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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127화 (128/326)

127화. 부나방

권건의 비예고와 김예성의 라온, 그리고 이유찬의 갱플이 용 근처에 있는 상황.

조금 떨어져 있던 바텀 듀오는 당장 전장에 합류할 수는 없었지만.

정해져 있는 자신의 포지션까지 가는 데에 부족하지는 않다.

“준비..”

권건이 가늠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곽지운은 정확하게 영점 조절 사격에 들어간다.

“발사.”

애시의 거대한 얼음 화살이 하늘을 가른다.

“적중!”

“끄아아아아앗!”

그리고 화살을 쏘아 보내는 원딜과 달리.

자신의 몸을 던져내는 서포터.

“파아아아아안테에에에어어어어언! 떨어어어어어어어져요! 포오오오올리의 귀환!”

애시의 화살과 등속도를 맞추는 판테언의 비행.

준비는 길었지만.

비행은 짧았다.

모든 것이 준비된 전장.

아군이 깔아놓은 판.

“도비가 간다잇!”

그 위에 끼얹는 멋진 내 판테언의 궁극기!

지금 내가 노려야 할 것은.

가장 가까운.. 가까운, 원딜은 벌써 빠졌고..

“요공.”

마음을 꿰뚫는 권건의 목소리와 함께 상대의 머리 위에 붉은 표식이 뜬다.

좋아, 기절시키고.

창을 꽂아주고.

이제 방패를 들어서 막아내면서..?

윤도형의 판테언은 명령 수행 직후 신속하게 폭사했다.

- 폴리의 귀환 (사망)

- 특급 판테언 (서폿)

- 일단 궁 썼어ㅋㅋㅋㅋ

- 솔랭 서폿인줄ㅋㅋㅋㅋ

“1.5초가 이렇게 짧다고? 뭐야, 존나 약해.”

“맞아.”

“이거 망캐 맞냐?”

“아니, 니가 존나 약하다고. 죽어줄 필요가 없는데 바로 빠지지..”

“이것이.. 서포터..?”

“아니? 그냥 니가 실버 판테언.”

하지만.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완전히! 미쳤어요! 요공이 제일 먼저 폭사하고! 덩달아 곁에서 같이 기회를 노리던 허밍 선수의 퍄이크까지! 이거, 서폿은 교환됐지만 이미 전투력 차이가 심각합니다! 퇴각! 퇴각하라아아아아아아!”

미스가 있었을지언정, FWX가 윤도형에게 쥐여준 이 픽의 매력은 대상 지정이 가능한 단순함에 있다.

“용은, 용은, 용은!”

“호넷, 기울어요, 기울어요! 무너집니다! 따운! 완전히 따아아아아아운!”

“도망, 도망칠 수 있나요? 도망칠 수 있나요! 아, 안 돼요! 이건 공명의 함정이다! FWX, 용에 관심 없었어요! 죽인 다음 먹으면 되니까!”

“권건이 따라갑니다! 요공, 니 스킬 쩔더라!”

“라온, 라온, 라온, 라온! 두 사람의 완벽한 컴비네이션! 바로 집행 들어갑니다! 으아아아아! 이거, 차니! 갱플 궁 아껴놨었어요! 이게 신인의 참을성인가요!”

- 난 갱플하면 한타 시작과 동시에 R

- 너도? 난 미리 묻힘

- 난 막타용으로 씀

- 니가 제일 나쁜 새기다ㅋㅋㅋㅋ

강한 챔피언은.

그만큼 스킬 적중률이 낮기 때문에 강하다.

대상을 지정할 수 있는 스킬의 계수가 낮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까 대상 지정 스킬은 데미지를 주기보다는 쉽고 확실한 CC로 사용된다.

그래서 피지컬이라는 것은 항상 심리전을 동반한다.

“이거, 이거! 도망칠 수.. 없습니다! 그윈, 점멸 11시 반! 도망칠 수.. 없습니다, 그대로! 넘어갑니다!”

“포위망 미쳤어요! 좌에서 매혹, 우에서 망령의 나락! 이러면 도망칠 수가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적중률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는 이 게임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혼자만의 피지컬이 아니라 아군과의 협력을 통해 상대에게 선택지를 없애버리는 것.

“무우우우서워요! 패퇴! 패퇴합니다! 이거, 3용 그냥 넘어갔습니다! 이제 점점 경기는 기울어지기 시작합니다!”

“방금 판테언의 궁극기도 꽤..? 무서웠죠! 위치가 아주 적절했습니다! 요공을 바로 터뜨렸던 점이 좋았어요!”

“그나마! 이즈는 살았는데요, 스펠이 모두 빠졌습니다!”

리플레이에 뒤이어 선수 개인 화면이 흘러나온다.

오랜만에 경기에 얼굴을 비춘 윤도형이다.

“거어어대 유서어어엉! 뿌슈우우오오오오옹!”

그리고, 폭발.

“크어어어억! 조오오온나 쎄다. 내가 봤어. 나 억까 당했어!”

고스란히 방송을 탄 머쓱한 우기기에 채팅창도 웃음으로 가득 찬다.

- 궁극기 이름 왜 외치냐고ㅋㅋㅋㅋㅋ

- 얘도 미친놈 아니야 이거ㅋㅋㅋㅋ 날아가기 전에 자기 판테언 확대하고 있네

- 옵저버는 왜 이거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는데ㅋㅋㅋㅋ

- 폴리 존나 웃기네ㅋㅋㅋㅋㅋ 허언증 있어???

- 그저 스턴 셔틀 혜성 특급ㅋㅋㅋㅋ

- 서폿임을 자각하지 못한 ‘그’ㅋㅋㅋㅋㅋ

- 폴리 관상 바뀜ㅋㅋㅋㅋㅋ 존나 한명의 프로 말갈족 같은 인상에서ㅋㅋ 방송인으로 전직함

- 얘 말을 원래 이렇게 윾쾌하게 해?? 그래서 옛날 이슈 때 좀 그랬었던 건가??

윤도형은 부나방이 되었지만.

나머지의 힘으로도 충분히 경기를 끌고 갈 만하다.

“이야, 이거 서포터 이거.. 존나.. 왤캐 왤캐임?”

“어쩌라고.”

윤도형은 코 옆을 찡긋거렸다.

서포터라는 포지션.

어떤 면에서 보면 쉽다.

영향력이 적으니까 마이너스만 내지 않아도 중간은 간다.

근데 또 반대로 어렵다.

영향력이 적으니까 팀이 망하면 손을 쓸 도리가 없는 허수아비다.

하지만 이건 정말 솔랭에서 설렁설렁, 서포터의 ‘겉’만 핥았을 때 했던 생각이다.

솔직히.

서포터를 남에게 캐리 롤을 맡기면서 스펠 체크나 오더를 하는 포지션이라고 생각했던 윤도형은 이제서야 어렴풋이 느꼈다.

팀 게임에서의 ‘진짜’ 서포터는.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키는 것처럼 이 작은 영향력으로 가장 큰 천재지변을 가져온다는 것을.

“열심히 하겠다고요. 와드 다시 채워 옴.”

그리고 지금, 잠시 대타에 불과한 윤도형에게서는 비켜 나갔지만.

만약 서포터에게 이니시가 쏠린다면 이 고사리 같은 몸뚱아리로 적진 한 가운데로 들어가.

나머지 팀원들이 잘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선 나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려야 하니까.

신뢰의 포지션.

내가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빛날 나의 모습을 버리면서까지 남에게 모든 것을 맡길 줄도 알아야 하는 포지션.

“오케이. 그다음에 여기 시야..”

사람이 이러기가 쉽지 않다.

윤도형은 그저 이 자리에 서 있을 뿐.

끝까지 진짜 서포터는 못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FWX, 지금 너무 순조로운데요? 마치 그냥 평소 모습 같아요!”

“그렇죠! 평소..라고 하기에는 시점이 좀 많이 나뉘어 있긴 합니다!”

- 사실 시점이 중요한 건 아님. 권건이 중요함.

- ?

- 6월 중순으로 타협 보시조

- 사실 6월이 중요한 게 아님. 권건이 중요함.

- 건타르시스..

- 거기엔 모두 우리 갓 오더가 있었다

- 아아 폴리도 6월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구나..

- 근데 진짜 강팀 만나면 좀.. 그렇지 않나..

“이제 아라 이거 모자 쓰고 나면? 진짜 구미호 됩니다? 간만 쏙 빼먹고 튈 수가 있어요?”

“지금 호넷의 르블란은 양념을 치는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지금 염도가 너무 낮아요! 리미트가 플러스마이너스 빵딜이란말이에요!”

“양측 모두 쉬운 조합은 아닙니다. 하지만 경기력에서 차이가 나고 있어요. 이럴 때일수록 집중해야 해요. 호넷, 잠재력은 충분히 있습니다.”

“음. 다음 세트에는 QWER만 누르면 되는 조합을 하면 어떨까요. 지금 폴리 선수의 판테언에게 맡겨진 것처럼요.”

“그렇..죠. 그건 솔랭에서도 프로 게임에서도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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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지운은 윤도형을 아주 잘 때렸다.

“나 그냥 서포터 할까?”

“윤도형.. 나를 더 화나게 하지 마.. 야, 어어? 너 레드 반경 10m 이내 접근 금지야.”

윤도형이 정글러였기 때문일까?

왜인지 한이 맺혀있는 것 같다.

“쵹.”

“창 뻗지 말라고!”

“넝~담.”

뭐, 그렇다고 해서 윤도형이 맞고만 있었다는 건 아니다.

둘은 동갑인데다 꽤 오랜 시간 같이 경기를 뛰기도 했고.

솔직히 게임이 잘 풀리는 상황이라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게임은 재밌으니까.

그리고 윤도형이 정말 게임을 즐기는 타입이라는 것도 있다.

태도가 가벼운 면도 있긴 한데.

무거운 부분도 없는 선수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았으니까, 뭐.

“여기.”

순식간에 집중이 쏠린다.

어차피 팀의 핵심 선수는 당연히 나다.

이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나는 비예고의 대검을 어깨에 들춰 멘다.

윤도형에게 판테언을 맡긴 것은 이니시나 메이킹을 위한 게 아니다.

오늘 메이킹의 핵심은 미드 아라, 그리고 원딜 애시다.

몇 번의 킬 교환이 있었지만 좋은 거래였다.

하지만 라이너가 메이킹과 이니시를 담당한다는 것은 정글이나 서포터와 다른 의미.

아무래도 이동이 자유로운 서포터와 달리 라인 단위로 묶이는 경향이 있다 보니 전투 위치의 자율성이 떨어지고, 그러면 경기가 루즈해진다.

근데 이런 소강상태는 너무 심심하잖아.

그렇지?

‘내 친구’ 목해인?

“여기.”

“거기?”

그러니까 흐름을 읽는다.

상대는 여전히 우리 팀의 약점인 윤도형을 노린다.

평소와 다른 동선, 익숙하지 않은 역할.

서포터에게 빙의하면서 너프를 먹은 몸뚱아리.

두리번 두리번, 잠시 윤도형이 주춤거리는 순간.

나는 의식의 흐름을 역으로 추적한다.

호넷의 진영,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 너머.

미드의 벽은 항상 시야 싸움이 치열하다.

그렇기에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갑니다.”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근거는, 윤도형의 기울어진 플레이를 오랫동안 지켜봤던 호넷이.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

먹이를 주고 싶어 할만한 대상은.

“어어어어어어!”

벽 뒤에서 이동 중인 점멸이 없는 원딜.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궈어어어언건!”

순간적인 시야 격차로 방심한 상대를 노리는 선택.

목해인을 향해 다가가는 가장 빠른 길.

점멸.

나는 예상했던 그 위치로 응축된 안개를 쏘아붙인다.

“이즈! 이즈! 물려요! 노플! 이거! 이거어!”

확실하게 손끝에 걸린 느낌.

잡았죠?

“이거, 아라가 거리가 있어서 방심했어요! 당연히 아라나 애시 쪽에서 시작할 줄 알았는데!”

“권건이! 걸어버립니다! 벽을 넘어서 찾아왔어요!”

“라온, 라온! 라온이 바로 호응하면서! 순식간에, 순식간에에에에에! 호넷의 원딜이 사라집니다!”

“아무것도 못 누르고 죽었어요! 차렷이 되어 버렷! 동상이 되어 버렷!”

“말이! 안 돼요! 말이! 지금! FWX는! 여기에! 시야가 없었거든요! 근데 진짜 아주 조금의 틈도 없이 바로 점멸 투자하면서 권건이 직접 메이킹을 해버립니다!”

- 시발

- 오야지.. 미치셨습니까?

- 권건 새기 저거 맵핵 쓰는 거 아니냐?

- 그래 너무 궁금하니까 오늘도 건이형 보이스랑 화면 좀 공개해줘 제발ㅠㅠ

- 존나 뒤통수치네.. 하루도 얌전할 날이 없어..

- 오늘은 또 누구한테 이렇게 화가 났는데?

나는 까불거리던 이즈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바로, 바로! 낭낭하게 들어오는 애시의 이니시! 반대쪽도 마찬가지! 이러면, 이러면 그윈이 바로 물려요! 바아아아아로 이차전 해볼까?! 앙?!”

점멸이 아깝지 않냐고?

시체를 먹고 비전 이동을 쓰면 되잖아.

이것이 순환 경제.

고맙다, 친구야.

“호넷도 싸움을 준비하고는 있었는데! 이거! 그냥! 갑자기 왕자님이 끊기면서! 불리해요! FWX의 왕자님은 전쟁통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아아악! 도망칩니다! 호넷, 빠른 퇴각! 퇴각!”

“줄을! 줄을 서시오오오! 자칫 진영이 갈리면 더 끔찍한 죽음이 기다릴 뿐입니다! 우리, 죽더라도! 다 같이 죽기로 했잖아! 왜! 왜! 왕자님을 거기에 둔 거야!”

“그냥 둔 건 아닙니다! 시야도 확보해뒀었고, 사실 방금은 폴리 선수의 판테언이 더 위험했어요!”

“솔직히! 폴리 선수가! 별로! 도움은! 안 돼요! 그냥! 미끼 역할하고 있는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흠흠, 네. 서포터는 아니지만 일단.. 미끼는 됐습니다.”

허공에 짙은 안개를 흩뿌리자.

마치 훈연기라도 맞은 듯 뿔뿔이 갈라서는 호넷.

“야, 건아. 원딜 좀 더 패줘.”

“왜요?”

“내 앞에서 많고 많은 겁나 많이 하더라. 존나 패고 싶게. 근데 내가 힘이 없다, 야.”

임시 서포터의 주문에 헛웃음이 나온다.

곽지운과 제법 친한 목해인이기에 했을 행동일지 모르겠지만.

배송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흐름이 번집니다.. 번집니다..! 이거 마구 불타올라요, 이거!”

나는, 하늘을 향해 대검을 높게 치켜들었다가.

상대의 눈앞에 내리치며 나타난다.

그리고 손을 들어 까딱이며.

앞에는 나, 뒤에는 김예성을 둔 진퇴양난의 적에게 경고한다.

기회인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착각이다.

우리는 잠시 주춤한 동료를 기다리고 있을 뿐.

너희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줄 여유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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