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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115화 (116/326)

115화. 협곡행

F.L.E에서는 세라핌이 탑으로 갔을 때의 권건의 빠른 타이밍 갱 가능성, 유틸형 미드가 미드에 서 있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차라리 리싱 서폿이 미드로 가면 어떻겠냐는 질의들이 오갔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그 누구도 결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

결국 라인에 선다.

“쉔 어딨어?”

“쉔 정글 먹고 있어. 여기.”

“쉔 어딨어?”

“쉔 지금 바위게 방향 가고 있어. 여기.”

“신출귀몰하네? 동선 무엇? 먹을 것 같아?”

“먹겠지! 형들 그만 좀 해! 내가 무슨 특파원이냐고! 나는 완전히 숨겨져 있는 게 이득이야!”

정글 이정우는 바른말을 하고도 확신이 없는 기분이었다.

권건은 정글을 돈다.

고요하다.

그런데, 라인 상황은 다르다.

FWX가 라인별 주도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상황.

강한 라인 주도권이 있으면 정글의 게임은 쉬워진다.

정글러가 굳이 뭘 만들지 않고 상대 정글 위치만 찾아도 되니까.

라이너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건, 가만히 있어도 정글의 턴을 벌어다 주는 셈이다.

그러니까.

지금 권건이 그렇다.

권건은 부담감 없이 상대 정글인 이정우의 탈리아 위치만 찾아도 라인에서 이득이 굴러들어오는 상황.

“내가, 내가 갈게. 어차피 우리 정글 들어오기는 힘들어. 정글링 느리거든? 그러니까 내가 반 박자 빨리 찔러볼 테니까..”

이정우는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자꾸만 권건에게 시선이 간다.

뭘 하고 있을까?

쉔 한 적 있나?

나도 배울 수 있을까?

한살 형이던데, 아, 진짜, 진짜 존경하는 선수인데.

만나니까 왜 이렇게.. 왜.. 쉔이 쉔이 아닌 것 같지.

“정우, 너 몸 쏠렸어. 시야 노출.”

“아.”

“얘들아, 집중하자.. 집중!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니, 아니, 아니? 아니이이이! 차니? 차니? 차아아아아니!”

“차니 선수! 정말 놀라운 플레이!”

해설진에게서 놀라운 고성이 튀어나온다.

“저 무빙 제가 잘 알거든요!”

“저도요!”

확대되는 화면.

“이거 제 무빙입니다! 이거 삼십대 중반의 아자르 무빙이에요!”

- 차니 오늘 웃음벨이네ㅋㅋㅋㅋㅋㅋㅋ

- 설마 정말 카운터라서 뽑은 거야?ㅋㅋㅋㅋ 어디 사이트 참고했어ㅋㅋㅋ

- 긴장했나ㅋㅋㅋㅋㅋ

- 제발 리플레이 보여줘ㅋㅋㅋㅋ 천년만년 놀려주고싶다ㅋㅋㅋ

- 모냐고 ㅋㅋㅋㅋ 저 간지나지만 존나 쓸모없고 마나통 텅텅 비우는 드리프트ㅋㅋㅋ

- 그리고 갱플한테 딜교 실패까지 갓벽ㅋㅋㅋㅋ

탑챔 만물상 이유찬의 입장에서도 아자르는 제법 오랜만에 하는 픽이어서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뻔뻔한 손 풀기다.

“제가 봤을 때는 약간 아자르에 취했어요. 아자르가 멋이 넘치거든요. 이건 차니 선수가 한바탕 즐기신 겁니다. 각이 나오면 꼭 한번 워터파크 슬라이딩 타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거든요. 물론 적을 향해 들어가는 건 좀 그랬지만.”

“이야, 이거, 정말.. 쇼맨십이.. 차니 선수, 매력적인데요?”

탑에서 재주를 넘어 시선을 빼앗는 동안.

“어, 어! 어! 미드, 미드, 미드!”

“미드! 미드에서! 미드에서 라온 선수의 요내가! 허밋 선수의 세라핌, 세라핌, 세라핌! 위기! 위기!”

“이거, 이거 못 도망가요!”

“천살성이 부르짖습니다! 별의 아이 라온! 모조리! 모조리 도륙해버리겠다! 오늘 이 선수, 살기가 심상치 않아요! 미드에서 솔-로-킬! 라아아아아아온!”

공식 권건 바라기 김예성.

“부모님께서 검사가 되라고 하셨지만 저는 검사는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쌍검을 든 검사는 될 수 있습니다! 라온이 선취점을 가져갑니다!”

그리고 이번 세트.

나의 맹주를 위한 최선이 적의 수급을 따다 바치는 것임을 깨달은 김예성.

“오늘 이 경기, 지금, 너무, 너무 잔인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오늘 정글 없이 고독하게 플레이한 이 선수의 첨예한 칼끝에서 피가 떨어진다.

슬슬 자신의 천성이 무엇인지 깨닫고 있는 이 선수는 지독하고 압도적인 암살자로 돌변했다.

아직, 그의 동료들은 출발하지도 않았기에.

도륙만을 남겨놓은 양 떼 사이로 공포가 감돌기 시작한다.

#

- (FLE) 프레는 자러 갑니다~ ㅂㅂ

ㄴ 그래도 역대급 꼴픽 경기인데,, 보셔야지요,,

ㄴㄴ 그 꼴픽이라는게,, 우리 팀이 더 꼴픽인게,, 문젭니다,, 주도권 ㅇㄷ,,

ㄴㄴ 횐님. .^^ 작년까지는 이 대진이 이렇게 악몽이 될 줄 몰랐습니다. .

ㄴㄴ 우리 사이다가.. 오늘도 뭐 좀 보여줄 수 있을런지요,,

ㄴ 어떻게 서폿이 제일 주목받는 팀이 있을 수가?

ㄴㄴ 사이다(서폿, 22세) 바텀에 숨 쉰 채로 발견

ㄴㄴ 숨이나. . 쉴 수 있길. .

ㄴㄴ 근데 상대도 워낙 꼴픽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ㄴ 너네 대체 픽 왜 그따위로 했어????? 무슨 용기?

ㄴㄴ 그걸 알면 저희가,, 이러고 있겠읍니까,, 보다가 늙는다 늙어,,

ㄴㄴ FWX는,, 회춘하셔서,, 좋겠읍니다,,

#

사실, 지금은 절대 이 무사 닌자의 메타가 아니다.

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못 쓰는 건 아니다.

나를 접대해주겠다는 우리 팀원들.

스스로 굴러들어온 성장 피버 타임이다.

그럼 뭐, 이만큼 그림자에 숨어들 수 있는 챔피언이 있을까.

“어떻게 보면 이건 F.L.E에도 찬스예요.”

“맞습니다. 사실, 지금 밴픽 말도 안 돼요. F.L.E도 말이 안 되는데 FWX가 더 말이 안 돼요. 처음 보여주는 양상일뿐더러. 이거 진짜 가끔 초특급 강팀들이 보여주는 그냥 배 째라는 식 밴픽이거든요?”

“지금 벌써 미드에서 솔로킬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탑에 가능성이 있어요. 차니 선수의 아자르. 아까 우리 30대 무빙 봤었잖아요. 어쩌면 FWX가 급히 스왑을 하다가 실수가 나온 걸 수도 있어요. 아주 가끔 있는 일입니다.”

“이거 오늘 FWX가 승리하게 되면, 인터뷰에서 꼭 물어보고 싶네요.”

- 맞아ㅋㅋㅋ지금 보니까 마지막에 스왑 실수한 것 같기도?

- 그럼 차라리 미드에 서지ㅋㅋㅋ

“그러니까 차니 선수의 아자르 숙련도에 달려있긴 한데. 만약, 정말 만약에. 이런 사고 속에서 F.L.E가 이긴다? 승부 예측을 모조리 뒤집으면서, FWX를 이겨버린다! 그럼 득점이 두배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 탑은 미친 사람이다.

“다운로드 완료.”

“뭘 다운로드했는데?”

“이제부터 시작이다. 짠손! 짠발! 짠짠손손! 위! 아래! 위위 아래!”

사실 이유찬의 마음은 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어쨌든 확실한 건.

이유찬은 압박 아자르를 할 줄 안다.

“유찬. 뒤로 빠져. 탈리아 간다.”

“나는 더 강해져서 돌아온다. 잔잔바리 슉. 슈슉. 슉. 슈슉!”

이런 탑과 같이 게임해주는 우리 팀, 제법 젠틀해요.

“어어? 이거 탑 구도 심상치 않아요? 이거, 이거, 뭔가요? 차니 선수!”

“차니 선수! 지금 실시간으로 회춘하고 있어요! 이제 20대 후반! 중반! 이게 불로초의 효과?!”

“그렇습니다. 갱플에게 상당히 불편한 구도를 만들어주고 있어요. 아자르가 손이 정말 빠르거든요? 눈을 감았다 뜨면 천번을 찌릅니다!”

“탑에 저런 미드 챔피언들이 오는 게 아주 야비한 행동이긴 한데, 이게 또 절대 단점이 없지 않거든요. 한 번만 갱을 당해도..”

“그런데 정글 탈리아가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해요. 다아아아! 읽힙니다! 그냥 읽혀버리니까! 차니 선수가 탈리아 움직임을 다 알고 미리 피해버렸어요! 이거, 미드가 지금 발이 너무 풀려있거든요!”

움츠린 F.L.E.

나는 천천히, 평소보다 훨씬 느긋하게.

마치 이 협곡에 없는 양 느린 잔걸음으로 움직인다.

이크, 에크, 이크, 에크.

기와 결계를 다루는 이 챔피언은.

닌자 한 스푼과 무사 아홉 스푼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FWX 플레이 스타일이 달라요. 권건 선수가 원래 라인 저니맨이죠. 전 라인을 활발하게 돌아다닙니다. 근데 오늘은 이 역할을 미드에서 라온이 대신해주고, 애시가 정찰 매 날려주고. 권건 선수는 너무 안전하게 크고 있어요. 사실 쉔은 상당히 느립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알 수 있죠!”

“뭔가요?”

“권건 선수를 둘러싼 소문 중에, 아주 흉흉한 소문이 있었거든요. 이 선수가 잡으면 정글링에 배속이 붙는다. 데미지에 1.5배 버프가 붙는다. 그런 말들이었는데, 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아주 깔끔하죠.”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외로운 길을 걷는 무사처럼.

잠영투체술을 펼친다.

우리 팀원들이 제 힘을 깨달을 수 있도록.

숨을 죽이고 입체 기동.

적을 추격하는 데에 집중한다.

“지금 벌써부터 이런 말씀 드리기가 쉽지 않긴 한데, 이건 어떻게 해보겠다.. 이런 선을 넘어섰어요. 사실 바텀은 이미 오토매틱 파밍 시스템을 가동했습니다.”

“하. 정말 보기만 해도 끔찍합니다. 시비루와 애시가 그냥 라인에 서서 각자 QW정도만 누르면 자동으로 적립이 되고 있어요. 포인트 달달합니다.”

“요즘은 웨이브 디나이가 정말 쉽지 않거든요. 프리징도 예전만큼 안 됩니다. 이게 어지간히 차이가 나지 않으면 리그 레벨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요. 근데 지금 그걸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거 남은 게 밀려오면 그제서야 받아먹어야 하는 수준이죠. 그래도 리싱을 잡은 사이다 선수가 최선을 다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한 땀 한 땀 CS를 챙겨봅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권건 선수도 적극적으로 갱을 오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래도 여기 서 있을 수는 있어요. 이런 자비심. 협객. 이게 쉔이죠.”

“아, 네.”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 다시하기 눌러라

- 한명 나가봐봐 일단

- 이미 퍼블 나왔어 ㅠㅠㅠㅠㅠ

- 15gg 고..ㅠㅜㅠㅜㅠㅜ

- 권건이 게임 쉬고 있어도 4대5를 해버리네..

“근데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닙니다. 디나이 당한 사이 돈보다 중요한 게 경험치거든요. 이거 조금 있으면 1레벨 벌어집니다. 상황 심각해요, F.L.E.”

“이거 반대편 자꾸만 급해져요? 근데 허탕 쳤죠? 이거, 어떻게 할 건가요. 어떻게 할 건가요 F.L.E!”

상대에게서 라인 스왑 낌새가 보인다.

처음부터 갔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FWX의 전 모습을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상대 라인 스왑 타이밍.”

“확인.”

“어, 어어어! 이거! 따라가요! 권건이 살짝 합류해서 손실을 부추깁니다! F.L.E! 이거 완전히 손해 봤어요!”

라인 스왑이라는 거.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다.

특히 F.L.E, 피닉스 같이 ㅍ라인들에게는 더욱.

“FWX에서 강력한 주도권으로 용을 먼저 챙깁니다!”

이런 말을 하기엔 조금 이를지 모르지만.

“자. 여러분.”

사실.

이 게임은 이미 폭발하고 재만 남았다.

“저의 의지는 준비되었습니다.”

“오우.”

“내가 궁 받을 거야.”

“내가 받을 거야.”

“건아, 일단 내 요내에 타면 약속했던 킬까지 제공을..”

“예성이 진짜 독하다.”

“입찰 경쟁 한번 가? 나는 킬부터 대포까지 대출혈 서비스를..”

“지운이 형, 그거 거짓말이지.”

“어떻게 알았지?”

이제 게임은 점점 더 편안해진다.

#

처음에 FWX의 픽을 본 해설진과 시청자들은 FWX가 실수했거나, 시청자들에게 예능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라온 선수가 좋은 게, 사건이 발생할 것 같으면 언제든지 합류할 수 있는 곳에 가 있거든요.”

“그렇습니다. 이게 말처럼 쉬운 플레이가 아니에요. 갔다가 이득을 못 보면 손해라는 얘긴데. 정말 위치 선정 좋아요.”

“반면 지금 F.L.E는 창조 손해를 봤어요.”

하지만 아니었다.

FWX는 픽과는 별개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최근 두 팀의 압도적인 평가 차이에도 불구.

FWX는 편하게 게임을 할 생각이 없는지 전혀 빈틈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마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맹원들처럼 철저하게 맞아 돌아간다.

킬각에 지나치게 집착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건 무리하지 않았다는 말일 뿐.

FWX의 미드에 악령과 싸우는 음습한 이도류가 살고 있다.

천살성(天殺星) 아래에서 태어난 귀검랑(鬼劍郞).

“으아아아아아! 또다시 라온이! 라온이 두 번째 솔로킬! 이거 마구 굴러가요! 마구 굴러갑니다!”

“아이돌 데뷔 시켜준다고 해놓고 쌍검을 든 살인마와 미드에서 싸우라니요! 이렇게 잔혹한 현실이 어딨어요! 여기만 장르가 다르잖아요! 아포칼립스입니다!”

“검이 웁니다! 검명이 들려요! 이 선수 감정이란 게 없나요?! 너무 무서워요!”

- 세라핌 들어가고~

- 차라리 아자르를 만나러 가 그 아저시가 낫지 않을까?

- 아니면 바텀을 가지 그랬어

- 스왑은 안 익숙한 라인에서 다른 롤 수행해야 하잖아; 리그에서 그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모름?

- 유니버스 애들은 하던데?

- 그럼 프레말고 유니버스 경기를 봐 시발롬들아ㅠㅠ

탑에서는 붉은 머리의 영물.

강호초출(江湖初出)의 홍계관화(紅鷄冠花)가 사람을 찌른다.

“여기는 화약통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이거 뭐 아예 싸움이 되질 않잖아요! 이런 거 들고 탑에 가지 마세요, 제발!”

“아.. 진짜 싫어요.. 진짜.. 아까는 우리 편이면 절대 안 될 것 같았고 지금은 상대면 끔찍할 것 같아요..”

- 차니 언제 이렇게 컸어? CS뭐야? 아자르 할 줄 아는 거야?

-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제법 미끌미끌한걸

- 여기서도 사인회는 불가능할 듯

- 그냥 체급 차이 넘 심한데ㅋㅋㅋㅋ 편하게 즐기고~

그리고 이런 전장 속에서.

여전히 갈지자걸음으로 느긋하게 포지션을 잡던 은둔 고수는.

천천히 계곡 안쪽으로 바람이 부는 것을 바라본다.

우수수, 협곡의 수풀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바텀에서는, 바텀에서는!”

“셰나, 어어어!”

적이 정해놓은 선을 넘어오는 찰나.

FWX의 모두는 이것이 ‘약속의 때’임을 알아차린다.

바람의 방향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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