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114화 (115/326)

114화. 각자의 이유

“탑이여? 탑 아자르여?! 미드 요내여?! 정글 쉔 맞어?! 밴픽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궈어어어언건! 이 선수! 정글 쉔! 혼란을 틈타 쉔! 혼틈쉔!”

“FWX의 탑 아자르 기용! 미드가 아니었어요! 권건 선수의 쉔 정글! 미드 요내! 그리고 바텀이 시비루 애시입니다!”

- ????탑 아자르에 미드 요내야???

- 혹시 차니도 미드 출신 비둘기야? 아님 스왑해준거야?

- 정글 쉔???? 저게 진짜 지금 쓸 수 있는 게 맞아???? 서폿이 아니야???

- 올 타임 “쓰레기”임

- 사쿠라여?ㅋㅋㅋㅋㅋ

- 그는 웃고 있다..

- F.L.E가 엄청 꼬아 보려고 했는데 FWX가 개박살내버린 거 아님? 존나 마이웨이로

- 애시 서폿이 너무 평범해 보여;;

- 아무래도 좋아 리그에서 이런 픽? 항상 응원합니다ㅋㅋㅋㅋ

“F.L.E는.. 탑 갱플, 정글 탈리아에 미드 세라핌과.. 셰나 리싱 바텀이에요! 리싱이 바텀으로 가버렸습니다!”

“픽이 아자르 궁을 맞았어요! 셔어어어플!”

- F.L.E는 리싱 서폿?? 아 사이다라서? 탑솔형 서포터???

- 그건 선택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거라고! F.L.E 정신 차려!!!

- 정글로 쓰려다가 쉔을.. 보고.. 마지막에 스왑을..?할 이유가 없는데? 요내 정글인 줄 암?

- 권건이라면..?

- ?????이게 대체 무슨 난리야?????

- 그럼 리싱을 미드나 탑이 가져가지 왜 서폿이 가져가냐고 바텀 푸시 어떻게 할 건데

- 아니 시발 그냥 나도 존나 모르겠어ㅋㅋㅋㅋㅋㅋㅋ 개꼴픽 ㅋㅋㅋㅋ

- 솔랭이냐고ㅋㅋㅋㅋ 이거 뭔 호응이 되기나 해?

- 존나 닷지 마렵잖아ㅋㅋㅋㅋㅋㅋ 어지럽다

- 리그에 만연한 평범한 라인과 픽 구조를 단숨에 깨뜨리는 통쾌한 픽이로군요,, 매우 만족스럽읍니다,,

“이게, 이게 그러니까 F.L.E 생각을 FWX가 읽은 건가요? 아니, 이거 읽을 수가 없었을 텐데. 이거 괜찮아요? 진짜로? 두 팀? 이게 퍼즈가 안 걸린다고요?”

“두 팀의 미친 예능감!”

FWX의 탑 아자르, 정글 쉔.

보여주지 않았던 미드 요내와 바텀 조합.

그리고 F.L.E의 탑솔형 서포터, 사이다의 서폿 리싱.

경기 시작 직후.

팬들은 열광의 도가니였고.

F.L.E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었다.

“망했다..”

원딜러 이신은 이마를 짚었다.

처음 계획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 돌아가서 다 같이 반성문 쓰자.. 최대 흑역사 떴다..”

사실 서폿 리싱은 생각해 온 게 맞다.

비서폿 챔피언 풀이 매우 넓은 서포터, 유상준을 중심으로 이날을 대비해 다양한 픽을 연구했다.

어처구니없지만 팀에서 피지컬로는 원, 투톱을 달리는 서포터 유상준이다.

유상준을 이용해 교란을 주면서 투 탑 체제.

탑에서는 주도권을, 미드에서는 유틸형 챔피언으로 반반을 가져가며 후반에는 셰나까지 키우는 게 얼개였다.

F.L.E는 럭키 펀치를 노려야 하는 상황이니까.

상대적 약팀에서는 힘만으로는 안 된다.

팀의 사정, 적이 간과하기 쉬운 점, 밴픽의 우위 등을 적극적으로 노려야만 게임에서의 격차를 극복할 수 있다.

“탑 아자르 대체 뭐야?”

“쟤는 진짜 신인이잖아. 미드 출신도 아니잖아!”

“코치님이 말한 거 생각난다. 미친 탑.. 마오차이 했었댔나.. 아, 1군 와서 칼챔밖에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아자르 뭐야? 저게 왜 스왑이 돼. 스왑이야, 아님 원래 하려던거야? 이게 무슨 결승이야?”

“스왑이겠지. 갱플로 아자르 괜찮아?”

“아니? 존나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차니 쟤가 아자르 잘 못 할? 수도? 있어.”

“이거 CS는 어떻게 먹어?”

“CS는 막타를 쳐서 먹는 거야. 미드랑 라인 스왑 가는 게 낫겠지? 세라핌 대 요내는..”

“따라올걸? 아..”

분명 우리가 심리전을 걸었는데 반대로 맞았다.

어떻게 서폿 리싱까지 예측할 수가 있는 거지?

FWX의 깊은 심계가 무서워 소름이 돋는다.

애석하게도 F.L.E에 리싱을 리그 수준으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정글과 서폿 뿐.

지금에야 누가 이걸 가져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이쪽 구도가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렇게 되면 이 픽이 가능한 사람 거수, 밀려난 픽 가능한 사람 거수.

과정이 길다.

5분 정도 시간이 주어졌다면 모르겠지만 사각사각 줄어드는 밴픽과 스왑의 시간제한은 숨통을 조였다.

이미 준비해온 양상과 너무 뒤집혀 버린, 전형적인 말린 밴픽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말린 밴픽.

“그러면.. 그.. 스왑을 하면서.. 바텀은 받아먹고.. 그러면.. 어떻게.. 손실을..”

“그래도.. 초반에 갱 위협이 있진 않겠다. 짜오보다는 훨씬 낫다.”

“어쩔 수 없네. 정우야, 혹시 쉔 좀 찾아서 죽여줄 수 있을까?”

“..아.. 분명 내가 유리하긴 한데.. 유리한 게 맞을까? 정말?”

막내 정글 이정우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권건 선수가 하는 픽 12개까지 대비해왔는데.. 왜 13번째가 나왔을까.. 왜 했을까? 어떻게 했을까? 진짜 안 좋은 거 맞나? 숨겨진 기능이 있나? 혹시 쉔 고르고 위위위 아래아래아래 위위위위위위위 누르면 사기 챔피언으로 바뀌나?”

“진정해 정우야.. 미안하다.. 벌써 정글 멘탈 분쇄기 가동됐나 보다..”

더이상 메소드 연기를 지속할 수 없었던 F.L.E는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

우리 팀의 야생성을 깨우려고 했을 뿐인데.

라인전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

“이게 이렇게 되네. 리싱 서폿, 저거 도형이가 말했던 거 아니야?”

“황당하다, 정말.”

“이게 건이 효과? 역시 건이..”

감독님까지 들어가시면서 ‘역시 내가 필요가 없는 걸까?’라며 행복한 표정.

그렇다고 우리의 조합이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각 라인에서 불편함이 없을 뿐, 전체적인 조합은 상대가 훨씬 완성도가 높다.

결국 실제로 승리를 해야만 이 픽이 의미가 있을 거다.

리그에서 항상 나오는 픽만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건 메타다.

즐겜을 위해 유리한 고지를 피해 다닐 팀은 세상에 없다.

하지만 평소에 나오지 않는 챔피언이 나오는 경우는?

첫째, 이색 카운터.

상대가 즐겨 사용하는 강력한 조합을 유도한 다음, 이를 맞설 카운터 픽으로 사용하는 것.

이건 의표를 찔러야 의미가 있기에 아주 중요한 순간에 공개된다.

둘째, 시그니처.

OP가 적은 시즌일 경우 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거나.

남아있는 주류 픽이 팀에서 정한 역할과 다를 경우 후순위로 고려되는 것이 시그니처다.

종종 메타를 넘어 자신만의 챔피언을 가진 선수들이 있다.

셋째, 좋은 기억.

예를 들어 아주 중요한 경기,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세트.

특히 그것이 다섯 번째 경기라면 정신력은 바닥을 기고, 체력도 소진된 상태.

그런 경우 ‘좋았던 기억’이나 ‘손에 익은 좋아하는 챔피언’을 고르는 경우가 있다.

한계 끝에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우리도 리싱이 바텀으로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대도 우리가 위치를 꼬아버린 것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F.L.E는 쉔을 본 순간 사고가 정지했을 테니.

“시비루 아직도 관에 들어가 있지 않아?”

“그렇긴 한데. 오른손 정도는 나옴. 지난번에 했을 때보다는 밸런스 조절도 됐고. 내가 시비루의 아버지가 될 거야.”

곽지운의 시비루에는 둘째, 셋째 이유가 섞여 있다.

이 픽을 앞으로도 언제든지 다시 뽑을 수 있다고 위협하고자 하는 마음과 성공 사례다.

“형님, 사실 시비루도 그렇게 많이 새롭지는 않은데요.”

“원딜이 원래 좀 그래.. 다음에는 더 특별한 걸로 준비해볼게..”

네 번째.

선수가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경우.

메타를 선도하고 싶은 마음.

기세를 탄 팀이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서 고르는 경우도 있다.

팀적으로 허용이 잘 안되는 부분이긴 한데.

스타성 있는 선수들이 그렇다.

“오늘. 탑은 독립 선언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왑을 해 준 경우.

“언젠가 반드시 미드와 스왑해줘야 할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있어. 그때쯤엔 김미드가 울고불고하겠지. 그날을 위한 픽이야.”

글쎄, 이유찬이 이런 의도였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코치님께서 하신 말을 급히 갖다 붙인 느낌이 들기는 한다.

“그럴 일 없거든, 탑?”

“김미드. 내가 너보다 아자르 잘해.”

“너. 그 말. 후회하지 않겠어?”

“탑은 물러나지 않는다.”

“미드는 잊지 않는다.”

“얘들아? 어차피 너네 탑에서 붙냐 미드에서 붙냐로 싸울 거잖아. 덕분에 심리전 걸었으니까 됐어. 어휴. 쟤네 정말.. 얼불이야.”

그리고 그런 특이한 픽의 승리가 반복되면 이 사람의 챔피언 풀 자체를 상상할 수 없게 된다.

딱히 이유찬이 이런 부분을 의식한 것 같지는 않지만.

아자르로 탑을 갔었다고? 그럼 혹시 이것도 스왑하려나?

앞으로 밴픽에서 지속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스크림과 이번 시즌.

팀 FWX의 베이스는 확실한 이미지가 있다.

공격적인 탑.

공수 전환의 구심점인 정글과 미드.

수비적인 바텀.

“쟤네는 왜 픽을 보고도 저렇게 가져가는 거지? 모르긴 했겠지만 중간부턴 알았을 텐데.”

“관성이겠죠.”

“관성?”

“짜왔던 게 있으니까. 그걸로 장군을 뒀는데.”

“판을 엎어버린 거구나.”

그래도 내 리싱을 서포터가 뺏어간다는 건 흥미롭다.

오늘의 우리가 ‘일반적인 형태’였다면 이 밴픽은 나쁘지 않았을 거다.

상대 서폿이 ‘이렐 그 녀석’이기 때문에 짜 온 전략일지도 모른다.

내가 다른 팀에 있었을 때는 이런 식의 밴픽을 들고 온 적이 없는데.

FWX라면 당황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걸 다 예측한 거야, 건아?”

“아첨 그만해라 최은호.”

“그럼 깍지 네 의견을 말해봐.”

“이걸 다 예측한 거야, 건아? 대단하다.”

“너 진짜 짜증 나.”

“응. 오뉴월.”

“개빡치네.”

거기에 더해, 내가 이렇게 ‘도움 안 되는’ 정글을 들고나올 줄은 몰랐겠지.

그럼 상대 입장에서 좋은 거 아니냐고?

이곳은 사막.

여기 당신보다 눈이 좋은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의 시력은 4.0.

당신의 시력이 0.3에 불과한 상황.

당신보다 눈이 훨씬 좋은 사람이 저 먼 곳에 오아시스가 존재한다고 말하면.

의심스러우면서도 그 말을 믿지 않을 수 있을까?

“근데 쉔이 좋아?”

“요즘 상향 받았어? 못 본 것 같은데..”

“아니면 룬 특성 조합식 같은 게 있나? 간접 패치 받은 거 있어?”

“특별한 템트리?”

믿게 된다.

어차피 프로 공통의 목표는 승리.

무언가 있다고, 최소한 나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아뇨.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쉔이에요.”

“아.. 쉔붕이..?”

“근데 건이가 잡으면 다르지. 뭐가 달라도 달라.”

“맞아.”

상대가 우리와 비슷한 급이라면 이 모든 선택이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지만.

제주 F.L.E라면 괜찮다.

그렇다고 내가 장난으로 이 픽을 잡은 건 아니다.

나는 경기에서 항상 진지하다.

다만, 어리광이 있는 우리 팀원들이 워낙 걱정이 많으시니.

일선에서 물러난 은둔 고수가 되어주는 수밖에.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내 플레이만이 아니다.

이 팀 선수들의 영혼에 잠들어있는 공격적이고 화끈한 라인전 파워.

이게 깨어나야 한다.

“탑, 잘해. 내가 지켜볼 거야.”

“어. 아자르가 이렐이랑 닮은 부분이 좀 있지.”

이유찬은 자신감이 넘친다.

감독님은 플랜 X를 결정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게 이유찬이지만, F.L.E 탑인 쏠 선수는 충분히 상대할 만 할 거다.

“그리고 스킨이 멋있어. 이거 봐. 이 스킨. 닭을 제대로 형상화했지. 우리가 닭띠니까..”

“그거 닭 아닌데? 대장군인데.”

“아니? 닭이야. 닭의 해라서 나온 거거든. 내가 동물 동영상을..”

“뭔가.. 쟤는 관심 있는 분야가 확실해. 동물 장군이야.”

“그럼 예성이는 왜 요내야?”

“상대가 아자르 보고 안심하는 것 같아서..”

“진짜로?”

김예성도 처음에는 빼는 것 같더니 조금 신이 난 것 같다.

내가 너만 믿겠다고 했거든.

“예성아, 너 암살자가 좋다면서.”

“목격자가 다 죽으면 암살이라고..”

김예성은 얼굴을 살포시 붉힌다.

살벌하기 짝이 없다.

“그렇구나.. 결국 많이 죽일 수 있는 건 다 좋아한다는 거였어. 탑 미드 데칼코마니.”

“저런 애를.. 어떻게 탱커를 시켰지.. 우리 예성이 천살성이네. 천살성이야.”

“나만 픽 물려받았네. 나 피쯔하고 싶었는데.”

최은호가 투덜거리지만.

“사실 애시 좋으면서.”

“맞아. 오늘부터 내가 원딜이야. 대신 와드는 내가 박을게.”

“확인. 나는 CS먹는 서폿 할게.”

결국 이상한 픽과 화제가 되는 픽은.

아주 강팀이거나 아주 약팀에서 나온다.

여기서 어느 쪽이 어떤지는 말할 필요가 없겠지.

우리가 이 픽을 똑같이 조합해서 이긴 적은 없지만.

확실한 건 각자의 픽으로 스크림에서 이겨본 적이 있기에 골랐다는 거다.

그리고 마지막 근거는 나.

자, 오늘은 단결된 무사를 보여줄 시간이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원래 보험은 지급이 좀 늦거든.

“라인 주도권 꽉 쥐고 건이 정글 편하게 돌게 해.”

“가능하면 라인 CS도 줘.”

“그냥 줘. 줄 건 줘. 권 건 줘.”

“괜찮아요.”

“휴!”

“우리 원딜은 이기적이야.”

“조용히 좀 해.”

“대포 압수. 미간에 꽂아주지.”

“내 건 내가 알아서 챙겨. 목숨이든, 돈이든.”

근데, F.L.E.

다시 생각해보니 좀 그렇네.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전략을 짜본 건 좋은데..

내가 네임밸류가 높은 팀에 있었을 때는 이런 거 안 들고 나왔잖아.

왜 이런 작은 악당 같은 행동을 한 거야?

FWX가 힘을 숨김, 몰라?

군림(君臨)이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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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돌한 선택을 한 F.L.E.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FWX가 숨겨왔던 라이너들의 폭력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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