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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109화 (110/326)

109화. Operation CWAL

“어어어어어? 아니, 아니, 아니! 클래스? 클래스 선수?”

“지금 혼자, 너무 혼자 들어갔죠? 혹시 선렙 타이밍을 잘못 계산했나요?”

“이거 완전 빅스한테 꽁킬 줬죠? 이거.. 빅스한테 동남풍이 불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 ??? : 싸움 볼 게 (이미 죽음)

- DTD 나오네ㅋㅋㅋㅋ

- 이제 정신이 좀 들어 FWX?

- 저런 것도 프로라고ㅋㅋㅋㅋㅋㅋ

- 아직 동부인 거 티내네

- 뒤져 그냥 ㅆㅂ

- 이 악물고 핸디캡이라고 말해보시지ㅋㅋㅋㅋ

바텀에서 전해진 비보.

하지만 먼 나라 이야기.

탑은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머리가 가렵다.

이유찬은 슬쩍 바텀을 보다가 다른 사실에 더 놀랐다.

“어, 뭐야. 야, 소! 큰일 났어!”

“왜 그래?”

“우리 팀에 진짜 소가 있어!”

이유찬은 불쌍한 자세로 죽은 최은호의 알리를 크게 확대했다.

이 모습을 최은호가 봤다면 노발대발했을 것이나, 지금은 경기 중이었기에 아무도 모를 일이다.

“...”

“유찬아. 나는 소금 듀오에 안 끼워줘도 돼.”

“형님, 양보 감사.”

최은호는 이유찬의 쓸데없는 소리에 머쓱했던 기분이 좀 나아졌다.

프로에게도 손에 잘 맞는 챔피언과 그렇지 않은 챔피언이 있기 마련이다.

알리는 사실 최은호 스타일은 아니다.

아니, 우틀않을 하려면 다 똑같이 하든가 하지.

미드는 교환이라도 했으면서 서폿은 추가 밴하고 난리야?

내가 그렇게 견제 대상인가?

사람들이 욕 많이 했을까?

좀 불만스러웠지만 어쨌든 첫 데스는 실수가 맞다.

최은호는 팔목을 접어 까딱거리며 손을 풀었다.

“괜찮아.”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곽지운이 바로 대답한다.

“걱정하지 마. 나 CS 잘 먹고 있으니까. 주호가 초반 구도 전문가거든. 무리 말고 반반 가자.”

곽지운은 짧게 상대 서폿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최은호를 안심시켰다.

“알겠어.”

그리고 최은호는 곽지운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도 짐작할 수 있다.

“상대 서폿 노플.”

그냥 다시, 원래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한다.

#

내가 정글인만큼.

우리 팀은 선취점 확률이 매우 높은 팀이다.

나는 라인 개입이 잦은 편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글이 하는 역할이 원래부터 그렇다.

균형 속에서 씨름하는 라인들에 일방적으로 개입해서 득점 찬스를 만드는 것.

그리고 거기서 얻은 이득을 다른 라인에 긍정적으로 퍼뜨리는 것.

이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만 된다면 바텀의 라인 솔로킬은 그리 자주 나오지 않는다.

특히 서로 거의 차이가 없는 극초반, 퍼블은 더 그렇다.

하지만 이번 세트는 아쉽게 됐다.

근데.

그래서 뭐?

자주 나오지 않는다고 했지 없는 일은 아니다.

이유찬에 이어 곽지운까지 빠르게 최은호의 감정을 수습하면서 팀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려고 노력했다.

이건 꽤 중요하다.

퍼블을 당했어도 당하지 않은 것처럼.

미드 타워가 나갔어도 나가지 않은 것처럼.

물론 만용을 부리는 건 안 될 일이지만, 할 수 있는 한 실점을 당하지 않은 것처럼 해야만 그 뒤로 다가올 추가 실점을 막을 수 있다.

“괜찮아요.”

그래서 나도 오랜만에 입을 연다.

“맞아.. 우정권이잖아.”

“집중하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뀐다.

나도 말재주가 뛰어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유찬의 12초를 알아듣는 것처럼, 팀원들은 제법 내 말을 잘 이해한다.

그런 말이 있다.

인베에서 이기면 게임에서 진다.

사실 그럴 리가 없다.

인베에서 이겼다는 건 상당히 큰 이득으로 시작했다는 건데.

왜 그런 게임을 져?

그럼에도 이런 말이 드립, 해설, 심지어 분석에서까지 공공연히 쓰이는 이유는.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멋진 몸매를 가지고 싶어 한다.

갈라진 복근이나 탄탄한 대흉근 같은 것들.

하지만 이것들이 동경의 대상이 된 이유는 땀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뭐.

그러니까 처음부터 잘 짜인 인베였고, 그것이 모두 계획하에 있었다면 그것은 힘이 되지만.

우연히 얻어낸 킬이나 상대의 실수로 나온 득점이었다면 그만큼 쉽게 잃게 되기 때문에 저런 표현들이 설득력이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최은호의 실점은 뜻밖이었다.

상대 입장에서도 어, 이게 뭐지 하면서 받아먹었겠지.

근데.

그거 파란 약이다.

그래, 우리 잘하는 팀이었어, 역시 질 리가 없지, 하고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아주 지독한 약.

1세트에서 지고 난 뒤.

빅스의 표정은 엉망진창이었다.

친한 만큼 툭하면 유치하게 싸워대는 저 팀은 그게 장점이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반복해서 싸우고 화해하는 것도 관계의 진전을 위해 좋다고?

처음부터 안 싸우는 게 제일 좋다.

“미드 갈게.”

그러니까 아마 빅스의 지금 마음은.

“알겠어. 고마워.”

지금 우연히 얻은 득점이 팀을 위한 자원이 되는 게 아니라.

“아, 권건 선수가 미드에서 시간 보내면서 라온 선수의 사일에게 시간을 벌어줍니다. 전과 달라요. 이번엔 사일의 라인전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압박 수행이 쉽지 않아요, 빅스!”

“전 세트에서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 사일이 진짜 성장만 잘하면 밸류가 하늘을 뚫어요!”

개인의 발언권이 강화되는 역할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가 중심만 제대로 잡는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거다.

“아아아! 빠진 줄 알았는데 아직 안 갔죠, 권건! 리벤지 선수를 한 번 더 찌르면서 이번에는 점멸까지 소모시킵니다!”

속도를 올리자.

“이 선수를 보면 항상 시간이 남아요! 항상 확신 있는 동선을 짜다 보니 헛걸음이 적고, 정글링 속도 자체가 굉장히 빠릅니다. 정말 모범생이죠! 특히 리싱같은 챔피언을 잡았을 때는 더 그래요. 빅스에서 전 세트처럼 정글 성장에 힘을 쏟는다는 사실을 알고 무리한 카정은 절대 가지 않습니다. 사이사이 타이밍을 만들어내요!”

- 건르미온느식 정글ㄷㄷ

- 깔끔하다;;

- 빅스는 왜 리싱을 다시 줌?

- 아깐 니네 조합이 존나 리싱 카운터라며ㅋㅋ 강요한거라며ㅋㅋㅋ

- 치트 쓰냐? 왜 이렇게 빨라..

- 스불재ㅋㅋㅋㅋ

극복의 중심은.

지금은 나다.

중반 타이밍 미드에게 힘이 실리기 전.

후반에 바텀이 경기를 지배하기 전에.

잠깐 기고만장해있을, 수다쟁이 빅스를 친절히 교육해줄 사람은.

바로 정글러.

“지원 요청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팀원들의 여유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지금 뽑아낼 수 있는 최선의 선택, 최고의 가성비가 뭔지 정말 잘 알고 있는 선수인 것 같아요.”

속도를 올린다.

영양 만점 두꺼비.

꼬리치며 쫓아오는 돌거북.

빨리, 더 빨리.

팀 전체의 턴은 벌기 쉽지 않지만, 정글 하나의 턴이라면.

단 한 번의 클릭조차 아껴.

턴을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 모으면 작은 기회가 완성된다.

아마 ‘12초’ 정도?

“상당히 이른 타이밍, 빅스가 바텀 주도권 바탕으로 용을 시도합니다. 미드까지 붙어주면서 첫 용을 빅스에서 가져갑니다!”

아까보다는 좀 더 섬세하게.

그리고 빠르게 돌리면서 동선을 정리한다.

두 팀의 픽이 전 세트와 비슷하다고 해서 똑같은 양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미드의 픽이 서로 바뀌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게임은 레이싱에서 잠입 액션으로 장르가 바뀐다.

상대에게는 시야 특급 에이전트가 존재한다.

그가 심안을 열기 전에 적을 처치해야 한다.

첫 번째 타겟은 감히 우리 서포터를 괴롭혔던 상대 바텀.

좋게 말해 투덜이인 서폿 진주호.

“어어어어?”

“권건, 바텀 동선 잡았어요? 상체 쪽으로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크게 돌았죠? 바위게 시야 피해서 둥지 쪽 들어갑니다?”

“이거 더블 선수가 용 둥지 뒤편 꿀자리에 와드 박아놨거든요? 근데 이러면 이거 안 걸려요?”

- ㄷㄷ 혼자 오라클이세요?

- 이거 모르는 것 같은데?ㅋㅋㅋㅋㅋㅋㅋ

- 얘들아 들려? 피해!! 얘들아 들려? 피해!! 얘들아 들려? 피해!!8_8

- 딜교놀이 할 때가 아니야발럼들아! 위기야! 위기야! 위기야!

- 온다 온다 온다 온다

신속한 잠입.

“아펠 보는 척하면서 바로 레나타.”

타겟 핑은 정확하게 찍힌다.

“확인.”

신호 양호.

교육은 라인의 환경에 따라 다르게 해야 한다.

이 라인은 바텀.

원딜과 서포터, 두 친구는 서로에게 의존하는 성향이 강하다.

자립심을 키워줘야 한다.

“갑니다.”

아마 갑, 정도였을 거다.

내가 아펠과 스친 게.

“으아아아아아아! 지금, 지금, 지금! 깜짝! 깜짝 놀랐어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 리싱!”

제법 우수한 상대 원딜은 상황 속에서도 제법 빠른 판단으로 서포터와 멀어진다.

격리 성공.

그리고, 액션.

“알리의 콤보!”

간단하게 입에 빨간 약을 쑤셔 넣어준다.

“순식간에 바텀에서 득점 올리면서! FWX가 킬 스코어를 맞춥니다!”

자, 눈을 떠라.

나는 너희의 소꿉놀이를 박살 내러 왔다.

이제 현실을 볼 시간이다.

#

“이상하게.. 그런 느낌이 들어.”

“어떤 느낌이요?”

“건이는 왠지 우리 팀이 실점할수록 강해지는 것 같은. 어떤 트리거가 있나 봐.”

박진현 감독은 살짝 긴장했던 몸이 풀리는 걸 느꼈다.

“건이가 좀. 확실히. 어? 진짜. 지금 평소보다 속도가 더 빨라요.”

최수철 코치는 재빨리 노트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상대가 픽 때문인가.. 아니면..”

“정서적으로 많이 가까워진 걸까요?”

심리적인 부분에 크게 관여하는 김한빛 코치가 좀 더 자세하게 물었다.

“그런 것도 있을 것 같아. 플레이야 원래 터치할 부분이 없었으니까.”

“아직 존댓말을 쓰기는 하는데.”

“뭐, 그런 외적인 부분이랑 다른 거니까. 지금 예성이 콜도 많이 늘었고..”

“트래쉬 토크 같은 부분에서도 감정 반응 값이 좀 높았어요. 사실 애들 전부 처음에 심리 검사 실험에서 불안정한 점수가 몇 개 있었거든요.”

“그랬었지.”

“확실히 지금은 라포 형성이 된 것 같기도 하네요. 이걸 경기를 통해서 보여준다는 것도 재밌기도 하고요. 전에 예성이 내면 아이가.. 멘탈 스포츠..”

김한빛 코치 역시 당장 날아갈 것 같은 어떤 아이디어를 적기 위해 노트를 들었다.

“너희들 다음 세트 준비는 안 하고.”

박 감독은 홀로 옵저빙 모니터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걸 준비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옆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윤도형도 입을 연다.

“어차피 우리 정글이 권건인데.”

#

두 번째 타겟.

나에게 똑같은 조합으로 리매치를 신청한 상대 정글.

“이거, 이거! 이거 위험해요! 이거!”

상대 정글 김기태는 1세트부터 지금까지 안온하게 정글을 돌아왔다.

평소처럼 정글부심을 부렸을 게 뻔하다.

근데.

이 정글은 이제 제 겁니다.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겁니다.

“아니, 아니, 아니! 간단하게 스틸! 동선 완전히 읽혔어요! 니가 왜 여기서 나와! 니가 왜 여기서 나와아악! 내 정글인데 왜 니가 들어와 있어! 시작했어요! 시작해버렸습니다! 이거, 권건 카정 시동 걸었단 말이에요!”

정글러가 말이야, 응?

겸손하고, 또 희생해야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묵묵하게 제 일을 하는 그런 정글이 되어야지.

“레드! 레드! 레드! 뺏겼어요! 강타 싸움 졌습니다! 이거 너무 억울해요! 여태까지 카정 안 했잖아! 왜! 왜 지금! 사실 그 답을 알고 있어요. 미드가 자리를 비웠으니까! 트페가 자리를 비웠으니까 바로 지금 이 타이밍 권건리싱!”

- 형님 숨 넘어가유ㅋㅋㅋㅋㅋㅋ

- 에그머니나시발.. 또 시작인가..

- 그야말로 주객JEONDO

- 무심하게 툭. 잘 먹고 갈게

- 권건은 신이야..

팀원들을 희생시키고 말이야.

이렇게 욕심이 많으면 안 돼.

오늘 배워가라.

근데, 빅스는 올해도 내년에도 우승 못하긴 해.

“이거 못 도망가요! 못 도망갑니다! 지원 늦어요! 타이밍 완전히 꼬았어요! 블루 레드 싸움에서 레드 버프 절대 못 이겨요!”

“아..! 솔로.. 킬..!”

“권건 이 선수 스킬샷이 단 한 번도..!”

- 해설진.. 선 채로 죽었어..?

- 인정사정없구만..

- 아.. 씨바.. gg..

- ㅈ되네.. 아.. 아.. 진짜.. 개같네 진짜..

- 뺏어와도 안 되고 가만히 둬도 안 되고 아.. 어쩌라고 씨바 정글만 밴 할 수는 없잖아

상대 팀워크가 산산이 조각나있는 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플레이에서 티가 나는 경우는 잘 없다.

근데, 귀환 타이밍 정도는 방심하기 마련이거든.

그러니까 왜 밴을 안 해?

아직도 나랑 속도전을 하고 싶은 거야?

사방을 쏘다니고 나니 개운해진 기분이 들어서.

이제 미드 부쉬에 잠입해 잠시 숨을 돌려본다.

“소.”

김예성을 불렀다.

“나?”

“나? 아. 아니구나.”

“누구 때려줄까.”

약속은 약속이니까.

김예성은 잠깐 고민하다가 피식 웃었다.

“상대 미드. 10데스 정도.”

그래, 얘 집착 있는 거 맞다니까.

- 이제.. 할 거 다 했니 건아?

- 균형의 수호자..

- ??? : 마타세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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