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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91화 (92/326)

91화. 명예로운 싸움

- 갑자기 왠 신인이야? 봉구 폐관이야? 아님 교체?

ㄴ 슬슬 떠돌던 소문이었음 님 형광등?

ㄴㄴ 형광등이 뭐야?

ㄴㄴ 아재요..

ㄴ 못하면 은퇴할 때까지 욕받이행이다

ㄴㄴ 이런 새기들 때문에 리그가 발전을 못함

ㄴㄴ ㄹㅇ 뭔 일 저지를 새끼임

ㄴ 잘하는 팬시 괜히 뺀 거 아니야?

ㄴㄴ 또! 또! 팬시만 바꿔도 순위가 바뀐다며 씨발!

ㄴㄴ 폴리가 문제 아니었음? R키 빠진 새기

ㄴㄴ 논쟁 멈춰!

ㄴㄴ 고민이 생길 땐, 고개를 들어 권건을 보라

ㄴㄴ 건멘..

ㄴㄴ 건멘..

#

“유찬이 포션 안 샀는데?”

“안 맞으려구요.”

“우리 차니 개소리 미쳤네.”

“사.”

“구매 완료.”

자, 오랜만의 경기다.

“조심해, 유찬아.”

“우리 막내한테 승리 맛 보여주자!”

“제가 죽여 놓을게요!”

막상 로딩이 완료되자마자 몸을 사방으로 비트는 게.

이 신인은 약간 흥분 상태인 것 같다.

위축된 것 보다는 낫지만 지속적인 컨트롤이 필요하다.

휴가 기간 동안 이유찬의 요청으로 진행된 그 첫 번째 프로젝트.

‘울트라’다.

“기억해. 선 그어놨어. 6레벨 전에 넘어가지 마. 기억해.”

“B라인 말씀이시죠. 예. 알겠습니다요.”

내가 이유찬에게 주입한 세뇌 프로젝트는 정상 가동 중이다.

지금이 첫 경기인만큼, 더욱.

“기타는 쳐도 괜찮습니까요?”

“허락.”

“우왱우왱우왱! 쟝쟈그쟈쟈쟈쟈쟝! 모모모 모모! 데데데데데데!”

“깍지야. 우리 막내 어떡하지. 정상이야?”

“난 신인이 탑에서 기타치고 있는 걸 보는 리모 마음이 어떨지가 더 궁금해.”

“상대 탑? 아.. 존나 꿀밤 마렵겠다..”

“보이스 들려주고싶다.”

“혈압 터질 걸.”

뭐, 모든 걸 다 컨트롤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스프링 시즌이 스토브 리그 이후 적응기로 여겨진다면.

서머는 진짜 시작이다.

다른 팀에 비해 호흡을 맞춘 시간이 짧은 만큼 우리는 그 출발점에서 좀 더 뒤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뀐 탑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으면서도 체급이 좋고.

봉인이 풀린 미드는 숨겨져있던 보석이었고.

의지력의 원딜은 항상 준수한 편이었으며.

잿밥에 관심많던 서포터는 좀 더 진지해졌다.

“바텀 찌를게요.”

“와주면 고맙지.”

“오늘은 바텀의 날인가..”

“야, 얘들아. 봐라. 이게 주장의 위엄이다. 알겠지?”

“아..”

아쉬운 소리가 터져나온다.

지난 시즌에는 탑 중심으로 풀었다.

사실 정글러가 더 자주 가는 라인은 미드와 바텀이다.

다만 탑은 한 번 기울어지기 시작하면 스스로의 힘으로 수습하기는 조금 어려운 라인이기에.

좀 더 신경을 썼을 뿐이다.

“예성, 다음 와드 이쪽.”

“알겠어.”

사실 어느 쪽으로 푸는 것이 이득일까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밴픽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득을 봤다면 좋은 선택이 되는거니까.

일단은 우리 신입 탑을.

믿어보자.

정글러의 첫 동선을 무조건 탑으로 강요할 선수라면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다.

“바로 바텀에 들른 권건! 권건! 아, 허니 선수가 비전으로 빠집니다!”

“깔끔했죠. 이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라인전 단계에서 이즈의 마나를 빼놓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이득입니다. 관리가 어려워져요. 지금 라인 밀고 가고 싶었을 거거든요.”

“네. 그러면서 아자부 선수는 상당히 난처해졌어요.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한 발 늦었죠. 이러면 호응하기 어렵습니다.”

“유찬. 사려. 늑대 쪽에 있을거야.”

“나 아트 Q 다 피하는 중.”

“니가 맞추는 건 아니라는 소리네?”

“호우.”

멘탈이 단단해보이는 이유찬이었지만, 첫 경기다보니 온전한 무력이 나오지는 않는다.

뭐, 이런 부분은 천천히 나아질 점이고.

중요한 건.

이게 팀 게임이라는 거다.

정글러는 자기 할 일에 집중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천천히 적을 찾아보자.

사실 상대 정글, 백태준은 이미 기가 죽어있다.

지난 시즌에도 그랬지만 스크림에서.

어떻게 아냐고?

김예성이 꽂아놓은 시야에 비친 요공의 모습에서 고민하는 발걸음이 느껴지거든.

상대가 다른 팀이라면 좀 더 망설여도 되겠지만, 수원 해머스라고?

이미 때려본 적 있는 상대다.

“싸움 걸게.”

“건아, 지원은?”

“상대 미드에 집중해줘.”

“알겠어.”

트런둘이라는 챔피언은 트롤왕이다.

트롤이 무엇이냐.

아주 용맹한 세력에 속해있는 명예로운 종족이다.

이 종족은 신성한 일대일 결투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아자부 선수, 딱 걸렸어요!”

이를 통해 대족장을 결정했다 하더라.

“양측 정글러, 조우!”

눈이 마주치는 순간.

결투는 시작된다.

“어어, 어어어? 바로 치기 시작해요! 고민없이 바로 때립니다, 권건!”

방어구따위는 장착하지 않아야하며.

“지금 상당히, 상당히 저레벨 싸움인데! 순간적으로 아자부 선수의 요공이 많이 당황한 것 같아요!”

“뭐, 뭐 있어? 누구 있어? 너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미니맵을 다시 보니까 다들 제자리에 서있거든요!”

“순간 빠져나가려다가 말고 싸움을 보나요? 맞딜을 해보는데 조금 반응 늦었어요!”

무기도 공평해야한다.

“잠깐, 잠깐! 이거 지원오기 힘들어요! 아, 이거 요공의 소중한 점멸! 쓰지만! 권건도 함께 따라갑니다! 계속, 계속 따라가요! 빨라요 트런둘!”

“이거 뭐죠, 은신 보이는 거 아니에요? 거리가 전혀 벌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여기는 얼음 왕국! 이거 위험합니다!”

심판은 수많은 관객들이 해줄거다.

“으아아! 몽둥이! 몽둥이 찜질! 너무 아파요!”

“얘들아! 도와줘! 도와줘!”

“지금 미드에서는 합류해주려던 바슈 선수가 도리어 라온 선수한테 크게 얻어맞았어요! 버릴 땐 버리라는 말이 여기서도 적용되는 거거든요!”

“탑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FWX가 훨씬 더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어요!”

“챱! 챱! 챱! 사실 몽둥이가 역사적 근본템입니다! 모든 무기의 근원이 몽둥이였고 사실은 도끼도 철퇴도 몽둥이에 뭘 끼운 것에 불과한..”

- 느닷없는 태고의 몽둥이론ㅋㅋㅋㅋ

- 그만큼 에픽템이시라는거지ㅋㅋㅋ

- 첨부터 쌈 볼 생각하고 있었누ㄷㄷ

- 맞딜 지지 않냐?

- 요공도 밀릴 거 없는 싸움인데 먼저 치고 들어오니까ㄷㄷ

자, 나와 한바탕 결투 의식을 벌이자.

내가 휘두르는 몽둥이는.

너에게 도망치는 불명예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른 타이밍, 아자부 선수가 전사하면서! 믿을 수 없는 정글 솔로킬! 개막전의 첫 킬을 권건 선수가 가져갑니다!”

- 키야 이거지 탑을 신경쓸게 아니었어

- 찰지구나!

- 아ㅋㅋㅋ 개막전부터 몽둥이 찜질ㅋㅋㅋ 시-원

- ‘옳은 시작’

- 트런둘 할게요!

“와, 역시. 역시 건이.”

“우리 정글 권건이라고!”

“얘들아, 내가 오늘의 운세를 봤는데 북쪽에서 귀인이 찾아온다고..”

“은호 형 혹시 휴가 동안 사주도 봤어?”

“어떻게 알았어?”

누가 이번 시즌의 왕인지를.

보여주마.

#

“아아아아..”

예상하고 싶지 않았지만, 예상했던 결과다.

“진짜.. 권건 미친 새끼..”

“일단.. 침착해. 얘들아, 멘탈 잡아. 개막전이야. 집중하자.”

가장 연장자인 원딜러 이염이 팀원들을 독려했지만.

“나 시즌 첫번째 솔로킬로 박제된 거 실화냐..”

명예에 죽고 사는 게이머 입장에서는 통탄할 노릇이다.

“작년이 너무 그립다.”

“바텀은 처음에 라인 말린 거 좀 치명적이야. 괜히 유마했나, 탱폿 할걸. 바텀 미아.”

“탑은 좀 어때?”

“어, 어. 어, 미친 푸시..”

이유찬의 탑 모데는 마치 무슨 제약이라도 걸려있었던 것 마냥 밀고들어온다.

“이거, 이거, 이거 이러면 나 발 묶이는데.”

“형들, 미드 라온 쟤도.. 아!”

동시에 해머스의 미드도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고.

“아아아아! 세-자! 세자 선수의 셰나가!”

“바텀 주도권을 쥔 사이 살짝 틈을 내서 미드에 들렀죠! 툭 날려본 속박에 사일런트의 점멸이 빠집니다!”

“라온 선수의 아자르, 심리전도 기가 막혔는데요! 궁극기를 쓸 줄 알았는데! 승모근 올라간 거 제가 봤거든요?! 모래 병사들도 속았어요! 아니, 폐하? 어찌 거기서 드리프트를 하시옵니까?!”

“이러면 진짜 라인전 힘들어져요. 플래시도 없고, 아자르 궁극기는 남아있고. 바슈 선수, 마음 너무너무 불편해집니다.”

“나 노플.. 쟤.. 비둘기 사기단이야..”

또 다시 녹록치 않다.

“진아! 사려, 사리면서 해도 길게 보면..”

하지만 모든 라인이 사리면 상황이 나빠질 뿐이다.

가장 먼저 망한 게 정글이니까.

“그.. 아, 이거. 위험한데.”

정글러 백태준은 FWX라면 이제 악몽 같았다.

지난 시즌 권건을 처음 만난 경기.

그때까지만 해도 백태준은 권건이 가진 기세나 위압감이 우연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 분석을 하면서 모든 것이 계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강팀들과의 경기 내용을 확인하고.

스크림까지 거치고 나서.

끝내 오늘.

몽둥이로 맞아보고 나니.

이제 FWX의 허수아비같았던 선수들도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얘들아.. 조심해..”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다.

“아.. 내 거북이 없어.. 존나 소중하게 키우던 건데..”

당연하지만 캠프는 털렸다.

좆됐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집중하고 있는 팀원들이 흔들릴거다.

그러니까 이 고통은 혼자 감내할 수밖에 없다.

“내.. 반려 동물인데..”

어떻게 안보였지.

혹시 정글링 빨리감기 같은 거라도 있나.

“태준이 형, 뭐라고요?”

“정신 좀 차려! 권건 쟤 정글 멘탈 분쇄기야..”

“신인 탑이고 뭐고.. 뭣이 중헌디..”

“결국 쟤정권인 것을..”

해머스는 정글 중심의 팀이다.

아쉬운 정글 데스가 나오면서 적당히 눕기로 했던 계획은 누워서 쳐맞는 것으로 변질되고 있고.

그 와중에 생각보다 상대 탑은 귀신같이 선을 지키고 있으며.

미드와 바텀은 밀리고 있다.

“거북이가 아니라면 게라도..키우고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강가로 나가보니.

그곳은 콘서트장이었습니다.

#

“으아아아아아! 또 끊깁니다! 벽 너머에서! 클래스 선수의 세라핌이 앙-코르! 아아! 세자 선수의 속박! 그리고 권건 선수가 또 다시 몽둥이로!”

“아예, 아예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무한 속박! 너네.. 전령으로 출발한 거 아니었어?!”

“아니, 이만큼 먹었으면 양보해 줄 수 있는 거잖아요! 요공이 뭐 대단히 위험하게 움직인 것도 아니에요! 아군 바텀 라이너들이 근처에 있었는데! 그냥 오랜만에 바위게 얼굴만 보고 가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잔인한가요, FWX!”

- CAN WIN! HMS CAN WIN!

- 씨이이이발 해머스 뭐해!!!!! 양서류 갑각류 집착 멈춰!!

- 정신차려 병신들아!!! 개막전이라고!!!

- 으아아아아 권건 저 미친 새끼 진짜 좀 봐줘!!

- 우리 지난 번에도 스윕 줬잖아! 그만둬! 제발! 이렇게 빌게!

리플레이에서 세라핌을 플레이하는 최은호의 보이스가 흘러나온다.

“건아, 어떻게 알았어?”

무언가 대답을 들은 듯, 잠시 웃다가.

“그렇지. 그만큼 황망하시다는거지!”

더 크게 웃는다.

“대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이전보다 훨씬 더 호흡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방금 바텀 듀오의 CC기 연계는 정말 예술이었죠! 레전드가 살아 돌아온 것만 같아요!”

“살아..돌아와요? 혹시 누가..”

이제 FWX는 제법 강해졌다.

전처럼 내뻗는대로 주먹을 맞아주는 팀이 아니다.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차니 선수의 데뷔전이고 뭐고! 개막전이고 나발이고! 해머스는 지금 벌써 집에 돌아가고싶어요! 어머니께서 끓여주신 된장찌개를 먹고 복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 그립습니다! 어, 어, 어어어어, 어머니의 된장국!”

“크큽, 그렇군요. 그러고보니 오늘 탑이 잠잠합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모데가 전혀 갱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정말로 연습하듯이 편안하게 플레이하고 있다는 겁니다!”

“네에! 탑은! 외나무 다리에서! 탑 대 탑의 구도를 만들어주고 또 모데의 특성으로 확실한 마크 구도! 방 안에서만큼은! 모데가 정말 일대일만하면 힘이 천하장사거든요! 그 구도가 안나와서 그렇지! FWX의 생각! 이제 알 것 같아요!”

“차니 선수도 팀원들의 노고를 알고 있죠! CS 차이를 벌려놨어요! 지금 아트는 아래쪽이 너무 너무 신경쓰이거든요! 이게 FWX식 신인 복지?! 탑 케어는 상대 정글을 박살내는 것부터?”

- 차니 괜찮은 것 같네^^

- 괜히 긴장했다^^

- 응~ 아무래도 좋아^^

- 나 너무 편안해~ ^^

- 개막전부터 이러면.. 와타시.. 비행기 타버려..?

- FWX충들 꺼져

- 수문장 해머스는 FWX의 성장을 두려워합니까?

“이제 벌 받는 시간 시작이에요, 해머스!”

“개강하자마자! 바로 지도 교수님께 불려나왔어요! 지금 너무 고통스러워요!”

“으아아! 개막전을 압도적으로 시작하는 FWX!”

FWX식 탑 복지.

땀내 나는 탑의 싸움은.

서로 일대일의 무대 위에 올려주는 것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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