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81화 (82/326)

81화. 땅땅땅빵

“가자, 가자, 가자!”

“해 볼만 해!”

“오케이.”

F.L.E 선수들은 기세가 올랐다.

1레벨 타이밍, 상대 서포터 유마가 과감하게 행동했다.

아니, 그걸 과감하다고 표현해도 될 지 모르겠다.

“너무 건방졌죠? 최은호!”

“셰나, 요른 좋았다!”

바텀에서 벌써 퍼블이다.

최은호가 까불대다가 맞은 셰나의 속박을 시작으로 요른이 킬을 가져갔다.

정말, 팀의 수준 차이를 어느정도 무마해 줄 정도의 핸디캡.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F.L.E에서 선취점!”

“요른이 의외로 초반 공격력은 진짜, 굉장히 높거든요!”

“무시하면 안 됩니다, 1레벨 때 요른은 거의 핵망치를 휘둘러요! 때리기가 쉽지 않긴 하지만요.”

“보기 드문 상황이 신기했던 걸까요, 클래스 선수?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고 하죠. 완전히 잘못된 출발입니다. 뭐, 고양이가 요른을 1레벨 때 만나는 게 흔한 상황은 아니에요.”

“아, 벨배스. 처음에는 탑 쪽으로 향하는 게 낫지 않았나 했는데 오히려 괜찮아졌어요. 이대로라면 분명히 바텀으로 도달할 텐데요.”

“유마가 이제 다와갑니다. 졔리가 혼자 라인을 미는 게 쉽지 않았죠. 빅웨이브 타이밍!”

“최근의 FWX를 공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죠. 권건이 오기 전에 터뜨리기. 마침 오늘의 픽도 그브로군요.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이거.. F.L.E에게 각이 나오나요?”

생각보다 F.L.E에서 들고 나온 뜻밖의 무기가 잘 풀리기 시작하면서.

“으아앗, 이걸, 타워 다이브를! 기가 막히는 사이다 선수의 박치기! 아! 라온 선수가 텔을 써줬지만! FWX의 바텀 듀오는 지금 힐을 챙겨오지 않았어요! 정화거든요! 이러면!”

“오우! 결국 졔리가 잡히고 맙니다! 이 쪽은 탈 수 있는 벽이 없어요! 라온도 손해봤죠!”

“그럼 요른! 요른은! 포탑 데미지 버텨내나요!”

“아슬아슬하게! 네! 이거, 요른이 아까 먹은 킬을 바로 아이템으로 바꿔뒀어요! 패시브! 나 혼자만 아이템 레벨업! 이걸.. 살아갑니다!”

“이거 딜 계산이 된걸까요? 상당히 쉽지 않은 영역일텐데. 일단, 벨배스의 발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말 그대로 바텀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텀은 탑보다 덜 터지는만큼, 터지기 시작하면 그 데미지가 두 배.

“이대로만 가자, F.L.E 화이팅!”

“화이팅!”

F.L.E는 서로를 독려했다.

여기저기에서 고생을 많이 하고 이 팀에서 뭉친 선수들은 서로 끈끈한 편이었다.

각자 마음 속에 어떤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이다.

아카데미 시절 아이디까지 맞춘 친구와 지금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버리게 된 선수.

꽤 유명 팀의 연습생으로 유망주 소리만 듣다가 단 한번도 출전하지 못한 채 결국 이곳 저곳 굴러 여기까지 온 선수.

본명이 이 신이라, 모두 리싱이라고 놀리기만 할 뿐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아 ‘갓신’으로 선수명을 변경한 선수까지.

“일단, 일단 바텀 중심으로 굴려보자!”

이 경기를 이긴다면, 어쩌면 꽤 큰 명예를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도 간절한 경기였다.

“아! 이거, 요른이 진짜 잘 버티는 챔피언이거든요? 타워 허깅의 신입니다!”

“건드리기는 껄끄러워요. 이거, 위험 부담에 비해 맛도 별로 없어요! 지금 F.L.E는 탑이 둘입니다!”

- 아니..

- 혹시 너네.. 강자멸시였니?

- 왜 F.L.E한테 지고 있어.. 트릭스터 팬 민망하게

- 빅트릭스톰애들 몰려온다 피해라ㅋㅋㅋㅋㅋ

- 균형의 수호자 FWX?

- 바텀 진짜 뭐함? 클래스 뭐함? 유마 들고 뭐함? 유마 원툴임?

매콤한 질책이 쏟아지고.

“첫 전령을 F.L.E에서 가져갑니다! 벨배스의 발이 넓어지기 시작합니다!”

첫 세트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얘들아.. 미안해..”

“미안하단 말 그만해.”

확 기가 죽은 최은호의 사과에 곽지운은 집중한 채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아까 진짜 갑자기..”

“됐고, 일단 계속 성장하자. 저거 타워 막아야해. 벨배스 지금 예능챔 아니야.”

게임 중 입을 잘 떼지 않는 편인 곽지운의 말 치고는 긴 편이었다.

“내가 생선대가리는 쪼로록쪼로록 다 잘라줄테니까는, 걱정 말어.”

평소보다 탑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주고 있는 문봉구는 든든하게 팀원들을 달랬고.

“형, 이따가 나한테만 타고 있어. 각 다 맞춰줄게.”

김예성까지 최은호에게 격려를 불어넣었다.

권건은, 그저 조용히 성장에 몰두했다.

#

아, 이 때 판단만 잘했어도.

라는 생각을 한 적이있는가?

선수의 기량과 판단은 별개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사고라는 게 이렇다.

의외로 아주 잘하는 팀의 선수들도.

그 선수가 세계 대회 우승 경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순간적인 미스가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외부적 요인인 경우도 있다.

생각보다 추운 경기장에 손이 순간적으로 얼었다거나.

음료를 쏟았다거나 하는 일도 있으니까.

물론 솔랭에서도, 리그에서도 아무도 그 이야기를 들어주지는 않는다.

“지금 쟤네는 타워 미는 데에 집중할테니까.”

그브는 당장 상황을 뒤집는 데에 좋은 챔피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아쉽기도 하다.

다른 챔피언이었다면 좀 더 빨리 팀원들을 안심시켜줄 수 있었을거다.

불쌍한 팀원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어딘가 울컥하는 기분이 든다.

고양이가 사고를 칠 수도 있지.

그렇다고 죽이면 어떡해요?

너무나 잔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상황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가?

그렇지는 않다.

내가 솔로잉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교전 봅시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제가 캐리할게요.”

정신만 차린다면.

절대 못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지금 요른 예술인데요?”

“팬시 선수의 요른을 뺏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이다 이 선수. 풀무질 좀 합니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릅니다. 상대는 강팀 FWX예요!”

- FWX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 아 좀 닥쳐

- 부정타니까 그 말 좀 하지마

- 니가 죽였어!

자.

우리가 좀 말리긴 했지만, 힘이 없는 건 아니다.

많이 힘든 건 바텀.

요른의 영향력을 퍼뜨리고 싶었는지, 상대는 첫 번째 전령으로 바텀 타워를 점령했다.

졔리는 지금 물총을 쏘고 있고, 고양이는 시야 확보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그윈과 아라는 상당히 괜찮다.

역할을 나눠가질 수 있다.

그럼 적은 어떨까?

제이슨은 아직까지 맞을만하기도 하거니와, 우리는 어느정도 면역이 있는 조합이다.

빅터르는 말렸고, 셰나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문제는 요른과 벨배스.

저 두 명의 적장이 함께 있다면 몹시 껄끄러워진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적들은 반드시 이 둘을 앞세운 움직임을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깍지 형, 이거 먹어요. 밖으로 나가지 말고.”

내 밥을 내어주고.

“적 레드 침투합니다.”

나는 남의 밥그릇을 탈취한다.

“오케이. 내는 여기 정리하고 탑 쪽 갈까?”

“네. 두 번째 전령 내주고, 미드나 바텀 둘 중 하나로 올테니까 뒤 잡을 수 있게 미리 시야 잡아요. 보험 와드까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면서.

“고양이는 예성이한테 붙고.”

“나는 왜 고양이라고 부르는데.”

“응, 은호 형이랑 시야 잡을게.”

“시야 한 턴 쓰고 이 쪽에서 잠시 대기.”

그리고 끊임없이 소모값이 적은 함정을 하나씩 파자.

적이 바라는 게 뭘까.

하고싶은 게 뭘까.

“FWX가 전령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시야를 확보하네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에요. 요른이 지금 성장이 잘됐거든요. CS를 약간 놓치긴 했지만, 그래도 먹고 자란 요른입니다. 착각하면 안돼요.”

“F.L.E가 타워링에 몰두하는 동안 권건 선수의 그브가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긴해요. 하지만 이건 타워를 깨는 게임입니다. 이대로 시간을 계속 끌면..”

적은 관성이 있는 조합이다.

퇴각을 위해 바로 뒤돌기는 쉽지 않다.

일단 한 번 상대가 머리를 들이대는 타이밍만 잘 잡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

“그브, 지금 아이템 극딜 세팅인가요?”

“당연히 단단하게 갈 줄 알았는데.. 안 맞겠다는 거죠. 말이 안되는 것 같은데 말이 됩니다. 권건 선수니까요. 이거 완전 사파 원딜이에요?”

“템트리가 화가 많이 났죠?”

강력한 샷건.

가오리나 거대 산양같은 괴물을 상대할 때는 샷건이 제격.

이건 감히 남자의 로망이라 할 수 있겠다.

문제가 있다면.

‘진짜’ 샷건을 수급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그것은 아군의 고혈이 될 수도 있고.

“아아아아, 이거, 이거!”

“본대에 합류하러 가는 제이슨! 제이슨!”

“빨라요, 빠르지만!”

적의 피가 될 수도 있다.

“그브, 붙습니다! 붙습니다! 호오오오오우! 총을 코 앞에서 쏴요! 이러면 더 아프죠? 골목에서 만나면 아주 곤란해요! 골목 대장이에요! 마치 라이크 갱스터!”

적은 우리를 밀어넣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낱같은 작은 틈은 항상 존재한다.

“으아, 짜릿할걸! 피했어요! 피하면서..아, 그쪽은!”

“귀신같이 튀어나오는 아라! 권건이 킬을 가져갑니다!”

끊어먹기 한 번.

“어디서 튀어나온 건가요! 어떻게 시야를 피했죠!”

“뒤에서, 뒤에서, 뒤에서! 빅터르, 빅터르! 전사! 맙소사, 그브 딜이 지금 정상이 아니에요!”

끊어먹기 두 번.

시간을 벌며 상대의 피로 대금을 마련한다.

그럼에도 결국 상대가 밀고 들어오는 시간은 다가온다.

“겁먹지 마요. 내각 들어오는 순간.”

“오케이.”

그나마 이제는 총 비슷한 걸 쏘고 있는 곽지운.

그리고 여전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적의 본대.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미드를 공략하는 F.L.E! 모두 투입됐습니다!”

“타워 내놔! 자꾸 끊어먹기 할래? 너네 아주 건방져!”

“타워 깨기 몰입, 몰입, 몰입! 여제님은 타워 깰 때 제일 재밌어요!”

“미드, 미드, 미드 전령! 벨배스, 벨배스 밀고 들어옵니다! 내각 타워, 내각 타워에 들이받는 순간!”

전령과 타워에 시선이 쏠리는 찰나의 순간.

“아아아아! 이 순간을 기다린건가요, FWX!”

“연막탄!”

적의 시야가 흐려진다.

찰나가 잠시로 늘어난다.

“돌입.”

내 출격 명령과 동시에.

사방에 산개해있던 아군이 일제히 뛰어든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 요른, 붑니다!”

전쟁을 알리는 적의 뿔피리 소리.

한 발.

그리고 화약탄의 영역을 긋는다.

담배를 꼬나물고 우측으로 퀵 드로우.

요른이 불러낸 거대한 산양을 느긋하게 흘려내면서.

허리춤에서 총탄을 꺼내 재장전.

내 발 끝으로 다시 밀려온 화약탄에서 울리는 고요한 폭음.

다시 한 발.

어지러워진 전장 속.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위 아래로 쇄도하는 여제.

그 순간, 폭발성 탄환이 공기를 가르며 여제의 머리를 꿰뚫고.

강렬한 반동으로 그녀의 손길을 피해내면서.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낸다.

“아..”

바람이 한바탕 불어닥쳤던가.

“아아아아아아아아아! F-W-X!”

자욱했던 시야.

그리고 쓰러진 적 너머로 보이는 것은.

“나이스.”

벽을 넘어 양동 작전을 펼친 양갈래의 꼬마 갱스터와 그의 고양이.

나도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정비.”

전투의 종결을 알린다.

짧은 침묵 끝에 환호성이 새어 들어온다.

“으아아아아아! 권건! 권건! 으아아아아아!”

“미친 데미지! 미쳐버린 폭딜, 전부 다 한 호흡에 꽂아넣었어요!”

“트리플 킬! 진짜 순식간에! 눈 살짝 감았다 뜨는 순간에! 폭풍같이 한 순간에 돌입한 FWX가 에이스를! 만들어냅니다!”

“권!건! 샷!건! 이 구역은 우리 조직에서 접수한다! 건! 건! 건! 땅, 땅, 땅, 빵!”

“F-W-X! F-W-X! 그브 트리플 킬!”

조금 오래 기다렸겠지만.

결국, 샷건 앞에 평등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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