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88화 (89/326)

88화. 완판 행진

선수들이 워크샵으로 슬슬 복귀 일정이 잡혀가기 시작할 무렵.

비시즌이었지만 구단은 제법 바빴다.

스프링 시즌 2라운드부터 오르기 시작한 FWX의 인기는 서머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지자 점점 눈덩이가 불어나듯 커졌다.

한동안 LKL이 세계 무대에서 약세를 보이면서 리그를 떠났던 팬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덕질의 시작은 으레 그렇듯, 굿즈였다.

- FWX 굿즈 오픈! 많관부 :)

ㄴ 유니폼 화보 지린다

ㄴㄴ 우리도 이제 ‘인기 팀’

ㄴㄴ FWX콘도 출시 좀

ㄴ 벌써 품절이던데

ㄴㄴ 수량 전년도 기준으로 뽑았냐?????

ㄴㄴ FWX 인기를 FWX만 모름 ㄷㄷ

ㄴ 홈 유니폼 너무 잘 빠짐

ㄴㄴ 어웨이도 이쁨

ㄴㄴ 팀 컬러도 그렇고 특별히 달라진 건 없는데 왜 이렇게 예뻐보일까?

ㄴㄴ 그것은 마킹에 “GwonGun”이 추가되었기 때문^^

ㄴㄴ 이거 사고 권건 우리 팀 다시 오면 그때도 사야지^^7

ㄴㄴ 미친놈인가? 꺼져 권건 우리랑 평생 가기로 했어

ㄴㄴ 원래 첫사랑은 못잊는거라고 했다

ㄴㄴ 운영자님 타팀 팬들 차단 좀

ㄴㄴ 여긴 FWX 전용 게시판이라니라그ㅋㅋㅋ

ㄴ 갤럭시 폰 케이스는 왜 없어요ㅜㅠ

ㄴㄴ 곧 소량 추가 될 예정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ㄴ 다 팔려서 스티커밖에 못샀어 씨발 돈 낼테니까 팔아줘요 제발

ㄴㄴ 난 타올

ㄴㄴ 혹시 바꾸쉴?

ㄴㄴ ㄲㅈ

ㄴ 남은 게 에코백 뿐이라 에코백 샀어 근데 이거 어캐 들고다님?

ㄴㄴ ㄹㅇ 너무 애기 똥기저귀 가방같이 생겼음ㅋㅋㅋㅋ

ㄴㄴ 애기 아빠인데 기저귀 가방으로 잘 쓰고 있습니다^^ 유용합니다

“우리 러기지 택 상품 샘플 완성 됐어요?”

“아뇨, 아직요. 엊그저께 시안 나왔잖아요.”

“그럼 선풍기랑 핸드폰 케이스 두 번째 버전은요?”

“작년 재고는 많이 남아있어요.”

“그거라도 먼저 풀까요?”

“네, 작년 제품이니까 가격을 좀 많이 낮춰서..”

이렇게 많은 인기를 얻어본 적이 없었기에.

놀랍도록 상냥한 FWX의 가격 정책 역시 판매에 일조하면서.

홍보 팀과 제품 팀은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스폰서쉽과 팬미팅까지.

리그전 승리 후에도 LOS 파크에서 짧은 팬미팅이 있긴 했지만 비시즌의 팬미팅 행사는 구단의 연고지인 대전에서 진행됐다.

“어서오세요, 대전 FWX의 팬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훨씬 더 화려한만큼.

“이 자리를 빛내주신 팬분들 중 추첨을 통해 사인 유니폼과..”

예매 경쟁은 치열했다.

스프링 시즌을 7위로 마감했다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경쟁률.

멤버십 판매량도 대폭 늘어나면서 온라인 라이브 역시 북새통을 이뤘다.

- 이거 완전 라이브임?

- 아ㅠㅠ 저 자리에 갔어야했는데 시발 멤버십을 늦게 가입했네ㅠㅠ

- 온라인도 추첨으로 준다고 함

- 권건 스태츄 안나오냐?

- 게임을 잘하면 잘생겨지는거냐 아니면 잘생겨야 게임을 잘하는거냐

- 너는 둘 다 안돼

- 좋은,,날,,이러지,,맙시다,,

“자, 팬분들이 뽑은 FWX 외모 순위는?”

진행 전문 아나운서가 가려진 앙케이트 판을 내보이며 호응을 유도한다.

“어때요. 누가 1등일 것 같아요, 라온 선수?”

“건이요.”

“네, 라온 선수는 오늘도 ‘건이요.’!”

- 저기서도 저러고 있네ㅋㅋㅋ

- 그저 건건바라기ㅋㅋㅋ

“하지만 정답입니다! 압도적인 1위로 권건 선수! 그리고 2위는 방금 대답해주신 라온, 김예성 선수입니다!”

“흠.”

곽지운이 불편한 표정으로 턱을 긁었다.

“세자 선수, 세자 선수는 몇 등이실 것 같아요?”

“저요? 제가 3등이겠죠.”

“정답입니다! 자, 공동 3위! 세자, 곽지운 선수와 클래스, 최은호 선수! 축하합니다!”

“이런.”

“아, 얘랑 같은 라인에 서는 거 정말 기분 나쁘네요.”

두 사람은 서로 마이크를 뺏어가려고 투닥거렸다.

“나도거든? 여러분. 다시 한 번 곽지운을 봤다가 저를 보세요. 아직도 똑같아 보이십니까?”

“다시 보세요. 혹시 뭔가 오류가 있었던 거 아닐까요? 제가 얘보다 딜 잘해요.”

“뭐? 시야 점수로 붙어.”

팬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사이, 진행자가 재빨리 멘트를 가로챈다.

“좋습니다! 자, 그럼 다음 코너로 넘어갈까요!”

“어니? 잠깐만! 진행자님. 잠까아아안!”

하지만 벌떡 일어나 마이크를 쥔 것은 문봉구였다.

아직까지 대외적으로는 기존 5인 체제.

윤도형은 이슈 이후 아직 팬들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며 대외적으로는 다른 이유를 대고 빠졌고, 이유찬은 사옥에서 교육을 받는 중이었다.

“왜 다 안 보고 넘어가시는거여? 진행자님. 그 패 봐봐. 내가 꼴찌여?”

“다음 준비된 코너는..”

“감독, 코치님 포함하는거잖어요. 그죠잉? 아니, 잠깐만! 진흙탕 싸움 가자고! 왜! 분명 마지막 스티커 뒤에는 나와 감독님, 코치님들이 공동 꼴찌일 것이여! 그렇다고 말해줘!”

- 그럴리가ㅋㅋㅋㅋ

- 필사적인 몸부림ㅋㅋㅋ

- 우리 봉구가 좀 평범하긴 해ㅋㅋㅋ

- 얘 놀리는 맛에 산다ㅋㅋ

“아, 그리고 그 외에는 무효표로, 앙케이트에 포함되지 않은 퓨처스 리그의 차니, 이유찬 선수와 일도 선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문봉구는 세상에 배신당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고, 사람들은 또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슬픈 척을 하던 문봉구는 팬들에게 냅다 손가락 하트를 던지며 능글맞게 웃었다.

그리고 몇몇 코너가 지나가면서 팬미팅은 막바지에 이르고.

“다음 시즌에는 플레이 오프 진출을 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좋은 성적을..”

선수들은 다음 시즌의 목표와 포부를 당당하게 밝혔다.

그리고 한 마디를 남긴 선수들은, 뒤에서 권건의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이고 있었다.

“건아. 탑이 제일 중요하다. 잘 키운 탑 하나 열 미니언 안부럽다잉. 꼭 기억혀.”

“건아. 미드 먼저 봐줘야 탑도 바텀도 풀리는거 알지?”

“야, 건아. 원딜이 살아야 게임이 산다.”

“건아, 건아. 서포터가 정글러랑 가장 친한 친구인거 알지?”

쏟아지는 노골적인 커미션.

권건은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지 않았다.

#

“어서오십쇼!”

“유찬이 얘 또 갑자기 군기 바짝 든 거 봐라. 쉬어.”

“네, 형님.”

“너무 부담스러워..”

서머 시즌의 시작은 6월 중순이었지만, 우리는 4월 말부터 다시 모였다.

이유찬은 좀 더 빨리 연습실에 출근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 연습실을 쫌 둘러 봤는데요.”

“야, 편하게 반말을 하던가 존댓말을 하던가 둘 중 하나만 해라.”

“알겠어. 형님들, 이거 컴퓨터 때깔 진짜 좋아요.”

“깍지야. 포기하자.”

“그게 좋겠어.”

“모니터 얇은 것 좀 봐.”

사실 컴퓨터의 세부적인 사양까지는 모르겠지만.

2군과 1군의 기기 스펙에 차이가 있다고 한들 큰 차이는 아닐거다.

애시당초 LOS는 어마어마한 고사양 게임은 아니니까.

당연히 리그 표준과 가장 유사한 환경으로 세팅되어 있겠지.

심지어 주변 기기는 쏘닉스 협찬 제품들.

이 놈은 그냥 1군에 왔다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하긴, 이 한 층의 차이가 그 무엇보다도 높게 느껴질 때가 있지.

“이게.. 모니터가. 그러니까. 엄청 좋아. 바젤? 바젤이 얇아서..”

“컴맹아. 바젤은 니 친구 선수명이고. 베젤.”

“그래. 그러니까..”

그래도 곽지운은 이유찬을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있다.

“근데, 너 화면 이거 뭐야.”

“아. 이거요? 제 설정.”

“창모드 써?”

“넵, 형님. 이게 편합니다.”

“그럼 넌 모니터 더 작아도 되는 거 아니야?”

“아니요? 창모드 쓴다고 모니터가 작아도 된다는 것은 무슨 편견이신지?”

이유찬이 눈을 부라린다.

“혹시 제 소중한 모니터를 뺏으시려는? 여백의 미 모르시는?”

“나는 얘가 착한건지 또라이인건지 모르겠다.”

“형님, 어디가십니까, 형님?”

“너 너무 무서워!”

막나가기로는 어디가서 지지 않는 곽지운도 도망쳤다.

심연을 너무 들여다보면 안되는 법.

“자, 각자 세팅 확인하고. 웜 업부터 시작하자.”

#

지난 스프링 시즌의 최종 1위는 인천 트릭스터였다.

그리고 그 뒤로 광주 미라쥬가 2위, 서울 빅스가 3위로 줄을 지었으며.

정규 시즌에서 대구 유니버스보다 앞섰던 성남 스톰은 최종 순위 5위로 밀려났다.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 서머 정규 시즌 메타가 빠르게 흘러갈 가능성은 적다고 볼 수 있지.”

“그럼 경기 시간 자체를 좀 길게 봐야하나요?”

“전반적으로는.”

“시원시원하게 싸우는 게 좋은데.”

리그는 라이브 서버의 업데이트 유무와 관계없이 일정 기간 버전이 고정된다.

그래서 동기간의 유저들이 플레이와는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으며.

“싸우는 건 괜찮아. 다만, 전보다 좀 더 조심해야하고 섬세한 운영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고 있어. 하지만 굴리는 조합을 가져간다면 더 확실히 굴려야하고..”

일반적인 리그 흐름으로 보아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리그는 이번 버전, 혹은 다음 패치 버전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래서 팀마다 해석은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전보다 게임 자체의 절대적인 속도가 느려졌으며.

이로 인해 유기적인 역할의 정글러 혹은 챔피언들이 주목받게되고.

후반 캐리형 챔피언들이 사랑받게 된다는 것.

그래서 일단 감코진은 선수들에게 전투 감각보다는 운영 면에서의 적응을 빨리 시키고자 노력했다.

“건아, 이거.”

회의를 마치고 난 뒤, 최수철 코치는 선수들이 한 눈을 파는 사이 재빨리 권건의 주머니에 무언가 밀어넣었다.

“뭔가요?”

“어, 분석팀 팀장님이. 너한테 주래. 고맙다고.”

분석팀과 가장 밀접하게 일하는 것은 최 코치였다.

권건이 내놓은 업데이트 흐름 예측과 메타 분석은 분석팀 입장에서 매우 설득력있는 것이어서.

“그거 FWX 계열사 기프트 카드야. 데이터 제공까지 해줘서 우리도 많이 편했어.”

선수들 뿐만 아니라 관계자들 모두 열의를 불태우며 시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지지 못했던 것에 대한 갈망.

쏟아지는 관심.

그 모든 것들은 새로운 것이어서 모두에게 동기부여가 됐다.

“항상 고맙다. 받은 건 비밀로 해줘.”

그리고 권건의 명료하고 빠른 피드백 덕에 다른 팀들보다 분석 면에서도 앞서나갈 수 있게 됐다.

“잘 쓰겠습니다.”

권건이 씩 웃어보이며 길을 열어준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녀석이 우리 팀에 왔지?

정말 보물이다.

최 코치는 웃으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권건을 보낸 뒤 박 감독 옆으로 붙었다.

“카페테리아 한번 갈까요?”

“한빛아, 가자.”

“좋습니다.”

선수들보다는 조금 시즌 오프가 짧았지만, 휴가 기간동안 편한 마음으로 쉰 감코진이다.

“이야. 수철이, 한빛이 얼굴 좋아보이네.”

“형님도요.”

세 사람은 선수들을 연습실로 돌려보낸 뒤 조용한 카페테리아에 앉았다.

“이번 시즌 꽤 괜찮을 것 같아.”

“진짜 혹시나 올해 월챔 가면 어떡하죠.”

“우리 진출 포인트 맞추려면.. 최소.. 아, 이거 너무 김칫국인가.”

“서머 1위라도 하자고? 하하, 일단 너무 먼 곳부터 보기보다는 차근차근 가자. 시드권부터 넉넉한 게 좋겠지. 이건 우리에게 달린 게 아니니까. 트릭스터가 msl에서 활약하길 응원해야해. 이럴 때만큼은 국가 대항전이니까.”

“연습 협조 받았었죠? 이거 꽤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응. 이렇게 인연도 트이고. 이것도 진짜 중요한건데.”

“유찬이 참여하는 건 문제 없다던가요?”

“건이를 빼는 것만 아니라면 상관 없대. 이미 예상했던 모양이야. 대신 버전 우리가 맞춰주기로 했어.”

“그거야 뭐. 트릭스터 입장에서는 환영이겠네요.”

“좋았어. 일단 내일부터 트릭스터와 스크림하면서, 슬슬 시즌 준비 들어가자고!”

“예!”

“좋습니다!”

어느새 한 단계 더 나아간 대전 FWX는 서머 시즌을 기대하고 있었다.

항상 시즌을 앞두고 압박감을 느끼던 예전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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