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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86화 (87/326)

86화.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

문봉구도 프로 지망생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프로만 되면 모든 게 다 잘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넓었고,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다.

욕을 먹고도 제대로된 변명을 못하는 자기를 봤을 때.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후회했다.

그러나 지금.

권건을 만나고, 이제는 자신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그제서야 눈물이 나왔다.

안심해서 나온 눈물이었다.

더 이상 나처럼 부족한 선수를 억지로 붙잡아두지 않아도 되는 팀.

정말로.

정말로 다행이다.

문봉구는 사실상 은퇴 선언과 다를 바 없는 말을 하고나서야 그간 마우스 위에 얹혀있던 무게가 자신의 손 무게만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에 남은 자그마한 미련을 애써 무시하고.

이 세계에 집중한다.

#

참 나.

종종 이 놈의 오락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사람을 울고 웃게 하나싶다.

“레오니? 레오니? 헥사 선수, 먼저 노려보나요? 바텀, 바텀?”

“한 걸음, 한 걸음? 렌즈 돌립니다?”

“으아아아아, 마굿간, 마굿간! 안 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비예고! 공-포-영-화! 권건이 공포 영화를 찍고 있어요!”

“바로, 바로! 빠르게 합류! 세-자 클래스! CC기 덩어리! 이번 시즌에 진이 승률이 좋지 않은 편이거든요! 하지만 세자의 진은 다릅니다! 정확한 속박,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레오니를 잡아 먹은 권건! 클래스 선수의 그랩! 아펠까지 마무리합니다!”

“1 세트 때 그렇게 고생을 해놓고, 감히 비예고를 풀어? 앙?! 이거 똑같은 악몽이 반복됩니다! 이번에는 바텀! 바텀 쪽에서 시작되는 악몽! 이거, 이거 안돼요!”

물론 이 놈의 오락은.

내가 몸을 담은 세계의 전부고.

내 삶 그 자체다.

그건 모든 프로게이머에게 그렇다.

그렇기에 곧 이 세계를 떠나는 우리의 식구였던 사람에게 보내줄 수 있는 찬사는 하나.

승리 뿐이다.

“나이스!”

“다, 다 죽여놔.”

오늘따라 선수들의 각오가 남다르다.

최은호도 뭔가 눈에 독기가 있는 느낌.

“살짝 탑 쪽 힘 실어줄래?”

“오케이.”

곽지운도, 김예성도 말은 없지만 좀 더 집중하는 느낌이다.

“바텀, 바텀, 바텀! 미라쥬! 다이브 시도는 좋았습니다만!”

“끝까지 물고 늘어진 노틸에게 결국! 서로 킬을 교환합니다!”

“어때! 봤지!”

“굿.”

내가 없는 장소에서 조금씩 데스가 나오기는 하지만 일방적이지는 않다.

“이거, 묘하게 미라쥬가 탑을 외면하는 느낌이죠?”

“이대로 두면 안될텐데요.”

“냐르가 많이 말렸습니다! 오늘은 사우전드 선수가 팬시 선수 앞에서 칼 대 칼의 힘으로 밀리고 있어요! FWX가 전령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탑만큼은.

“전령으로 미드를 선취합니다, FWX!”

대각선으로건, 직접적으로건 팀의 비호 아래 묵묵하게 힘을 키워나간다.

“봉구형, 혹시 블루 필요해?”

김예성이 살짝 농담조로 물었다.

“블루는 무슨. 이야, 예성이. 고맙네잉.”

어쩐지 옆자리에서 안도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봉구야, 레드 먹을래?”

곽지운도 지지않겠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어, 진의 레드? 그거는 쫌 땡긴다.”

“헉.”

“농담, 농담. 이따가 건이가 뺏어주면 그거 묵을게. 아니면 우연히 묵으면 좋은기고.”

팀은 탑이 자원을 차지하는 상황이 그리 익숙치 않았다.

그래, 아마 이 자세를 바꾸려면 꽤 시간이 걸릴거다.

“다섯 번째 포탑까지 정돈했습니다! 지금 FWX가 막! 킬을 마구 내면서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건 아닌데, 그냥 주거지를 철거해버리고 있어요. 미라쥬가 잘 피해다니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어요! 마주치면 좀 무서운 사람들이거든요? 여기서 사시면 안됩니다. 나가세요. 어. 식사도 하시면 안됩니다.”

“얘들아, 바텀 지금 들어가고 있어! 포탑 피 갉고 있으니까 천천히!”

“싸움 봐요.”

순위가 사실상 확정된 시즌 말 치고는.

“아! 걸렸어요! 걸렸어요! 불법 체류하다가 걸렸습니다! 냐르, 냐르! 탑 쪽 사이드에서 냐르 발이 묶입니다! 일단 폭뢰, 폭뢰 들어갑니다! 쿠궁, 쿠궁, 쿠궁!”

“나 수호자! 수호자 있어! 친 짜오 묶어놨어, 묶는 중!”

“나쁘지 않아!”

다들 엄청난 집중력이다.

“아아아아아! 이거 탱 냐르가 아니거든요! 지금, 이거 끊기면 상황 안좋아집니다!”

“지금 아펠! 아펠 허겁지겁 오다가 합류 타이밍이 이상해져요!”

“아펠, 날 도와주러 온거야? 아니? 나도 잡혔어!”

“레오니 궁, 빗나가면서! 냐르보다 아펠이 위기!”

“오늘 진짜 FWX 왜 이래요! 미쳤어요? 왜 이렇게 플레이를 처절하게 하나요! 숨은 쉬게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사람이 정말 절박한 순간에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나는 그런 광경을 몇 번 보긴 했다.

국내 우승권에 가까워지거나, 월즈 무대에서.

“진, 진 궁! 진 궁! 저격! 저격 들어갑니다! 이러다가 발목 다 부러져요!”

“아, 이러지 마! 집착 좀 하지 마! 제발! 멀어져! 제발! 아펠 괴로워요! 비예고가 계속 따라붙습니다! 나는 왕자다! 물러나라!”

“뭐, 비예고는 몰락하긴 했지만 왕입니다?”

“설득력 있어요! 왕의 추격과 그 위로 덮이는 저격.. 아.”

근데, 지금은 분명 그런 ‘때’는 아닌데.

“오늘 우리 컨디션 쥑이네?”

“끝까지 집중해!”

“화이팅!”

그래도 매번 FWX는 ‘이겨야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

“지금, FWX 아주..”

“네, 아주 무섭습니다. 아펠, 냐르 끊겼어요. 이대로 바로 바론 가져갑니다.”

“오늘 이거 완전 진심 펀치인데요.”

“미라쥬, 다운! 다운!”

그리고 결국.

위기에 몰리고 굶주린 상어들은.

다시 한 번.

여태까지 항상 자기들에게 뜯어먹히던 청새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지금 사이드에서 밀고 들어오는 이렐리야 잡을 생각하는 것 같은데, 팬시가 무리만 안 하면 충분합니다.”

“뒤로 슬금슬금 빠지고 있거든요? 감 좋아요, 이 선수 감 좋습니다, 팬시.”

“솔로킬 이후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어요. 팬시의 플레이 스타일이 잘 섞였다고 해야할까요? 이 챔피언이 누가 잡느냐에 따라서 색이 달라질 수 있는데, FWX의 스타일이라고 해야할지. 검은 검인데 양날의 검이 아니라 외날검같은 느낌이죠!”

“봉구 형.”

“응?”

“시간 끌어주세요.”

“죽어도 되나?”

“네.”

“이제 니 말 뭔지 안다. 죽기 직전까지 몸부림치다가 한 명정도 잡고 죽으라는 소리 맞지.”

“아뇨.”

우리 탑, 이제 다 컸다.

“두 명 정도요.”

“어메. 돌것네. 돌것어.”

“미라쥬, 미라쥬가! 미라쥬가 과감한 올인 투자! 한점 돌파 해보나요! 어어어어, 이렐리야, 늦어요? 빠져나갈 수 있나요?”

“어어어어, 도리어?! 빠져나가지 않고, 도리어! 팬시! 팬시?!”

“앞으로 돌격! 돌격합니다! 달려듭니다! 선봉진격검! 오늘, 오늘 달라요!”

“이거, 이거 되나요? 이렐리야가 거세게 달려듭니다! 빨라요!”

문봉구가.

두 번째로 바랐던 것은.

“냐르, 냐르 궁극기 피하면서! 피하면서! 팬시! 팬시! 팬시 이거 지금 팬시가 아닌 것 같아요! 어어어어어어! 슉! 슉! 슈슈슈슈슉!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닙니다!”

“거의, 거의 죽였는데요!”

“거의 죽인 걸로는 이렐리야를 죽일 수가 없어요!”

고작해야 이렐리야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 고작해야 그것이.

이 선수의 마지막 희망 사항이었다.

솔랭에서라면 언제든지 자기가 골라서 할 수 있는 이 픽을.

남들에게, 그리고 나를 무시하던 사람에게 딱 한 번만 보여주고 싶다고.

“잠깐, 잠깐, 잠깐! 이거 FWX 빨라요! 아직 바론 버프 40초! 이거 맞아요? 미라쥬, 이거 맞아요? 시간 너무 오래 끌리면 안돼요!”

“상대가 진이라고 방심했나요! 타워, 타워링 빨라요! 밀고 들어가고 있습니다!”

“빨리 선택해야해요, 해머스! 지금 바로 돌아서거나 빨리 이렐리야를 잡거나! 으아아아아아아! 패애애애앤시!”

그 전에도 바랬다면, 강하게 어필했다면.

한 번쯤은 할 수 있었을거다.

하지만 결국 팀이 이길 수는 없었을거다.

“팬시의 칼날! 칼날이.. 칼날이 춤을 춥니다! 저항의 춤! 쇄도! 미라쥬의 발목을 붙잡으면서, 아니, 아니! 아니! 백스 공포 피했어요! 팬시! 팬시! 달라붙습니다!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곳에 온 지금에야.

문봉구는 여태까지 갈아왔던 마지막 칼을 들어.

“팬시, 팬시! 초시계 사용하면서 끝까지 버팁니다!”

최후의 열정을 연료로, 격렬한 저항의 춤을 춘다.

“어, 어어어어어! 냐르, 냐르, 냐르 변신 풀린 냐르를!”

“으아아아! 끝까지! 데려갑니다! 팬시!”

내 옆에서 달아오른 문봉구의 열기가 느껴진다.

상어들이 문봉구를 잔인하게 물어 뜯는다.

오래지 않아 이렐은 새하얀 칼날만 남기고 사라졌지만.

“아따, 한 놈밖에 못 데려갔네. 미안.”

우리는 남아있다.

“봉구 형, 나이스!”

“쟤네 피 없다.”

“끝낼까?”

“끝, 냅시다.”

“하..”

결국에는.

승리가 찾아온다.

“이거 경기가 끝나게 생겼어요! F-W-X!”

“팬시가! 적들을 가르고 전장 한복판에 뛰어들어서 시간을 충분히 끌던 사이! 경기, 이대로, 이대로, 이대로!”

“이대로, 넥서스가 터집니다!”

“GG!”

청새치를 싣고 항구로 돌아가던 노인은 상어의 습격을 받는다.

그리고 끝내 항구에 돌아왔을 때, 청새치는 상어들에게 살점을 뜯겨 뼈를 드러냈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까.

내 마음 속에는, 무언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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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KL) 김진승(Thousand), “문봉구(Fancy) 선수 리스펙한다” ]

[ 문봉구(Fancy), “낭만적인 게임. 팀원들 덕분에 꿈을 이룬 것 같다.” ]

[ 1위 확정 트릭스터, MSL(Mid-Season League) 출격 ]

[ 뒤집히지 않은 순위.. 부산 호넷 플레이 오프 진출 유력 ]

[ 왜 ‘올해의 신인’은 한 번만 뽑나. 두 번 뽑았으면 두 번 다 권건의 차지였을 것을. ]

[ (LKL FL) 또 너냐, FWX? 퓨처스 리그에서도 ‘약진’, 정규 시즌 공동 1위 ]

[ (LKL FL) 승리의 주역 이유찬(Chani) - 나의 ‘베스트 프렌드’가 알고보니 ‘권건’?! ]

ㄴ 시발아 니가 뭔데 우리 갓건이랑 친한 척이야

ㄴㄴ 얘도 FWX임 2군

ㄴㄴ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아군이다

ㄴㄴ ㅋㅋㅋ뻘하게 웃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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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KL 2025 스프링.

간신히 동부, 서부의 구분만 있을 뿐 특출난 원탑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시즌.

그 주에 있었던 대구 유니버스와의 경기에서 FWX는 승, 패, 승으로 한 경기를 내주고 두 경기를 이겨내면서 끝내 매치 승을 거뒀지만.

결국 부산 호넷이 수원 해머스를 상대로 스윕승을 거두면서.

FWX는 시즌 7위로 플레이 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권건은 2 라운드에 들어서야 리그에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포인트를 1,100점이나 쓸어담으며 전체 POM 순위 2위를 기록하고.

최장 시간 개인 랭킹 유지를 매일같이 갱신했으며.

각종 인기 투표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김예성은 스프링 시즌 펜타킬 3회 중 한 자리(71회차 경기, vs빅스)를 차지하며 개인 기록을 남겼고.

곽지운은 리그에서 인기 없었던 픽인 진을 유일하게 승률 100%로 마무리했으며.

최은호는 팔로워 수 5,000을 처음으로 달성했다.

그리고 문봉구는 하이라이트 이렐 합성 섬네일의 영광을 누렸다.

LKL의 FWX가 문봉구와 함께한 마지막 시즌.

플레이 오프에 가지 못한 팀의 선수들은 다음 시즌을 기약하며 각자 휴가를 보내러 떠났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선수들은 각자 조금 성장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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