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진격의 FWX
분석데스크.
“와, FWX..”
“완전히 달라졌죠. 환골탈태라고 해야할까요?”
“그쵸. 이번 2세트도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압도적이었어요.”
“첫 인베에서 터진 이후 사실상 픽의 의미가 사라지면서..”
개막전부터 화끈한 경기를 보여준 FWX에 대한 칭찬.
“메타가 바뀌었음에도 전혀 유격없는 정글링을 보여준 권건 선수가 인상적이었죠.”
“네. 첫 번째 세트는 트런둘, 두 번째 세트에서는 리싱으로 이번 메타에서 주목도가 높았던 요공을 선택한 아자부 선수를 완전히 압살했습니다.”
“그리고 개막, 첫 세트, 첫 솔로킬 역시 권건 선수에게 갔다고 볼 수 있죠. 이 선수는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킬 수가 100에 가까워졌어요.”
메타 적응과 구도, 심리전에 대한 내용.
“덕분에 오늘 데뷔한 차니 선수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구요.”
“네. 저도 공개된 스크림 정보같은 것들을 찾아봤는데요. 이 선수가 상당히 다양한 픽을 구사하더라구요. 특히 무력면에서 그렇습니다. 지난 시즌 팬시 선수가 아쉬웠던 부분을 훌륭하게 메워준다고 해야할까요.”
“그렇습니다. 차니 선수는 오늘 첫 세트에서 솔로킬을 챙겨가면서 스스로 생일 선물을 받아낸 능동적인 선수입니다.”
“좀 더 기대해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우려보다는 기대를 이끌어온 새 탑 라이너.
“그리고, FWX는 이제 더이상 8, 9, 8, 9위를 하던 그 팀이 아닙니다.”
“수원 해머스가 동부의 월 마리아라는 별명이 붙어있었죠. 근데, 알고보니 FWX가 거인이었던 것 같죠?”
“하하, 네. 맞습니다. 이번 시즌. 볼 만 하겠어요.”
여름의 FWX는.
거인이 되어 있었다.
#
- (HMS) 지겨웠던 수문장의 삶.. 멈춰주셔서 감사..
씨발씨발 이제 그냥 동부네
ㄴ FWX 새기들 도장깨기 개오진다 존나 빡친다
ㄴㄴ 더 빡치는 건 다시 해도 못 이길 것 같다는 거임
ㄴ 제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인 수문장 타이틀 뺏지 말아줘.. 정신승리라도 하게
ㄴㄴ 응 안가져갈게~
ㄴㄴ 우리 수문장 안할거야~
ㄴㄴ “지나갑니다” (웃음)
ㄴㄴ 니네 본진으로 꺼져 이 나쁜 새기들아!!!!!!!
- (FWX) 야 오늘 데뷔한 탑 진짜 괜찮지 않냐?
ㄴ 생각보다는 훨씬 잘하더라 난 차니 지지 선언 함
ㄴㄴ 근데 거의 구도가 1:1에 게임이 너무 많이 기울어서
ㄴㄴ 숨만 쉬어도 이기는 게임이긴 했음ㅋㅋㅋ
ㄴㄴ 검증은 다음에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ㄴ 그래도 피지컬은 좋은 듯?
ㄴㄴ 피지컬 안좋은 프로게이머가 어딨음?
ㄴㄴ 있잖아 ㅆ1발놈아
ㄴㄴ 죄송
ㄴ 유찬이니?
ㄴㄴ 유찬아 커뮤 끄자 다음 경기 유니버스다ㅋㅋ
ㄴㄴ 그래도 오늘 잘했어
ㄴㄴ 차니 선수 화이팅!
- (FWX) 오늘부로 “국탑봉” 해산합니다
ㄴ 국탑봉이 뭐임? 설마 국민 탑 문봉구?
ㄴㄴ 저희도 양심이 있습니다.. 국밥같은 탑라이너 문봉구
ㄴㄴ ㅇㅋ 가라
ㄴㄴ 대신 “퓨탑봉”으로 돌아오겠습니다
ㄴㄴ 가라;;
ㄴ 그의 영혼은 퓨처스 리그에 남아있어..
ㄴㄴ ㄹㅇ 문봉구 퓨처스에서 랜덤픽 챌린지 하는듯 ㅋㅋ
ㄴㄴ 거기선 세계관 최강자임ㅋㅋㅋㅋㅋㅋ
ㄴㄴ 어이, 너희들 ‘탑 칼리’라는 것을 알고 있나?
ㄴㄴ 아아.. 신참 정글러를 거느리는 이곳.. 2군의 맛
- (FWX) 너네 왜 FWX 응원하기 시작했어?
ㄴ 그냥 열심히 하는 모습 때문에
ㄴㄴ 매 시즌 하위권이었잖아
ㄴ 재작년인가? 원딜 세자가 자기가 이 팀 우승시킬거라고 해서
ㄴㄴ 매 시즌 하위권이었잖아
ㄴㄴ 그 때도 그랬는데 그냥 그 말에 꽂혔음
ㄴ 이슈도 없고 방송에서 욕도 안하고 착해서, 구단이 투자 잘해서
ㄴㄴ 매 시즌 하위권이었잖아
ㄴ 이 새끼는 지금 시비털러 온거임?
ㄴㄴ ㅈㅅ 나는 권건 보고 온거라서
ㄴㄴ 그럼 권건이 팀 옮기면 따라감?
ㄴㄴ ㅇㅇ 당연히 그럴 듯?
ㄴㄴ 지금 FWX 분위기 좋은데 제발 권건 안떠났으면
ㄴㄴ 떠난다고 한 적 없음 제발 니들끼리 이러지 좀 마셈
ㄴㄴ 얘들아.. 열심히 해라.. 건이한테 잘하고..
#
POM 인터뷰.
“네, 그럼 세자 선수께서는 오늘 데뷔한 차니 선수의 플레이가 어떠셨나요?”
곽지운은 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표정이었다.
말을 조금 더듬기는 했지만.
“유찬이.. 괜찮았어요. 긴장도 안하고.. 잘, 하더라구요.”
팬 앞에서의 곽지운.
최은호 앞에서의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이전 인터뷰 때도 뭐랬더라.
FWX같은 명문 팀에서 뛰는 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이랬나.
아무튼 곽지운의 팀 사랑, 팬 사랑은 진짜다.
“그런데 두 번째 세트에서는 차니 선수가 앞장서서 들어가다가 갑자기 세자 선수가 큰 위기에 처할 뻔 했던 상황도 있었잖아요.”
리플레이가 나온다.
두 세트를 통틀어 그나마 위협적이었던 장면.
이유찬의 돌발 행동.
그리고 빨려들어갈 뻔한 곽지운.
“오늘 차니 선수가 신이 많이 났던 걸까요? 평소에 일사불란하던 FWX와 다른 모습이었어요. 이건 차니 선수 혼자만 다른 판단을 한 건가요?”
중간중간 나간 보이스 탓일까.
아나운서는 이유찬을 활기찬 말썽꾸러기 스타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손에 든 큐카드에.
이유찬에게 어떤 컨셉을 부여하고 싶은 주최 측의 입김이 닿아있거나.
어느 쪽이건.
갈 길이 바쁜 우리에게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아..”
곽지운은 잠깐 나를 보는 듯 했다.
눈썹을 위로 실룩.
그리고 금세 입을 떼서.
“아뇨, 그 때 그건 팀이 어느정도 협의한 내용이었어요. 제가 느렸죠.”
확신있는 말투로 자연스럽게 이유찬을 감쌌다.
사실 방송에서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건 금방이다.
오프 더 레코드가 아닌 공식 인터뷰에서.
타인이 아니라 주변인이 한 말이라면.
그냥 몇 마디의 말이면 그것은 사실이 된다.
하지만, 그 프레임을 없애는 건 정말 힘들다.
아나운서가 선수 개인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겠지만.
주목도가 높은 오늘.
곽지운이 별 생각없이 ‘유찬이는 좀 이상한 애다’ 라던가 ‘유찬이가 마음대로 앞으로 나섰다’라고 표현했다면?
비슷한 상황이 올 때마다 이유찬에게는 주홍 글씨같은 뇌절 프레임이 따라다녔을 것이다.
“아, 그럼 권건 선수와 세자 선수가 잘 이끌어주셔서 이런 좋은 결과가 있었군요?”
“네, 건이가 항상 오더를 잘해줘요. 하지만 다음에는 그런 모습이 안 나오면 더 좋겠죠. 모두들 열심히 호흡 맞추고 있으니까 기대해주세요.”
곽지운은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다.
이전의 삶에서 나는 FWX의 인터뷰를 본 적이 없다.
굳이 찾아 볼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곽지운이 말을 하는 방식은 제법 괜찮다.
뭐랄까, 박진현 감독님 같은 느낌.
팀의 주장이 됐다는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모습은 확실히 좀.
주장답다.
“권건 선수도 한 말씀 해주세요.”
인터뷰가 끝나간다.
오늘은 서머 시즌 개막이고, 이유찬의 데뷔날이며, 생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해머스를 손쉽게 부순 날.
“팬 여러분.”
나는 고개를 들었다.
대포같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팬, 정성들여 그려온 치어풀을 열심히 흔드는 팬, 온 몸을 FWX 굿즈로 두른 팬.
모두 우리의 경기를 보고 행복하게 웃고 있다.
여기까지 와 준 팬들에게 눈을 맞춘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FWX는 팬들의 얼굴도 대부분 낯설다.
기억 속에 없었던.
나, 아니 우리의 새로운 팬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없지만, 메타의 세계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수많은 팬들.
그들을 위해 카메라를 직시한다.
“이번 시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 와 나 권건이랑 눈 마주침;
- 나도ㄷㄷㄷㄷ
- 모니터 뚫고 나오겠다;; 제 4의 벽 무너뜨리기? 그거임?
- 그거 아니다ㅋㅋ
- 얘 눈빛 실화냐? 신뢰가 뚝뚝 묻어난다..
- 기대해도 된다고.. 허락.. 받았다..
전과는 다른 조합으로 이루어진 환호에, 나도 모르게 또 다시 심장이 뛴다.
#
“와아아아악!”
대기실로 돌아왔더니 곽지운을 향해 신발이 날아왔다.
“뭐야!”
곽지운은 깜짝 놀라면서도 예쁜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날아온 신발을 어렵지 않게 잡았다.
“이, 이거 뭔데? 더러워!”
“형님! 형님! 깍지 형님 최고!”
이유찬이 달려나와서 곽지운을 꽉 안았다.
스킨십을 질색하는 곽지운이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이유찬보다 체구가 작아서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왜 저래?”
내가 김예성에게 묻자.
“신발 던지는 게 리스펙이란 걸 어디서 배운 것 같은데?”
최은호가 대신 대답했다.
다 함께 인터뷰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유찬은 프레임에 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어쨌든 실수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곽지운이 감싸줬다는 사실에 감동받았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는..”
김예성이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신발을 던지는 건 댄서들의 소중한 댄스 슈즈 이야기고.. 우리가 던지려면 마우스나 키보드를 던지는 게 맞을 것 같은데.”
“그 이야긴 절대 유찬이 귀에 안 들어가게 해야겠다.”
“그것도 그런데 쟤가 오늘 POM이라도 받았어 봐.”
“관객석을 향해서 신발을 던졌을까?”
“가능성 있어.”
“레전드.”
그 사이 이유찬에게서 벗어난 곽지운은 지친 표정으로 소파에 몸을 기댔다.
“야, 너 괜찮냐?”
“정신적 쇼크로 초콜렛 대량 섭취 예정.”
“단 것 좀 끊어.”
“최은호 니는 왜 쟤 안 말렸냐? 니가 그러고도 서포터냐? 절대 나 지켜.”
“개소리 노.”
곽지운은 팬 앞을 벗어나자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쟤 너 인터뷰 보면서 신나서 폰카로 동영상 찍더라.”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그래.. 둘 다 클립을 딸 생각은 없구나..”
어쨌든 팀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지운아. 담요 챙겨야지.”
“앗. 팬 분들이 보내주신 건데. 큰일 날 뻔!”
박 감독님은 곽지운이 짐을 챙기는 것을 도왔다.
곽지운은 일상에서는 꽤 덜렁거리는 편이어서 물건을 자주 두고가는 편이었다.
그래서 다음 타임에 경기를 진행하는 선수들과 인연이 닿기도 하고 그런다나?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당히 많은 팀의 선수들과 친한 곽지운의.. 어떤 포인트 중 하나일까.
“한 감독이 다음에는 봐달래.”
감독님은 싱글벙글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나는 감독님이 건넨 생수병을 받았다.
“좋은 분이시던데. 2라운드에서는 좀 살살 때릴까요?”
해머스의 감독인 한동규 감독과 제법 가까워지신 모양이다.
한 감독은 약간 능글맞긴 하지만 나쁜 성격은 아니다.
전에 경기를 이겼음에도 감독직에 회의감을 가진 박 감독님에게 위로를 전하기도 했고.
자신의 팀의 일이 아닌데 나와 관련된 더러운 찌라시에 관해 여러모로 협조를 많이 해준 사람이다.
“아니?”
감독님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별 황당한 이야기를 다 듣겠다는 표정.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어떻게 청탁을 받겠어?”
마지막으로 내 가방의 지퍼까지 꼼꼼하게 챙긴 감독님이 나 대신 짐을 짊어졌다.
“다음에도 확실하게 찢어버려. 그게 다아아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니까.”
패배에서 얻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슬퍼하던 감독님, 어디로?
“...”
여태까지 어떻게 참고 사신걸까.
마음이 아프다.
“얘들아! 오늘 팬미팅 있다! 가자!”
내 장비가 든 무거운 가방을 냉큼 메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장서는 우리 감독님.
나는 생수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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