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111화 (112/326)

111화. 코리안 트레디셔널 스타일

[ (포토) LKL, 권건! 여름을 맞아 시원하게 벗었다! ]

1라운드 서울 빅스와의 경기에서 ‘역대급’ 승리를 차지한 대전 FWX의 권건이 경기 후 아우터를 벗으며 팬에게 인사하고 있다.

ㄴ 기자님? 그냥 자켓 벗은 거잖아요

ㄴㄴ 나도 속았어 싯팔ㅋㅋㅋㅋ

ㄴㄴ ㅉㅉ.. 제목 낚시를 아직도 하냐

ㄴㄴ 좀 있으면 마우스만 클릭해도 기사 쓰겠네

ㄴㄴ 이래 놓고 좋아요가 대체 몇 개 박힌거야ㅋㅋㅋㅋ 솔직하지 못한 놈들

ㄴ 너네 대체 뭘 기대하고 온거야?

ㄴㄴ 너는 왜 여기에 있는데

ㄴㄴ 그거야 당연히..

ㄴㄴ 건이 오빠.. (남고생쟝)

ㄴㄴ 건이 오빠.. (28사단 태풍 부대)

- (FWX) 이번 시즌 왜 이렇게 꿈같지? 혹시 깨어나면 권건이 타노스되는 게 아닐까

ㄴ 우리 캡틴 FWX는 그런 것에 굴하지 않는다

ㄴ 유니버스랑 빅스 이겼나?

ㄴㄴ 해머스도 이김

ㄴㄴ 해머스는 동부잖아ㅎ

ㄴㄴ 지난 시즌 3, 4위 이겼으니까 이제 미라쥬랑 트릭스터 남았다

- (TRT) 아직도 F급들이 깝치나? 어차피 일등은 트릭스터ㅋㅋㅋ

ㄴ 아직도 권건 거품 존나 껴있음ㅋㅋ

ㄴㄴ ㅇㅇ 빅스 플레이 비정상이었음 누구 아팠던 거 아님?

ㄴㄴ 사실 1세트 하고 존나 싸웠음

ㄴㄴ 니가 어캐 암?

ㄴ 야 그래도 msl 때 우리 좀 도와준 애들이잖아ㅋㅋ

ㄴㄴ 그런 식으로 감정적으로 생각할 거면 리그를 왜 봄?

ㄴㄴ 왤캐 화가 났냐;

ㄴㄴ 그만큼 무서우시다는 거지~ㅋㅋㅋ

- 야 팬들은 어느 팀이 랭크 높을 거 같냐?

ㄴ 당연히 FWX 팬들 아님? 선견지명 모르냐?

ㄴㄴ ㅁㅈ 우린 다 명예 챌이지ㅋㅋ

ㄴㄴ 챌은 좀 오바니까 그마 정도로 할까?ㅎ

ㄴㄴ 인증 없으면 뭐다?

ㄴ 트릭스터 팬임 다이아 인증 (사진)

ㄴㄴ FWX 팬들 아무도 인증 못하죠?ㅋㅋㅋㅋ

ㄴㄴ 방송 볼 땐 고작 다딱이라고 놀리지만 지금은 자랑스러워

ㄴㄴ ㅋㅋ 사실 전 골드임ㅎ;

ㄴㄴ 전 실버요ㅎ;

ㄴㄴ 이게 우리의 현실이야..

ㄴㄴ ㅋㅋㅋㅋ ㅈㅂ들 플레라도 데리고 와봐ㅋㅋㅋ

ㄴ 권건 팬임 챌 인증 (사진)

ㄴㄴ ???? 이왜진 ????

ㄴㄴ 아ㅋㅋㅋ 주작 아니냐고 모니터로 찍어와라

ㄴㄴ (사진)

ㄴㄴ ??????

ㄴㄴ 어? 이거? 어?

ㄴㄴ 어..? 형..? 유니버스 써머 아니야..? 형 점수랑 친구 다 보여..

ㄴㄴ 치와와 시츄 분쟁의.. 그 탑..? 혹시 치와와 형이야..?

ㄴㄴ 뭐임? 왜 삭제함? 진짜였음?

#

서머 시즌 세 번째 경기.

우리는 팬미팅 시간을 가졌다.

FWX에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팬의 숫자가 적었었다.

그래서 곽지운과 최은호는 열혈 팬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온 팬 중 절반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경품에 눈이 팔렸을 수도, 아니면 유입된 팬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팬이 되는 데에 이유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이상.

리텐션은 보장 수표니까.

그래도 일단 오늘 경기 자체에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경품만 받아 갈 수 있었음에도 긴 줄 끝에서 사인을 받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나쁘지는 않다.

꽤 감정이 메말랐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팬은 항상 기쁨이니까.

팬이라도 없었다면 나는 진작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른다.

한때 저주가 아닐까 생각했던 이 삶이, 그래도 나에게 열광해주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다들 좋아하시니까 진짜 너무 좋다.”

“나 선물도 받았어.”

FWX LOS 팀 최초의 대형 이벤트.

원활한 처리를 위해 미리 타 팀에 지원받은 이벤트 전담 스탭들의 깔끔한 일 처리로 불편함 없이 팬미팅을 끝낼 수 있었다.

FWX는 이런 부분에서 참 확실하다.

엉망진창 운영을 몇 번 겪어본 적 있는데, 그러면 선수에게 부담이 가게 된다.

이런 방향에서의 케어도 중요한 것 같다.

“뭔데?”

“이게 내 캐릭터래. 응원 타올이야.”

우리는 회식 자리에서 서로 받은 선물을 이야기하기 바빴다.

혹시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우선 스탭들의 손에 의해 한번 검수를 거친 뒤 우리에게 전달되는데.

오늘 받은 선물은 숫자가 대단해서 모두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으. 왜 곽지운을 미소년처럼 그려놓음?”

“팬분이 그려주신 그림에 불만 있어? 모욕? 신고합니다.”

“그건 없지. 너한테 불만이 있지.”

“너 자꾸 이러면?”

“이러면 뭐?”

“우리 엄마한테 이른다.”

“나는 아빠한테 이른다.”

“나는 너희 아빠랑 친해질 거다.”

곽지운이라면 정말로 그럴 것 같다.

이유찬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김예성은 특유의 침착함으로 팬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었으며.

곽지운은 연차로는 베테랑이지만 특유의 동안과 작은 체구, 친근한 말투로 팬의 연령대가 다양했다.

은퇴한 전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좋은 형이자 친구라 팀을 가리지 않고 호감 이미지가 잘 형성되어있다.

정작 인기가 많아지고 싶지만 은근히 존재감 없이 이 팀 저 팀 많이 돌아다닌 최은호는.. 글쎄.

솔직히 뚜렷한 팬이 많지는 않다.

나?

나는 물론.

말할 필요가 없지.

“아, 씨.. 얘가 패드립해요!”

결국 이 어처구니없는 말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최은호가 박 감독님에게 호소했지만 감독님은 그저 웃음을 터뜨리며 최은호와 이유찬에게 콜라를 넘겼다.

“콜라를 정당하게 배분하는 방법을 아니?”

“뭔데요?”

나는 잔에 물을 채워놓고 있었지만.

최은호와 곽지운은 이제는 콜라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한 사람이 잔에 따르고, 다른 사람이 잔을 고르는 거야.”

그럴듯한데?

“건아, 콜라 마실래?”

내 옆에 앉아있던 김예성이 재빨리 잔을 꺼내 들었다.

나는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굳이 분위기를 깨고 싶지는 않다.

“그래.”

“아.. 너는?”

김예성은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이유찬을 흘긋거린다.

웃긴 일이다.

아까까지는 그렇게 협력을 잘 해놓고.

날 가운데 두고 뭐 하는 거야.

“소. 방금 탑혐 표정이었는데?”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이제 소 별로야. 그냥 김미드같은 거 해. 지금 우리 소고기 먹고 있잖아.”

김예성은 모르겠지만, 어느새 우리 미드는 탑의 이상한 호칭에 적응하고 있다.

이게 심리전?

김예성은 균등 분배한 잔을 나에게 하나, 이유찬에게 하나 건네려고 했다.

“아니. 너 마셔.”

“왠일로 그런..”

이유찬은 바텀 듀오가 적당히 나누고 남은 콜라를 재빨리 노획했다.

“저는 병에 남은 거 두 개 다 마실게요.”

“쟤 사실은 천잰가?”

“균등 분배 되게 덧없다.”

“이게 법 없이도 살 사람인가..”

“은호 형님은 왜 포크 써요? 우리 소고기 먹는데.”

“천재는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제일 어색하게 웃는 사람은 쏘닉스 관계자였다.

“선수님들, 얼마든지 더 시키셔도 되는데 대체 왜..”

메뉴는 소고기.

잔에 채워진 것은 탄산음료.

“오늘 승리를 정말 축하드립니다!”

“예에!”

대인배 쏘닉스는 선수단 전원과 관련 스탭들까지 모두 회식 자리에 초대했기에.

“하나, 둘, 셋!”

박 감독님의 우렁찬 외침 하에.

“FWX, 화이팅!”

모두가 건배사를 나눴다.

#

- 이지호 : 건이 형 건이 형ㅋㅋㅋㅋㅋ

- 이지호 : 속보ㅋㅋㅋㅋ 이벤트 알지??

- 정일도 : 지호야 그런 건 감춰줘야지

- 이지호 : 어휴 꼰대! (화난 이모티콘)

- 이지호 : 봉구 형이 말해도 상관없다고 했거든?

- 정일도 : 그래..

- 이지호 : 우리 팀 정글 한울이

- 이지호 : 온라인 이벤트 당첨됨ㅋㅋㅋㅋㅋㅋㅋ

이번 빅스전 이벤트가 꽤 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프라인에서는 최고 상품이 100만원 상당.

온라인에서는 30만원 상당이랬나.

이례적인 규모.

- 나 : 그걸 참여했대?

- 이지호 : 사실 나도 함ㅋ

- 정일도 : 그걸 왜 지금 말해? 팬분들을 위한 이벤트인데..

- 이지호 : 응원 댓글만 달아도 응모인데 그럼 형은 거기 욕 씀? 도랏?

- 정일도 : ㅠㅠ 그게 아니라

바텀은 서로 다투면서 친한 게 패시브인가?

들어보니 2군 정글 장한울은 내 사인을 노렸지만 당첨된 건 볼펜이라고 한다.

전에 퓨처스 리그 인터뷰로 사인받으러 오겠다고 하더니.

그 후 소식이 없다.

- 나 : 사인받고 싶으면 직접 받아도 된다고 해.

생각해보니 따로 대답을 안 해주긴 했지.

1군 선수들이 2군 경기 인터뷰까지 챙겨볼 리가 만무하니까.

- 이지호 : 진짜??? 알겠어 한울이한테 전해줄게!

- 이지호 : 근데근데 형 스몰 애들이 조공 뭐 보냈어?ㅋㅋㅋㅋ

- 정일도 : 그렇게 팀명으로 장난치는 건 나쁜 일이야

- 이지호 : ?

- 정일도 : 베르사유 조약 정도로 하자^^

- 이지호 : 그게 몬데 범생아

뭐, 서로 말씨름을 하건 말건.

결국 마음은 다들 같은가보다.

그래서 나도 고개를 들고 우리에게 전달된 빅스의 ‘조공’을 봤다.

“이야. 진짜로 보냈네.”

“해야지, 뭐. 한빈이가 이왕이면 한명 정도는 사진에 같이 들어와달래.”

“한빈이?”

“빅스 원딜. 왕자님 모임 채팅방 소속이야.”

“형님, 왜 원딜만 왕자님이에요?”

“유찬이도 끼워줄까?”

“괜찮아요. 저는 왕자가 아니라 그보다 더..”

“그만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아. 그리고 왜 조용한 호수에 악어를 풀려고 해. 절대 초대하지 마.”

빅스에서도 질 생각을 하고 일을 키우지는 않았을 거다.

승리, 혹은 패배해도 최소한 2 대 1.

적당히 볼만한 경기를 할 줄 알았을 텐데 우리한테 너무 압도적으로 당했거든.

“흐음.”

김예성은 감회가 새로운 표정으로 빅스가 보낸 선물들을 보고 있었다.

식품 회사답게 다양한 먹거리를 보내왔다.

이런 내기는 리그에서 우리가 처음도 아니고, 종종 LKL 팀끼리 서로 ‘공식적 선물 교환’을 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부담되지 않는 식품류를 보낸다.

돈을 주고받는 건 스토브 리그만으로 충분하니까.

어쨌든 이런 경우 대부분의 처리는 유관 부서에서 하는데.

이럴 때 대응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SNS에 인증샷만 올리는 것.

의례적으로 감사합니다, 정도로 끝내는 거다.

둘째, 선수들이 받은 선물과 함께 사진에 등장하면서 개인 메시지를 남기는 것.

채팅으로 친한 선수들끼리 인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선수가 감사를 전했다는 내용을 SNS에 올린다는 이야기다.

셋째, 승리 팀에서 답례까지 보내는 것.

이건 서로 다음에는 더 좋은 경기를 펼치자며 관계를 돈독히 하자는 공식적인 내용 등을 펼치며 언론에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수준이다.

코리안 트레디셔널 스타일.

빅스는 두 번째나 세 번째 대응을 요청하는 게 확실했다.

SNS에 노출되지 않을 상품 박스가 추가로 어마어마하게 들어왔거든.

빅스가 2세트에서 팀 분열 양상을 보이며 그야말로 형편없이 패배한 뒤, FWX가 선물만 받고 입을 싹 닦아버리면서 ‘완승’ 분위기를 연출하면?

이것만큼 민망한 게 없다.

뭐, 프런트가 알아서 하겠지만.

“와, 이거 빅스 상품이었어요?”

“여기 적힌 이름은 다른 회산데?”

“아마 빅스가 거기 모기업일 거야. 꽤 많이 보냈네.”

감독님과 코치님들도 배부른 표정으로 비품 창고를 둘러봤다.

벌크 음료나 팩 과자들로 냉장고가 꽉 들어찬 상태.

“이거 앞으로도 좋게 봐달라는 거죠? 너무 꼽주지 말라고?”

“그렇지. 이제 숙이고 들어오는군.”

감독님의 콧대가 하늘을 찌를 것처럼 올라간다.

조공을 받은 우리, 그러니까 FWX의 스탠스에 따라 이 내기가 진짜 ‘진심 펀치’였는지 ‘친선의 의미’였는지 결정된다.

여기서 우리 대응에 따라 서로 이를 악물고 싸우는 관계가 될 수 있지만.

하지만 적당히 빅스랑 FWX 친해요~ 그래서 내기도 하고 그런 사이에요, 라는 분위기로 가기를 바라는 빅스의 마음이 느껴진다.

“오히려 구단에 돈을 벌어다 주는 선수가 있다?”

“삐슝빠슝!”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일도 다 겪어보고.. 건아.. 정말 너는 보물이다.”

감독님은 눈물을 훔치는 척하면서 내 손에 선물 박스를 하나 들려줬다.

내 이름이 적혀있다.

“근데 그렇게 크지는 않네?”

“그래도 각자한테 보낸 게 어디야.”

그날 출전한 선수들의 이름이 적힌 개인 상자를 열자.

“오.”

“와!”

“건이 취향 어떻게 알았지?”

안에는 달콤한 향기가 나는 과일 세트가 들어있다.

애플망고나 샤인 머스캣처럼 적당히 고가의 과일들.

“건이 너 과일 좋아하잖아!”

“미쳤다. 정성 미쳤네. 이거 의외로 좀.. 좀.. 짜릿한데? 여름의 크리스마스 같아!”

“나는 초콜렛이랑 사탕 세트! 내 취향 어떻게 알았지?”

“진짜 무서운 시대다.”

선수들이 선물을 까보는 사이.

팀에서는 스탭이 김예성에게 전 친정팀인 빅스에 대한 대응 레벨에 관해 물어보러 왔다.

“그럼 혹시 불편하시지는..”

김예성은 읽던 팬레터를 들고 있었다.

“괜찮아요.”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실제 선수단과 사업팀이 그리 가깝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선수 개인의 의견이 영향이 없을 때도 있다.

꽤 섬세한 일이라 FWX 프런트까지 조금 달라 보인다.

“얘들아?”

최은호는 박스를 연 채 주변을 둘러봤다.

“왜? 나는? 왜 DIY 쿠키 만들기 세트야? 전부 다 DIY 제품인데?”

“김미드, 우리 주방도 있어?”

“있긴 한데.. 우리가 들어가진 않는데..”

“나는 답을 알 것 같다.”

곽지운이 벌써 자기 상자 속의 초콜렛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뭔데?”

“넌 메이킹이 안됐으니까 메이킹 해서 먹으라고.”

“야!”

우리가 이렇게 여유가 있는 이유는.

다음 경기가 작년의 FWX 순위를 대신 차지한 제주 F.L.E이기 때문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