! 그 분이시구나!”
“저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위기를 넘긴 아나운서가 나에게 감사의 눈짓을 보내고.
- 권건 오늘 왤캐 스윗함????? 우리 눈나 안심하는 것 좀 봐
- 몰라 시바 프로세스 개선됐나봐;;
- 요즘 FWX 추가 업데이트 오지네;;
- 차니 저 새긴 진짜ㅋㅋㅋㅋㅋ
“그럼.. 그. 왜 퓨리 선수와?”
간신히 이유찬에게 질문을 던진다
“격겜 초고수니까요? 일단 제가 붙어봐야 거니보다 센지 아닌지도 알 수 있고.”
“?”
잠시 의문의 침묵이 흐르고.
“팬분들께 한 마디?”
“장수하세요.”
이제 이유찬과의 대화를 포기한 아나운서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묻는다.
“권건 선수, 그럼 다음 타겟은 누구인가요?”
“타겟이라.”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확장한다.
아나운서는 다음 경기에 대한 것을 물었겠지만.
꼭 선수나 팀에 한정할 필요는 없겠지.
이유찬에게 배울 점이 있네.
“이번 타겟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을지 몰라도.
천릿길은 한걸음부터라고 했다.
“FWX의 최초 월챔 진출입니다.”
여태까지 들을 수 없었던 굉장한 환호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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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승리 라이브를 모두 마친 뒤.
곽지운은 진지한 표정으로 최은호에게 물었다.
“근데 진짜 어떻게 한 거야?”
“뭘?”
“니 예언.”
최은호는 콘텐츠 팀과 상의 후, 평소에 올라가던 단순한 형태의 공지가 아닌 다른 형태의 게시물을 올렸다.
그것이 예언 게시글.
그것들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최은호에게 쏟아지던 인식이나 건강에 대한 지나친 우려, 사람들의 관심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우리한테 아무 말도 안 했잖아.”
곽지운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틀리면 어쩌려고. 괜히..”
곽지운의 우려를 한 귀로 흘린 최은호는 권건을 바라보며 왼쪽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