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출발합니다
“유찬아, 퓨처스 리그에서 나왔던 픽 중에 기억에 남는 거 뭐있어?”
“음.. 탑 애니비야요.”
“오우야..”
“탈리아 원딜도 있었고.. 미포 서폿이나 티릭도 잊을만하면 나와요.”
“하긴. 은근히 메타랑 관계 없어 보이는 장인픽들도 나오는 세상이니까.”
“그리고 그 선두 주자로 얘가 있었지.”
박 감독은 웃으며 이유찬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저는 뭐든지 가리지 않고 좋아요. 때릴 수만 있다면. 후후후..”
박 감독은 얼른 손을 뗐다.
틈나는대로 문봉구와 함께 적응 훈련을 거쳤는데 혹시 그게 지나쳤나.
과적응자가 된 것 같다.
주최 측에서 시즌 중 송출할 선수 영상 일정을 소화하고.
새 유니폼과 함께 프로필 촬영까지 마무리하고.
스크림을 진행하면서 어느새 시즌 시작이 성큼 다가왔다.
FWX는 개막전 첫 경기를 담당하게 됐다.
모든 분야에서 첫 날의 매출이나 성적이 ‘상징적 의미’를 갖듯.
개막전은 그 시즌의 흥행을 가르는 지표 중 하나였기 때문에 주최 측에서도 신경을 쓰는 편이긴 했다.
결국 그 결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FWX는 첫 경기를 수원 해머스와 치르고.
그리고 그 날의 두 번째 경기는 지난 시즌 상위권을 기록한 서울 빅스와 광주 미라쥬다.
“그럼, 일단 로스터 제출하면서..”
“그래도 유찬이의 적응 기간이 넉넉해서 다행이에요. 바로 콜업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번 시즌에는 소속 스트리머들도 LKL 파트너 크리에이터 신청한 것 같아요.”
“아, 컨텐츠 말이지. 통과했대?”
“네, 한 분.”
“기대되네.”
개막전을 반기는 팀은 많지 않다.
당연히, 이번 메타에 대한 전략을 가장 먼저 노출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다른 팀에서 참고할만한 데이터를 제공해주게 되니까.
그나마 상대가 수원 해머스인 것이 다행일까.
“좋아, 그럼 이제 슬슬 첫 경기의 방향성을 정할 때가 왔군.”
#
- 어서와 FWX 기다렸어!!! 목 빠지는 줄 알았어!!!!!
- (FWX) 우리 팀 스크림 소문 들었냐? 스크림도르
ㄴ 권건 너무 올려치기 하는 듯, 시즌 말이라 다들 힘빠져서 그랬던건데 (입을 막으며)
ㄴㄴ 아ㅋㅋㅋ ㄹㅇ 선수 하나로 어떻게 팀이 바뀜? 아ㅋㅋ 어떻게 바뀌겠냐고ㅋㅋㅋ
ㄴㄴ 일단 그 손 좀 치워봐 ㅋㅋㅋ
- (HMS) 우리 왜 쟤 네 랑 개막 전이 야?
고 작해 야, 스크 림 도르 인 데 시이 이 발,
하 하나 도 안 무 무무서 워
ㄴ 이미 존나 떨고 계십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 권건이 더 완벽해졌다고? ^^발
마우스로 정글 몹 조정이라도 하는거 아니야?
존나 괴소문인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거임ㅋㅋㅋ
ㄴ 손가락질하면 넥서스 터짐
ㄴ [사라져라]
ㄴㄴ 미친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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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
지난 시즌, 우리 팀은 순위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시즌 반이 내 손을 떠났었던거긴 하지만.
뭐.
그래도 괜찮은 점이 있다면 선수들이 꽤 정신을 차리고 위닝 멘탈리티를 장착했다는 점이다.
선수들의 솔랭 점수도 부쩍 오른 것으로 보아하니, 휴가 기간에도 꽤 열심히 한 모양.
이번 시즌에 더 높은 자리를 움켜쥐고자 하는 마음.
‘열심히 해보자’와 ‘열심히 하면 반드시 된다’는 완전히 다르다.
내가 먹여준 승리는 보통 달콤한 게 아니거든.
그래서 이번 시즌은 좀 더 철저하게 갈 생각이다.
“요즘은 탱폿 연습 많이 하네?”
“그냥.. 그냥.”
“아주 좋아.”
“너 좋으라고 하는 거 아닌데?”
“그럼?”
“너 버리고 로밍 갈거임.”
개막날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내가 처음 왔을 때보다는 훨씬 더 표정이 좋았다.
우리의 스크림 결과처럼.
충분히 준비했으니까.
“이거 축하할 일 맞나? 아무튼 축하합니다.”
“아, 진짜 영광이에요.”
대기실 구석에서는 박 감독님과 스탭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가 개막전 구호를? 이거 녹음본 떠서 평생 간직할거예요.”
“그렇게까지..”
박 감독님은 뿌듯하게 웃고 있었다.
경기 시작 전에 외치는 응원 구호는 원한다면 구단 소속 스태프들이 진행할 수 있다.
꼭 신청해야하는 것은 아니기에 신청자가 없다면 주최 측에서 대신 해주고.
“저희들끼리 오디션도 봤어요.”
“오디션요?”
“코인 노래방 가서, 노래 점수 높은 순으로 예선을 보고 목소리 좋은 사람을 투표해서..”
“그럼 거기서 일등하신 건가요?”
“아뇨. 마지막에 가위바위보 이겨서요. 하하.”
“아..”
어쨌든 예전에는 즐기지 못했을 것들.
“자, 이제 나갈까.”
“오늘 팬분들 많이 왔어요?”
“상상도 못 할걸.”
“얘들아. 옷 구겨졌다. 털어줄게. 잠시만.”
“팬분들께 크게 인사하고, 웃는 얼굴 보여드리자. 경기는 무조건 우리가 이길 테니까.”
여유, 기쁨, 들뜸.
팀원들의 얼굴에는 다양한 감정이 스며있다.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25 LKL 서머, 그 첫번째 날! 경기를 만나러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현수진, 남동현 해설 위원과 함께 합니다. 캐스터 안은우입니다!”
“안녕하세요, 현수진입니다.”
“해설가 남동현입니다. 아, 드디어 개막! 여러분. 드디어 개막입니다.”
“이렇게 개막전을 맡게 되다니, 저 마음이 너무 설레고 기쁩니다.”
“네. 이번 시즌 변화에 대해서 알려드리자면..”
업데이트 내역과 시즌에 대한 정리가 이어지고.
“그리고 로스터 변화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FWX에서 팬시, 문봉구 선수를 샌드 다운하고 차니, 이유찬 선수를 콜 업했습니다. 물론 샌드 다운과 콜 업은 매 주 한 번씩 일어날 수 있는 만큼 또 바뀔 가능성도 있지만, 이번 시즌 개막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준비 기간동안 차니 선수를 바탕으로..”
- 얜 머냐?? 우리 문방구는?ㅠㅠ
- FWX가 계속 데리고 있었던 유망주
- 근데 왜 이제 데뷔함??
- 얘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 잘하긴하는데 뭘 잡아도 저돌적인 다이브형임
- 우리는 그걸 탑신병자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 못하는 팀에서 애매하게 공격적인 탑만큼 하이리스크는 없지
- 아 빨리빨리 경기 시작하라고 현기증나
“가장 좋은 사실은 오늘, 바로 차니 선수를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인데요!”
“그렇습니다. 개막전인 오늘이 바로 차니 선수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수원 해머스의 선수들이 먼저 입장하고.
대전 FWX의 선수들이 입장하자 놀라울만큼 거대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뭐, 뭐야.”
선수들은 자리로 가며 속삭였다.
“저기 우리 자리 아닌데도 팬분들이 앉아있는거야?”
팬들이 흔드는 수많은 피켓 중, FWX 컬러 테두리의 피켓이 무수하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
“유찬이 괜찮아?”
“아름다워요.”
“괜찮은 것 같네. 자, 그럼..”
신입 선수들에 대한 걱정이 많았던 FWX였지만 권건 이후 달라졌다.
아니, 사실 이유찬을 본 사람은 ‘장소에 대한 적응’에 대해서 만큼은 걱정하지 않을 것 같았다.
멘탈이 쇠심줄같은 녀석이다.
“오랜만이네. 해머스의 A코스와 B코스.”
“이왕이면 공격의 A코스로 나와주면 좋겠는데.”
“저는 수비적인 B코스도 괜찮을 것 같네요.”
꽤 오랜만에 돌아온 자리.
선수들이 세팅을 모두 마치고.
“드디어 개막전, 밴픽이 시작됩니다!”
“수원 해머스가 진영 선택권을 가지고 블루에서 시작합니다!”
드디어, 경기가 진행된다.
“얘들아, 오늘 유찬이 데뷔전인거 잊지 않았지?”
“잊어버렸어요..”
“쟤 침투력 너무 무서워요.”
박 감독은 바텀 듀오의 말에 웃었다.
그래, 이제 경기력만 나오면 된다.
“그래도 데뷔전이니까.. 조금 편할 만한 걸로.”
이유찬은 불도저였다.
데뷔전이란 모든 선수들에게 큰 의미다.
그래서 선수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데.
처음에 이유찬이 언급한 희망 챔피언들은 피요라, 갱플, 아트 등 일종의 리스크 있는 픽들이었다.
“편한! 챔피언! 알겠습니다!”
“녀석아. 목소리 저 너머까지 다 들리겠다.”
감코진이 선수에게 주문하는 식이 아니라 논의하는 식인 FWX의 특성상.
“그러면요.. 상대.. 탑.. 보고..”
“그렇게까지 작게 말하면 안들려.”
“건아, 상대가 뭐가 나와도 미드 플만 빼주면 내가..”
“야, 예성이 또 청탁한다.”
“쟤도 진짜 해바라기야. 우리가 무슨 대화를 해도 쟤는 건이밖에 몰라.”
감코진은 ‘무난한 픽’을 재차 권했지만 이유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좀 더! 남자다운! 그런..”
“유찬. 뭘 해도 네 데뷔전은 이길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하지만 권건의 한 마디에.
길들일 수 없는 짐승같았던 이유찬은 순식간에 순한 양이 됐다.
“개막전의 밴픽들이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팀마다 분석이 다르니까요. FWX에서는 이번 시즌 코르기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저도 그렇습니다. 밴 완료되면서 이제 픽 페이즈로 넘어갑니다.”
“오늘 해머스에서는 상당히 방어적으로 나오는데요?”
“신인이라고 얕봤다가 아주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거든요. 그 때 권건 선수가 자르반과 친 짜오의 기세로 큰 활약을 했었죠.”
“맞습니다. 이번에는 신인 차니 선수가 있지만 아주 조심스러운 모습이에요.”
그리고 상대가 간단한 심리전을 걸어보지만.
“FWX에서는 아자르까지 가져가면서, 이러면 세라핌에 셰나 바텀 조합이죠?”
“해머스는 아트럭스 탑, 정글 요공으로 확정짓습니다!”
“권건 선수의 트런둘. 이게, 분명 수비적인 것 같기도 하면서.. 왜 이렇게 무서워보이죠? 기대됩니다.”
“수문장 해머스가 밴픽이 참 좋은 팀인데, 이제 FWX는 그런 어떤.. 체급에서 면역을 지니게 된 것 같아요.”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차니 선수의 픽은..”
마지막 픽을 맡은 최은호는 문봉구가 마지막으로 플레이했던 다섯 개의 픽을 역순으로 돌렸다.
아무도 모를 수도 있지만, 최은호 나름의 계승 절차였다.
문봉구 다음 이유찬으로 이어진다는.
이렐에 이어 마지막으로 갱플까지 띄운 뒤.
픽한 것은 모데.
“모오오오오오데?! 모데인가요!”
“차니 선수의 데뷔전, 모데가 나왔습니다!”
“이것이 퓨처스 리그의 맛?!”
“갑자기! 갑자기 파티가 됐어요! 개막전 확 삽니다!”
“이게 또 모데가 유기묘 제조기거든요! 저기 들고 있는 철퇴의 이름인데..”
“근데 절대 쉬운 챔피언은 아니에요! 아, 입맛도는 픽인데요! 개막전부터 이런 픽이다? 아, 이거 FWX 예능감 장착하고 왔어요!”
“그렇습니다! 해머스의 아트, 요공, 사일, 이즈유마 조합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괜찮아져요. 살짝 누워서 힘을 기르면 역할 분담이 확실한만큼 보답이 있을만한데!”
“FWX의 모데, 트런둘, 아자르, 셰나세라핌 조합은 상대적으로, 네. 물론 성장형 주유소의 장점은 있지만 난이도가 높은 조합입니다. 하지만 개막전부터 질 생각을 하고 오는 팀은 없거든요!”
해설진은 싱글벙글했다.
“아, 이렇게 시즌을 시작하게 되면 다른 팀들도 부담되는데요!”
“네. 뭐, 부담이라기보다는 이제.. 이런 컨셉이 있다 하고 보여주는 건데. 지금 쇼윈도우에 가장 먼저 걸린 상품이 이겁니다! 탑 모데!”
“이번 시즌 유행! 이번 시즌 컬러!”
“술렁! 술렁! 지금 LKL 팀들 다 웅성거리고 있어요? 야, 저게 좋아? 저 픽 대세 맞아? 우리도 저런 거 해야 해?”
“하지만 중요한 건 이기는 거겠죠. 이기면, 이게 정답이 됩니다.”
FWX 선수들은 멀어지는 박 감독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항상 해머스 전에서 걱정이 앞섰던 감코진이.
오늘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멀어진다.
그리고 다음에 시선이 꽂힌 곳은 가장자리에 앉아있는 이유찬.
“다이브를 못하게 하신다면.. 데리고 가겠습니다..!”
이유찬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광-기.”
“우리 탑에 미친개가 사는 것 같아.”
“상대 탑 리모 선수에게 죠이를 표하세요.”
“봉구야, 잘 살고 있니?”
“봉구 애들한테 인기 많다더라.. 밥 잘사주는 겜잘알 형..”
“야, 심판님들 웃으신다. 이거 마이크 체크 각인데.”
자신감 넘치는 FWX와.
“왠 모데야. 아. 권건 트런둘한테 벌써 빨리는 것 같아.”
“석기야, 쟤 어차피 실전 경험은 부족해. 스킬 다 피하면 돼.”
“염이 형.. 그게 말이야 방구야?”
“미안.”
불안한 마음을 달래는 해머스.
“FWX는 정답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지금부터 경기 만나보시죠!”
화창한 날씨.
서머 시즌의 개막, 신인 탑의 데뷔.
FWX는 FWX식의 ‘탑 케어’를 준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