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137화 (138/326)

137화. 돌아왔구나 클태식

“취침 소등하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소등 담당 이유찬이 내 방의 불을 끄고 멀어진다.

“..하겠습니다.. 시오..”

멀지 않은 곳에서 또 한 번 이유찬의 소리가 들린다.

“애송이.. 너는.. 아직.. 한참..!”

“형님.. 꼰..”

윤도형과 투닥거리는 목소리도 가물가물하게 들린다.

또 한 번 내기에서 진 이유찬은 이제 인간 녹턴.

나도 모르게 작게 웃음이 터진다.

- 툭

작은 소리와 함께, 방에 은은한 수면등이 저절로 켜진다.

[ 혼자.. 남았구나.. ]

짐작한 대로 어린 악마가 낮은 캐비닛 위에 앉아서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음.”

하나도 안 무섭다.

[ 어둠이.. 두려운가..? ]

하지만 새삼 상대가 악마 같다.

막 회귀했을 때만 해도 그저 반가웠다.

항상 혼자였던 나의 삶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대사 좋네. LOS 하니?”

[ 아니? 안 하는데? 절대? ]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릴리가 말한 대로 두려운 건 아니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니까.

[ 너 많이 나아졌네. ]

그래.

그건 아마 FWX를 사람으로 느끼면서 그런 것 같다.

“그럼 다행이고.”

[ 여기 오길 잘했지? ]

“설마, 너?”

혹시나 내 삶이.

이 작은 악마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쥐방울만 한 새끼야. 아까 그렇게 처먹고도 배가 고파? 니 배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건물이 무너지겠다.”

“쥐방울? 그럼 내가 쥐고 형님이 방울.”

“존나 닥쳐. 배부른 상태로 자야 숙면이 잘되니까.”

“와우! 옳은 말? 형님 근돼지컬 유지하려면 많이 먹어야 함.”

“한마디를 안 지지?”

“두마디를 안 짐, 찍찍.”

“딸랑딸랑이다, 시벌롬아. 야! 최은호! 나와! 니 존나 오랜만이니까 먹을 거 정해!”

언제 그렇게 친해졌는지 시끌벅적하게 내 방 앞을 지나가는 윤도형과 이유찬의 목소리.

그리고 투박한 배려.

금세 나는 여기가 FWX라는 것을 깨닫는다.

[ 그럴 리가. ]

릴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작은 어깨를 으쓱한다.

[ 근데 내가 보니까 쟤들은 끝없이 먹더라. 진짜 돼지인가 봐. ]

저 평범한 한 마디가.

어딘가, 그냥.

이 작은 악마도 FWX 안에 있는 것 같아서.

“큽.”

나는 이마를 짚고 웃음을 터뜨렸다.

[ 왜 웃어? 왜? 갑자기? ]

“그.”

- 똑똑

“야! 건아! 애들 야식 먹는다는데 너도 같이 갈래?”

내가 입을 떼려고 할 때, 곽지운이 문을 두드린다.

“윤도형이 산대!”

따라오는 최은호의 목소리가 오랜만에 맑게 울린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가요. 거덜을 내버리죠.”

“오케이!”

그리고 릴리를 향해 까딱, 턱짓하자.

[ 어둠이여.. ]

나와 비슷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은 어린 소녀가 수면등을 툭 끈다.

암막 커튼이 드리운 방에 짙은 어둠이 찾아오지만.

“나보다 카페테리아에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 사는 거임.”

“형님이 산다면서요.”

“내가 언제?”

내가 방문을 열자.

“나왔다! 야! 시..작!”

눈부시게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우리도 뛰어야 하는 거 아니야?”

초조한 김예성과 함께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웃고 있었다.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25 LKL 서머 두 번째 라운드, 6주차 경기를 만나러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오늘 경기는 부산 호넷과 대전 FWX입니다!”

“최근 성적 먼저 짚어보겠습니다!”

[ 현재 순위 (~5주차) ]

1위 : 인천 트릭스터 (9승 1패, 득실 차 12, 최근 성적 1패)

2위 : 대전 FWX (8승 2패, 득실 차 13, 최근 성적 3승)

3위 : 광주 미라쥬 (7승 3패, 득실 차 6, 최근 성적 2승)

4위 : 대구 유니버스 (6승 4패, 득실 차 5, 최근 성적 1패)

5위 : 서울 빅스 (5승 5패, 득실 차 3, 최근 성적 1승)

6위 : 부산 호넷 (5승 5패, 득실 차 1, 최근 성적 2승)

7위 : 성남 스톰 (3승 7패, 득실 차 -6, 최근 성적 1승)

8위 : 제주 F.L.E (3승 7패, 득실 차 -8, 최근 성적 2패)

9위 : 수원 해머스 (2승 8패, 득실 차 -10, 최근 성적 6패)

10위 : 울산 피닉스 (1승 9패, 득실 차 -16, 최근 성적 5패)

“이제 월챔에 누가 갈 수 있는가, 슬슬 보여야 할 시점인데요!”

“지난 스프링에 포인트를 획득한 팀은 트릭스터, 미라쥬, 빅스, 유니버스, 스톰 그리고 호넷입니다.”

- 홀리.. 우리가 진짜 서부에

- 진짜 이거 미쳤다.. 보안관 FWX..

- ORDER. MAKETH. TEAM.

“사실 지금까지 혼란스러운 이유는 단 한 가지죠.”

“바로 FWX입니다.”

“인천 트릭스터가 1라운드까지는 전승을 기록하긴 했지만 위기가 꽤 많았죠. 스윕이 많지는 않습니다. 득실 차를 많이 벌리지 못했고, 2라운드에 들어서면서 서울 빅스에게 첫 패배를 기록하면서 오히려 2위에게 득실 차로는 밀리는 형국이구요.”

“그 2위가 바로 FWX. 포인트가 없는 팀이 이렇게 서머에 들어서 활약을 보여준다는 건 정말 이례적이에요. 만약 스프링에서 권건 선수가 딱 한 번만 더 출전했어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이 많습니다.”

“한참 아래에 있던 팀이 이번에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데요. 이번 시즌은 정말, 대전 FWX의 최강 아웃풋이자.. 그리고 어떤 팀들에게는 암흑기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맞붙는 호넷 역시 상당히 역동적이에요. 순위에서는 주춤하는 면이 있지만, 호넷이 빅스를 이기기도 했고 지금도 강팀 반열에 드는 팀들을 상대로 한 세트씩 꾸준히 따내고 있거든요! 한 걸음! 한 걸음만 더 내밀면, 그게 매치 승이 될 수도 있겠죠!”

두 팀의 플레이 스타일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정확히는 호넷이 FWX의 전략을 많이 가져가고자 했다.

오더를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구성하는 밴픽의 밸런스, 공격 타이밍을 가장 적극적으로 연구해서 사용하는 팀이었다.

오히려 전부터 확고한 서부였던 팀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비결’을 버리기 힘들어했지만.

이전까지는 수문장 해머스와 엎치락뒤치락 하던 호넷은 개화기 마냥 문을 활짝 열고 FWX의 플레이 스타일을 흡수했다.

“특히! FWX를 상대로 매치 승은 물론 세트 승도 따낸 팀이 그리 많지 않은데! 호넷이 세트 승을 따낸 팀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호넷은 FWX를 그만큼 잘 아는 팀이 되었고.

일각에서는 어쩌면 호넷이야말로 의외로 대 FWX 전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중.

“자, 그래서 슬슬 집중할 때인데요!”

이맘때.

라운드를 한번 마친 뒤, 각 팀의 진출 확률이 계산되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FWX의 변수는 통계를 뒤흔들어놨다.

“진출 확률을 뽑아내기가 참 어려웠겠는데요.”

“그렇죠. 클래스 선수가 잠시 자리를 비웠었거든요. 또, 이전 시즌 데이터 역시 이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고요.”

“다만 확실한 부분은! 대전 FWX가 월챔에 나가거나 선발전에 가기 위해서는 1위를 하면 즉시 월챔 진출, 2위를 하면 선발전 진출, 3위를 하게 되면 다른 팀들의 손에 선발전 진출 여부가 달려있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호넷은 항상 강팀을 잡아주는 최고의 아군이자! 동시에 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함성이 울려 퍼진다.

카메라가 코칭 박스를 잡는다.

“클래스 선수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1세트 선발은 아니지만 밝은 표정으로 박 감독과 대화하는 모습.

“이야아!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살짝 설렜어 난!”

정시 퇴근을 보며 두근거리는 해설진의 마음.

경기는 시작됐다.

#

- (FWX) 월챔 가면 뭐 준비해야 돼?

ㄴ 가을 유니폼?

ㄴㄴ 맞아 추울 테니까

ㄴ 핫팩?

ㄴㄴ 맞아 추울 테니까

ㄴ 양말 두 겹에 모포, 방한 장구류 잘 입고 안면 마스크 필수

ㄴㄴ 맞아 추울 테니까

ㄴㄴ 월챔은 10월이라고 병신들아ㅋㅋㅋ

ㄴㄴ 혹한기는 니들이 있던 곳이 혹한기고ㅋㅋㅋㅋ

ㄴㄴ 가본 적이 없으니 알 턱이 있나

ㄴㄴ 스톰 팬이니?^^ 너넨 내년 봄이나 준비해^^

#

@FWX_LOS

- (사진)

Class 최은호 선수가 추측하는 오늘의 결과 (폭죽 이모티콘)

1세트 승리는 FWX!

#FWX #FWXWIN #Comeback #Class

#BeLegend

경기 직전.

FWX SNS에 호넷을 노린 글이 올라왔다.

기존에는 단순 결과만 알리던 것과 달리 이번에 확장한 FWX 마케팅팀의 적극적인 행보.

명분은 지난 시즌의 복수.

사진에는 최은호가 자신감 있게 웃는 모습이 올라왔다.

지난 시즌에 호넷에서 FWX 선수들 이름에 X를 하던 글을 저격한 양, 칠판에 적힌 1세트에 X 표시를 하는 모양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권건이 세 번째 바람용을 스틸’이라고 적혀있다.

@HNT_LOS

- (사진)

나비(이모티콘)처럼 날아서 벌(이모티콘)처럼 쏜다!

오늘은 마지막 X를 치는 날(웃는 이모티콘)

#HNT #HNTWIN

#스프링1라 #기억나지 #호밑프

호넷 역시 재빠르게 화답했지만.

“이거! 이거! 호넷의 바젤 선수! 지금, 지금! 아래 쳐다보다가 물렸죠! 쏠렸습니다!”

“유일한 생존기인 점멸이 빠졌다 보니 바로 터지고 말았어요!”

맞고.

“지금, 지금! 지금 권건 선수 궁 11시 45분이에요? 이거, 이거, 아나요! 아나요 호넷!”

“몰라요! 그런 거 몰라요!”

“끄아아아아악! 스티이이이이일! 권건의 용 스틸! 무난하게 3 용까지 챙깁니다! 이렇게 되면 바람용 영혼은 챙긴 거나 마찬가지! 몰! 살! 몰! 살이다!”

또 맞고.

“와! 안 와? 지금 와! 어어어어어! 와야 한단 말이야! 왜 너네 안 와! 안돼! 집, 집 돌아가야 해요 호넷! 호넷!”

“아아아아아! 이게, 이 쥐방울만 한! 이 조그만 루루한테!”

“주먹이 운다! 주먹이 울어! 야! 잠깐! 그만, 그만 때려! 탭! 탭! 항복! 그만 때려! 귀환을 못 하잖아! 루루가! 무력이! 장사입니다!”

- ㅋㅋㅋ루루 계륵이네ㅋㅋㅋ

- 루루를 왜 밴을 안 해

- 대신 원딜 쪽으로 밴 했잖아 근데 이 악물고 루루 가져감ㅋㅋㅋ

“웃어요! 웃습니다! 이제 저는 폴리 선수가 너무 무서워요!”

밴 카드가 모자라 미처 밴하지 못한 윤도형의 루루에게 또, 또 맞고.

“아직 몰라요.. 호넷.. 이 경기, 아직 모릅니다!”

- 아직 몰라요 특) 다 암

- ㅋㅋㅋㅋㅋㄹㅇ 우리 할머니도 알 때쯤에 이 멘트 함

“그래서, 나! 호넷의 가우디! 이제 탑의 무력을 보여주겠다!”

- 그래서, 나! xxx 특) ㅈ망한 팀원들 사이에서 그나마 큼

- 이제 곧 ‘으라차차’, ‘쏴라’ 나옴

- ㄹㅇ 한 경기 다 봤다

“으라차차아아악! 가우디! 갑니다! 먼저! 들어가마! 지금이다! 쏴라아아아아악!”

“어어어어어어!”

“이거, 이거 되나요!”

- 특) 안 됨

“무너집니다! 무너져요! 으아아아아아아!”

1세트는 완벽하게 터진 경기.

시원하게 한 세트를 마무리한 선수들을 뒤로, 뜻밖의 떡밥이 풀리기 시작했다.

- (FWX) ㄷㄷㄷ 이거 봄?

(스크린 샷)

ㄴ ? 뭐임

ㄴㄴ 밑에 작은 글씨 잘 보셈

ㄴㄴ 세 번째 바람용 스틸?

ㄴㄴ ???? 이거 언제 올라 온 건데

ㄴㄴ 경기 전임; 스틸이랑 용까지 예측함

ㄴㄴ 승리도 예측한 거잖아

ㄴㄴ 그건 당연한 거라;

ㄴ 지금 사진을 찍고 편집했을 리는 없고;; 미리 찍어놓고 간 거 아님?

ㄴㄴ 마술이야? 진짜 예측한 거야?

ㄴㄴ 이거 고급 마술 기법임, 사람들 마음 읽는 거

ㄴㄴ 어떻게 하는 건데?

ㄴㄴ 그건 알려줄 수 없음

ㄴㄴ 아니; 이건 사람 마음이 아니잖아;

ㄴㄴ 그걸 할 수 있었으면 프로를 안 하고 세계 마술 선수권을 나갔겠지

ㄴ 클래스 이 새기 뭐야? 쉬는 사이 제 3의 눈이라도 뜨고 옴?

ㄴㄴ 영약 빰? 오라클?

ㄴㄴ ㅋㅋㅋ 경기 결과 얼리 액세스

ㄴㄴ 최첨단 인공지능 비서 클문어;;

ㄴㄴ 뭐냐고;; 대체;;

ㄴㄴ 설마요^^ 망상 그만하세요^^ 그냥 찍었겠지^^ 클래스 ㅈ트롤 아님?

SNS를 하지 않던 팬까지 관심을 가지며 새로고침을 하던 이때.

또다시 새로운 게시글이 업데이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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