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그 패 봐봐
FWX는 콘텐츠가 부쩍 늘어났다.
빠르게 올라간 최은호의 요리 영상.
- 뭔데ㅋㅋㅋ 클래스 표정 뭔데ㅋㅋㅋ
- 차니ㅋㅋㅋㅋㅋ 게스트가 시강이네요
- 색이 대체 왜 저래? 그리고 왜 저렇게 커..?
- 8:10 똥..? 아니면.. 벌레..?
- 이거 모자이크 안 해도 되는 거야..?
- 저거 냐르래
- 냐르가 트럭에 치였냐?
- 정말 우리 차니는 게임이라도 잘해서 다행이다..
- 편집자님이 이 쿠키를 먹게 되셨다면 당근을 흔들어주세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이유찬의 손재주.
그리고 맛있는 것과 맛있는 것을 합치면 더 맛있는 것이 나온다는 이론의 이유찬을 감당하지 못한 최은호의 참담한 표정이 제법 잘 뽑혔다.
- (BGS 공식) 창의력에는 역시 빅스 DIY 쿠키 만들기 세트! 이 영상은 조리 예일 뿐입니다.. 여러분들도 다양한 쿠키를 보여주세요! ^^
- (FWX 공식) 촬영이 끝난 후 냐르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당근 이모티콘)
콘텐츠에 빅스의 공식 채널 관리자까지 찾아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SNS에도 선물이 공개되며 빅스는 ‘통이 큰 식품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가져갔고.
FWX는 이 일을 통해 빅스와 함께 거론될 때마다 올라왔던 김예성의 빅스 부적응, 마찰 논란이 더 이상 언급되지 않도록 새로운 이미지를 새겼다.
“역시 권건 선수야..”
“이제 라온 선수도 좀 편해지겠어요.”
구단에서는 일부러 빅스에게 내기를 건 것이 권건의 깊은 심계라고 확신했다.
이 선수, 도대체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 걸까.
점점 더 매력적이다.
그리고.
FWX 소속 스트리머이자 전 프로 ‘지니’, 강동흔의 채널에도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여기 탑이 숨어있다가 싹, 싹 하면서 웨이브 여섯 마리 정리하고 그다음 딜교가 유리한 순간이 오는데! 정글이 갑자기!”
“그 마음을 권건 선수가 정확하게 읽었다는 말씀이시죠?”
“찌세님! 제 말이 그겁니다!”
“또 다른 포인트도 짚어봐야 해요. 보세요. 권건 선수 리싱이 싹 한 바퀴 훑고 빠져나오는 거? 여기, 이 장면. 지니님. 이게 정말 중요한 포인트예요.”
말재주가 많지 않아 솔랭 영상 정도나 올라오던 채널.
오늘 영상에는 권건 관전방의 운영자 찌세, 지세현이 앉아있었다.
방송감이 뛰어나지 않은 강동흔을 대신해 지세현이 미쳐 날뛰었다.
거침없는 권건 중심 방송.
“이거 진짜 지렸다. 미쳤다. 돌았다!”
“저도 이런 정글만 있었으면 우승을 다섯 번은 했을 텐데.”
강동흔은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이미 지세현에게 물들었다.
“저도 이런 정글 만나면 다이아는 그냥 갈 텐데.”
“다이아요? 혹시 랭크가 어떻게 되세요?”
“브론즈입니다.”
“아.”
두 사람의 맞은편에는 지세현의 친구이자 전 빅스팬, 최인규가 앉아있었다.
부담스럽다며 화면에는 벗어나 있지만 거침없는 훈수가 들어온다.
“어이없네. 쟤는 고작 브론즈면서 아는 척 엄청 한다니까요?”
최인규의 말에.
“그래서 이긴 팀은 어디?”
“...”
강동흔과 지세현이 이빨을 드러내자 다시 최인규는 가만히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 빅스 진짜.
“근데 제가 재밌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뭔가요?”
강동흔의 말에 지세현이 짐짓 모르는 척 대답했다.
“찌세님 친구분인 인규씨가, 빅스 팬인데, 무려, FWX 직관에서, 3등 상품을 받아 가셨다고요.”
“정 말 요? 너 무 놀 랍 다!”
사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지세현이 말해줬다.
“저도.. 저도 FWX 좋아해요.”
최인규는 어물거렸다.
“아, 빅스 팬인데 배팅은 FWX에 거셨다?”
“와. 정말 놀라운 팬심. 이게 팬심입니까? 먹튀지.”
“공개 처형하지 마세요.. 저는 라온 선수를 응원합니다.. 이거 편집 해주시는 거죠?”
전혀 편집되지 않았다.
빅스도, FWX도 좋아하는 최인규지만.
사실 요즘 FWX에 끌린다.
그리고 이길 것 같은데 어떻게 해.
평소 같았으면 소리 높여 지세현과 다퉜겠지만 진 팀의 팬은 할 말이 없는 법.
정신없는 매도에 최인규는 고통받고.
점점 합이 맞아들어간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권건을 우상화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권건 선수가 빛보다 빠른 밑장 빼기로 빅스 눈탱이를 쌔린 다음에..”
“이건 저라도 할 수 있는 플레이였는데. 솔직히 빅스에서 못했죠. R만 눌러도 됐는데 권건 선수의, 일종의 패왕색의 패기? 그런 거에 눌렸는지..”
“여기 보시면 리벤지 선수가 핑을 찍는데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여기는 권건 없다. 근데 이게 건신의 프레스티지급 블러핑이었죠? 그러니까 이건 소위 말하는 구라핑, 헛핑인데..”
편파적인 뉘앙스가 있었지만 결국 모든 것은 사실.
경기는 끝났고, FWX는 이겼으며, 권건은 완벽했다.
“이 선수가 그냥 염소가 맞다니까요.”
“메에. 예술적인 걸 보면 우는 염소. 메에.”
모든 대화의 중심에는 권건이 있었다.
여태까지 테마를 잡기 어렵던 콘텐츠 제작이었는데, 이제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편수를 나눴다.
“영상은 계속해서 업로드됩니다. FWX, 지니였습니다.”
“저도 안 잘리면 돌아올게요. 언젠가 또 만나겠죠.”
“금방 만날 텐데요?”
“왜요?”
“FWX 사옥 탐방 같이 가셔야지. 권건 선수 안 만나고 싶어요?”
“만나고.. 만나고 싶어요.. 선생님..!”
ㄴ 저도 빅스인데.. FWX 응원해요..^^ 갈아탄 건 아니고..
ㄴㄴ 라온 때문이죠 그쵸?
ㄴㄴ 맞아요 어쩔 수 없어요..ㅠㅋㅋㅋㅋㅋㅋㅋ 상품도 탔고ㅋㅋㅋ
ㄴㄴ 그럼 빅스 팬이라는 거야 FWX 팬이라는 거야 확실히해ㅋㅋㅋ
ㄴ 이 시대의 낭만주의 FWX는 당신을 원하고 있다
ㄴㄴ 현재 팬 모집 중!
권건 코인의 수혜자와 그 가치를 깨달은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25 LKL 서머 첫 번째 라운드! 2주차, 열 아홉번째 경기에 와주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항상 경기는 빠르게 다가온다.
“오늘은 대전 FWX와 제주 F.L.E의 경기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팀, 이번 시즌 굉장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꽤 친근했던 두 팀인데. 권건 선수가 등장하면서부터 FWX가 완전히 달라졌죠. 그래서 지금 FWX가 가진 위상은 그 전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F.L.E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이 있겠어요.”
“오늘의 키 플레이어로는 바텀에서 클래스, 사이다 선수가 선정됐군요. 얼마 전에 사이다 선수가 재치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전 시즌에 서폿 요른으로 FWX를 위협했던, 탑솔형 서포터가 사이다 선수입니다. 솔랭에서는 이렐 서폿 등 비주류 서폿들을 많이 다루죠.”
- 그나마 지표 데이터로라도 비벼볼 만한건 서폿밖에 없어서 서폿 띄움?ㅋㅋㅋ
- 빛의 FWX와 어둠의 FLEㅋㅋㅋ 성적이 정반대ㅋㅋㅋ
- 여기 지금 FLE 팬들 있긴 하냐?ㅋㅋㅋ
- 야 우리 올챙이 시절 생각해 (/애도)
- /애도
F.L.E와의 경기는 확실히 가볍다.
운영과 메타가 맞지 않았던 시절에도 F.L.E에 체급으로는 밀린 적이 없었던 FWX다.
내가 있고, 김예성의 영입과 이유찬의 콜업으로 체질 개선을 한 우리 팀이 밀릴 수가 없는 경기.
모두 가벼운 마음이었다.
“건아, 제발 이번에는 하고 싶은 거 해.”
김예성이 다시 한번 말했다.
“그래. 혹시 하고 싶었던 건 없어? 정말 부담 없이.”
곽지운도 마찬가지로 한마디 거들었다.
미리 구도를 짜올 때부터 모두 내게 부담 없는 픽을 권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길 수 있는 픽이면 되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지만.
“하지만..”
김예성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나는 정말로 취향이랄 게 없다.
한때는 POM을 의식해서 멋진 장면을 만들 수 있는 챔피언을 선호하기도 하고.
정글의 한계를 넘어 압도적인 딜량을 뿜어낼 수 있는 챔피언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결국 최고는 승리.
그러니까 나는 이기는 게 취향이다.
“계속 그러다 보면 정말 지친단 말이야. 혹시 프레한테 질까 봐 그래? 내가 진짜 캐리할게. 킬 양보할 테니까..”
그래도 김예성의 표정이 너무 간절하다.
이 선수는 자기 경험을 나에게 투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 건아. 이번 경기, 아니, 첫 번째 세트만이라도. 스포츠란 게 물론 승리가 최고지만 팀원들이 바라는 부분을 서로 양보하면서..”
감독님까지 정신론을 펼친다.
뭐,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내가 이제 막 데뷔하자마자 혹사당하는 정글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메이킹 부담이 있는 챔피언만 요구받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래서 나도 괜히 농담을 던져본다.
“그럼 유마할까?”
“그래? 전에 말했었지! 유마도 자신 있구나! 역시.”
아니, 나로서도 쉽지 않다고 한 건데.
“맞아. 우리가 적극적으로 지원할게. 어때? 한번 해볼래? 최초 기록이겠다.”
“진짜! 진짜 괜찮은데? 우리 건이한테 최초 타이틀 한 번 줘볼까?”
내 의도와 다르게.
반쯤 눈이 돌아가 버린 선수들이 환호했다.
“나 고양이 좋아해.”
“나도.”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야옹해진다.”
“이 정글.. 고양이는 어떨까?”
“어떻게 하면 돼? 말만 해.”
미친 충성심.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아무리 그래도 리그인데.
“농담입니다. 그런 식이면 상대한테 실례죠.”
“아.. 맞아.”
여기서 함부로 말을 하면 큰일 나겠다.
“그럼 이렇게 해요.”
“그래, 그래!”
상대가 약팀이건, 강팀이건.
항상 최선을 다해야한다.
하지만 이건 찬스이기도 하다.
우리 라이너들의 야생성을 깨울 기회.
“모든 라인이 하고 싶었던 진심 픽으로 갑시다. 기억하시죠? 플랜 X.”
나는 어느새 왼쪽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었다.
자, 패를 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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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정석대로는 안된다.”
“맞아요.”
제주 F.L.E도 안 될 경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딱 첫 번째 세트! 우리는 비교적 경력이 짧은 FWX의 선수들의 정신을 흔드는 방향으로 간다.”
“맞습니다!”
“그리고 리싱을 뺏어온다! 그 조합! 간다! 혹시 모른다! 정말 모른다!”
“좋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는 것은 후대 LKL을 정복할 장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F.L.E 답지 않은 일.
“지금부터 기억 삭제 실시!”
“실시!”
F.L.E는 메소드 연기를 가동했다.
연달아 만난 강팀들, 그리고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이제는 마당 밖으로 나가버린 최강의 빌런 FWX.
이들에 대한 정보와 기억은 잊고.
지금부터 우리는 강팀이다.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시작한다.
“야, 저쪽 정글 처음 보는데?”
“신인인가 봐.”
“데이터 있어?”
“아니, 없는데.”
“후.. 어쩔 수 없지. 안됐지만 신인을 밟아버리는 수밖에.”
“감독님, 이 컨셉 계속 해야 해요?”
“그럼 본명 부를까?”
“그 이름은 절대 불러서는 안 되는..”
고난과 역경을 맞이한 F.L.E의 과감한 트라이.
그리고 스크림 혹은 리그에서 승리 경험이 있다면 어떤 픽이건 해도 괜찮다고 결정한 FWX.
빛과 어둠이자 음과 양.
“F.L.E가 리싱을 가져갑니다! 권건 선수의 리싱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거든요, 이거! 진짜 이 선수 리싱은 명품입니다! 밴을 할 게 아니니까 뺏어왔죠!”
닮았었지만 이제는 너무나 다른 이 두 팀이 만났을 때.
밴픽은, 우주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FWX의 요내? 요내? 그럼? 어, 잠깐만요. 잠깐만요.”
“지금 이미 아자르가 나와 있고.. 그러니까, 어, 잠깐만요. 어? 어? 어? 쉔? 쉔? 쉔 킨쿄우? 근본 픽? 근본 픽이죠? 이거 스캬너보다 훠어어어어얼씬! 근-본 픽이죠! 정글, 정글 가줘요! 제발!”
“서폿? 서폿 쉔일까요?”
그리고 꼬이고 꼬인 밴픽 속에.
“어어? 이게, 조합이? 어어어? 어? 어?”
- 뭐야? 뭐야? 쉔? 권건 쉔이야? 아니야? 탑이야? 서폿? 뭐야?
- 신났네 신났어 해설진ㅋㅋㅋ
- 그냥 FWX는 탑 요내에 쉔 정글, 미드 아자르에 시비루 애시겠지
- ㅆㅂ 모르겠어 쉔 정글 가능함? 서폿 아님?
- 그럼 시비루 정글 쉔폿?
- 말이 되냐ㅋㅋㅋ
- F.L.E는 갱플 리싱 탈리아 셰나 세라핌인가? 평범한데
“어? 게다가 밴픽 종료 후.. 지금.. 픽이.. 양 팀, 또다시 셔플?”
뽑힌 카드들이 정신없이 뒤섞인다.
“지금, 지금 교체 정말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이거, 이게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죠? 이거 뭐예요! 뭐냐구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화면이 넘어가 버렸어요!”
“이게.. 이게.. 제가 마지막으로 본 게.. F.L.E의 리싱 서폿..? 맞나요..?”
대전 FWX 대 제주 F.L.E 의 첫번째 세트.
동시에는 볼 수 없던 진귀한 광경.
최초 픽은 아니었지만 왠지 저기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챔피언들이 동시에 전입 신고했다.
“로딩, 완료됐습니다! 그러니까..! 양 측의 패가.. 패가..! 딴! 따라란! 따라란! 따라란! 쿵짝짝 쿵짝짝! FWX! 그 패 봐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