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게임을 하면 이겨야지
“아이구, 예예. 아. 일정이 밀렸어요?”
지세현은 아쉬운 소식을 접해야 했다.
사옥 촬영이 뒤로 미뤄졌다는 이야기.
“아, 그렇구나. 네. 아.”
인터넷의 좋은 점은 순식간에 많은 정보를 취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팀에게 일정 지연 연락까지 받은 지세현은 어렵지 않게 FWX 서포터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FWX가 정해져 있던 촬영 일정을 미뤘다.
서포터 포지션에 다른 선수가 출전했다.
일시적이지 않은 증상.
왜인지 배탈이나 감기, 중증의 염증 등은 ‘부상 투혼’ 등을 말하며 공개가 되곤 하지만.
유독 ‘컨디션 난조’ 나 ‘건강 상태’ 등으로만 두루뭉술하게 거론되는 이것.
여태까지 LKL 역사 속에서 수많은 선수가 겪었던 수많은 일 중 하나.
이건, 틀림없이 손목이다.
“흐음.”
특정 선수의 손목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모두가 예상은 할지언정, 이에 관한 정보가 공식적으로는 잘 밝혀지지 않는 이유는.
장기적으로도 선수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통사고로 손목 수술을 하고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던 선수가 있음에도 그랬다.
굳이 구체적으로 말할 이유가 없는 부분.
이제는 팀 FWX의 성공을 기대하는 지세현 입장에서는 한없이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되려나? 일단 호흡을 맞춰둔 건 사실이지만.. 올해 끝나고 FA 시장은..”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매드 무비나 만들던 지세현은.
이제 좀 더 팀 합과 선수들의 상승효과 등을 고려하면서 LKL의 더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
[ LKL, “스톰이 FWX보다 못하다! 이게 ‘실화소니’?” 과거 월챔 우승팀 스톰에 대한 지독한 ‘홀대’ ]
이어지는 서머 시즌 LKL의 혼전 양상 속 성남 스톰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스톰은 역사적으로도 그 강함을 증명해왔다. 이어질 대전 FWX와의 경기를 앞두고, 오랜 스톰의 팬들은 “역시 스톰이 쵝오시다bb”, “최강은 스톰이에염”, “FWX와 비교하다니 정말 뿔난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ㄴ 아니 이건ㅋㅋㅋㅋㅋㅋㅋㅋ
ㄴㄴ 이게 뭐요 기자양반ㅋㅋㅋ제목 실화소니?ㅋㅋㅋㅋ
ㄴㄴ 가짜 반응 너무 올드한 거 아니냐고ㅋㅋㅋㅋㅋㅋ 우리 엄빤줄ㅜㅠ
ㄴㄴ 요새도 이런 식으로 기사를 내는 팀이 있어?ㅋㅋㅋㅋㅋ
ㄴㄴ 이걸 돈 받고 써도 문제고 팬심으로 썼어도 문제다ㅋㅋㅋㅋ
ㄴㄴ F.L.E 제주단한테 지고 나서 엄한데 화풀이야
ㄴ 스톰 팬인데 너무 쪽팔려.. 씨1발 우리가 언제 쵝오시다라고 했어?
ㄴㄴ FWX랑 비교한 적도 없어 ㅆㅂㅋㅋㅋㅋㅋㅋㅋ
ㄴㄴ 지금 하고 계시네염^^
ㄴㄴ 이 악물고 세대 따라가기ㅋㅋㅋㅋㅋㅋ
ㄴㄴ 스톰 이렇게까지 노땅 짓 할 거야 진짜?
ㄴ 스톰 정글러 이번 열애설이나 해결하고 말해 여친 또 갈아치웟더만
ㄴㄴ 경기 질 때마다 바꾸는 듯? 존나 어떻게 소문이 나는 건지 신기한 수준.. 궁금하지도 않은데 우리가 그걸 꼭 알아야겠어?
ㄴㄴ 이 시대의 카사노바 붐보이 ㅅㅂ
[ STM 감독 김지훈, “권건 선수를 존중하고 있어. 그 전의 일은 FL 하석준 전 감독의 독단이자 잘못된 행동.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 ]
ㄴ 진짜? 그때 루머 개악질이었는데ㅋㅋㅋ 권건이 오더를 다 씹었다는 둥
ㄴㄴ ㅆㅂ 씹을만하니까 씹었겠지 자기가 더 잘하니까
ㄴㄴ 뭔 주먹을 휘둘러서 어쩌고
ㄴㄴ ㅆㅂ 진짜 때렸어도 상대가 존나 맞을 만 했을 것 같음
ㄴ 스톰이 2군 감독의 행패를 침묵하고 있었던 건 죄가 아님?
ㄴㄴ 나도 몰라
ㄴㄴ 우리 아빠도 몰라 엄마도 몰라~
ㄴ ㅆㅂ 그냥 정글 자리를 영구결번 처리를 해 그럼 봐줌
ㄴㄴ ㅇㄱㄹㅇ
- (STM) 우리 프런트 진짜 개판이다 요즘 왜 이래?
ㄴ 입장 정리 제대로 못 하는 것 좀 보소..
ㄴㄴ 누구는 대결 구도 만들고 누구는 사과하고 있고..
ㄴㄴ 그때부터였죠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
ㄴ 상위권에서는 ㅈ도 신경 안 쓰이던 것들이 동부권 들어서니까 소름 끼치게 실감 난다
[ (단독) 권건, 태풍 수해 현장에 기부 ]
[ (단독) FWX 게임단, 기부 줄지어.. “선수의 뜻은 팀 전체의 뜻과 같습니다” ]
ㄴ 야 그냥 갈아탈까?
ㄴㄴ 이런 씨바.. 존나.. 게임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인성도 바른 그..
ㄴㄴ FWX 존나 착한 기업이잖아..?
ㄴㄴ 이게 “선한 영향력”
#
어느덧 1라운드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일정이 많이 당겨진 최근.
1라운드와 2라운드 사이에 날짜의 구분도 없어 경계가 희박해졌지만.
결국 1라운드를 마치고 나서 2라운드로 들어간다는 것은 한번 상대했던 팀과 다시 싸운다는 이야기니까.
사실상 모든 팀을 한 번씩 만나봤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다음은 비슷한 흐름으로 굴러갈 가능성이 높으니까.
다만 우리는 팀의 주요 전력 중 하나가 대체재로 바뀌었다.
물론 최은호가 시즌 아웃인 것은 아니니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참여할 수도 있다.
이 점을 이용한다면 어떤 팀들에게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이 차이를 극복할 수 없는 일도 생길 것이다.
일단 최선을 다해봐야겠지.
“너네 뭐하냐?”
“아.. 야. 윤도형. 니 이거 해볼래?”
“격투 게임? 나 쌉고수인데.”
각자 휴일을 보내야 할 선수들이 모두 휴게실로 모여들었다.
대외비였지만 최은호는 이번 주까지 귀가.
최은호의 본가가 사옥과 꽤 가까운 편이기도 했다.
귀가는 환경 면으로 흔들리거나 피지컬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매우 드물게 이뤄지는 조치다.
합숙하는 다른 선수들에게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회사 동료의 격리와 같은 개념인데.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격리라면, 머리로는 알지만 업무적으로는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
넓은 차원에서의 조율이 없다면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만큼 업무를 나누어 가지게 되니까.
그래서 이해받을 수 있냐 없냐는 다른 문제인 거다.
“이유찬, 니가 격겜을 그렇게 잘해?”
“도형이 형님? 아, 이거 곤란한데.”
“쫄?”
“저랑 붙으시면 하, 이거 형님 기죽어서 안되는데요.”
“얘가 또 뭐라는 거냐?”
하지만 오히려 선수들은 점점 더 뭉치기 시작했다.
박 감독님이 해주신 최은호의 상황에 대한 적절한 설명과.
성남 스톰의 이상한 언플에 대한 분노가 잘 버무려진 결과다.
물론 최은호가 완전히 우리 팀원이기도 했기에 그렇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자 나도 뒤에 자리를 잡았다.
“제가 차노스거든요.”
이유찬의 말에.
“결국엔 뒤진다는 뜻이지?”
콘솔 컨트롤러를 손에 쥔 윤도형이 단박에 응수한다.
“걔가 제일 쎈 거 아니에요?”
“나도 몰라, 씨바. 영화 안 봤어.”
“지금 이거 스포?”
“나도 모른다고. 니는 보지도 않고 차노스 어쩌고 하냐?”
“걔가 세계관 최강이랬는데.”
“일단 싸워. 니 얍삽이 쓰면 가만 안 둔다.”
LOS 프로게이머라고 해서 LOS만 하는 건 아니다.
휴가 기간에는 LOS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 선수들도 있다.
물론 이 말은 공부 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같아서.
열심히 하지 않았을 뿐, 아예 안 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에겐 이게 직업이니까.
어쨌든.
FWX는 LOS 팀만 있는 게 아니다.
가장 인기가 많은 종목이 LOS인 건 맞지만.
FPS, 레이싱 게임, CCG는 물론 격투 게임 팀까지 있다.
“제기차기 쌔리고.”
“와, 니 게임 개같이 하네.”
“극찬에 황송. 짠손.”
“벽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얍삽이 새끼야! 이거 씨바 바닥은 왜 무너져!”
“형님, 맵. 숙지는. 기본입니다. 그리고 이건 얍삽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실력이라고 하죠. 연계기 들어갑니다.. 쿵짝짝..”
이유찬이 제법이다.
일반인의 격투 게임 실력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한 실력.
맵의 특징까지 이용하는 고인물의 모습이다.
“이거 뭔데 이렇게 계속 때리냐?”
“국민 콤보인데요.”
“씨댕.. 나는 국민도 아니냐?”
“격겜하다가 국제 미아 된 썰 푼다?”
태연하게 농담하는 여유까지.
사실 이유찬이 팀 FWX를 선택한 이유에는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LOS 쪽에서 재능이 더 뛰어날 뿐, 어렸을 적 가장 좋아했던 게임은 격투 게임이라고 한다.
격투 게임의 인기가 아주 대중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마니아들이 있는 장르다.
FWX 격투 게임 팀은 그쪽 분야에서 제법 잘나가는 편이다.
이유찬은 격겜팀을 보고 FWX의 팬이 됐다는 것 같다.
로비에 우승컵도 몇 개 진열되어 있다.
다른 게임도 마찬가지라, 우승컵이 휑하게 비어있는 것은 LOS 팀밖에 없다.
그래서 이유찬도 나에게 그 자리를 채워보자고 한 거였고.
뭐, 선수에게 우승에 대한 다양한 의지가 있는 건 좋은 거지.
어쨌든 윤도형은 제대로 된 주먹 한번 내뻗지 못하고 구석에서 쓰러졌다.
“야.. 한판 더해. 니 다른 캐릭 골라라. 그거 존나 야비하니까.”
“확인.”
게임에서의 자존심은 어디 가지 않는다.
물론 LOS만큼 다른 게임도 잘한다는 확신은 없다.
동체 시력이나 반응 속도 면에서 뛰어난 부분은 있지만, 괜히 분야가 다른 게 아니니까.
“예성아. 뭐가 보이냐? 뭘 누르면 저렇게 된대?”
예를 들어 곽지운은 다른 게임을 아예 못한다.
컴퓨터도 못 만지는 사람인데 오죽할까.
여러 플랫폼을 시도해봤지만 매번 게임 자체가 실행되지 않아 포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LOS만 한다.
“형, 나도 모르겠어.. 격투 게임은 자신 없어. 저렇게 일방적으로 맞는 게 맞아?”
김예성은 턴제나 전략 게임을 선호하는 편이고, 캐주얼 게임도 꽤 좋아한다.
LOS와 완전히 다른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한다.
그렇게 한번 환기하고 나면 LOS를 다른 시야로 볼 수 있게 된다나.
역시 모범생 타입이다.
“니 격겜 프로나 하지 왜 LOS 하냐?”
“아니, 형님? 그런 칭찬을?”
“칭찬 아닌데.”
“제가 격겜 프로게이머를 했다면 세계를 제패했겠지만 여기서 형님을 만날 수는 없었겠죠.”
“미친.”
“형님을 캐리해 드릴 수도 없었을거고.. 형님은 이렇게 자신이 격겜 하수?라는 사실도 모르고 착각? 속에 사셨겠죠.”
“이런 개 같은? 니 축구 게임으로 다시 붙어!”
윤도형은 스포츠맨이다.
실내 운동보다는 야외 활동을 상당히 선호하는 편.
워크샵에서 족구를 잘했던 것도 그렇고.
아마 학생 때도 쉬는 시간이면 제일 먼저 공을 들고 나가는 타입이었을 것 같다.
게임도 대체로 축구 게임이나 FPS 등, 솔로잉보다는 친구들과 할 수 있는 게임을 선호한다.
“저 축겜 안 하는데요.”
“나도 격겜 안 하는데?”
“아까 형님이 격겜 쌉고수라고 했는데?”
“기어오르냐?”
“걸어 오르는데?”
“니 미쳤어?”
“게임 진 놈이 성낸다더니.. 쯧쯧.. 화내면 지는 거라고.. 이래서 뉴비들이란..”
“끄으으으으으아아아아앗!”
화내봤자 돌아오는 것은 기죽지 않은 이유찬의 아니꼬운 표정뿐.
윤도형은 제법 위압 넘치는 기세를 지녔지만, 새 탑 라이너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 꼴을 지켜보던 곽지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얘들아, 윤도형 공포게임 하는 영상 볼 사람.”
“그거 지우라고!”
“싫은데? 편집팀에 넘길건데?”
“니 폰 박살 내버린다!”
“또 이러신다.. LOS나 하세요, 최강 바위게 폴리님.”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타격감에 윤도형은 완전히 넉다운.
“씨바.. 그래도 바위게보다는 내가 더 비싸..”
“과연 그럴까? 스팸 전화 윤도형?”
“0/6/0 개 같은 거.. 난 대체 잘하는 게 뭐냐?”
“노래? 족구? 동족 때리기?”
“신이시여.. 어떻게 이렇게 재능을 띄엄띄엄 주셨어요..”
그리고 다른 팀원들을 박살 낸 이유찬은.
왠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혹시.. 한 판.. 하쉴?”
기가 찬다.
게임이 전부인 이 탑 라이너와는 주기적으로 충성심 갱신 이벤트라도 있는 건가?
“격겜?”
“어쩌면.. 이 세계관에서는.. 내가.. 최강자일지도?”
중얼거리며 컨트롤러를 쥔 자기 오른손을 내려다보는 우리 탑.
“뭐 걸 건데.”
나는 나에게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스스로 함정에 빠져주는 걸 내가 말릴 이유는 없지.
또다시 왼쪽으로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
나는 애써 이것을 감추고 소파에 앉아 컨트롤러를 쥔다.
분명 오랜만에 잡은 컨트롤러지만.
오랜 세월 익숙해진 파지법이 나를 이끈다.
“음.. 거니한테 뭘 받지?”
“LOS랑 연관된 건 안 돼.”
이유찬의 실력을 지켜본 김예성이 황급히 다가오지만.
나도 조용히 손을 뻗어 나에게 일말의 의심을 가진 미드를 저지한다.
순식간에 고요하게 뒤로 물러나는 김예성.
“오늘부터, 내 방 불은 네가 끈다.”
“오케이. 건이는 오늘부터 내 방의 녹턴.”
글쎄.
이 병아리야.
격겜은 노익장이 최강인 거, 모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