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오늘 오브젝트 프리패스인데요?”
“스톰이 뭔가 굉장히..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 플레이를 가로막지 않는다.
주도권이란 한번 잡았다고 해서 절대 놓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타이밍은 온다.
상대가 킬을 먹었더라도 귀환을 하지 못했을 때.
유리한 측에서 당연히 가져가야 할 오브젝트를 챙기면서 자리를 비울 때 등.
찾고자 마음먹으면 조금씩 노릴 부분이 있다.
“음.”
적절한 옵저버의 캐스팅으로 많이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관계자들은 충분히 눈치챘다.
오늘도 스톰의 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중에서도 특히 도드라지는 것은 정글이라는 것까지.
“이게, 거참.”
“그래도 지금 스톰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봐야겠죠. 지금 경기 자체가 좀 무난하게 흘러가고 있는데요. 진짜 이게 어려운 건 알지만 미드가 없어도 있는 것처럼 플레이 해야 하고. 자원을 적극적으로 배분하면서..”
“사실 폴리 선수가 꾸준히 위치 선정에 실패하고 있거든요. 이게, 처음에 역으로 당했다고 해서 너무 기가 죽으면 안 돼요. 상대의 미스를 잘 노려서 먹어 치우는 플레이가 필요합니다. 잘 노리면? 이거 괜찮을 수도 있어요. 호넷이 그렇게 FWX에게서 세트 승을 챙겼거든요!”
하지만 해설진이 지적하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스톰, 루루보고 놀란 가슴 진정시켜야 해요. 흩어지면 죽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해서든 상대의 상처를 비집어야 합니다!”
오늘처럼 너무 심각할 때.
그냥 오판을 하는 정도라면 확실하게 뭐라고 할 텐데, 상체 주도권을 외면하는 플레이는 전략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농담을 넘어서 진짜 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일단은, 일단은요. 이거..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경기는 기울었거든요. 그래도 한 번 정도는 스톰에서 펀치를 내밀어보지 않을까요? 어쨌든! 한타가 나쁘지는 않으니까요!”
중계에 지친 해설진은 FWX가 이 경기를 끝내주기를 기도했다.
#
- (STM) 야 권건 움직인다 이번 판도 질 것 같은데 미리 경기 끌까?
ㄴ ㅋㅋㅋㅋㅋ 태풍 불어서 창문 깨지면 무서우니 미리 깰까?
ㄴㄴ 존나 예방 전문가
ㄴㄴ 아직도 안 껐음?
ㄴㄴ “멘탈 보호 차원”
- (STM) 스톰에 문의 넣음 경기력은 왜 이런지 벽에 붙인 표어는 무슨 뜻인지ㅋㅋ
> 답변 : 안녕하십니까 팬 여러분? 의견 제출에 항상 감사합니다. 저희는 끊임없이 팀을 향상시켜 여러분께 놀라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팀은 늘 많은 팬분의 좋은 경험을 위해 자신만의 매력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ㄴ 혹시 우리가 외국팀 응원하고 있는 거였음? 어쩐지
ㄴㄴ 진한 향기가 난다
ㄴㄴ 요즘 바빠서 외주 돌리냐?ㅋㅋㅋㅋㅋ
ㄴㄴ 여기 대응팀은 대체 어떻게 된 꼬라지야ㅋㅋㅋㅋ
ㄴㄴ 이제 한숨만 나온다ㅋㅋㅋㅋㅋ
ㄴㄴ 언제부터 이랬던거야..
ㄴㄴ 언제부터긴.. 씨발..
#
상대는 완전히 흐트러졌다.
이건 윤도형이 한몫했다.
“정말이다. 이래도 안 나오네. 사이드도 너무 적게 먹어. 이러면 그냥 망할 텐데?”
“이번 우리 예측 돌았네. 진짜 딱 말한 대로 됐다.”
거짓말같이 모든 것을 양보하는, 그저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플레이.
이렇게 되면 전 세트와 다를 바가 없다.
“글쎄..”
스스로 불을 끄고 잠을 청하는 거다.
이번 경기에서만이 아니라 아마 올해 내내.
그리고 스톰은 스스로 암흑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건 이들을 상대하는 모든 팀에게도 불쾌한 일이 된다.
나는 이 이유를 알고 있다.
팀에 문제가 생겼으나 과감하게 칼질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엉덩이가 무거운 LKL, 그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스톰의 고질적인 문제.
“이제 그렇게 놔둘 생각은 없는데.”
이런 문제를 깨기 위해서는 스톰에게 큰 충격이 필요하다.
딱히 스톰의 이런 답답한 사정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아니지만,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나는 솔직히 내 성격이 그렇게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내가 그려온 그림이고, 상대의 플레이를 예측했다고는 해도.
저렇게 바텀을 툭툭 찔러보다가 수가 틀리니까 게임을 포기하는 것 같은 양상이 아니꼽게 보인다는 얘기다.
트래쉬 토크는 상체만 한 게 아니다.
그럴 거였으면 트래쉬 토크도 나오지 말았어야지.
언플도 하면 안 됐다.
감히 팀의 약점을 파고든 다음 튀려고 하다니.
기분 나쁘잖아?
“화나셨다.”
“화났네.”
“와. 이게 정글의 라이브 분노. 새롭다. 짜릿해.”
한타를 할 생각이 없다면.
찾아가서 때리면 된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가자.”
“좋았어.”
팀원들이 감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느껴진다.
“위치는 여기.”
상대가 해야 할 빈틈 찾기를 우리가 한다.
처음부터 그렸던 그림이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인원은 텔이 있는. 탑. 미드. 그리고.”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 상대를 찢어발기면서, 자연스럽게 오브젝트까지 연결될 수 있는 그림이.
“최고 속력으로 달려오는 바텀 듀오.”
날카로운 소리로 대지를 가르는 붉은 색적.
평소보다 훨씬 더 러프한 밑그림이지만.
이 단조로운 핑 하나만으로도 순식간에 팀원들의 머릿 속에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라인에 서 있는 상대 움직임의 박자를 반으로 쪼개며 타이밍을 뺏어오는 찰나.
나는 양다리에 힘을 주며 도약의 준비 단계에 들어간다.
“지금, 지금, 지금? 살짝 튀어나온 니아 선수 방향! 탑 쪽 방향, 탑 타워 방향! 이거 딱 반만 더 정리하고 싶었거든요!”
“권건 선수가!”
나는 하늘로 솟구치며 별의 바다로 몸을 던진다.
지상과 아득하게 멀어지면서.
시야각이 넓어진다.
“날아오릅니다! 판테언, 판테언! 그는 별! 그는! 행성! 끼야앗호우!”
“권건! 거대 유성! 갑니다!”
“스톰! 멀지 않습니다! 합류!”
“FWX의 목표는, 목표는..!”
내 위로는 아무것도 없는 외로운 높이에 올랐을 때.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시간은 멈춘 듯 고요하다.
“영역 A-2 와드.”
반짝.
“같은 와드. 텔.”
반짝.
“미드 쪽에서 치고 올라간다.”
“깽깽이 발로 갈까요~”
어둠 속에서 호응하는 별들의 신호가 들린다.
“스톰! 탈리아, 냐르! 합류 중!”
이제서야 나는, 발아래의 스톰을 내려다본다.
강하 준비.
“이 타이밍에 끊겨버리면 안 돼요! 살려야 합니다! 살아야 해요!”
나는 우주를 폐로 크게 들이킨다.
공기 대신 별빛이 들어찬다.
“위험..!”
그다음 순간.
나는.
한 줄기 거대 유성이 되어 지면으로 쏟아져 내린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낙하가 만들어낸 크레이터.
대지는 천천히 떠밀리듯 파도를 만들어낸다.
“3초, 2초..! 텔..! 텔 옵니다..!”
후욱.
찰나, 우그러진 지면으로 공기가 빨려드는 듯했다가.
“아아아아아아아아! 눈부신 더블 텔!”
“도망, 도망쳐야 해요! 퇴각! 퇴각! 지금 이 구도, 너무 위험해요!”
순식간에 지진 해일이 발생하며 땅이 밀려나고.
“왔어요! 왔어요! 차아아아니! 라아아아아온! 정확하게 같은 순간! 도착!”
대기권까지 치솟았던 조각들은.
중력에 이끌려 다시 지상으로 낙하한다.
“적이! 쏟아져요! 갑자기! 여기가! 불바다가! 됐어요! 전장.. 전장으로!”
무수한 파편이 하늘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며 만드는 유성우.
“가자. 미드.”
“죽이자. 탑.”
“사냥 개시!”
“금방 가요~”
재해 앞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어떻게든 원딜과 합류한 스톰의 탑과 미드, 서포터를 보고.
상대 정글의 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 이래도 합류를 안 해?
- 쟤가 문제였던거임?
- 뭐..하는 거야.. 붐보이..?
- 얘가 뱃사공 카론이었어?
내가 시선을 끌었던 상대 원딜을 아군에게 맡기고.
그대로 방패를 세우며 미드 라이너 강준윤을 향해 도약.
“탈리아 물려요!”
“아니, 아니! 탈리아만 물리는 게 아닙니다! 동시에.. 동시에..! 지금 FWX가 너무 강해요!”
멱살을 잡아 높게 들어 올린다.
충돌 후 일어난 초고열은 모든 것을 녹이고.
증기가 팽창하면서 한 줌의 숨도 빼앗는다.
시시각각 좁아지는 지상에.
적은 제대로 서 있기 조차 어렵다.
“이게, 이게, 그러니까! 꼭 녹턴처럼 운영을..! 권건 선수가 먼저 날아가고..!”
“하나하나, 스톰 선수들이 하나하나 잘리고 있어요!”
한때 같은 팀이었던 강준윤.
나는 창을 쥔 왼손에 힘을 주어.
옛 친구의 심장에 깊이 찌른다.
“킹 선수가..!”
손끝에 걸리는 마찰음.
부질없었던 스톰과의 가냘픈 연결고리를.
손에 힘을 주어, 끊어낸다.
“킹 선수가.. 끊깁니다..!”
내가 없는 스톰.
그리고 내가 있는 FWX.
“냐르와 졔리마저.. 글로리, 니아 선수 쓰러지고, 아! 에단 선수도 못 버텨요!”
“마지막 생존자는 붐보이!”
- 이게 생존자냐?
- 그냥 현장에 안 온 거지
- 왔어도 뒤지지 않았을까?
- 아무리 그래도 시발 왜 지금 RPG를 하고 있음?
- 판테언 궁이 즉발기냐? 그때부터 뛰었으면 졔리는 살렸겠다
- 분위기 싸늘해지는데?
“으아아아아아아! 글로벌 이니시.. 유니버스 이니시..! 이게.. 이게! FWX!”
“이거 큰일 났습니다! 스톰이 피하기만 했는데 결국 두 눈으로 보고 말았어요..”
바닥은 아직도 열기로 지글지글 끓고 있다.
“이게, 권건 선수가.. 그냥 유성인 줄 알았는데! 그냥 유성이 아니었어요! 거어어어어대 유성!”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유성이 아니라 소행성이었다면.
지상의 생명체는 멸종하고 만다.
“여기는.. 더 이상! 더 이상 아무도 살 수 없는 땅입니다! 스톰, 스토오오오옴! 숨도 못 쉬어요! 이거 완전히 끝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FWX가 지금 바로 오브젝트를 챙기고 한 번에 밀고 들어가건! 바로 들어가서 압박 운영을 하건! 어차피 몇 분 차이! 그냥! 다!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난다면.
오염되었던 스톰의 생태계는 복원될 것이다.
“와. 건이 빵테 궁은 진짜 거대 유성 맞네.. 나는 10센티 운석이었는데 시벌. 진짜 크네에~”
“아, 그래서 니 빵테 운석 주운 사람들이 부자가 됐구나.”
“깍지 니 나 꼽줄 때는 존나 똑똑하고?”
“땡큐.”
“우리 바로 타워링?”
“난 바론도 좋음.”
태고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물론 거기까지는 내가 신경 써줄 바가 아니다.
“이제.”
나는 과거의 내가 숨 쉬었을 진영을 밟는다.
“끝내주자.”
다만 이것이 내 자비다.
#
[ (LKL) 1라운드를 종결짓는 FWX의 플레이 ]
[ 이번 시즌, 스톰의 ‘대멸종’. ]
[ 1라운드 2위(7승 2패, 득실 차 11) 마감.. FWX, 팀 역대 최고 성적 기록 ]
[ 여전히 가시지 않은 불안. FWX, ‘클래스(최은호)’ 복귀는 언제? ]
[ FWX 감독 박진현(PerBe), “모든 일은 계획대로 맞아떨어지는 중. 오늘 경기 역시 마찬가지다.” ]
[ 결국 친정팀을 또다시.. ‘권건’의 경기력과 FWX의 팀 합 ]
[ 권건(GwonGun), “스톰에는 정글러가 없다” ]
[ 강준윤(King), “이번 경기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다.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죄송. 정신 차리겠다.” ]
[ STM 감독 김지훈, “(권건 선수의 말대로) 정글러가 없는 스톰, 서포터가 없는 FWX.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이번 경기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돌아봤다. 시즌 중이라고 해서 재정비를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어쩌면 가장 빠른 때.” ]
[ LKL 1라운드 종료! 시즌 짚어보기. 월챔에 나갈 수 있는 팀은? ]
최근에 펼쳐진 msl에서 한국이 결승에 오르면서 이번 대회에서도 4개의 출전권이 확정됐다. 서머에서 우승할 경우 1번 시드를 확보하게 되며, 나머지 세 자리를 챔피언십 포인트 2~5위 팀이 다툰다.
현재 포인트는 인천 트릭스터 90, 광주 미라쥬 70, 서울 빅스 50, 대구 유니버스 30, 성남 스톰 20, 부산 호넷이 10이다.
ㄴ FWX는?
ㄴㄴ 올해 리그 대난투라서 진짜 어떻게 될지 모름
ㄴㄴ 일단 트릭스터는 논외
ㄴㄴ 호넷도 엄청 치고 올라오고 미라쥬 빅스 유니버스가 쟁쟁한데
ㄴㄴ 일단 7패 스톰은 나가리ㅋㅋ
ㄴㄴ 벌어둔 게 없어서 우승이 답인데..
ㄴㄴ 준우승도.. 일단 선발전만 나가면?
ㄴㄴ 권건을 조금만 더 빨리 기용했더라면.. 스프링에서 10점만 땄더라면.. 그놈의 득실차..
ㄴㄴ 올해 월챔 가면 좋겠다.. 제발
7월.
땅에서 올려다보며 별을 세던 FWX의 가족들은.
이제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