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110화 (111/326)

110화. 스포츠

빅스 정글은 픽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투자받았지만.

그 사이 권건은 미드를 압박해 김예성이 편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후 미드가 귀환한 사이, 정글이 권건의 손에 사망하고.

빅스는 골드 차이와 별개로 급격하게 플레이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지금 빅스 완전히 통신 두절됐어요! 최고의 통신병이 있는데! 어째서! 어째서!”

“통신 보안, 통신 보안, 들리십니까? 지직.. 들리십니까? 귀측 방향으로 대머리 무술인 이동 중.. 지직.. 이미 늦었습니다..”

- 좋았다

- 좋았다

- 좋았다

- 좋앙ㄲ다

- FWX, 양호, 수고 바람

- 아저씨 눈치 챙겨^^

- 왜 니네까지 서버 지연됐냐고ㅋㅋㅋㅋ

- 지연 메시지 우르르ㅋㅋㅋ

- 이게 FWX 팬들의 단합력..?

트페의 궁은 그 사용처가 마땅치 않아 이상한 곳에 사용됐으나.

“라온과 차니가 탑에서 또 한 번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빅스의 그윈을 쭉 밀어내면서, 이제 그냥.. 그윈이 쫄딱 망했어요! 이거 손실 어떻게 하죠!”

정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김예성이 뺏어온 궁극기로 해방된 시해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제 이거, 냐르가 작아 보여도 저게 다! 실전 압축 근육이거든요! 조금 있으면 변신합니다, 저거! 손에 든 건 그냥 부메랑이 아니라 뼈를 깎아 만든 거예요! 조그맣다고 무시하면 안 돼요! 으으으으! 화가 난다악!”

“네. 들어갈 수가 없죠. 힘 차이 꽤 많이 납니다.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어요. 차니 선수가 아직 합류에서 썩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일대일 구도에서는 정말 무섭거든요. 야성이 살아있습니다.”

“이 선수가 키우기는 쉽지 않은데, 일단 키워 놓으면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그 사이 권건은 바텀 쪽으로 투자하며 빅스를 쥐고 흔든다.

그리고 용 싸움에서 한 번 더.

“아, 기태 형 진짜..”

“지는..”

“한타 어려울 것 같은데?”

“내가 앞장설게.”

불편한 빅스의 정글과 미드 기류 속에서 탑이 앞장 서봤지만.

“클래스, 클래스! 클래스 선수! 이번에는 뭔가 보여주나요! 들어갑니다!”

따서 갚겠다는 듯 과감한 움직임을 보인 최은호에.

“아아아아아아! 이거, 이거, 이거! 반대로! 반대로 라온이 스캬너 궁을 뺏어서 그윈을 끌고 와버렸어요! 순간적으로 의식의 허점을 제대로 찔렀습니다!”

FWX 서포터와 빅스 탑의 깔끔한 교환이 나오고.

빅스는 잘 풀린 게임에서 맞추던 합을 여기서라도 보여주겠다는 듯 동시에 다 같이 빠진다.

“아니, 알리 잡았고 사일 궁 뺐잖아. 스틸 시도라도 해보지.”

“돈 차이 나서 전멸했을 거야. 그리고 주호 음파 맞았었어.”

분통을 터뜨린 탑의 말에 정글이 단언한다.

탑 고재길도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냥, 조금이라도 더 적극적으로 뒤에서 합류해줬다면 용 타임이라도 미룰 수 있었을 텐데.

“재길이 형이 궁이라도 제대로 몇 번 긁고 갔으면 해볼 만 했을지도? 다음엔 좀 더 각 좋게 잡아보는걸로 해.”

아까까지 정글과 분위기가 안 좋던 미드까지 한마디 더 던진다.

말속에 슬쩍 숨겨져 있는 칼이 아프다.

“하.”

고재길은 기분이 복잡해졌다.

조금의 배신감, 약간의 섭섭함, 그리고 답답함.

이걸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짜증 정도가 맞을 것이다.

“...”

하지만 고재길도 감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런 기분일 때는 그냥 참으라고.

감독의 말을 되새기며 차라리 입을 다문다.

“사이드에서 싸워볼게.”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신인 탑, 패턴이 어느 정도 보인다.

“빅스, 이거 계속 FWX에게 맞춰주다 보면 점점 손해 누적됩니다! 지금, 지금, 사이드! 사이드 방향! 토이 선수의 그윈과 차니 선수의 냐르! 한 판 붙습니다! 좋습니다, 뭔가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과감한 전투! 차니, 위기, 위기인데요! 빼지 않습니다! 지금 냐르 분노 조금 부족한 상황!”

“으아아아아아아아? 이거? 이거? 과연? 과연?”

“토이 선수가, 토이 선수가! 포효합니다! 차니를.. 차니르으으으으을!”

“오우! 아슬아슬하게 변신하면서 서로 진심 펀치 동귀어진!”

- 부메랑은 돌아오는거야ㄷㄷㄷ

- ㅗㅜㅑ 차니 +-0점 했다

- 자강두천

- 제압골 내줌 ㅅㄱ

- 아 뭔가 아쉬운데?

- 스캬너가 등골 150g 빼먹는 중이라서 그럼

“그래도 이 전투에서 그윈 스펠이 빠졌습니다만, 개인은 회복을 좀 했습니다!”

“근데 이거 상황 좀 더 지켜봐야 해요! 사이드에서 싸워 준 이유! FWX가 그렇게 말랑말랑한 팀이 아니거든요!”

“아, 그렇습니다! 그윈이 빅스의 핵심 인력 중 하나입니다! 자연스럽게 대각선에서 FWX가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고재길은 고개를 갸웃했다.

동귀어진이긴 했어도 상대가 나보다 잘 컸는데 잘랐다.

죽은 건 아쉽지만 골드는 벌어왔으니 이제 제 역할을 할 만하다.

하지만 으레 들려야 할 격려가 들리지 않아서 괜히 코 옆을 찡긋거린다.

“다음 싸움 보자.”

“어.”

왜 이렇게들 어리게 구는 건지.

잘 풀리는 게임에서 기세를 타면 그 어떤 팀보다 활발하고 잘 맞지만.

반대급부가 분명히 존재한다.

직설적인 빅스 탑은.

유독 팀원들을 갈라놓는 플레이어, 권건을 만나고 나서야.

항상 묵묵한 김예성이 같은 팀에 있던 작년이 조금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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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건이 속도 확! 올려버리면서 스캬너가 철저하게 채식만 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전갈 독이 없어요! 이러려고 다시 픽한 게 아닌데!”

“그렇습니다! 우틀않이라고 항상 옳은 건 아니죠. 더 보여줘야 합니다, 빅스. 그래도 지금 킬 교환 하면서 최소한의 힘은 갖췄거든요.”

“맞습니다. 곧 4용 타이밍!”

“그래서 빅스는 차라리 지금 싸우고 싶어요! 조금이라도 교환을 하는 게 낫습니다! 아니, 근데 FWX는 솔직히! 들어오던가! 이런 스탠스예요! 그냥 니네가 밀고 들어오면 싸워는 줄게! 하지만 웃긴 건, 그게 빅스가 또 원하는 그림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완벽한 각이 나오면 좋겠고, 우리가 원하는 그림, 그러니까 주르르르르 일렬로 이쁘게 줄 서서 죽어주면 좋겠다, 이런 건데. 그거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김예성은 방긋 웃었다.

아직 상대 미드에게 10데스를 안겨주지는 못했지만, 지금 상대가 보여주는 포지셔닝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김예성이다.

빅스에 있었으니까.

저건 분명히 팀 와해의 조짐이다.

“빅스는 지금 전멸했으면 전멸했지, 그냥 드래곤 내주면 안 돼요. 네 번째 용 지금 너무 빠르단 말이에요. 20분 초반대!”

“그래도 해볼 수 있습니다. 그윈은 그래도 사정이 괜찮고, 음, 바텀에서 1코어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지만 일단 돈 차이가 나더라도 괜찮습니다. 실제로 스킬 몇 개만 피하면 사실상 돈 차이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 뭔 개소리야ㅋㅋㅋㅋㅋ

- 이봐요 남 일이라고 그렇게 막 말해도 되는 거야?? 어????

- 스킬 몇 개ㅋㅋㅋㅋ

- 냐르 궁, 리싱 Q, 사일 궁 정도 피하면 돈 차이 의미 없긴 할 듯

- 알리는 들어오기 전에 죽이고?

- 그렇지 시발ㅋㅋㅋㅋ

지난번에는 FWX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 좀 알 것 같다.

내가 떠난 팀에 복수하는 게 얼마나 짜릿한지.

휴가 직후 김한빛 코치는 김예성에게 FWX에서 지원하는 추가 수업을 권했다.

기본적으로 모든 선수는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상담을 받지만.

자존감이 부족했던 김예성은 상담 반, 수업 반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심리 관련 강의를 들으면서 약간의 향상을 얻어냈다.

“이제 이거 FWX도 순간 버스트는 쉽지는 않거든요? 지금 해야 합니다. 지금 해야 해요, 빅스!”

그래서.

팀이 이길 때는 괜찮지만, 패배할 때는 나를 깎아내리던 전 팀원들이 어떤 이유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교묘한 성과 가로채기와 참견, 그리고 희생자 만들기.

“어어, 빅스 지금 내적 갈등이라도 있나요? 누군가 앞장서야죠?”

“지금 저요! 하고 손 들고나올 사람이 없어요, 빅스! 그래도 그윈? 그래도 그윈?”

잘 되면 내 덕, 안되면 남 탓.

내가 잘해서 킬 딴 거야.

나는 잘했는데 갱을 안 온 네 탓이야.

정글 차이, 미드 차이.

그 감정은 자신을 유리하게 왜곡하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팀보다는 개인의 이기, 그리고 자기기만.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감정이다.

인간은 집단이기에 앞서 개인이니까.

프로게이머도 사람이니까.

김예성은 ‘그럴 수 있음’을 인정했다.

“알리, 알리 돕니다, 돌아요! 돌아요, 클래스 선수! 지금 빅스, FWX 서포터의 움직임 완전히 놓쳤죠! 이게 앞에서 자꾸 권건이 무술 쑈를 하니까!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어요!”

“이거 막 날아다니거든요! 애앵애앵! 날개가 없는데 날개 달린 것처럼 날아다녀요!”

“지금 이게 폴짝거리는 챔피언들이 너무 많아요! 냐르도 폴짝거리고 칼리는 뛰고! 거기다 리싱은 날아다녀요! 빅스는 다 바닥에 붙어있는데 지금 FWX는 막 뛰어다닙니다, 이거! 예!”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소중히 하고 그 장점을 살리고자 하는 빅스에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겠지만.

책임과 자기반성을 중시했던 김예성의 입장에서는 빅스보다 FWX가 더 잘 맞았다.

그러니까, 권건 말대로.

내 스타일에 맞는 옷을 찾으면 되는 거다.

“용, 용, 용!”

“칩니다, 칩니다, 이거, 이거 스틸 봐야 해요! 스틸 봐야 해요!”

“셋.”

권건의 카운트다운.

김예성은 왼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다시 웃었다.

권건이 이렇게 웃었지.

그래,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다.

“둘.”

이건 자신감.

이 미소를 나보다 먼저 띈 것은 이유찬.

“하나.”

그리고, 내 측면에 일렬로 앉아 웃고 있는 사람들은 바텀 형들.

“클래스의 알리가 뒤에서!”

“으아아아아아아아! 이거, 이거, 이거! 스캬너, 스캬너 들어왔는데!”

“라온 선수 사일의 적대적 인수..! 리벤지 선수의 트페 골카가 같은 팀 스캬너에게 들어갑니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뺏기는 건 내가 아니야! 뺏는 게 나야, 라온이다!”

“순간적으로! 순간적으로, 순간적으로! 붕 떴어요! 타이밍 미쳤습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용 스틸도 실패! 실패!”

“날아, 날아갑니다! 다 제치고 날아갑니다, 권건! 이거 음파 언제 맞췄어요! 언제 맞췄어요!”

“아, 아아펠! 빈스 선수의 아펠 위기..! 저걸.. 저걸 찬다구요, 권건! 트리플 악셀! 기술 점수 예술 점수 만점!”

“저는 평생동안 저런 킥을 해본 적이 없어요!”

- 않이 시발? 당신의 뜻대로 싸우겠소?

-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Q 와드W Q 플 궁?

- 혼자 프리 패스 샀어?;;

- 연봉 10억 상승킥

- 정작 레나타는 궁을 어디로 쓰는거야 ㅆㅂ 당구 맞고 손목이 돌아갔나

“빅스, 빅스, 어떻게든, 어떻게든 도망이라도 칠 수 있나요? 전의 상실, 전의 상실! 이거.. 아!”

“차니 선수가 훌륭히 그윈을 마크하면서! 라온과 세자가 미쳐 날뛰기 시작합니다!”

“너네 원딜 없잖아! 아앙? 이게 원딜도 없는 게 까불어! 창! 창! 창!”

무서울 정도로 거대한 환호의 파도가 터져 나온다.

등이 밀릴 것만 같다.

김예성은 친정팀을 다시 한번 상대하고서 정확하게 알았다.

여기에는 진짜 나를 필요로하는 팀원들이 있다.

“죽여, 그냥. 다 죽여. 쟤도 죽여.”

“압살해버려. 잊지 마라. 오늘 소고기 회식이니까.”

“소?”

“우리 예성이는 안돼.”

“응, 알리 니 얘기야.”

“손절 당하고 싶냐?”

알겠다.

조금 다르지만 모두 똑같은 마음.

“그냥 너무 넉넉해요. 지금 만석꾼이에요! 이거, FWX 스킬이 남아돌아요! 그냥 완벽한 싸움! 완벽한 메이킹! 가장 이상적인 콤비네이션!”

“이거. 저라면 앞으로 FWX 상대로 리싱 절대 고정 밴 할 거예요. 너무 사기에요! 너무 사기! 너무 화려합니다!”

- 허억

- 리버 블로우 ㅈ되네

- 숨을.. 숨을.. 못쉬겠어요.. 권건센세..

- 빅스에 건 놈들아.. 이거.. 상장 폐지됐다..ㅠㅠ

- 밴을 안 해? 밴을 안 해? 밴을 안 해? 밴을 안 해?

- 리싱까지 밴하려면 대체 얼마나 밴 카드가 많아야 함? 벌써 권건이 보여준 정글이 10개가 넘는데? 너희에겐 인간의 감정이란 게 없는 거냐? ㅠㅠㅜㅠ

“빅스, 길 잃었어요! 길 잃어버렸어요 지금! 원래 짜왔던 플랜은 어디로 갔나요! 분명히 처음에 픽했을 때만 해도 다 계획이 있었을 텐데요! 있었으니까 우틀않 한 거잖아요, 지금! 왜 조각! 조각! 조각나버렸나요!”

“분명히 빅스도 강팀인데! 지금 넘어가고 있어요! FWX, 이번 시즌 기대된다, 기대된다 했더니.. 지금, 지금! 지그으으으음! 생각보다 너무 강해요, 너무 완성되어있습니다! 이번 시즌 최대의 돌풍!”

“추격하면서 빅스의 핑크빛 미래를 완전히 부수기 직전!”

작고, 작은 것들이 반복되어서.

일견 불규칙한 형태로 보이지만.

“우리 정글은 진짜 미쳤어.”

“매우 동의. 내 실수.. 커버 쳐줘서 고마워..”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권건을 둘러싸고 점차 같은 구조로 수렴하는 프랙탈.

이 얼마나 단단하고도 아름다운 형태인지.

“한타의 팀 빅스에게서, 한타 타이틀 매치에서! 승리하면서! 모든 걸 빼앗기 직전! 지금 이거 끝내버릴 수 있나요!”

“텔, 텔 있습니다! 미니언 보호하면서, 보호하면서 가면 이거 될 것 같아요!”

“김사일 좋았다.”

“너도.”

탑과 미드.

“추가 킬 욕심 내지 말고 끝내!”

“타워, 타워! 우리, 우리, 우리 또 이기나 봐! 진짜 미쳤어!”

원딜과 서폿.

“침착하게. 충분히 끝나요.”

그리고 정글.

“FWX, 서로에 대한 확신! 팀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것 같아요!”

“이 팀이 이렇게까지 강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스윕! 완벽한 매치스으으으응!”

“FWX가.. 결국! 올 시즌 최초, 최고의 이벤트 매치에서 승리를.. 차지합니다! GG!”

우리는 모두 팀이고.

결국 개인을 버리고 하나가 되어야만 하기에.

“지금은 권건의 시대! 우리는 FWX의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웰컴 투 FWX 월드! 월드 투 FWX!”

이 ‘게임’은.

우리에게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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