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124화 (125/326)

124화. 교체

FWX는 대응이 빨랐다.

당장 심화 테스트를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주관적 통증 레벨과 객관적 통증 레벨의 차이의 격차가 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문봉구가 제 발로 샌드 다운을 요청했을 때 남몰래 가장 눈치를 본 것도 최은호였지만.

FWX의 급성장을 가장 잘 받아들인 것도 최은호였다.

이 선수는 쏟아지는 관심과 찬사에 일종의 러너스 하이, 황홀경 상태에 접어들었다.

자기 손목의 한계를 희미하게 알고 있었음에도 에너지 음료에 의존하면서 잠을 줄이고 연습 시간을 늘리기 위해 몸을 속였다.

권건의 옆에 서 있고 싶어서였다.

이 맹목적인 신앙이 너무나 밝아서 신체적 과부하를 자각하지 못했고.

결국 몸이 강력한 이상 신호를 보낸 결과가 점막의 출혈과 인내를 넘어서는 통증이다.

“면역력에도 문제가 생겼고..”

“그럼 어떻게 되나요?”

“괜찮습니다. 원래 몸이 튼튼한 편은 아니지만, 기저 질환 같은 게 있는 건 아니다 보니 충분한 휴식과 관리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수술..은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좀 더 전문적인 운동이 필요할 것 같네요.”

“일단 휴식. 좋습니다, 그럼 일정표를 공유해 드릴 테니..”

박진현 감독은 속이 상했다.

그리고 동시에 미안했다.

작정하고 숨기면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직 선수들이 나를 믿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외적 대응과 달리, 내적 대응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최은호는 부쩍 말이 없어졌다.

최은호는 자신 때문에 의료진이 출장을 나온다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았다.

“일단 타 팀에 양해 구해서 스크림 일정 최대한 취소하거나 변경하고.”

박 감독은 가능하면 최은호의 곁에서 밀착 케어를 해주려고 노력했다.

“바깥으로 말 새어 나가지 않게 관리 부탁해.”

“알겠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야. 수철이 너도 겪었었지?”

“네. 다만 정신적 후유증이 문제니까..”

최은호는 묘하게 선수들을 피해 다녔다.

항상 붙어 다니던 곽지운조차 최은호에게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박진현 감독은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으나.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최은호가 준비될 때까지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일단은.. 일단은 퓨처스 쪽에 지원 요청 넣어두고.”

아예 연습에 참여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어쨌든 당장 시즌 중이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해.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야. 그냥, 조금 늦게 알아챈 것뿐이니까.”

중요한 것은 통증보다 멘탈이다.

최은호에게는 인생 최초의 일이니까.

“한빛아. 잘 부탁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은호한테 시선 주면 역차별 느낄 수 있으니까 주의하고.”

“네, 감독님.”

“일단 피닉스전도 준비하자고.”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이런 말 하기 조금 조심스럽긴 한데.”

“응?”

“이제 걔네는 우리가 두 명 빼고 싸워도 이길 것 같아요.”

“나도 그거 사자성어로 알아.”

“뭔데요?”

“매우 동의.”

#

[ (LKL) 잠시 ‘주춤’했던 FWX, 여전히 좋은 경기력 선보여 ]

[ 울산 피닉스 vs 대전 FWX, FWX가 상체의 힘으로 산뜻하게 스윕 승리! ]

[ 3주차 ‘POM’ 1위, 현 500점.. 정글 캐리의 정석인 ‘그’. ]

[ 화끈한 승부.. 권건, “개인 기록보다는 팀이 경기력을 이어 나가는 게 우선” ]

[ (포토) “우리 이제 제법 잘 맞아요”, ‘차니’ 이유찬과 ‘라온’ 김예성의 어깨동무 ]

[ (포토) 밝은 웃음으로 승리를 축하하는 ‘세자’ 곽지운 ]

[ (포토) ‘클래스’ 최은호의 어두운 표정, “왜?” ]

[ 김붕이의 심화 포럼 : ‘한 조각’이 부족한 FWX. 진짜 ‘완성’은 언제? ]

이번 시즌의 FWX가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 그 누구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상체에 힘에 비해 바텀의 메이킹이 부족하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선수들의 기여도와 수급 능력으로 봤을 때.. (중략)

FWX가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바텀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ㄴ 그래도 피닉스는 ㅈㅂ이던데?

[ FWX, 서머 시즌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비상 | Life will change EP.1’ 공개 ]

[ PNX 최필립 감독, “경기 후 FWX를 만나면 경기가 잘 풀린다는 말이 있어. 만남의 장을 열었으면 좋겠다.” ]

[ FWX 박진현 감독,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

- (FWX) 만-족

ㄴ 트릭스터 경기 보고 심마가 닥쳤었는데 나았습니다

ㄴㄴ 그래 오늘처럼만 해라ㅋㅋㅋ

- (FWX) 너네 조심해라.. 본인 지인분 피닉스 vs FWX 경기 보다가 돌아가심..

평소 철인 삼종 대회도 완주하시고 헬스도 꾸준히 하시던 지인분..

같이 LKL 보다가 피닉스 경기 봄..

너무 정이 간다면서 응원하겠다길래 주변에서 말렸지만 괜찮다면서 응원 시작함..

그렇게 피닉스가 FWX 만나고 눈앞에서 돌아가셨다.... 순식간에 치여서 패배함

외마디 비명만 남긴 채 그렇게 땅속 깊은 곳으로 사라지셨다..아직도 안 잊혀짐...

그 뒤로 절대 피닉스 경기 봐도 응원 안 함

ㄴ 구라 아니냐..? 진짜냐? 세상에 너무 무섭네

ㄴㄴ 황소 팀이었나 보네

ㄴㄴ FWX 권건이라고 있는데 얘한테 걸리면 얄짤없음 악력이 우뒤르급이라서 잡히면 그냥 끌려가서 뒤진다고 보면 됨

ㄴㄴ 나도 솔랭에서 한 번 잡혔는데 씨발 간신히 탈주했다

ㄴㄴ 이게 진짜 구라지;; 권건을 어캐 만남;;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추억의 템플릿이네ㅋㅋㅋ

ㄴㄴ 헐퀴^^;; 정말,,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ㅎㅎㅎ

ㄴㄴ @)))))))) 김밥 ㅋㅋㅋ 한 줄ㅋㅋㅋㅋ

ㄴㄴ 근데 이거;;;;;; 알고보면 실화더라;;;; 내가 주말에 다시 보기 하다가 권건 플레이 다시 보고 나도 모르게 경찰에 신고한 적 있다;;; 함부로 생각하지 마라 그냥 FWX 응원해라

ㄴ 그만해ㅋㅋㅋㅋㅋㅋ

ㄴ 존나 강력한 팀ㅋㅋㅋㅋ

ㄴㄴ 왤캐 왤캐임;;

ㄴㄴ 이제 트릭스터는 잊었다!

ㄴㄴ 지금도 잘 하고 있어~~~~~ 근데 더 잘해라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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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도 사람이다.

때로는 식중독이나 배탈로.

때로는 독감이나 유행성 전염병으로 고생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그 책임 소재는 어디에 있는가?

종종 이 문제에 대해 ‘팀의 관리 소홀’이나 ‘선수 개인의 부주의’로 의견이 갈릴 때가 있지만.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이 문제를 부담해야 하는 것은 모두 함께니까.

“음, 이거, 새삼 깨닫는 건데. 우리 정말 일정이 빡빡하구나.”

“야구처럼 거의 매일 하지는 않지만..”

“팀원이 적고 교체가 어렵지. 전부 투타 겸업이니까.”

훈련을 최소화했지만 최은호의 회복은 더뎠다.

문제가 복합적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희망은 있었다.

바로 유마라는 챔피언.

이런 상황을 예견한 LOS의 배려였을까.

다행히 이번 메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지나치게 견제받지도 않는 이 챔피언를 손쉽게 최은호의 손에 쥐여줄 수 있었다.

피닉스와의 경기에서 FWX는 상체의 힘이 강력하다는 것을 다시 보여줬다.

이런 부분은 팀의 레벨이 다를수록 도드라진다.

이유찬은 정말로 한 팀, 한 세트를 거칠 때마다 상대의 플레이 스타일을 가져오는 것처럼 흡수해나갔다.

김예성은 적극적인 주도권 챔피언을 가져가 불안감을 메우면서.

오히려 아군의 주도권이 없는 경우에 어떻게 플레이 해야 하는지 감을 찾고 있었다.

권건의 플레이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하지만 그 직후, 지난 스프링 2위를 기록한 광주 미라쥬를 만나면서.

“눈치챘구나.”

미라쥬의 상어들은 밴픽부터 플레이까지 일관적으로 서포터를 견제했다.

정확한 원인을 모를지언정.

피 냄새를 맡은 이들은 절대 사냥감을 놓치지 않는다.

제아무리 힘이 강하다고 해도 챔피언이 가진 한계와 정해진 시간의 규칙을 벗어날 수는 없는 법.

FWX는 최대한 서로를 둥글게 말며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역할을 가져왔지만.

만만찮은 상대는 다섯 명이 모두 자신의 역할을 하는 상태.

몇몇 슈퍼 플레이가 터졌지만 FWX는 또다시 1세트만 챙겨오는 패배를 안았다.

“정신 차려, FWX!”

“뭐 하는 거야!”

경기 종료 후 돌아가는 선수들의 등을 향해 누군가 외친 소리.

이제 고작 2패.

권건이 없던 시절에는 눈도 마주하지 못했을 두 팀에게 얻은 패배지만.

응원하는 팬 입장에서는 이 숫자가 결코 작지 않다.

항상 팀이 1위를 하기를 바라니까.

게다가 팀의 내부 사정을 알 리 없거니와, 안다 한들 어차피 승패가 가장 중요한 세상.

팬들의 반응은 하늘로 치솟았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온갖 비난이 쏟아지고 때로는 선을 넘는 발언들이 범람한다.

작년의 성적을 잊고 승리에 도취된 몇몇 팬들의 실망감은 더욱 커졌고.

여전히 응원해주는 팬들이 많지만, 좋은 말 백 마디보다 아픈 말 한마디가 날카로운 법.

이것은 슬럼프의 칼날이 되어 최은호를 찔렀다.

“일단.”

최수철 코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패배는 오히려 괜찮다.

팀 분위기가 문제다.

“잠깐 도형이가 서포터로 출전하면 어떨까 싶다.”

윤도형은 포지션이 정글러였지만 팀원들과의 소통에는 익숙하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스크림에도 참여하고 내부 피드백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갑자기 2군 서포터를 콜업하기에는 아직 이지호가 너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

“나만 믿어라잇!”

윤도형은 전혀 포변 의사가 없었지만 팀의 위기 상황에는 언제든지 나설 준비가 되어있는 선수였다.

당연하지만 서포터라는 포지션에 최은호만큼의 이해도나 숙련도를 가졌을 리는 없다.

다만, 상황이 너무 급했다.

다른 포지션의 선수가 긴급 상황에 라인 스왑을 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분위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웃는 낯으로 손을 번쩍 든 윤도형에.

오히려 최은호의 표정이 혼란스러워진다.

“오해하지 마. 네가 집중 회복기를 확보하려면 잠시 성적을 양보하고서라도..”

최 코치가 말을 이었지만.

최은호는 홍역을 앓듯 얼굴이 빨간 열로 달아올랐다.

“수많은 강팀도 거쳐 간.. 우리가 이번 시즌만 경기할 건 아니니까.. 네 건강이..”

어떤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들어야 하는데, 멍청한 자괴감과 자기혐오가 심해져 쉽지 않다.

“제가..”

최은호가 오랜만에 입을 열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제가, 저따위가, 도구 따위가.. 심지어 원딜도, 라이너들도 안 아픈데. 저따위가..”

아직 다른 사회를 겪어보지 못한 최은호에게는 LOS가 전부고, 여기가 세상의 끝 같았다.

잘린다.

열심히 한다고 해봤는데.

이 팀에서 잘릴 것 같다.

쓸모가 없어진 도구는 잘릴 것이다.

이 사실이 너무 무섭고 무서워서 최은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어서 나아야 한다는 생각이 겹쳐 힘을 풀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그딴 말이 어딨어? 아프면 아픈 거지!”

곽지운이 드물게 목소리를 키워 말했다.

“형님? 형님? 혹시 울어? 울 지 마! 울 지 마!”

“그, 그만해.. 탑.. 그거 아니야.. 은호 형 안 울어..”

미친 사람이 최선을 다해 위로하려고 하면서 상황은 난잡해지고.

“뭐야. 수철아. 이거 무슨 상황이야.”

잠시 밖으로 나갔다가 급히 돌아온 박 감독이 벌컥 문을 열었다.

“감독님..”

“그걸 바로 말했어? 이런..”

주변의 시선을 매우 의식하는 최은호의 성격을 잘 아는 박 감독은 눈에 띄게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잠깐.”

순식간에 소란을 잠재우는 낮은 목소리.

“은호 형. 저랑 이야기 좀 하죠.”

오랜 시간 최은호를 묵묵히 주시하던 권건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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